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최후의 승자, 삼손

 삿 16:23-31

 

2003년 7월 13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승리와 실패 중에서 어느 것을 더 많이 경험하셨습니까? 연령과 형편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아마도 대개의 사람들은 승리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실패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아마도 그런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인생살이에서 전혀 실패하지 않고, 순풍에 돛단 듯이 인생을 늘 행복하게만 산 사람을 찾아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누가 실패를 좋아하겠습니까? 그 누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인생은 마치 처음부터 실패와 시련이 예고된 미로 게임과 같습니다. 누구의 책임이라고 물을 것도 없이,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깨어지고, 허우적거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승리와 실패의 중에서 어느 것을 더 많이 이야기할까요?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승리한 사람들의 실패까지 계산한다면, 아마도 실패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오직 승리의 길만을 달려온 것으로 이야기되는 사람도 남모를 애환과 좌절, 실패가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모든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다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도 실패를 전혀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패를 신앙으로 극복한, 그리고 실패를 지혜롭게 승리로 바꾼 사람들입니다. 구약성경의 아브라함과 야곱, 요셉, 모세, 신약성경의 예수님과 바울, 요한, 베드로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도 많은 실패와 고통을 경험하였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 땅에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감동과 위로를 줍니다.

지금까지 저는 여러분에게 승리한 인물을 주로 소개했습니다만, 앞으로는 실패한 사람들도 자주 소개할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승리보다는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구약성경 가운데서 참담하게 실패하였지만 결국엔 인생의 마지막을 장렬하게 장식한 인물을 여러분에게 소개할까 합니다. 그는 바로 소설과 영화를 통해 너무나 잘 알려진 전설적인 영웅, 삼손입니다. 비록 삼손은 영웅적인 삶을 산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평범한 우리처럼 유혹과 실패를 경험하고 그래서 괴로워하고 후회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상세하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침략에 시달렸습니다. 바로 그런 시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삼손이라는 한 인물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는 자식을 잉태할 수 없었던 어미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태어나 하나님에게 바쳐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을 구약성경은 '나실인'이라고 말합니다. 나실인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하고, 부정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며, 머리카락을 잘라서도 안 됩니다. 장성한 삼손은 힘이 매우 센 장사가 됩니다. 그는 맨 손으로 사자의 입을 찢어 죽였으며, 나귀의 턱뼈로 일천 명의 블레셋 사람을 죽였습니다.

실패를 모르며 승승장구하던 삼손에게 비극이 찾아온 것은 아리따운 한 여자의 유혹 때문입니다. 삼손은 '들릴라'(데릴라)라고 하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블레셋 사람이 그녀를 돈으로 매수하여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영웅호걸은 미녀를 매우 밝힌다"고 하였듯이, 영웅 삼손은 그냥 들릴라의 미색에 반하여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녀의 꾀임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세 차례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던 삼손도 그녀의 끈질긴 유혹과 강압적인 질문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삼손의 괴력이 머리카락에서 나온다는 정보를 들은 들릴라는 삼손이 그녀의 무릎에서 잠이 든 사이에 삼손의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렸습니다. 이를 눈치챈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사로잡아 그의 눈알을 빼고 쇠줄로 몸을 묶은 후에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관 뚜껑을 닫을 때에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인생도 시작보다는 끝이 더 좋아야 합니다. 하지만 위대한 영웅 삼손은 인생의 말년에 참으로 비참하게 추락하였습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 실수와 무지로 인해 실패하는 경우도 많지만, 남의 교활한 음모와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서 실패하는 경우도 참으로 많습니다. 특히 남자의 경우에는 예로부터 여색의 유혹은 큰 위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첩보와 전쟁, 사업 등에서 종종 미녀는 유혹적인 존재로 등장합니다. 타락한 세상은 성적인 음란으로 가득 찬 곳입니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인구 비례로 계산할 때에 한국에 음란 싸이트가 제일 많다고 합니다. 더욱이 음란 사업도 한국이 세계 최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을 가릴 것이 없이 음란 마귀가 온통 활개를 치고 다닙니다. 그래서 건전하게 자라야 할 우리의 자녀들이 심각하게 오염되며, 행복하던 가정이 하루아침에 깨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음란 마귀의 공격은 거룩한 교회를 더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종교적 단체에서 성적인 스캔들 사건이 심심찮게 터져 나옵니다. 얼마 전에 미국의 카톨릭 신부들의 성적인 추문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으며, 요즘에는 한국의 대형 교회의 목사님들이 여성 스캔들에 휘말린 사건들이 종종 들려옵니다. 성적인 유혹 외에도, 예수님의 유혹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권력과 재물과 명예의 유혹도 인간을 크게 타락시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목회자가 일평생 물질과 여성 문제에 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 자체로서 성공한 목회자로 평가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회자의 스캔들 소식을 대할 때마다, 저는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기보다는 저 자신의 허약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늘 깨어 기도해야 하겠다고 굳게 다짐해 봅니다. 이런 결심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도록 여러분이 저를 위해 꼭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모두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연약한 인간은 자주 유혹에 빠지고, 실수와 실패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의 실수와 실패 그 자체를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남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남을 함부로 비판하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수와 실패는 연약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비난보다는 동정을 받아야 할 문제일 지도 모릅니다. 실로 실패보다 더 큰 문제는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그래서 실패를 뉘우치지도 않고, 실패를 통해 전혀 배우지 않는 일입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끝까지 실패를 정당화하고, 실패를 안은 채로 죽는 일입니다. 큰 실패를 당했지만 이를 솔직히 뉘우치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사람은 아무런 실패를 하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보다 차라리 더 훌륭해 보입니다. 실패는 인간적입니다. 하지만 실패를 뉘우치지 않는 것은 동물적입니다. 실패는 인간의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용서와 새 출발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의 작은 실패를 여러분에게 고백할까 합니다. 제발 저의 고백이 자랑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몸도 허약하였지만 신앙의 가정 안에서 믿음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남에게 나쁜 짓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저에게도 여러 차례의 실패가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를 거부한 대가로 뺨을 호되게 얻어맞으면서도, 공부보다는 신앙 생활을 더 좋아한 탓으로 가정의 유일한 소망이었던 저는 서울대학교에 낙방하였습니다. 저는 이 실패를 하나님의 소명의 기회로 여겼습니다. 일년 간의 재수 끝에 결국 제가 입학한 곳은 서울대학교가 아니라 서울신학대학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서울신학대학에 입학하지 않았더라면, 보람된 신학자와 목회자의 길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부산 출신인 제가 목포 출신인 아내를 만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게 과분한 복덩이로 굴러온 저의 아내를 만난 것도 실로 그 가운데 하나님이 인도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연세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목으로 가려던 저에게 선배 목사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목사 안수를 주지 않았습니다.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은 잘 아시지만, 군대에서 장교와 졸병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더욱이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한 것도 큰 타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년을 더 기다리기보다는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신체의 단련과 낮아지는 훈련의 필요성 등을 생각하여, 졸병의 길을 받아들였습니다. 몸과 마음은 좀 괴로웠지만, 저는 군목으로 복무한 친구들보다 훨씬 더 많은 틈을 내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독일어와 성경 고전어를 습득함으로써, 독일 유학을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성결교회에서 최초로, 그것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교수님의 지도를 받고, 가장 빠른 시간에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저는 성결교회에서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고,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그래서 저에게는 순탄한 길보다는 고난의 길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시기와 모함, 불공평한 절차와 부당한 정치 때문에 저는 6년 동안 강사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난과 억울함과 외로움을 학문으로 불태웠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저는 많은 책을 쓸 수 있었으며, 시련 속에서 오히려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능력과 악을 악으로 보답하지 않는 능력을 길렀습니다.

유학 후 약 7년만에 모교의 교수가 되었지만, 정치적 소용돌이 중에서 저는 2년 간의 교수직 후에 계약을 연장하지 못해서 교수직을 떠나야 했습니다. 올해 초에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은 '교수재임용제'라고 하는 악법을 악용한 선배들의 잘못에 거세게 저항하기보다는 저는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다시 가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에도 저는 눈부신 학문 활동과 연구소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저는 학문보다는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교회와 삶의 현장을 돕지 않는 신학은 무력하고 무익하다"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제가 하나님에게 서약한 것은 학자가 아니라 복음 전도자가 되겠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마다, 혹시 잇따른 저의 실패가 서약을 어긴 사실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하나님은 굶어 죽어도 평생 학자로서 살아 보겠다는 저의 옹고집을 완전히 꺾으시고, 올해 초에 저를 여기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곳이 물론 저의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인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의 앞길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나 연이은 실패와 고난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설령 앞으로 더 큰 고난과 실수, 실패가 따르더라도, 하나님은 저의 실패를 기어코 승리와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는 사실을 저는 뼈저리게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확신하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렇게 확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제가 많은 실수와 잘못을 범하더라도, 이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싶고, 또 회개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싶고, 성도의 품속에서 기쁘게 죽고 싶습니다.

 말년에 참담하게 실패한 삼손도 참으로 웅장하고 장렬하게 인생을 마감하는 최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잔치를 행할 때에 삼손을 불러다가 재주를 부리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실패와 조롱과 치욕을 마지막 승리로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눈먼 그는 소년의 손을 잡고 성전 두 기둥 사이에 섰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에게 호소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16:28)라고 말하고, 힘을 다하여 두 기둥을 밀어 쓰러뜨렸습니다. 그리하여 지붕이 무너져, 삼천 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성경은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16:30)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을 거역하고 아녀자의 간교한 유혹에 넘어간 삼손은 하나님의 가혹한 징계를 받았지만, 최후의 순간에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으며, 하나님은 그를 다시 품에 안아주셨습니다.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문을 닫으시면, 다른 문을 열어 주십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삼손은 분명히 뼈저리게 회개했다고 믿습니다. 만약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다시 그에게 나타났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는 마지막 남은 안간힘을 범죄에 악용하지 않고 위대한 승리에 선용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실패했으나, 마지막엔 승리했습니다. 아니 작은 실패를 딛고, 더 큰 승리를 일구어냈습니다. 그는 최후에 승리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지금까지 많은 실수와 실패를 범했을 것이고, 또 앞으로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웃는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에는 반드시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이 실패 속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실패를 승리의 기회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