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아름다운 우정

- 다윗과 요나단 -

 

삼상 20:8-17

2003년 8월 3일, 현풍제일교회

 

 

인생은 만남입니다. 소중한 만남도 있고, 스치는 만남도 있습니다. 뗄 수 없는 만남도 있고, 쉽게 떨어지는 만남도 있습니다.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만남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은 마치 운명과 같고 그래서 참으로 은혜와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만남은 부모, 형제 자매와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도 운명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싫든 좋든 부모와 형제 자매를 인정해야 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만남은 배우자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일 것입니다. 이 만남은 운명적인 것은 아니므로 이런 만남은 우리가 열렬히 추구할 수 있고, 아름답게 가꾸어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도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은 사례가 많습니다.

여러 만남 중에서 오늘은 친구와의 만남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동서고금에  아름다운 우정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오고 있는데, 성경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우정의 이야기는 바로 다윗과 요나단이 나누었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의 우정 이야기를 읽는 도중에 정말로 가슴이 벅찬 진한 감동을 느꼈으며, 그들의 우정이 참으로 부럽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이런 좋은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나는 정말 좋은 친구가 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1. 먼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의 높이를 알아봅시다.

1) 그들의 우정은 권력을 뛰어넘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다윗은 사울을 이어 새로운 왕이 되어야 할 촉망받는 차세대 지도자이고, 요나단은 다윗을 시기하고 죽이려는 현재의 왕 사울의 아들입니다. 요나단의 입장에서 보면, 다윗은 자기 아버지의 권력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입니다. 아니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해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다윗을 끝까지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요나단은 일시적인 권력의 달콤함보다는 영원한 우정의 소중함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힘센 아버지보다는 아무런 힘도 없는 다윗의 편을 들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요나단의 우정은 참으로 돋보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당장 목숨을 위협하는 사울의 아들을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요나단을 의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요나단을 권력자의 아들이 아니라 순수한 친구로 대합니다.

2)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혈연을 뛰어넘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끈끈한 혈연 관계를 뛰어넘었습니다. 물론 다윗은 사울의 사위입니다. 그러므로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매형과 매제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사울이 다윗을 사위로 삼은 것은 순전히 정략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비록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다윗을 사위로 삼기는 했지만, 사울이 다윗을 사위로 삼은 것은 이 사실을 올무로 삼아 블레셋 사람이 다윗을 쳐서 죽이도록 하려는 사울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삼상 18:20-21). 좌우간 요나단의 입장에서 보면, 다윗은 자신과 피 한 방울이 섞이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끝까지 아버지 편에 설 수 있었고, 심지어는 우정을 이용해서 아버지를 이롭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나단의 우정은 혈연을 뛰어넘었습니다. 적어도 요나단의 입장에서 보면, 물이 피보다 진했습니다.       

3)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연륜을 뛰어넘었습니다. 요나단이 죽었을 때에 다윗이 요나단을 형이라고 부른 것을 보면(삼하 1:26), 다윗은 요나단보다 좀 어렸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얼마인지는 성경에서 알 수 없습니다. 설령 한 살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서열을 매우 중시했던 옛날에는 한 살의 나이 차이도 결코 적은 차이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한 살 이상의 차이는 났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요나단은 형과 동생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로서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2. 다음으로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의 깊이를 알아봅시다.

1) 요나단은 다윗을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매우 좋아하였고(삼상 19:1),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였습니다(삼상 20:17). 요나단은 다윗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모두 들어주었습니다(삼상 20:4). 하지만 사울에게 늘 쫓겨다니던 다윗의 소원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사울 왕이 언제, 어떻게 자기를 죽이려는지 정보를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요나단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다윗에게 정보를 알려줄 것을 맹세하였으며,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벌도 달게 받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였습니다. 실제로 요나단은 아버지에게 다윗의 공로를 설명하였고, 다윗의 좋은 점을 칭찬하였으며, 아무런 죄도 없는 다윗을 해치면 안 된다고 설득하였습니다(삼상 19:4-6).

요나단이 다윗의 입장을 변호하자, 사울은 아들에게 심한 욕을 퍼붓기도 하였습니다.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극구 다윗의 처지에 서서 아버지를 설득하였습니다. 이에 화가 나 사울은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아들까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해 크게 화가 난 요나단은 하루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슬퍼하였습니다(삼상 20:30-31). 다윗을 향한 요나단의 우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2) 요나단을 향한 다윗의 우정은 어떠하였습니까? 다윗은 요나단을 형이라고 부르면서 매사에 그를 의지했습니다. 다윗은 어려울 때마다 요나단과 의논을 하면서 그의 조언을 구하였습니다. 친구들 중에서는 세상적으로 잘 나갈 때에는 자랑하고 과시나 하듯이 자주 연락하지만,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되면 연락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친구가 더러 있습니다. 사실 어려울 때일수록 우정은 더욱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울수록 친구는 더 자주 연락해야 합니다. 물론 친구에게 어려움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존심과 친구에게 걱정과 피해를 끼치기 싫다는 염려도 작용하겠지만, 진정한 친구는 어려운 형편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형편이 좋을 때에만 친구가 되고 어려울 때에는 등을 돌린다면, 이런 우정은 진정한 우정일 수가 없습니다. 약자의 처지에 놓인 다윗이 유리한 처지에 있는 요나단에게 조언을 구하였다는 것은 그의 우정이 얼마나 진실하고 깊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요나단을 향한 다윗의 우정이 얼마나 진실하고 깊었는지는 요나단이 전쟁에서 죽었을 때에 다윗이 애통하게 추도한 사건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는 이렇게 애도합니다.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 1:26). 이 말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형 요나단, 형 생각에 나의 마음이 아프오. 형이 나를 그렇게도 아껴 주더니, 나를 끔찍이 아껴 주던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도 더 진한 것이었소."

3) 비록 형 요나단이 아우와 같은 친구 다윗을 더 지극하게 사랑하였음을 알 수 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은 정말로 진한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한다는 정보를 알려준 후, 요나단은 바위 뒤에 숨어있던 다윗을 만납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우정에 감복하여 그에게 세 번이나 절을 하였고,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설움에 북받쳐 울었습니다(삼하 20:41). 아무래도 다윗이 더 서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자고로 "남자는 일평생 세 번 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 부모가 돌아가실 때, 그리고 조국이 망할 때, 남자는 운다는 것입니다. 그 밖의 일로 울면, 남자가 아니라는 뜻이겠죠. 하지만 다윗과 요나단은 친구를 위해 슬프게 웁니다. 남자로서 창피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아름다운 우정입니까? 여러분도 친구를 위해 울 수 있으며, 여러분을 위해 울어주는 친구가 있습니까?

 

3. 마지막으로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의 폭을 알아봅시다.

1) 둘 사이의 우정은 단순히 감정에 기초한 우정이 아니었으며, 권력과 재물 등과 같은 눈앞의 이익을 얻기 위해 뭉친 우정도 아니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들의 우정이 어떻게 싹이 텄는지를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그들은 수시로 하나님 앞에서 우정을 맹세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축복해 줍니다. 그들의 의리는 참으로 견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우정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인도하심을 믿는 굳건한 믿음 위에 세워진 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 우정은 대개 일시적이고 변덕스럽습니다.   

  2) 요나단은 종종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우정과 의리를 맹세합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시키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축복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요나단은 둘만을 위한 우정에 만족하지 않고, 자손까지 이어지는 우정을 부탁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삼상 20:14-15). "다윗이 나중에 왕이 되어도 변함이 없는 우정으로 자신을 보호해 줄뿐만 아니라, 집안과의 의리도 끊지 말아달라"는 부탁입니다. 요나단이 추구한 우정은 이처럼 일시적이고 변덕스러운 우정이 아니라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우정입니다. 그의 우정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3) 다윗은 요나단의 부탁대로 친구의 의리를 지켰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어느날 다윗은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하고 신하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신하 중의 한 사람이 다윗에게 나아와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입니다."라고 보고합니다. 수소문한 끝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낸 다윗은 그에게 사울의 밭을 되돌려주고, 그에게 15명의 종과 일군을 붙여주며, 항상 다윗의 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게 합니다. 므비보셋은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사양하였지만, 아버지와의 우정 때문에 다윗이 자신을 돌본다는 사실을 알고 다윗의 후의를 받아들입니다(삼하 9: 1-13). 다윗과 요나단이 나누었던 우정의 폭은 이처럼 넓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우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이런 우정을 나누시고 계십니까? 아니 이렇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은 참으로 복된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 그런 우정을 만들어 가십시오. 그리고 비단 비슷한 나이와 환경에 있는 사람만이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을 멀리 보면,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든 자식이든, 형제자매든 친구든, 상사든 부하든, 선생이든 제자든, 목회자든 평신도든, 모두가 실로 서로에게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모두 험한 나그네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친구 사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다윗과 요나단처럼 좋은 친구를 발견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높고 깊고 넓은, 그리고 굳건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쌓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