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담대하라!

- 여호수아의 신앙 -

 

신 31:1-8

2003년 6월 22일, 현풍제일교회

 

 

인생은 죽을 때까지 시련과 더불어 싸우는 고달픈 투쟁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실패도 없고 시련도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어린아이의 믿음이요, 초보 신자의 믿음이요, 미신적인 믿음입니다. 제가 신학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하루는 친구의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어머니가 제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교회에 나가도 사업이 잘 안 되더니, 절에 나가보니 사업이 잘 되더라. 그러니 너도 절에 나가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불교의 교리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석가도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문제로 고민하다가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가 깨달았던 점은 특정한 종교를 믿으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아니라, 욕심과 집착을 끊어야 번뇌가 사라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생은 당장 고통을 해결해 달라고 부처 앞에서 절을 올립니다. 중생의 이런 욕구를 해결하려고 절마다 삼성각(三聖閣)이나 삼신각(三神閣)을 지어놓았습니다. 이것이 미신인 줄 알면서도 대개의 절은 이런 시설을 지어놓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끌어드립니다. 만약 석가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기가 차서 웃거나 크게 호통을 칠 일입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우리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믿음이 만병통치약처럼 단번에 모든 고통을 해결해 준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분명히 죄책감과 불안과 시련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아니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를 때까지 시련은 계속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시련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참 평안과 시련을 이기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단번에 시련이 없는 세계로 인도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믿는 자들에게 시련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 성도들 중에서도 사업 문제, 질병 문제, 가정 문제, 정신적인 고통 등으로 시련을 겪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볼 때마다,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는 "제가 초인이라도 되어서 단번에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아니 하나님도 그렇게 하시지 않는 일을 제가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그리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제가 도울 수 없는 문제 앞에서는 여러분이 시련 속에서도 주님의 위로와 기쁨을 풍성히 누리시길 간절히 바라며,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시련을 잘 극복해 나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위로할 따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모세의 인도를 받아 바로의 혹심한 압제로부터 벗어났습니다만, 단번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광야의 모진 시련과 강한 적들을 이겨나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과 지도자에 대한 불신앙과 싸워야 했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와도 싸워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과 모세의 탁월한 지도력 덕분에 가나안 땅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이제 늙게 되었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울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을 지도자로서 여호수아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때에 주신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입니다. 신명기 31장 6-8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모세에게는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셨고, 그에게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지만, 여호수아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은 오직 오늘의 말씀뿐입니다. "앞으로 여러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하나님이 앞길을 인도하시고 함께 하실 것이니, 두려워하거나 떨지 말고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설령 하나님이 당장 우리에게 큰 기적을 보여 주시지 않더라도,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들이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아니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전혀 없더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전진하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이 말씀만을 믿고 전진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가장 큰 두 가지 시련은 거친 요단 강을 건너는 일과 막강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요단 강을 배 한 척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법궤만을 메고 믿음으로 건너가라는 명령은 얼마나 우둔한 명령처럼 들립니까? 여리고 성을 매일 한 번씩 돌다가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면서 나팔을 불고 소리를 크게 외치라는 명령도 얼마나 어리석은 명령처럼 들립니까? 차라리 "내가 너희와 함께 할 테니, 광야의 지푸라기로 배라도 만들어 띄워 보라"고 말씀하시거나, "너희가 가진 모든 것들을 무기로 삼아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한번 공격해 보라"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완전히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믿음으로 나아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심이 많고 불평을 자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긴 세월 동안 강하게 단련이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과 인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붙들고, 여호수아의 지도를 받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적적으로 요단 강을 건널 수 있었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여리고 장벽을 넘고, 도저히 맨발로는 건널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요단 강을 건널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담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담대한 믿음은 시련 앞에 좌절하거나 물러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은 그저 머리만으로 끄덕거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일시적인 감정의 흥분이 아닙니다. 믿고, 기도하고,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칠일 동안 매일 여리고 성을 돌았다는 사실은 시련을 이길 때까지 매일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만을 믿고 요단 강을 건넜다는 사실은 오직 기도하면서 순종하였다는 말입니다. 오직 기도만이 시련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기도로 마귀의 유혹과 귀신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몰아낼 수 없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오직 기도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에는 담임교사가 그의 머리가 너무 나빠서 아무리 가르쳐도 안되니 집에서 가르쳐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가르치며, 약해지지 않도록 힘을 달라고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11살이 된 에디슨은 기차 한 모퉁이에서 신문팔이를 하면서, 무슨 실험을 하다가 기차 안에서 불을 일으켜 차장에게 따귀를 맞고,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처지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노력하여, 2천 종 이상의 발명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늘 기도하고 감사하는 신앙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전구를 발명하고 완성할 때까지 무려 12만 번이나 기도하고, 1만 번이나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한번 실험에 실패하면, 그는 3시간 동안 기도했다고 합니다.

두 나무꾼 친구가 산에 올라갔습니다. 경쟁적으로 나무를 찍어 장작을 만들어갑니다. 한 사람은 유달리 승부욕이 강했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지지 않으려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나무를 찍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식으로 숨을 쉬어가면서 일했습니다. 어느덧 산을 내려갈 시간이 되어 두 사람은 각자 서로가 수고한 결과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셈입니까! 쉬어가면서 일한 친구가 더 많은 장작을 장만했더랍니다. 승부욕이 강한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투덜거렸습니다. "내가 더 열심히 일했는데도, 왜 자네 것이 더 많단 말인가?" 그러자 다른 한 친구가 점잖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10분씩 쉴 때마다 도끼 날을 갈았다네." 그러니 그가 당연히 이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끼 날이 무디어 지는 줄도 모르고  덮어놓고 열심만 낸다고 되겠습니까? 이처럼 아무리 바쁘더라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믿음의 날을 날카롭게 갈 수 있으며, 그래서 온갖 장벽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칠일 동안 기도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일주일 내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만들었습니다. 월요일은 원래 기도하는 날이요, 화요일은 화끈하게 기도하고, 수요일은 수없이 기도하고, 목요일은 목이 터져라 기도하고, 금요일은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토요일은 토하면서 기도하고, 일요일은 일하지 않고 기도한다. 한국 경제가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온갖 강도와 납치, 살인 사건이 연이어 일어납니다. 더욱이 전에 없던 이상한 질병들도 자꾸 생겨납니다. 교회마저도 지금 심각한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진 탓으로 여기저기서 온갖 불미한 사건들이 터져 나옵니다. 더욱이 나른한 계절에 우리의 몸과 마음도 약해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넘어가야 큰 장벽과 우리가 건너가야 할 시련이 여전히 우리 앞에 강하게 버티고 서 있습니다. 이럴수록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화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면서 여러분 앞에 놓인 시련을 능히 이겨나가기를 바랍니다. 기도 속에서 담대히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언제나 여러분 앞을 인도하시며,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