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포도원 품꾼

마 20:1-16

2003년 2월 12일 현풍제일교회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 삼 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육 시와 제 구 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 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 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1) 진리는 구체적이다. 신비한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이 비유는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일상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교훈으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비유의 목적도 구체적이다. 비유의 목적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보편적인 진리를 전달하려는 데 있지 않고,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당시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전달하려는 데 있다. 그러면 여기서 예수님의 비유를 듣는 자들은 누구인가? 예수님은 누구에게 비유를 전달하시는가? 비유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전달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포도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비유한다. 포도원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품꾼은 이스라엘 백성 혹은 그 지도자들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위해 많은 백성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그들은 일찍부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다양한 일꾼을 부르셨다. 아브라함과 모세를 비롯하여 많은 일꾼들을 부르셨다. 수많은 선지자와 왕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무시하던 이방 백성들도 부르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부름을 받은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된 것은 그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된 것은 자신만이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민족이 그로 인해 복을 받기 위함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1-3).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망각하거나 왜곡하였다. 자기가 잘 나서 선택된 줄로 알고 교만하였다. 이방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선택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이방 백성을 경멸하고 조롱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백성을 개처럼 여겼으며, 심지어 지옥불의 불쏘시개로 여기곤 하였다. 물론 예수님도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잃은 자를 찾으려 오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부르신 참 목적은 이스라엘을 만인의 빛으로 세우시기 위함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을 통해 세상의 모든 백성도 그 영광에 참여케 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때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경멸하는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가셨고,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셨다. 비록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중심 임무로 생각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방 백성을 외면하시거나 경멸하시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뜻을 거부하였고, 오히려 이스라엘이 경멸하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초대 교회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보다는 이방 백성이 더 많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예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그리고 교회와 회당 사이에 갈등이 깊어졌고, 결국에는 서로 갈라서게 되었다. 소수의 이스라엘 백성은 교회로 들어왔지만,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도 복음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도 그들은 자신만이 선택된 민족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다른 민족을 무시하고 있다.

이처럼 먼저 믿었다는 것, 먼저 선택되었다는 것이 봉사로부터 특권으로 변질되는 일이 인간의 삶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전통을 무시할 순 없지만, 전통이라고 무조건 선한 것은 아니다. 연장자를 존경해야 하지만, 연장자가 항상 진리를 독점하진 못한다. 선배는 존경을 받아야 하지만, 선배가 항상 주도권을 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통도 새로운 진리를 위해 자리를 비워줄 때가 있으며, 연장자가 후배를 위해 물러설 때가 있으며, 선배가 후배를 섬겨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먼저 온 자는 항상 전통, 연장자, 보수 등의 이름으로 새로운 것, 어린 자, 진보를 짓누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이처럼 먼저 온 자로서 이스라엘처럼 교만하지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2) 본문에서 먼저 온 자들은 뒤에 온 자들과 똑같은 보수를 받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항의한다. 마치 일찍부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나중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똑같은 구원을 받는 것을 보고 시기하는 것과 같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차라리 똑같은 구원을 받을 바에야, 젊었을 때에 실컷 마음대로 살다가 죽을 때쯤 되어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나는 보았다.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은 일찍 믿는 자에게나 늦게 믿은 자에게나 똑같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일찍 믿었다고 억울해 할 것은 조금도 없다.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다.

하지만 사실 냉정히 생각하면, 포도원에 일찍 온 자들이 억울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그들은 일찍 선택되어 보람있게 일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주인의 눈에 들어 선택되었고, 그래서 품삯을 받을 희망을 누구보다 일찍 가질 수 있지 않았는가? 하지만 늦게 선택된 품꾼은 하루 종일 괴로워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온 품꾼들은 자비한 주인이 불쌍한 품꾼을 뒤늦게라도 선택해 준 것을 고마워하고, 함께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조금도 손해를 입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일찍 선택을 받았으므로 여러 가지 정신적인 기쁨을 누렸다. 뒤에 온 품꾼들은 그 동안 얼마나 괴로웠겠는가를 생각하며, 오히려 그들을 격려하고 축하해 주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인을 원망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중 온 자들보다 더 못난 사람들이 되었다. 일찍 온 특권을 망각함으로써 오히려 나중 온 자들보다 더 못난 자들이 되었다.

우리가 먼저 부름을 받은 것은 뒤에 오는 자를 섬기기 위함이다. 우리는 뒤에 오는 자보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뒤에 오는 자들을 시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와 함께 구원을 누리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기도해야 한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보다 더 큰 일을 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뒤에 오는 자들은 먼저 온 자보다 더 불쌍한 자들이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편애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은 이처럼 잃은 자들, 병든 자들, 불쌍한 자들을 더 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들을 품고 사랑하면서, 우리와 한 가지로 구원의 기쁨에 동참하도도록,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