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두 아들

 

마 21:28-32

2003년 3월 5일 현풍제일교회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1)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처음보다 마지막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이다. 첫째 아들은 처음에는 아버지의 분부에 순종한다고 말하였으니, 실제로 순종하길 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힘든 일을 생각해 보니, 생각이 바뀐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결국 아버지의 분부에 불순종하였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분부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느니,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는 아버지의 분부에 순종하였다.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였는가? 당연히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순종한 둘째 아들이다.

하나님도 처음보다는 나중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마치 사람들이 나무의 뿌리보다는 열매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개 사람들이 나무를 심는 이유는 나무의 뿌리나 줄기보다는 그 열매를 따먹기 위함이다. 물론 나무의 뿌리와 줄기가 음식이나 약재로 쓰이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열매다. 그런데 만약 나무의 뿌리는 튼튼하고 줄기도 힘차게 뻗으며 잎과 꽃도 화려해도 열매를 전혀 맺지 못하는 나무가 있다면, 주인은 그 나무를 찍어버리고 열매를 잘 맺는 다른 나무를 심을 것이다. 마치 잎은 화려하지만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예수님이 저주하신 것처럼 말이다. 그 반면에 비록 나무와 줄기, 잎과 꽃은 별 볼일이 없어도 결국에는 아주 맛이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있다면, 주인은 끝까지 나무를 보호하고 열매가 맺히길 기다릴 것이다.

"사람의 됨됨이는 관의 뚜껑을 닫을 때에 비로소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인생의 초년과 중년에 아무리 화려한 업적을 쌓고 명망을 떨쳐도, 말년에 가서 온갖 추태를 부리면서 늙고 죽어간다면, 사람들은 그를 결코 좋은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반면에 처음에는 온갖 비난을 살 행위를 하는 사람도 말년에 가서 아름답게 늙다가 죽는 사람은 존경을 받는다. "잘 사는 것보다 잘 죽은 게 더 낫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말일 게다. 사람의 관계도 처음에는 좋았다가 나중에는 나빠지느니, 차라리 처음에는 좀 나빴지만 나중에는, 아니 끝까지 좋아지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오늘의 본문은 분명히 예수님에게 시비를 거는 대제사장과 장로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주신 비유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살다가 시간이 갈수록 교만하고 태만하였으며, 심지어는 그들이 남을 기만하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비판의 주요 대상은 이스라엘을 점령한 로마군도 아니고, 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는 가난한 민중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었음을 우리는 여러 본문에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그들도 하나님의 구원에 감격하여 온유하게 하나님과 사람을 섬겼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그들은 구원이 마치 그들의 특권이라도 되는 양, 우쭐대며 교만하게 변해갔다. 그래서 그들은 죄인들과 창기들, 세리들을 비난하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그들을 동정하고 구원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과 같이 살지 않았음을 자랑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행세했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심령을 더 기쁘게 받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눈에는 그들은 오히려 그들이 더럽다고 비난하는 죄인들보다도 더 더럽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의 근본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있음을 알면서도, 이웃을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온갖 율법을 핑계로 율법의 근본 정신인 이웃 사랑을 외면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하면서 하나님을 속였다. 하지만 세리와 창녀를 비롯한 많은 죄인들은 예수님의 조건없는 구원의 초대에 응답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울었으며,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따랐으며, 나중에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과 초대 교회의 핵심적인 일꾼이 되었다. 처음에는 불같이 화끈하게 잘 믿다가도 나중에는 금방 믿음의 불이 꺼져버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믿지 않거나 미지근하게 믿다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뜨겁게 믿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바로 끝에 가서 잘 믿는 사람들 혹은 끝까지 믿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여러분의 믿음도 끝까지 변함없이 계속되기를, 아니 날로 더욱 성장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2)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말보다는 행동을 더 기뻐하신다는 사실이다. 첫째 아들은 말로는 순종한다고 둘러대 놓고는, 실제로는 전혀 순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말로는 순종하지 않는다고 불평해 놓고는, 나중에는 실제로 순종했다. 실로 그리스도인의 출발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은혜와 믿음은 결국 행위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살아 있는 나무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말로는 "행동, 행동" 하면서 실제로는 전혀 행동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말로는 "은혜, 은혜"하면서 실제로는 행동하는 사람이 더 복되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말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실천에는 무능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진정한 능력은 행함으로부터 나온다. "종은 그것을 울리기까지는 아직 종이 아니며, 사랑은 실제로 사랑하기까지는 아직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사랑이 없으면, 예언과 지식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는 사도 바울의 말도 같은 이치를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대개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로 나눠질 수 있다. 한편으로는 말은 뻔지르르하게 잘 하는데, 실천을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입으로는 자주 "주여, 주여"라고 말하지만, 생활 속에서는 주님을 인정하지 않고 매사를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여, 주여"라고 말하지 않으니까 겉으로는 별로 믿음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삶 속에서 묵묵히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표시를 내거나 생색을 내지 않으면서도, 실제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은근히 발하고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있다. 앞의 사람들은 빈 깡통처럼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소리만 요란하다. 뒤의 사람들은 속이 꽉 찬 깡통처럼 흔들어도 전혀 소리가 나지 않지만, 내용물이 알차다.

한국교회는 기적적으로 성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했으며,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한국에 있다. 하지만 아무리 큰 교회라도 속이 텅텅 비어 있다면, 그 큰 외형이 무슨 소용인가? 호빵 하나 제대로 사 먹기 어려운 어린 시절에 중국집을 지나가다 보면, 아주 크게 부풀어 오른, 이름도 모르는, 맛있게 보이는 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한번 먹어보았으면 좋겠다고 침을 삼키곤 하였지만, 정말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커서 알고 보니, 그 빵은 이른바 공갈빵이었다. 말 그대로 속이 완전히 빈 빵이었다. 껍데기만 약간 달콤할 뿐, 속내용 전혀 없으니 배부르지도 않았으며, 먹는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 나라에는 속이 텅 빈 과자 종류가 많이 있다. 새우깡, 맛동산 등이 그런 과자에 속한다. 그래도 이 과자는 그나마 껍데기가 두꺼워 먹을 만하지만, 공갈빵은 실속이 없으면서도 마치 실속이 있는 양 사람을 속이기 때문에 소원이던 그 빵을 한번 깨물어 보고는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성경에서 자주 나오는, 누룩을 넣은 빵은 공갈빵과는 완전히 다르다. 누룩은 빵을 서서히 부풀게 한다. 이상한 재료를 써서 갑자기 크게 부풀어 오른 빵은 크게 보여 좋긴 하지만, 속은 아주 비어 있기가 쉽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인위적으로 갑자기 성장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절한 양의 누룩은 빵 전체에 고루 퍼지면서, 빵을 고루 부풀게 한다. 그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도 알차게, 고루고루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님은 말의 진수성찬보다는 작은 실천을 더 기뻐하신다. 속이 텅빈 허울좋은 빵보다는 속이 알찬 작은 빵을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