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열 처녀

 

마 25:1-13

2003년 4월 16일, 현풍제일교회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1)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 당시의 결혼 풍습을 비유로 삼아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고 있다. 신부는 예쁘게 단장하고 집에서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열 처녀는 약혼한 신부라기보다는 아마도 그를 호위하는 들러리 처녀일 것이다. 신랑이 오면, 한 바탕 잔치를 벌인 후에 신부는 신랑집으로 가는데, 그 때에 열 명의 들러리 처녀들은 신랑과 신부를 호위하여 춤추면서 그들을 따라간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이와 같은 결혼식 광경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이 힘겹게 성취하고 애써 실현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순수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쟁취의 대상이 아니라 기다림과 수용의 대상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자"고 제자들을 선동하셨을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이든 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죽음 후에 들어갈 영역으로 생각하는 경향에 기운다고 한다면, 특히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쟁취하고 확장해야 할 임무로 생각하는 경향에 기운다.

하지만 실로 두 가지 생각이 다 잘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은 후에야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라 이미 여기서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왔다. 이 점을 나는 이미 설명한 적이 있다. 우리는 대개 "죽은 후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한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살아 있는 우리에게 온다"고 말하셨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쟁취해야 할 것으로 보는 생각도 잘못이기는 매 한가지다. 비록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고 있고, 그래서 이 세상에서 이미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실현하고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천국을 빼앗느니라"(마 11:12)는 말씀을 근거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이 본문은 그렇게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예수님의 인격과 활동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율법의 실천이나 무장 투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억지로 쟁취하려는 유대인들의 잘못된 태도를 예수님은 강력하게 나무라시고 있다. 왜냐하면 "침노한다"는 말은 "폭력적으로 빼앗는다"는 뜻을 갖고 있고, 오직 강도나 폭도만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처럼 우리가 언제나 기다려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은 인간의 예상을 빗나갈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우리에게 오고 있지만, 아직 다 오지는 않았다. 하나님 나라는 역사 속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되지만, 그 완성은 점진적인 진보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갑자기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인간의 계산을 뛰어넘는다. 보통 결혼식은 초저녁에 시작되기 때문에 사실 여분의 기름이 필요가 없다. 그래서 다섯 처녀는 상식과 관행대로 조금의 기름만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신랑은 예상을 넘어 예정된 시간에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다시 사러 나간 사이에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혹시 뜻밖의 상황 때문에 신랑이 늦게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별안간 온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상식과 관행을 뛰어넘어 갑자기 들이닥칠 수 있다. 그러므로 본문이 결론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날과 어느 때에 올지를 너희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우리는 늘 깨어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해서도 안 되지만, 어리석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이 계산한 특정한 날과 시간에 온다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올지 모른다. 아니 그것은 예상 밖에 언제든지, 별안간 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2) 이 비유에서 "기름"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기름을 성령으로 생각한다. 기름은 사람에게 능력을 줌으로써 신랑을 맞이할 힘을 갖게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성령은 자유로운 영이기 때문에 인간이 임의로 준비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기름을 회개로 생각한다. 회개하는 사람만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성령과는 달리 회개는 분명히 인간이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회개는 믿음을 기초로 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름을 믿음으로 본다.

물론 여기서 믿음이란 단지 입술만의 믿음,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행함의 열매를 맺는 신실한 믿음을 말한다. 환경이 어떠하든, 남이야 어떠하든, 끝까지 참고 믿고 행한 사람만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늘 믿음의 등불을 켜서 신랑이 오는 길을 훤히 밝혀야 한다. 물론 등불을 밝힌다고 해서, 신랑이 더 빨리 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등불이 꺼져 있으면, 신랑은 처녀를 알아보지 못하며, 그래서 처녀들은 신랑의 환대를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 우리 생애의 마지막 날, 인류의 마지막 날, 우주의 마지막 날, 주님이 재림하는 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늘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느 마을에 비가 너무 오래 동안 내리지 않아 농작물이 다 말라죽고, 목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교회당으로 몰려가, 매일마다 하나님에게 빨리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었고, 당분간 비가 올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오랜 가뭄 때문에 사람들은 너무나 절망한 나머지 지금 당장 비를 내려달라고 탄식하며 애걸복걸하였다. "주님, 당장 비를 내려 주십시오. 아니 당장 비를 내려주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몇 시간 동안 기도한 끝에 바깥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교회당 문을 나서자마자 기적적으로 하늘에서 소낙비가 쏟아지지 시작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절망하던 동네 사람들은 이제는 갑작스러운 비 때문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어린이가 우산을 피는 게 아닌가? 어른들은 그 어린이가 하도 신기하고 기특해서 물었다. "얘야, 너는 무슨 생각으로 이 가뭄에 우산을 들고 교회당에 왔니?" 어린이가 어른들에게 무슨 대답을 하였겠는가? "어른들은 정직하지 않아요.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비를 내려줄 것을 확실히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비가 올 것을 위해 전혀 준비하지 않았잖아요!"

어린이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지만, 어른들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와 같다. 종말을 믿고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미 여기서, 지금이 종말인 줄로 알고 산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미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다 온 것처럼 그런 자세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미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가뭄 속에서도 언제 비가 올지 몰라 우산을 들고 온 어린이처럼 항상 소망을 품고 산다는 뜻이다. 아니 소망이 이미 실현된 것처럼 그런 자세로 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상식을 초월한 사람이요, 세상 사람과는 다르게, 아니 그들과 정반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이런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이 보기에 어리석은 사람 같지만, 바울의 말대로 세상 사람의 지혜는 그리스도인의 어리석음보다 어리석다. 왜냐하면 종말은 언젠가 꼭 오고야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그리스도인은 항상 깨어서 살아간다. 바로 오늘이 종말인 것처럼 믿으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세상 사람이 누릴 수 없는 평안을 누리며 살아간다. 축제의 날이 바로 코앞에 닥쳤기에 늘 기쁘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