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용기의 사람, 갈렙

민 13:1-14:38

 

2003년 6월 1일, 현풍제일교회

 

 

흔히 인생은 나그네와 비교됩니다. 그런데 나그네가 가는 길은 언제나 순탄할 리가 없습니다. 때로는 돌부리에 치여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강도를 만나 큰 낭패를 당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험산준령(險山峻嶺)을 넘어야 하고, 때로는 거친 강물도 건너야 합니다. 또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배가 항해하는 길도 언제나 순탄할 리가 없습니다. 때로는 거센 파도와 싸워야 하고, 때로는 암초에 좌초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파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침몰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성도라고 해서, 역경과 시험이 완전히 면제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시합과 시험이 갈수록 어려워지듯이, 우리도 믿음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큰 역경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생애 중에 사탄과 적들로부터 많은 시험을 당하셨으며, 치욕스러운 십자가에 매달리는 고난을 감수하셨습니다. 하물며 인간인 우리는 얼마나 자주 시험과 고난을 받겠습니까? 성도의 삶은 죽을 때까지 시험을 치르는 과정이요, 시련과 싸우는 과정입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의 저자 빈센트 필(Vincent Peal) 목사님에게 어느 날 한 성도가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제 맘에는 완전한 평화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완전한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요?" 필 목사님은 "완전한 평화만이 있는 곳을 알려드릴 테니, 그곳에 가 보십시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필 목사님이 가리킨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공동묘지였다고 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모든 역경과 실패가 사라진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안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역경과 실패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복 신앙입니다. 그렇게 착각하고 교회에 나왔다가, 시험과 역경을 당해 교회와 신앙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제발 이런 사이비 신앙을 전파하지 맙시다.

그렇다면 성도가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이며,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아무런 역경과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역경이 와도 이를 믿음으로 이기고, 어떤 고난이 와도 이를 감사의 조건으로 바꾼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실 성도의 길은 좁은 길, 의로운 길을 가는 길이기에 처음부터 역경과 시험을 각오하고 가는 길이요,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역경과 시험을 자초하는 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의 길은 더 큰 영광을 위해 더 큰 고난을 감수하는 길이요, 더 크게 쓰임을 받기 위해 더 크게 단련을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가는 길에 많은 역경을 만났으며, 많은 시험을 받았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은혜의 선물이지만, 이 선물을 받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많은 역경과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란 광야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르시길, "각 지파 중에서 족장 한 사람씩을 골라 가나안 땅을 탐지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는 열두 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습니다.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탐지하고,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와 석류와 무화과를 가져와서 보이고, 모세에게 보고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가보니,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땅의 과일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 땅의 백성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컸습니다. 거기서 본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었으며, 그들과 비교할 때 우리는 마치 메뚜기와 같았습니다." 이 말을 듣자, 온 백성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하였으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으니, 지도자를 뽑아서 애굽으로 돌아가자"(14:1-4).

본문은 가나안 정탐꾼들이 "악평하였다"고 말합니다(13:32, 14:37).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온 사실을 많이 부풀려서 보고했다는 말입니다. 열등감이 많거나 소심한 사람들의 눈에는 적이 실제의 모습보다 더 무서워 보이는 법입니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그들의 말에도 타당한 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보고를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열 명의 정탐꾼들과 여호수아와 갈렙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문제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특히 오늘의 본문에서는 여호수아보다 갈렙이 더 자주 전면에 나옵니다. 갈렙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우리가 능히 이길 것이다"(13:30).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었다. 만약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14:7-9).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두 사람의 말보다는 열 사람의 말을 더 믿고, 두 사람을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고안한 제도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좋은 것이 민주주의이지만, 민주주의가 최선의 제도는 아닙니다. 인간이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다수결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겠지만, 진리는 항상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어리석은 다수보다는 현명한 소수를 따라야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진리는 소수의 창조적인 사람에 의해 계승되어 왔습니다. 오늘의 사건에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정탐꾼들과 그들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아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멸시한 대가로 그들의 자손들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였습니다.

역경 앞에서 인간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을 보입니다. 첫째는 '체념형'의 인간입니다. 이런 사람은 역경 앞에서 그대로 주저앉아 버립니다. 소극적이고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둘째는 '도피형'의 인간입니다. 이런 사람은 "일단 위기만 벗어나고 보자"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냉소적이고 방관적인 사람들이 이런 유형에 속합니다. 셋째는 '돌파형'의 인간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역경에 당당히 맞섭니다.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다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요? 어떤 사람은 체질과 성격의 차이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환경과 교육의 차이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념의 차이를 말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념의 차이일 것입니다.

물론 타고난 성격과 주어진 환경과 교육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게놈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운명은 우리가 생각하기보다 훨씬 더 많이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태교의 중요성이 지난 시절보다 훨씬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운명적인 존재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동물처럼 태어난 그대로, 주어진 본능대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또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는 운명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인간은 단지 운명 속으로 던져진 존재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운명을 타개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환경과 남에 의해서만 길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을 길들이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경영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신념 혹은 신앙입니다.

갈렙의 뛰어난 점은 바로 그의 신앙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신앙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바로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사건에 대한 분명한 기억과 하나님의 동행하심에 대한 확고한 신뢰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와는 달리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은 지나간 사건을 쉽게 잊어버렸으며, 역경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14:11).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말에 순종하지 않은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14:22-23).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으므로, 그들과 자손들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14:24)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미 주어진 체질과 성격, 환경과 교육은 어떻게 고치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의 신념과 신앙은 고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여, 고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고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냉정함을 주십시오. 그리하여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을 식별하는 지혜를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고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까? 지금보다도 훨씬 더 어려웠던 과거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역경을 잘 헤쳐왔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하고,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쉬이 낙담하고 원망하는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비록 역경 중에 하나님이 전혀 안 보이는 것 같으나, 역경 중일수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고칠 수 있는 과거에 대한 망각과 고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지난 삶 속에서도 늘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갈렙의 고백대로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갈렙처럼 역경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십시다. 말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반쪽 마음만이 아니라 온 마음으로, 아니 마음만이 아니라 마음과 몸을 다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십시다. 바로 여기에 온갖 역경과 시험 중에서도 여러분이 형통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와 같은 장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주보에 실린 '홍해의 법칙'을 다함께 낭독하십니다.

1.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 모든 환난은 하나님이 정하신 뜻에 따라,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일어난다. 역경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또한 건져주실 것을 믿자.

2. 나의 안전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자. 삶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자.

3. 적을 인식하되, 두 눈으로는 주님을 주시하자. 사탄은 오늘도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돌아다닌다. 그러나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두 눈으로 그리스도를 주시하자. 주님이 우리를 보살피실 것이다.

4. 기도하자.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신다. 그 때에 기도하자. 이것이 바로 바다를 둘로 가르신 분의 손을 붙드는 비결이다.

5. 잠잠히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자. 하나님께 불가능이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바다를 둘로 가르실 수 있다. 모든 문제를 주님에게 맡기고, 주님의 역사를 잠잠히 기다리자.

6. 확신이 서지 않으면,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 인간의 지혜로 계획하지 말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7.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마음 속에 그려보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연습을 꾸준히 하다 보면, 점차 습관이 되어 결국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당연한 현상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8. 하나님이 독특한 방법으로 구원하실 것을 믿자.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기준을 설정하신 법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상황에 딱 맞는 방법을 사용하신다.

9. 현재의 위기를 장래의 믿음 성장을 위한 디딤돌로 받아들이자.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통을 잘 극복하고, 그것을 내일의 도전에 대비하여 믿음을 성숙케 하는 도구로 사용할 때, 우리의 믿음은 자란다.

10.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가 지금 홍해 이편에 있든 저편에 있든, 하나님이 반드시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길을 열어주실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