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역경 중에 노래한 사람

- 하박국 -

 

합 3:17-19

2004년 11월 7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승리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들은 대뜸 속으로 이렇게 말하실 지도 모릅니다. "승리라고요? 목사님은 세상 물정도 모르시니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하시지, 지금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그래요. 목사들은 세상 속에서 돈벌이를 하지 않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해 본답시고, 목회를 그만 두고 현풍 시장에서 좌판을 벌리면, 여러분이 모두 반대하실 것이 아닙니까? "아이고, 목사님이 무슨 돈을 버시겠다고, 이런 고생을 하십니까? 돈은 저희들이 열심히 벌 테니까, 목사님은 기도나 열심히 해 주세요."

솔직히 사실 저라고 그런 일을 못하겠습니까? 며칠 전에 저는 저희 집사람과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우리가 늙어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폐품 수집을 해서라도 돈을 벌자!"구요. 그러자 집사람은 "그보다는 조그만 식당을 여는 게 낫겠다"고 말하더군요. 그것도 경기가 잘 돌아가야 할 수 있는 일이지,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우면 그 짓도 못합니다. 요즘 경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식당 주인들이 솥 단지와 냄비를 마구 던지고 부수면서, 정부에 항의하는 데모를 하는 것을 보십시오! 비록 제가 직접 돈벌이는 하지 않지만, 세상살이가 참으로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만은 절실히 느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헌금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밥을 먹을 때마다 하나님과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감사하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굶주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쳐다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아직도 굶주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는 겁니까? 많은 사람들이 지독한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데, 저는 뭐가 대단해서 이렇게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 겁니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민들이 절망하고 자살하는 사태가 속출하는 이 어려운 시대에 정치가들은 매일 싸움질이나 하고, 부자들은 땅 투기와 해외 관광과 도박을 일삼는 것을 보면, 저의 배가 아프다 못해, 정말 하나님을 향해 불평이 안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 못난 제가 이 만큼이라도 먹고사는 것은 분명히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왜 이래 불공평합니까? 왜 어질고 선한 사람들, 애국자들, 의로운 사람들은 못 살고, 왜 영악하고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악인들은 떵떵거리고 잘 사는 겁니까? 하나님의 공의가 도대체 살아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통치하시기는커녕, 이 세상을 가끔 내려다보시기라도 하십니까?"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주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물론 올해는 작년보다 태풍의 피해가 적었고 일조량도 매우 좋아서, 풍성한 곡식과 맛있는 과일을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맞은 기후를 주시고 큰 재앙을 막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가까운 일본만 해도, 지진과 태풍으로 큰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일본인이 저지른 죄를 달게 받는다고 고소해하시지만, 지금 자연 재해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농사는 잘 되었지만, 날로 침체되는 경제 사정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매우 거칠고 어두워졌습니다. 가는 곳마다 온통 원망과 불평뿐입니다. 이런 형편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지는 못할지언정, 어찌 그들 앞에서 감사의 몸짓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우는 사람과 함께 울지는 못할지언정, 어찌 그들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랬다가는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몰매를 던질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어이없고 기막힌 현실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른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그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바로 선지자 하박국입니다. 호박국이 아니라 하박국입니다. 하박국이 살았던 시대는 국내외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무척 힘겨운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향해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서 하나님께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첫 번째의 불평은 이렇습니다. "여호와여. 제가 '살려 달라'고 울부짖어도 들어주시지 않으시고, 폭력이 난무하여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를 해도, 도와주시지 않고 가만 계시니 '언제까지' 이런 일이 계속되어야 합니까? '어찌하여' 나로 하여금 이토록 악하고 참혹한 일들을 보게 하십니까? 내 앞에는 겁탈과 폭행이 난무하고 있으며, 시비와 분쟁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죽어가고 정의는 결코 실현되지 않습니다. 악인들이 의인을 붙잡아가서 폭행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1:2-4). 이 같은 선지자의 항의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갈대아 사람, 즉 바벨론 사람들을 통해 유대 사회의 악한 사람들을 쳐서 형벌을 내릴 것이다"(1:5-11).  

이 같은 하나님의 답변에 대하여 하박국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그들을 채찍으로 삼아 이 나라를 벌하시려 합니까?"(1:12-17) 유대 사람들보다 더 악한 바벨론 사람들을 유대 사람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겠다고 하시니, 하박국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박국의 항의에 대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답변을 주셨습니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묵시의 내용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심판의 날은 꼭 오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더딜지라도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지금 악인들의 마음이 교만하고 방자하여 허풍을 떨고 으스대면서 살지만, 심판의 날이 오면 그들은 견디지 못하고 망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3)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입니다. 의인은 그의 신실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의인'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고 그 약속을 붙들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의인'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토록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신실하게 사는 의인만이 심판의 날에 견딜 수 있고, 끝까지 남아서 구원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농부에게 가장 큰 기쁨은 가을에 풍성한 추수를 하는 것이고, 목축업자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외양간에 가축이 많은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당연히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조건과 환경을 뛰어넘어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의를 행하실 것이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들에게 반드시 구원을 베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하박국에게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하여 불평하고 불만을 쏟아놓던 그가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기쁘게 부르게 되었습니다. 살아 계시고 세상을 의로 통치하시고 심판하실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그를 현실을 초월하여 감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하박국은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하나님을 환상 중에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산에서부터 오시리로다"(3:3).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3:13). 이리하여 그의 입술에서 탄식이 멈추고, 감사찬송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캄캄하고 암담한 역사의 한복판에서 공의가 실현되지 않고, 침략자의 횡포가 극심하고, 사회적으로 심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역사의 한복판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환상을 본 하박국은 이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록 내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과 아픔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몸이 떨리는 전율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곡식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6-17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감사와 찬송이 가능하겠습니까? 여러분도 하박국처럼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이 있더라도, 뼈가 썩어 들어가는 아픔이 있더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감사하며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곡식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하더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기뻐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형편이 좋을 때 누가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형편이 좋을 때에만 감사한다면, 우리가 세상 사람과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솔직한 말로, 우리 가운데서 하박국처럼 그렇게 궁핍하고 어려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박국보다 더 기뻐하고, 더 감사하고, 더 노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이 좋은 환경에 있다면, 당연히 감사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고통 속에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반드시 구원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것은 성도다운 태도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역경을 이기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역경을 통해서 얻은 더 큰 은혜 때문에 감사할 때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참으로 값진 것을 주시려고 하실 때, 결코 쉽게 주시지 않습니다. 값진 것을 '시련'이라는 보자기에 싸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련'이란 보자기만 보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보자기 속에 싸여 있는 값진 '보화'를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서도 늘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동안도 주님의 은혜로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니 분명히 그러리라 믿습니다. 힘내십시오, 여러분.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