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한 달란트를 받은 자

 

마 25:14-30

2003년 4월 23일, 현풍제일교회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 '달란트의 비유'라고 불리는 오늘의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헌신과 충성을 촉구하기 위하여 자주 애용되어온 본문이다. 이 비유는 예수님이 곧 잡히셔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제자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진지하게 가르치신다. 예수님의 비유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여러 각도로 배웠다. 오늘 우리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오늘의 본문에 제목을 붙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하나님의 일과 인간의 일의 관계'라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간추려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일이지, 인간의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이지, 세상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과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영역이요, 그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나라를 오직 기도하는 자세로 기다릴 따름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일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열 처녀가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듯이, 우리는 하나님 나라 잔치의 주인인 신랑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릴 따름이다.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지만 열 처녀는 그냥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이 오는 길을 밝히고 있었다. 오늘의 본문도 뭔가 인간이 해야 할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종들에게 제 각기 달란트를 맡기는 본문의 주인처럼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하지만 주인이 종에게 달란트를 준 것은 그냥 그대로 보관하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활용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나라를 공짜로, 은혜로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오직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실 때에 그저 받기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선물에는 우리가 어떻게 이 선물을 활용해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설명서가 항상 붙어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교인들은 착각하고 있다. 이들은 선물을 받자마자 붙여있는 설명서를 보고는, 하찮고 귀찮은 듯이, 이를 떼어버린다. 설명서를 제대로 잃고 그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리 값비싼 선물도 아무런 소용도 없건만, 하나님의 나라가 오직 믿음으로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상당히 많다. 그 이유는 아마도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 교회가 구원을 얻기 위해 믿음과 함께 인간의 공로도 쌓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반박하면서,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롬 1:17)고 주장하였다. 그 이후로 '오직 믿음으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상당한 혼란과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직 하나님의 선물과 은혜, 즉 공짜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저 받기만 하면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믿기만 하면 된다"는 공짜 심리가 한국교인들 가운데서도 상당히 확산되어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한 교인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상급을 받겠지만, 오직 믿기만 한 사람도 '부끄러운 구원'은 얻는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본문에서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바로 그렇게 오해하였다. 한 달란트를 받았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내어놓으면서, 그가 늘어놓은 핑계를 한번 들어보자. "당신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주인의 대답은 종의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알았느냐?"고 엄히 책망하면서, 주인은 종에게 준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이를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고, 그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았다.

주인은 종을 보고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하였지만, 실로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종"이다. 종의 잘못은 무엇인가? 먼저 그는 주인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는 주인의 뜻을 오해하였고, 착각하였다. 오늘 특히 보수적인 개신교인들 가운데서도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종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의 비유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지 않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는 자들을 보시고서, "나와 도무지 상관이 없다"라고 말하셨다. 믿는 자들은 열매를 통해 믿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니라 땅에 꽂아놓은 나무 막대기에 불과하다. 설령 나무라고 해도, 그것은 병들거나 죽은 나무, 아니 뿌리가 없는 나무일 것이다. 어떤 주인이 이런 나무를 계속 내버려두겠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받고서도 이를 활용하여 열매를 맺지 않은 교인들도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다.

 

2)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이를 활용하여 많은 이익을 남기지 않은 것은 '어리석음' 혹은 '오해와 착각' 때문이라고 말하였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게으름도 중요한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본문은 종의 두려움을 말한다.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무엇이 두려웠다는 말인가? 한 달란트를 활용하려다가, 잘못하면 이것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를 땅 속에 고이고이 모셔놓았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는 모험을 싫어하는 겁쟁이처럼 보인다. 또 어떻게 보면, 그는 굉장한 보수주의자처럼 보인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는 자는 잃을 것이고, 자기 목숨을 버리려는 자는 얻을 것이다"고 말하셨다. 하지만 삶의 철학과 원칙을 보수주의 위에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오직 현재의 것을 보존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위한 모험과 변화를 싫어하며,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당장은 실패하지 않을지는 모르나, 결국엔 그가 가진 것마저 다 까먹거나 남에게 빼앗긴 후에 빈털터리로 살아갈 것이며, 남에게 아무런 유익을 남기지도 않은 채 쓸쓸히 죽어갈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를 그냥 그대로 지키고만 있으라는 뜻으로 주셨을 리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큰 기쁨과 놀라운 환상이 무한히 전개되는 잔치와 같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직장을 통해, 우리의 은사와 직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더 풍성케 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더 풍성하게 즐기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과감히 투자해야 하며, 그래서 새로운 미래를 향한 모험 정신과 도전 정신으로 항상 가득 차 있어야 한다. 겁쟁이와 보수주의자처럼 아무 것도 잃지 않으려고 하다가, 모든 것을 몽땅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아무 일을 하지 않았던 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바로 지나친 경쟁심과 열등감일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다른 종과 비교해 보면서, 자기가 남에 비해 적은 달란트를 받았다고 생각하며 열등감에 빠졌을 것이고, 그래서 주인을 증오했을 것이다.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이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정도라고 한다.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노동자의 하루 품값을 오만 원이라고 가정할 경우에 한 달란트는 약 3억이 된다. 다섯 달란트는 약 15억이 되고, 두 달란트는 약 6억이 된다. 그렇다면 15억과 6억에 비추어 보아도, 3억은 절대로 작은 돈이 아니다.

더욱이 정말로 중요한 점은 "남이 얼마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를 가졌는가?"이다. 인생은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다. 이 세상 어디에도 공평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불공평한 현실에 눈을 감고 적당히 살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각자 다른 운명과 성격, 다른 자질과 은사를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서 감사해야 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인생을 아름답고 풍요하게 가꾸어나가야 한다. 굳이 비교한다면,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서, 하나님 앞에 내가 최선을 다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에 몰두하면, 결국 하나님을 불평하든지, 부모와 환경과 나를 불평할 것이고, 나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다가 그를 해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를 다른 사람과 너무 비교하다 보면, 나보다 못난 사람을 만나면, 그를 멸시할 것이고 나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면 나를 멸시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임무를 얼마나 최선을 다해 성취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하나님은 누가 더 많이 가졌는가를 보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누가 가진 것을 더 잘 활용했는가를 보신다.

 얼마 전에 '오체 불만족'이라는 책을 쓴 일본 청년 오토다케 히로타다 씨가 한국에 다녀간 적이 있다. 그는 1976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나면서부터 팔다리가 없었다. 더욱이 병원은 태어난 아이가 황달이 심하다는 이유로 한 달이나 부모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 한 달만에 그를 만난 부모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그를 반갑게 대해주었다. 부모의 그런 따뜻한 마음씨 때문인지, 히로타다 씨는 아무런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자라났으며, 신체적인 장애에도 불구하고 달리기, 야구, 농구, 수영 등을 즐겼으며, 일본의 명문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 정치학과에 다녔다. 그는 자신이 팔다리가 없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의 장벽을 없애기 위해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우리 주위에는 좋은 조건과 많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불평과 태만, 고집 속에서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악조건 속에서도 인생을 훌륭하게 산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환경과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 아니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처지가 어떤가를 전혀 보시지 않는다. 오직 주어진 조건 속에서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봉사하였는지를 보신다. 비록 여러분이 다른 사람보다 더 힘들게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말자. 여러분의 삶은 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신다.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셔서 생명을 주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의 나라,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주셨다. 얼마나 놀랍고 큰 하나님의 은혜인가? 그러므로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값비싼 은혜를 싸구려 은혜로 변질시키지 말자. 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아니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 앞에서 늘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자. 그리하여 이웃 사람들에게도 큰 기쁨을 선사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자. 여러분의 달란트는 무엇이고, 그 달란트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