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화해의 사람, 야곱

 

창 33:1-11

2003년 3월 23일, 현풍제일교회

 

 

미국은 다시 이라크를 공격하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10년 전에 이라크를 공격하여 걸프 전쟁을 일으켰던 아버지 조지 부시를 이어 또 다시 이라크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부시의 아버지 이름 "조지 부시"를 비꼬아 "조지고 부시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아들의 이름도 "부시"여서 그런지, 부시 가문이 부수는 것을 좋아하는 가문이어서 그런지, 가문 대대로 부시는 이라크를 부수고 있습니다. 조지는 이라크를 인류를 위협하는 "악의 축"으로 지목하였고, 후세인은 부시를 이슬람 문명을 파괴하는 십자군 전사로 지목하였습니다.

 세계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미국의 부시와 중동 국가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이라크의 후세인은 마치 두 종교, 두 문명을 대표하는 사람처럼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헌팅턴과 같은 역사학자는 이를 "문명 충돌"(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은 이를 "종교 충돌"(기독교 근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의 충돌)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을 "자원 쟁탈을 위한 충돌"(석유 확보를 위한 충돌)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떠하든, 두 차례에 이은 대규모적인 전쟁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전쟁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문에 일어났고 그래서 유엔도 지지하였던 전쟁이었지만, 지금의 전쟁은 아무런 명분도 없는 "더러운 전쟁"으로서 대다수의 나라와 유엔이 거부한 전쟁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당한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6.25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여러분은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몸소 체험하시지 않았습니까? 전쟁 때문에 얼마나 인명과 재산, 문명이 파괴됩니까? 지난번의 걸프 전쟁 때에 약 30만 명의 이라크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데, 이번의 전쟁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비참한 고통을 겪게 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이래로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고 전쟁을 일으키며, 문명이 발달할수록 대량 파괴의 기술은 더욱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화와 화해는 언제나, 아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긴박하고 중요한 인류의 최대의 숙제가 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나라는 세계 최후의 분단국가로서 전쟁의 위험을 항상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우리에게 평화와 화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복음"이란 바로 "샬롬"(평화, 안녕, 화해)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고, 제자들에게 언제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원하노라"며 축원하셨으며, 자신의 몸을 십자가의 "화목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인류에게 영원한 평화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화목케 하시는 분이요, 성령은 바로 사랑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언제나 전쟁보다는 평화를, 죽음보다는 생명을, 미움보다는 사랑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하나님을 섬기는 두 나라가 이름만 다른 하나님의 이름으로, 즉 야훼와 알라의 이름으로 위험한 전쟁놀이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하나님이 비웃다 못해 통탄하실 일이 아닙니까? 설령 인간의 욕심으로 추악한 전쟁은 벌리더라도, 제발 하나님의 이름만은 들먹이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두 나라가 하나님을 들먹이며 추악한 전쟁을 거룩한 전쟁으로 합리화하고 있으니, 이럴수록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전쟁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평화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화해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야곱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참으로 화해하며 살 수 있는지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야곱은 태어나기 전부터 운명적으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쌍둥이 형과 싸운 사람입니다(창 25:22). 왜 뱃속에서부터 형제가 서로 싸웁니다. 엄마의 좁은 태 속에서 영양분을 더 많이 먹겠다고 싸우는 겁니다. 미국이 이라크에게 전쟁을 거는 것도 더 많은 세력과 자원을 차지하겠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또 야곱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간사한 인물입니다. 그는 배고픈 형의 약점을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가로챈 야비한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아버지의 눈을 속였습니다. 그는 장인의 눈을 속여가며 재산을 불렸습니다. 후세인도 아주 야비한 사람입니다. 후세인은 자기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정적을 제거하였으며, 금지된 독가스로 쿠르드 민족을 대량으로 학살하였습니다. 그는 유엔의 눈을 속여가며 대량 살상 무기를 비축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았으며,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를 빌미로 삼아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선량한 나라입니까? 미국은 세계에서 대량 살상 무기를 제일 많이 보유하고 있고, 이 무기를 지금 이라크에서 아낌없이 퍼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후세인도 불량깡패와 같지만, 부시는 후세인보다 더 큰 불량깡패와 같습니다. 남의 나라 석유를 자기 마음대로 차지하겠다고, 이라크로부터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를 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뱃속만 채우려는 포악한 사람입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우리 나라의 속담처럼 야곱은 오랜 세월의 도피 끝에 형과 정면으로 맞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도 야곱은 야비한 수단으로 형을 속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는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므로 형과 정면 충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탓인지, 이번에는 야곱은 전혀 무리수를 두지 않습니다. 물론 야곱은 여전히 재물, 아니 뇌물을 쓸 줄 압니다. 아직도 그는 여전히 꾀가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세월을 먹을수록 더 지혜로워졌는지, 아니 스스로 자초한 많은 고난을 통해 더 겸손해지고 영혼도 더 정화되었는지, 이번에는 야곱은 충돌을 피하고 화해를 위해 준비합니다.

야곱은 과거의 역사로부터 겸허하게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그는 형을 더 이상은 속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형과 더 이상 다투어서는 안 되겠다고 결단합니다. 아니 그는 충돌로 인한 엄청난 손실을 두려워하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형과 화해하겠다고 결단합니다. 많은 뇌물과 치밀한 전략도 그를 안심시키지 못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니, 자기는 정말 죽을 죄를 지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아니 설령 자기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현명한 야곱입니까?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함입니다. 역사는 사람을 지혜롭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짐승과 다릅니다. 그런데 후세인과 부시는 10년 전의 전쟁에서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10년 전의 전쟁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도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보다도 전쟁을 막은 사람이 더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후세인과 부시는 이번에도 과거로부터 전혀 배우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처럼, 아니 과거의 쓰라린 상처를 완전히 잊은 듯이, 또 다시 무모한 전쟁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두 마리 짐승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지혜로운 사람, 겸손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화해를 위해 준비합니다. 하지만 화해는 결코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평화를 세운답시고 전쟁을 벌리며, 화해를 이룬답시고 불화를 조장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노력으로는 형과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더욱이 과거에 그가 저질렀던 나쁜 행동이 그의 양심을 찌릅니다. 그러므로 그는 먼저 하나님과의 화해를 위해 기도합니다.

야곱은 어두운 밤에 홀로 가족 뒤에 떨어져 불안 속에서 떨고 있다가, 어떤 사람과 씨름을 하였습니다. 야곱이 번뇌와 후회 속에서 먼저 하나님을 찾는 중에 어떤 사람이 그에게 씨름을 걸었습니다. 야곱을 덮친 사람은 바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형과의 원수 관계로 번민하던 야곱에게 하나님은 화해의 능력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의 용서와 인도하심을 확신합니다. 하지만 끈질긴 씨름 끝에 야곱은 엉덩이뼈를 다쳐서 절름발이가 됩니다. 성경은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형과 아버지를 속이는 사기꾼 야곱은 하나님의 손에 완전히 꺾여졌습니다. 그리하여 사기꾼 야곱은 새 이름을 받은 새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부끄러운 그의 이름이 명예로운 이름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야곱도 하나님과 겨뤄서 승리를 얻은 셈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부시는 10년 전에 걸프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에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아들 부시도 매일 백악관에서 기도한다고 하니, 이번에도 분명히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린 후에 전쟁을 시작했을 겁니다. 그런데 기도와 전쟁이라는 말이 도대체 서로 어울리는 말입니까? 기도한 사람이 먼저 싸움을 걸 수 있습니까? 기도한 사람이 먼저 화해를 요청해야 옳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두 부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먹은 사기꾼 신자입니다. 불신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전쟁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사용해야 할 최후의 수단은 전쟁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용서와 희생을 의미합니다.

비록 후세인이 악의 축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아야 합니다. 부시는 방탕하게 지내며 실패자로 낙인찍혔던 과거의 열등감을 만회하려고 무고한 사람에게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는 이제 하나님의 메시아처럼 죄인을 마음대로 심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해도, 실로 부시는 전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전혀 화해가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과도 전혀 화해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저의 눈에는 부시는 다만 하나님의 이름을 십분 활용하는 교활한 정치인으로 보일 따름입니다.

이와 달리 야곱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났으며, 진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하였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20년 동안 원수로 지내던 형에게 화해의 악수를 청합니다. 그는 형을 만나자마자 땅에 엎드려 일곱 번이나 절을 합니다. 겸손과 화해의 진정한 표시입니다. 뜻밖에, 아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에서는 야곱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참으로 형다운 자세입니다. 하지만 실은 하나님이 배후에서 도와주셨습니다. 야곱이 내뱉은 말은 형과 화해한 그의 감격이 얼마나 벅찼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형님 얼굴을 보니,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창 33:10). 그리도 무섭던 형님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진정으로 화해한 사람은 원수의 얼굴도 하나님의 얼굴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얼굴을 어떻게 칠 수가 있겠습니까?

사실 후세인과 부시의 관계도 에서와 야곱의 관계와 같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엔 형제입니다. 이슬람교인과 기독교인은 다같이 유대교의 후예들입니다. 이라크 사람과 미국 사람은 작은 지구촌의 이웃입니다. 더욱이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얼굴을 지니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 우리가 서로를 하나님처럼 대한다면, 우리가 감히 어떻게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화목하게 지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은 힘센 사람이 이기는 것 같아도, 언젠가 그도 약해지고 맙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강대했던 로마가 졸지에 망했듯이, 강대국 미국도 곧 망할 것이라고 미국 사람들이 공공연히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기 때문입니다(잠 18:12). 우리도 연약한 사람인고로, 우리도 때로는 짐승을 닮아서 종종 싸우게 됩니다. 하지만 싸울 줄만 알고 화해할 줄을 전혀 모른다면, 우리는 멸망할 짐승과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화해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친히 화해를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종종 어쩔 수 없이 싸움에 말려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이기는 자가 아니라 미움을 이기는 자가 되십시오. 악의 영, 싸움의 영은 단호히 물리치되, 원수와는 화해하며 살아가십시오. 왜냐하면 이기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 아니라 화평케 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니라"(마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