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지혜로운 청지기

 

눅 16:1-13

2003년 6월 11일, 현풍제일교회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1) 예수님의 모든 관심은 온통 '하나님의 나라'에 쏠려 있었다. 예수님의 첫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말씀이었고, 예수님은 일평생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날 밤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담대히 선포하셨으며, 부활 후 40일 동안도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 이처럼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동은 '하나님 나라'와 뗄 수 없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좀 심하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완전히 미치셨다"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이 세상 사람의 중요한 관심사인 재물에 관해 많은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이하고 의아하지 않은가? 신령한 하늘 이야기를 말하셔도 제대로 알아들을까 말까 한데, 세상에 때묻은 사는 사람이나 관심을 갖는 세상 재물에 관해 예수님은 왜 그리도 관심이 많으셨는가? 예수님을 잘 모르는 사람은 혹시 예수님을 하나님의 나라를 빙자하여 재물을 모으려는 사기꾼으로 오해하기 쉽지 않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재물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 저 높은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 속에 있다. 땅을 한번 파 보라. 그러면 하늘이 나오지 않는가! 이처럼 하늘은 땅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 속에 묻혀 있는 보화와 같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쓸 것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재물을 주시는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며, 이를 통해서도 하나님에게 영광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재물을 올바르게 관리하고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특히 예수님이 재물에 관해 남달리 관심을 기울이신 것은 재물의 강력한 힘 때문이다. 한편으로 재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도 우리가 늘 기도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재물은 우리를 미혹하고 탐욕스럽게 한다. 한편으로 재물은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는 좋은 수단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인간을 올바로 섬기는 데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재물은 우리가 일용할 물건이지, 섬길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열렬히 섬기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은 오늘의 본문에서 하나님과 재물 중에서 하나만을 섬길 것을 명하셨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인간은 재물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인, 청지기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주인이 아닌 청지기 주제에 우리가 함부로 재물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우리를 섬기도록 창조된 재물을 섬기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인의 마음에 합당하게 재물을 쓰고, 지혜롭게 관리해야 한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을 올바르고 지혜롭게 사용할 것을 가르친다.

 

2) 오늘의 비유는 위기에 직면한 한 청지기가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 행동이 발각되자, 청지기는 하던 일을 끝내라는 말을 듣는다. 손으로 일하기엔 힘이 없고 구걸하기엔 자존심이 상하니, 주어질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청지기는 미래를 대비하는 행동을 한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을 진 채무자들을 불러서 빚을 탕감해준다. 아마 채무자들은 주인이 청지기에게 빚을 탕감해줄 권리를 주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빚을 마음대로 탕감한 청지기를 본 주인은 곰곰이 생각한다. 만약 주인이 청지기를 책망한다면, 청지기는 채무자들이 지닌 영수증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무고함을 변명할 것이다. 하지만 주인은 채무자들로부터 감사와 칭찬의 말을 듣는 편을 택한다. 사실 주인도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청지기를 책망하고 손해를 청구해 보았자, 빈털터리인 그에게서 아무 것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재물의 손해는 보았지만, 이로 인해 주인은 대중의 칭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청지기는 불의한 일을 행했지만, 주인에게 칭찬이 돌아가는 일을 했다. 주인은 청지기가 주인의 이런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청지기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그를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주인이 청지기가 처음부터 허비한 행동을 칭찬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가 칭찬한 것은 자신의 미래를 지혜롭게 예비하는 청지기의 행동이다. 청지기는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도록 행동하였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도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할 것을 가르치신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인가? 불의한 청지기가 소유를 지혜롭게 사용하여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면, 빛의 아들은 주어진 재물을 구제를 위해 사용함으로써 하늘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돈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자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맡기신 세속적인 재물을 충성되게 - 지혜롭게 -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제자들의 재물은 하나님과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수단으로 거룩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초대 교인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어떻게 따랐는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행 2:44-45),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행 4:32, 4:34-35).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구제하다가, 나중에는 조직적으로 구제하였다. 예루살렘 교회가 처음으로 일곱 명의 집사를 택한 것은 바로 구제를 위함이었다(행 6:1-7)

초기 교회의 교부요 순교자였던 저스틴(Justin)은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잘 행동하고, 올바르다 생각하는 바를 기꺼이 행한다. 이들이 지도자에게 모아둔 것들을 맡기며, 병이나 혹은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궁핍한 자들과 억류된 자들과 우리 중에 거하는 이방인들과 고아와 과부들을 돕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핀다.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땅에서 물질을 서로 나누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아내만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공동 소유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물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함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함이다. 재물을 이렇게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재물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늘의 창고에 재물을 쌓게 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된다. 비유의 주인이 청지기의 지혜로운 행동을 칭찬하였다면, 예수님은 기대밖에 세상 사람들의 지혜를 칭찬하신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16:8). 이 말은 제자들을 부끄럽게 하였을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자칭하는 우리도 정말 부끄럽게 한다. 실로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일평생 모은 피와 땀이 묻은 재물을 대학과 불우한 이웃, 복지기관 등에 아낌없이 내어놓은 분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은 대개 재벌이나 부자가 아니라 일평생 어렵게 산 분들이다. 그들에 비해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처하는 우리는 내심으로는 재물을 섬기고 있지는 않는가? 과연 우리는 세상 사람보다도 더 지혜롭게 재물을 사용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