1. 씨뿌리는 자

 마 13:1-9, 18-23

(2003년 1월 8일, 현풍제일교회 수요예배)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 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1)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특정한 장소나 시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 우리에게 왔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우리 가운데 있다"(눅 17:21)고 분명히 말씀하셨건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특별한 장소나 특별한 시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이곳에 와야 천국이 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하나의 장소에 끌어 모으려고 미혹해 왔으나, 결국에는 그 말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순진하게 속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공동으로 생활하면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는 있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다른 어떤 곳보다 더 분명히 체험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곳이 바로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단정하지는 못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은 버렸지만, 죽음 후에 곧바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로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상당히 많다. 예수님은 성도들이 죽은 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거나 잠자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곧바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을 하신 적은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오른 편의 강도에게 약속하신 '낙원'을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많은 신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웨슬리는 낙원을 음부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장사된 후에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벧전 3:19)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2-3절의 말씀(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은 사후의 천국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말씀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마치 식구가 늘어나면 집이 좁아져서 사람들이 집을 넓히듯이, 바로 그렇게 예수님이 좁아진 천국을 확장하시려고 이 세상을 떠나신다고 생각할 수 없다. 아니 이 본문을 문자 그대로 생각하면, 아버지 집에는 거할 장소가 넓은데 제자들이 들어갈 집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으므로 이제 예수님은 마치 목수처럼 새로운 집을 지으려고 가신다고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창세부터, 아니 창세 전부터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어서 무한히 넓은 그 나라에 들어갈지언정, 그 누가 좁거나 없는 천국을 새삼 마련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말씀은 비유로 해석되어야 한다. 즉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영원히 안식할 집과 같이 영생을 준비하시는 희생의 죽음, 영광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죽은 후에 천국에 간다고 믿어온 상당수의 성도들은 상당히 혼동을 느낄 것이고, 그러면 천국의 장소에 관해 새삼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분명히 말씀드리면, 천국은 어떤 특정한 장소나 시간에만 국한되어 있는 게 아니라 어디나 있다. 아니 천국은 우리 가운데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천국은 우리 가운데 왔다. 그래도 여러분은 계속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성도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고, 어디로 가느냐? 살아서 천국을 맛본 성도들은 죽었다고 그 특권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현세의 천국에서 사후의 천국으로 옮아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세의 천국이든 사후의 천국이든, 그것은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부활이 일어나지 않았고, 죽음과 고통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아직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불완전한 것이기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왔다"고 분명히 말한다. "가운데"라는 말을 사람들은 "우리 마음 안에" 혹은 "우리 사이에"라고 생각한다. "우리 가운데"를 더 넓게 생각해서 이 땅, 이 세상을 생각할 수도 있다. 씨는 천국을 뜻하고, 땅은 이 세상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하고 가장 확실한 사실은, 천국은 신비한 장소나 죽은 후에 비로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에게, 우리 마음 안에, 우리 사이에, 이 세상에 있고, 바로 이곳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믿음으로 이 천국을 믿고 소유할 수 있다.   

 

2)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왔지만, 그것은 누구나 볼 수 있게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 심겨지는 씨와 비교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이 밭에 씨를 뿌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천국의 씨를 세상에 뿌리는 장면을 볼 수는 없다. 물론 예수님이 풀어주신 대로 씨를 말씀이라고 이해하면, 우리는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의 외모를 볼 수 있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보이도록 오지 않는다. 아무도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 속에 심으시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것은 성령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고, 바람처럼 성령을 손을 움켜쥘 수 없는 것과 꼭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세우시는 천국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고 인간의 생각으로 미리 계산할 수 없는 신비로운 사건이라는 것이다. 믿음은 선물이요, 그렇기에 예측할 수 없는 신비요 기적이다. 누가, 언제 천국을 믿고 천국을 경험하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천국은 오직 이를 맛본 자만이 안다. 천국은 여전히 신비 속에 있다. 마치 씨가 땅 속에 숨겨져 있듯이, 천국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 가려져 있다. 그리고 씨는 은밀하게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자란다. 아니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려고 해도, 우리는 그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없다. 그처럼 천국의 장소와 성장은 참으로 은밀하다. 신비하다.

 

3)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세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사람들에게 왔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이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천국을 강제로 주시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천국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선물이라고 하더라도, 선물을 기쁘게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를 거절하는 사람도 있다. 더욱이 선물을 받아서 발로 밟고 망가뜨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선물을 돌려주거나 내던지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하나님이 아무리 모든 자들에게 은혜로, 공짜로 천국을 주려 하셔도, 이를 거부하거나 심지어는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거부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는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달되어도, 왜 어떤 사람은 믿고 왜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가? 칼빈과 같은 사람은 이를 하나님의 예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구원을 받을 자와 멸망할 자를 미리 정해 놓으셨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어긋난다. 무엇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만약 하나님이 멸망할 자를 미리 예정해 놓으셨다면, 그들에게 굳이 복음을 전달할 필요도 없지 않는가? 멸망의 책임도 분명히 하나님에게 있거늘, 인간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처음부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각본이 쓰여진 사람에게 굳이 복음을 전달하는 것은 헛수고를 하는 셈이고, 일종의 사기극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귀중한 진주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돼지처럼 천국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돼지의 눈에는 오직 먹이만 보일 뿐이며, 진주는 전혀 귀중하지 않다. 요즈음에는 돼지를 애완용 동물로 기르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돼지에게 다이아몬드 목거리를 걸어준다고 돼지가 좋아할까? 도리어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고 주인에게 덤빌 수 있다. 이처럼 천국의 귀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천국을 전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은 누구일까? 무신론자들, 물질주의자들, 현세주의자들, 쾌락주의자들, 죄인들이 그런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에 천국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세리와 창녀가 아니라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천국이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이 아니라 율법을 행함으로 실현하고 확장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심지어 그들 중의 어떤 이들은 무력으로 천국을 빼앗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의 복음을 거절하였다.

하지만 본문의 말씀은 아마도 제자들을 염두에 둔 말씀일 것이다. 천국은 이미 제자들 가운데 뿌려지고, 심겨졌다. 제자들은 천국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천국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어떠한가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열심히 들어도, 마귀와 같은 자들이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 갈 수 있다. 교회에서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도, 집으로 가서는 은혜를 쏟아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녀들이 화나게 하거나 뭔가 언짢은 일이 생기게 되면, 언제 은혜를 받았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구 성을 내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포악하고 사납게 행동하는 성도들이 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도루묵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녀들을 마귀취급을 하라는 말씀은 아니다. 마귀는 언제나 활약할 수 있다. 예수님에게 가장 큰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조차 곧바로 '사탄'이라는 혹심한 욕을 먹지 않았는가?

어떤 성도들은 천국의 말씀을 듣고도 이를 가볍게 여김으로써, 말씀의 뿌리를 전혀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를 예수님은 환난이나 핍박이나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아무리 오래 신앙 생활을 해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늘 제자리에서 맴도는 성도들이 있다. 잘 믿다가도 환난이 오면 완전히 자빠지는 성도들이 있다. 그렇다고 환경이나 조상 탓을 해서는 안 된다. 환난이 온다고 모두가 낙심하지는 않는다. 핍박이 닥쳐온다고 모두가 주님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세상 염려 때문에 모두가 믿음까지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재물의 유혹은 사실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강력한 유혹이다. 재물의 유혹이 얼마나 강하길래, 예수님조차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지 말라. 둘 중에 하나만을 섬기라, 아니 둘 중에 하나는 미워하라"고 까지 말씀하셨겠는가? 아마도 성도들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 믿음의 열매를 잘 맺지 못하는 이유, 아니 서서히 믿음에서 이탈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재물의 유혹 때문일 것이다. 보이는 재물은 보이지 않는 천국보다 더 강력한 유혹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재물을 올바로 벌고 쓰고 관리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아니 재물을 올바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 재물에 관한 말씀이 자주 나올 것이다.

여하튼 여러분은 천국을 마음 속에, 가정과 교회 속에서, 직장과 사회 속에서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뿌리를 내려 아름답고 탐스런 열매를 주렁주렁 맺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은 믿음의 열매를 원하신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날로 왕성하기를 원하신다. 여러분을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삼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여러분은 마음 밭을 잘 지켜야 할 것이다. 잠언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했다. 교회에 나온다고, 말씀을 듣는다고 다 좋은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마음을 잘 지키고 잘 가꾸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며 장차 큰 상급을 받는 신실한 일꾼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