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겨자씨와 누룩

 

마13:31-33

2003년 1월 22일, 현풍제일교회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1)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첫 번째의 교훈은, 하나님 나라는 힘차게 성장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다. 본문의 초점은 물론 성장과 발전에 있기보다는 처음과 나중의 큰 차이에 있다. 하지만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가 처음에는 아주 작게 시작되지만 점점 더 커지고, 아울러 세상을 놀랍도록 변화시킨다는 사실도 함께 강조한다. 이스라엘 성지여행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선물로 준 겨자씨는 정말로 작았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세히 보면, 콧바람에 날려가 버릴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이 작은 씨앗이 장차 새들이 깃들 정도로 우람한 나무로 변한다. 빵 속에 들어가는 누룩도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작은 누룩이 빵 전체로 퍼진다.

하나님의 나라도 그러하다. 예수님의 선교 활동의 시작은 정말로 작고 별 볼이 일이 없었다. 예수님은 나사렛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일이 나올 수 있는가?"라고 비꼬았다. 예수님의 키와 신체도 그리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았다.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의 운동도 처음에는 초라하기가 그지없었다. 12제자들도 참으로 적은 무리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적은 무리"라고 부르셨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 그러나 이 적은 무리가 놀랍도록 성장하였다. 기독교는 지금 세계 최대의 종교가 되었으며, 지금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빠르게 성장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놀랍도록 변화시킨다. 이 세상에 들어온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교회를 통해 세계의 역사를 놀랍도록 변화시켜왔다. 기독교는 체념의 종교가 아니라 변화의 종교이다. 기독교가 세상에 가져온 변화는 어떤 것이었나? 단지 달력을 주전(B.C)과 주후(A.D.)로 바꾼 것만은 아니다. 기독교는 혁명의 종교이다. 복음은 세상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율법에서 은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신에서 믿음으로, 싸움에서 평화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바꿔놓았다.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를, 권력자보다는 힘없는 자를, 포악한 자보다는 온유한 자를, 어른보다는 어린아이를 더 복되다고 하였다. 형식적인 제사보다는 이웃을 향한 자비를, 안식일보다는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리하여 교회는 세상을 더 평등하게, 더 민주적으로 변화시켰다. 세상을 더 살맛이 나도록, 사랑스럽도록, 보람과 소망이 더 넘치도록 변화시켰다.

그처럼 우리도 세상에 적응하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더 맛있게, 더 멋있게, 더 신바람 나게, 더 아름답게, 더 사랑스럽게, 더 소망스럽게, 더 온전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이 아무리 더럽고 악하게 변한다고 하더라도, 성도와 교회는 세상을 도피하거나 죄악시하지 말고, 세상 한 가운데 의연히 살아가면서 하나님 나라의 누룩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전의 찬송가 543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는 2절의 가사가 잘못 번역되었기에 지금처럼 바뀐 것은 무척 다행이다. 이전에 우리는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여기 어이 살리까?"라고 불렀다. "이 세상에서 못 살겠다"는 뜻이 아닌가? 지금 우리는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라고 부른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이것도 아직 온전하지 않다. 마치 세상을 마지못해 사는 것처럼 들린다. 비록 괴로움과 죄가 많은 세상이라고 하더라고,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 안으로 보내셨다. 아니 하나님은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다(요3:16). 그러므로 왜 우리가 하나님이 그처럼 사랑하신 세상을 미워해야 하겠는가?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죄악은 미워하되 세상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닌가? 그러므로 찬송가 543장 2절은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항상 여기 살면서"라고 바꿔서 불러야 옳다. 씨가 땅 속에 들어가 있지 않고 어떻게 자랄 수 있겠는가? 누룩이 빵 속에 들어가 있지 않고 어떻게 빵을 부풀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지 않고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겠는가?     

 

2)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두 번째의 교훈은,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변화는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기적을 통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성장하고,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씨는 저절로 자란다. 물론 농부는 씨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하지만 농부는 씨를 억지로 자라게 할 수는 없다. 누룩은 제 힘으로 커진다. 물론 빵을 굽는 사람은 누룩이 잘 부풀러 오르도록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누룩은 오직 제 힘으로 부풀러 오른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이요, 그래서 하나님의 힘과 신비한 기적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성장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우리의 노력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겨야 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제 힘으로 성장하도록 기다려야 하며, 추수 때까지 농부의 심정으로 담담히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성장을 주신 하나님에게만 감사를 돌려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인간이 인위적으로, 혹은 억지로 성장시키려고 하다가 도리어 화를 자초한 경우도 허다하였다. 인간이 억지로 성장시키려 한 하나님의 나라는 대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죄악의 냄새가 풍기는 인간의 나라였다. 그것은 교만과 우상이 넘치는 세상의 나라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요 18:36).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빌라도 앞에서 밝히셨다. 하지만 그 나라는 분명히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온다. 개역성경은 이 본문을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잘못 번역함으로써 마치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과 무관한 나라, 저 멀리 있거나 죽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나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씨와 누룩과 같다고 함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 안에 심겨졌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우리 가운데 왔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서 성장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적극적으로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있다고 한다면, 오직 믿음, 기다림, 기도, 감사, 찬양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감사히 받을 뿐이지, 이를 만들고 성장시키고 남과 주고받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염려해야 하겠는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빨리 성장하지 않는다고 왜 안달복달해야 하겠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작기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은 그 나라를 언제나 풍성히 주시기를 기뻐하시는데, 우리는 이를 보지도 못하며, 보아도 알지 못하며, 알아도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교회, 적은 무리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작은 믿음을 걱정해야 한다.   

 

3) 그런데 믿음은 결코 인간을 잠잠케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없고 우리에게는 오직 믿음만이 요구된다고 해서, 우리는 그저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듯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문을 두드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 헤매야 한다. 잃은 양을 찾아 나서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를 거역하는 백성을 회심시키고, 이를 방해하는 세력과 더불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여기서 기도와 말씀은 가장 큰 무기가 된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이 살아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빨리 성장하고, 세상을 가장 잘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교회만이 가장 빨리 성장하고, 세상을 가장 잘 변화시킨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옥토가 되기를 위해 힘써 기도하고, 힘써 말씀을 듣자. 아니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되기 위해 먼저 마음 밭을 힘써 가꾸자. 하나님 나라의 누룩이 되기 위해 우리가 먼저 변화되고, 먼저 희생하자. 이웃으로 들어가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자. 이 세상 속에서 성장하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자.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도록, 아니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두루 퍼지도록, 아니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변하도록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