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지혜의 교사, 솔로몬

 전 12:9-14

 

2003년 8월 24일, 현풍제일교회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살아갈 바에야, 기왕이면 온갖 영화와 행복을 실컷 누리다가 죽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꿈꾸어 보는 소원일 것입니다. 살림살이가 아무리 고달파도, 이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영화와 행복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설령 그런 행운을 누린다고 하더라도 이를 끝까지 잘 지키기는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그가 애타게 찾고 누렸던 행복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결국엔 인생을 불행하게 마감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며칠 전에 현대 그룹의 회장 정몽헌 씨가 갑자기 고층 빌딩 사무실에서 땅바닥으로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 때문에 우리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재벌 회장으로서 아무런 미련도 없이 삶을 마감한 그는, 그 이유와 배경이 어떠하든, 마치 행복의 정상에서 불행의 나락으로 추락한 인물처럼 비쳐졌습니다. 그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저로서는 그의 죽음의 의미를 굳이 깎아 내리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단지 저는 이 사건을 통해  "인생의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인생의 본분은 과연 무엇인지?"를 새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솔로몬처럼 화려한 업적을 쌓고 화려한 영화를 누린 사람도 없습니다. 그는 가장 호화로운 왕궁과 성전을 지었으며, 도성을 확장하고 성벽도 든든히 쌓았습니다. 그는 권력을 강화하고 행정 개혁을 실시했으며, 수많은 마차와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무역과 조공, 세금을 통해 쌓은 엄청난 부를 마음껏 사용했으며, 무려 7백 명의 아내와 3백 명의 첩을 거느렸습니다. 더욱이 그는 매우 지혜로운 사람으로 존경을 받아서,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지혜를 배우려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잠언과 전도서와 아가는 바로 그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에서 또한 솔로몬만큼 큰 과오를 남긴 사람도 드뭅니다. 그는 강제 부역과 강제 징수, 차별 정책을 통해 백성들의 원성을 쌓았습니다. 더욱이 그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고 자유로이 무역하면서, 외국의 풍습과 우상을 많이 끌어들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그의 사후에 이스라엘은 결국 우리 나라처럼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게 되는 불행한 역사가 그 이후로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비단 이스라엘 역사가들만이 솔로몬을 실패한 왕으로 그리는 게 아닙니다. 솔로몬 자신도 말년에 지나간 시절을 회고하면서, 자신이 누렸던 영화와 행복이 구름을 잡는 것처럼 헛되고 바람처럼 헛된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구절은 그가 쓴 전도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만, 여기서 그는 "헛되고 헛되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합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는 굉장히 고약한 인물과 같이 보입니다. 그는 세상에 남부러울 것이 없는 영화와 행복을 다 누려놓고는, 후세 사람들에게는 마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누렸던 영화와 행복이란 것도 알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니더라. 그러니 너희는 이런 것들을 부러워할 것도 없고, 바랄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최고니라." 마치 솔로몬이 맛있는 음식은 혼자서 다 먹은 후에 불룩한 배를 내밀면서, "맛있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 보았자, 배탈만 나고 건강도 해치니, 너희들은 대충 먹고 검소하게 살아라"라고 약을 올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도 여러분은 "우리도 솔로몬처럼 영화를 한번 누려보고, 그런 후에야 과연 그의 말이 옳은지 두고 보자",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까?

비록 억울한 생각이 들더라도,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진솔한 말에 한번 귀를 기울어 보십시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죽을 때가 되면, 가슴에 맺힌 진실한 말을 하게 되는 법입니다. 정몽헌 씨의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아마 생전의 행동보다는 자살에 대한 자기 평가인 것 같습니다. 정말 자신의 행동이 어리석은 줄로 알았으면,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았어야 옳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비록 그만은 어리석은 행동을 했지만, 남은 가족과 우리는 그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만은 진실하지 않겠습니까? 정몽헌 씨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어리석다고 말한 것처럼 솔로몬도 자신의 인생을 모두 헛된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전도서를 읽으면, 그가 마치 인생의 비탄과 허무를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1) 먼저 솔로몬은 지식의 헛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육열이 뛰어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아는 것은 힘이다. 배워야 산다" "알아야 면장이라도 해먹지"라고 말하면서, 등골이 휘어지고 집안 살림이 휘청해도 자식 교육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실 지혜가 많으면, 여러모로 유익이 많습니다. 솔로몬도 잠언서의 여러 곳에서 지혜의 소중함과 유익함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어라."(잠 4:7)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가 "지혜도 헛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기 때문이요(1:18), 책을 아무리 읽어도 끝이 없고, 공부만 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기 때문입니다(12:12).

지식이 생활에 쓸모가 많으나, 많은 지식 혹은  남이 모르는 은밀한 지식 때문에 남달리 고난을 받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특히 많이 알기도 피곤하고 어렵지만, 많이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서 괴롭고, 또 많이 안다고 해도, 아는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도 여간 괴롭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몰랐을 때가 더 좋았다"고 고백하고 싶은 심정이 생깁니다. 그리고 어제나 오늘이나 스스로 많은 것을 아는 체해도, 정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설령 좀 안다고 해도 실천에는 무능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욱이 지식이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의 영달과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만 봉사하거나, 심지어는 남을 해치는 데 기여한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도 두 사람의 과학자들 중에 거의 한 명은 군수산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니 도대체 지식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아는 것은 무능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고 말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2) 다음으로 솔로몬은 쾌락의 헛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하고, 세상의 온갖 향락을 누려 보았습니다(2:3). 화려한 궁전도 짓고, 정원과 과수원, 저수지를 만들고, 많은 종들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던 것을 다 얻었고, 누리고 싶은 낙은 무엇이든지 다 누렸다고 말합니다(2:10). 그러나 돌이켜 보니, 그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아무런 보람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즐거움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즐거움은 보람있는 일의 결과로 주어져야 가치가 있고 오래가는 것이지, 쾌락 그 자체가 목적일 순 없습니다. 그리고 쾌락은 끝이 없습니다. 쾌락을 얻으면 얻을수록 사람들은 더 큰 쾌락을 추구하게 되고, 쾌락의 끝에는 허무와 절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술과 세상 향락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합니다. 쾌락의 노예생활은 인격파탄과 질병, 자살 등으로 마감합니다.     

 

3) 다음으로 솔로몬은 수고의 헛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수고가 헛되다고 솔로몬은 말합니까? 세상에서 애쓴 수고의 결과를 뒤에 올 사람에게 물려주니 억울하다는 것이며, 뒤에 올 사람도 슬기로운 사람일지 어리석은 사람일지를 전혀 모르고, 수고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수고의 몫을 받아 챙기니 수고가 헛되다는 것입니다. 또 평생에 하는 일이 괴로움과 슬픔뿐이고, 밤에는 편히 쉬지 못하기 때문에 수고가 헛되다는 것입니다(2:18-23).

세상에 보람된 수고가 왜 없겠습니까? 비록 먹고살기가 참으로 어렵고 지겹다고 하더라도, 솔로몬은 노동의 가치를 너무 무시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수고의 대가가 자신의 자녀들과 친구들에게 돌아가더라도, 결코 억울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남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왜 헛된 일입니까?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수고해도 결국 손에 남는 것이라곤 전혀 없이, 빈손으로 인생을 마감해야 하므로 결국 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잡을 것 같이 꼭 쥔 손으로 태어난 사람도 결국 죽을 때에는 손을 펴야 하므로, 결국 죽어야 할 사람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면 살아야 했는지를 생각하면, 솔로몬처럼 수고의 끝은 실망과 허무 밖에 없을 것입니다.        

 

 4) 그리고 솔로몬은 업적의 헛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이 되어 온갖 영화를 누려보았지만, 그가 물러간 후에는 어느 누구도 그의 업적을 찬양하지 않으니, 업적도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4:16). 그리고 업적을 많이 세우려고 꿈을 많이 꿀수록 헛된 일도 많아진다는 것입니다(5:7). 실로 솔로몬의 남긴 업적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가 지은 성전과 궁전은 나중에 다 파괴되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았습니다. 강력하고 번영된 나라와 영원한 권력에 대한 꿈은 그의 죽음과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의 말과는 다르게 지금도 그의 업적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진시황이 쌓았던 만리장성처럼 솔로몬의 업적이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그런 업적은 백성의 피와 땀을 쥐어짜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보려고 몰려갈 때, 아마도 만리장성을 쌓다가 죽은 수많은 원혼들은 그 아래서 통곡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출세와 업적은 약한 사람들을 짓밟고 올라선 결과입니다. 후대의 사람과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런 업적은 헛되고 어리석고 무익할 수밖에 없습니다.   

 

5) 마지막으로 솔로몬은 돈의 헛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으며, 돈이 주는 달콤함과 유익함, 편리함을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그런데 솔로몬은 왜 돈이 헛되다고 말합니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며, 배가 부른 부자는 편히 자지 못하기 때문이요, 아끼던 재산이 주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고, 재난을 만나서 재산을 다 잃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요, 죽을 때에는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이요, 돈 때문에 평생 울분과 고생과 분노로 시달리며 살기 때문입니다(5:10-17).

최근에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하저드대 학생들에게 실시한 설문 조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벌면 벌수록 행복해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사람의 만족도는 그만큼 커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런던 경제대학의 리처드 레이어드 교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생활 환경이 나아지면 당장은 행복감은 느끼지만, 행복감은 금방 사라지기 때문이요, 사람들이 소득을 남과 비교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끝까지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다고 할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제일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니, 돈과 행복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식과 쾌락, 수고와 업적, 돈이 모두 허무하다"라고 말한 후에 솔로몬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12:13). 그렇다면 솔로몬은 지식과 쾌락과 수고와 업적과 돈이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 이 모든 것을 완전히 끊고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살자고 제안합니까? 공부하고 즐거움을 추구하고 수고하고 일하면서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하라는 말이며, 무슨 보람으로 살라는 말입니까? 세상 사람 말로 하나님을 믿으면, 떡이 나옵니까, 밥이 나옵니까? 언뜻 보면, 솔로몬은 자기가 실컷 누린 향락이 다 소용이 없다고 말하면서, 갑자기 염세주의자 혹은 허무주의자가 된 듯이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도서를 꼼꼼히 읽어보면, 그의 진심은 그게 아닙니다.

그가 말하고자 결론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만사의 근본이고, 시작과 끝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잠 1:7, 9:10).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은 지식으로 구원을 얻는다(잠 11:9).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고 좋은 일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수고하고 즐거워함으로써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니,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5:18-20). 하지만 하나님이 선악간에 심판하시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라(12:14). 솔로몬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에게 예배만 드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 주신 일에 땀흘려 일하면, 반드시 보람과 기쁨이 따를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사람의 지식과 쾌락, 수고와 업적, 돈은 보람과 즐거움이 따른다고 가르칩니다.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모두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교사인 솔로몬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인생살이의 근본이요, 사람의 본분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다 아시며, 은밀한 수고까지 다 아시고 선악간에 다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삶은, 겉으로는 아무리 화려하고 행복하게 보여도, 속과 끝은 참으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참으로 보람차고 즐거운 일이니,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영광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