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순종하라

- 사울의 교훈 -

 

삼상 15:16-24

2003년 7월 27일, 현풍제일교회

 

 

순종이라는 말은 아마도 현대인에게 가장 인기가 없는 말일 것입니다. 특히 오랜 기간 동안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유교 사회와 독재적인 정치 풍토 아래서 억눌려 살아온 우리에게 순종이라는 말은 곧 굴종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와 달리 저항이라는 말은 현대인에게 매력이 넘치는 말이 되었습니다. 특히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위대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민주투사, 민주열사라는 거룩한 호칭을 붙여주었습니다.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젊은이들도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들은 낡은 시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개척자로 보였습니다.  재벌에 저항하는 노동자들도 훌륭해 보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부패한 자본주의를 타파하는 혁명가처럼 보였습니다. 요즘에 들어서는 남성의 특권에 저항하는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여성운동가(페미니스트)라는 이름으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실로 우리는 오랫동안 침묵과 굴종에 길들여왔습니다. 잘못된 관행과 제도에 대해서도 순종하는 것이 마치 미덕인 것처럼 잘못된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분명히 낡고 잘못된 것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는 것은 천부적인 인권을 갖고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요 의무입니다. 교회도 폭력적인 정권에 대한 저항을 인정해 왔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민주주의의 보루요, 인간 해방의 상징이 되어왔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아직까지 여성과 어린이를 무시하는 관행이 조금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한국 교회는 민주화와 통일, 환경보호과 여성 운동 등에서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항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매력적인 말로 퍼져나가면서 순종의 가치는 점점 더 매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저항해야 하지만, 옳은 일에 대해서는 순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못된 권위주의는 반대해야 하지만, 정당한 권위는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더라도, 두 가지 전통이 서로 교차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제사장과 왕을 중심으로 하는 번영과 안정의 전통이요, 다른 하나는 예언자와 선견자(묵시가)를 중심으로 하는 공의와 혁신의 전통입니다. 오늘날 앞의 전통은 주로 보수적인 교회에 의해 계승되고 있으며, 뒤의 전통은 진보적인 교회에 의해 계승되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두 전통은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면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새는 두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듯이, 두 전통은 공존해야 합니다. 한 전통이 다른 전통을 묵살하고 억압하면, 자신도 결국 부패해지고 나약해지고 맙니다. 두 전통은 서로에게 마치 적과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만약 적과의 동침이 없다면, 둘 다 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교회도 저항을 충분히 강조해 왔으니, 이제는 순종을 가르칠 때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항과 혁신을 너무 좋아하는 사이에 사회가 너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가치관과 윤리관이 흔들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라진 느낌입니다. 아름다운 질서와 자발적인 순종의 미덕이 조롱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국과 부모, 어른과 스승에 대한 존경심도 상당히 퇴색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교회와 하나님에 대한 순종도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순종을 강조하는 목사는 아무 인기가 없는, 권위적인 목사로 낙인이 찍혀 버립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우리가 정말 의지해야 할 곳이 완전히 사라진 느낌입니다. 더욱이 한국교회는 그 동안 축복, 성장만을 너무 강조하였습니다. 믿음만 너무 강조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교회가 성장하고 교인들도 많은 복을 받았지만, 그와 더불어 교회와 교인에 대한 신뢰도는 형편없이 떨어졌습니다. 교회는 사회를 변화시킬 능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교회가 사회의 부패를 방조한다는 비난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교회가 축복과 함께 정의를 강조하지 않았고, 믿음과 함께 순종을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특히 개신교회는 "오직 믿음으로만"을 강조하다가 실천과 순종의 능력을 상당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비록 우리가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고 또 성경구절을 줄줄 외운다고 하더라도, 만약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한다면, 여전히 안일한 신앙 속에 남아 있게 됩니다. 만약 성경에 대한 이해가 우리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죽은 신앙이 되고 맙니다. 만약 기독교인의 삶에서 순종이라는 말을 완전히 제거한다면, 우리는 포장만 그럴 듯하고 알맹이가 빠져버린 빈깡통 교인, 무늬만 기독교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진실한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요동하고 어려운 지경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오직 순종 밖에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히틀러에 저항하다가 젊은 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신학자 본회퍼는 그가 남긴 위대한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믿는 자는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는 믿는다. 순종치 않는 자는 믿을 수 없으나, 순종하는 자는 믿을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경건한 자기 기만이나 값싼 은혜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순종해야 한다. 부족한 순종을 부족한 신앙 탓이라 하고, 부족한 신앙을 부족한 순종 탓이라고 하여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좋지 못한 하나의 도피이다." 그는 미국으로 도피하여 안락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지만, 고국에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에 응하여 독일로 돌아갔고, 나치에 저항하다가 순교를 했습니다. 그의 순교적인 죽음은 히틀러에 대한 저항의 표시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의 모범으로 길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분을 따른다는 것,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순종이 없다면, 진정한 믿음도 없고, 제자의 길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절대적인 순종으로 부르셨습니다. 순종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고상한 미덕 중의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철저한 순종의 모범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한 사람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죽기까지 하나님에게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은 그분과 같이 복종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맛볼 수 있습니다.  

'샘 슈메이커'라고  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10퍼센트 순종하면 10퍼센트의 행복을,  50퍼센트 순종하면 50퍼센트의  행복을, 100퍼센트 순종하면 100퍼센트의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우리에게 불리할 것 같으면 순종하지 않고, 유리할 것 같으면 순종하는 것은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다. 이런 변명, 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자꾸 순종하기를 지체하는 것도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다. "지연된 순종은 불순종의 동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순종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참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산 어느 교회 사택에 도적이 들었습니다. 잠자던 목사님이 도적의 침입에 놀라 일어나 손을 들었습니다. 도적이 낮게 말했습니다. "손을 들고 꼼짝하지 말어!"  목사님은 손을 들고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순순히 말할 때 있는 것 다 내놔!"  "가진 것은 보시는 바이고, 돈은 없습니다." 칼을 들고 위협하던 도적이 두리번거리며 살폈습니다. "목사 집이 왜 이렇게 가난해?" 투덜거리며 도적은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손들고 있는 것이 안쓰러운지, 도적은 "손 내리고 앉은 채로 차렷!"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꼼짝 않고 손을 내리고 차렷 자세로 있었습니다. "정말 돈 가진 것 없소?" "예, 교회에서 주는 생활비는 받는 즉시 다 없어진 걸요." "그럼 무엇 갖고 살아요?" "돈 안 쓰고 살지요. 외상으로 지내다 갚고 나면 아무 것도 없어요" "목사는 모두 부자라던데, 믿을 수 없군!" 도적은 목사의 호주머니를 뒤졌습니다. 그래봐야 토큰 몇 개가 나올 뿐이었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하군!" 그리고는 서랍을 열기도 하고 곳곳을 찾아 봐도 아무 것도 없으니까 실망한 듯 나가면서, 이렇게 말을 던졌답니다. "나를 위해 돈 좀 모아 놓고 사시오!" 도적이 떠나고 난 후 목사님은 무릎을 꿇은 채 이렇게 회개 기도를 올렸습니다. "나는 오늘 밤 도적에게 꼼짝 못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주여, 평상시 내가 도적놈에게 순종한 만큼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얼마나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마산의 목사님이 도적에게 복종한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복종하십니까? 불순종은 무기력한 삶을 낳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곧 큰 죄악이요, 그래서 인류의 불행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기록임과 동시에 인간의 불순종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첫 인간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관통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에 반항한 불순종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불순종의 결과로 개인과 집단, 심지어 땅에 이르기까지 저주와 재앙이 덮쳤음을 성경은 곳곳마다 증거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사울의 불순종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를 생생히 증거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왕으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10장 23절에 그가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크더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는 키가 장대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보내셔서 그를 왕으로 삼으시려고 하자, 사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삼상 9:20-21) 사울은 이처럼 겸손했을 뿐만 아니라 전략에서 뛰어나 많은 전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의 불순종이 사울을 영원한 패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이 아말렉 사람을 칠 때에 "남녀 노소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가축을 하나도 남김이 없이 다 진멸하라"(삼상 15:3)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고, 그를 버리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이 사실에 심히 놀란 사무엘은 사울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울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무엘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린다는 핑계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혹시 우리도 하나님에 많은 헌금을 드린다는 명분으로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는 않았습니까? 더욱이 사울은 하나님보다 백성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 5:29)고 말했습니다만, 혹시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사울은 대중의 눈치를 보다가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는 되돌릴 수 없는 범죄를 지었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울은 악한 영의 지배를 받아 계속 악한 일을 행합니다. 이방인의 잘못된 풍습에 따라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오는 일이 엄하게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접한 이방 여인을 찾아가 사무엘의 영을 불러드립니다. 더욱이 자기의 사위가 된 다윗을 수 차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는 점점 미쳐갔고, 결국 전쟁에서 죽고 맙니다.

하나님이 어찌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까지 죽이라고 하시는가? 하나님이 어찌 아까운 자원을 낭비하시는가? 이방인의 물건으로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인가?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뛰어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동의와 이해를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절대적인 순종만 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높은 뜻도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아니 설령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죄인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최선의 제도일 수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 즉 신주주의가 최선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꾼에게 불순종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불순종하지 마십시오. 불순종은 불행의 시작이요, 순종은 행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임할 때, 이유를 묻지 말고 즉각 순종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승리와 행복의 길입니다. 순종을 통해 여러분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고, 날로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