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룩하신 하나님

 사 6:1-7

 

2003년 9월 1일, 현풍제일교회

 

지금까지 저는 구약성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부터는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되, 지금까지와는 달리 예언자들의 생애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기보다는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기독교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 예언자 이사야의 가르침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오늘 이사야를 통해 우리가 듣게 되는 중요한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성전 안에 있다가, 갑자기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스랍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에 의해 둘러싸여 계시는데,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천사들조차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신들의 모습이 부끄러워 날개로 몸을 가립니다. 하나님을 밤낮으로 섬기는 천사들조차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천사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외칩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든지,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연기가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이사야가 만난 하나님은 무엇보다 거룩하신 분이셨습니다. 거룩하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민중서관에서 나온 국어사전을 보면, '거룩하다'는 말은 누구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울 만큼 성스럽고 위대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위대하다는 뜻은 알겠는데, '성스럽다'는 말은 또 무슨 뜻입니까? 거룩하고 고결하여 위대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고결하고 위대하다는 뜻은 알겠는데, 거룩하다는 뜻은 또 무엇입니까? 거룩하다는 단어를 찾아보면 성스럽다고 하고, 성스럽다는 단어를 찾아보면 거룩하다고 합니다. 거룩하다는 말과 성스럽다는 말은 한글과 한문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결국 같은 말인데, 이처럼 같은 말을 빙빙 돌려 말하고 있으니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결국 '거룩하다' 혹은 '성스럽다'는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거룩하다고 합니까? 옛날에는 이 말을 종종 썼던 것 같은데, 이제는 거의 쓰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이 그만큼 세속적인 것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세상에 이제는 거룩한 것들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아니 거룩한 것들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거룩한 느낌, 거룩함을 느끼는 감정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 앞에서 거룩한 느낌을 갖습니까? 생명 앞입니까? 아니면 희생적인 어버이 앞입니까? 조국 앞입니까? 웅장한 산과 바위 앞입니까? 광대한 우주 앞입니까? 도대체 무엇이 거룩합니까? 실로 현대인들에게는 그 어떤 것들도 더 이상 거룩하지 않습니다. 아니 거룩한 것들, 거룩한 느낌만이 사라진 게 아니라, 거룩하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저 국어사전에 죽은 단어처럼 인쇄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송하는 노래를 부를 때, 어떤 느낌을 갖습니까? 거룩하다는 말이 생생하게, 실감이 있게 다가옵니까? 십계명이 명하는 대로, 우리는 매 주일 하루를 안식일로 여겨서 거룩하게 지킵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안식일의 의미를 훨씬 넘어선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안식일을 폐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안식일의 정신에 따라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고 성전에 나오신 여러분은  정말로 이 순간에 거룩한 느낌을 갖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도 이제 상당히 세속화되었다는 말이 됩니다. 교회당에는 나왔지만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느낌이 약해졌거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상당히 무디어졌다는 말이 됩니다.

이사야가 체험한 하나님의 거룩함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거룩함은 세속과 완전히 대립되는 것, 감각적인 세계를 완전히 초월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라고 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는 절대로 다르신 분이다. 하나님은 너무나 크시고 높으시고 두려우신 분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곳에 계신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렵고 놀라운 분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숭엄하고 위대하고 놀랍고 떨리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지 두렵고 떨리고 놀라운 분만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혼비백산하여 놀라 자빠지거나, 멀리 도망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기는 하였지만, 멀리 도망하거나 황홀경에 눈이 멀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기 때문에 이사야는 그 어디로도 도망갈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만이 아니라 성전 안에도, 성전만이 아니라 온 땅에도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함은 한편으로는 놀랍고 떨리고 두려운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세상 안에 가득한, 신비하고 매력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이 세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계시는 분으로서 우리에게는 너무나 크고 두렵고 떨리는 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상 안에 충만하게 계시면서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이 계시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창조와 역사를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체험한 이사야는 이어서 하나님을 왕이라고 고백합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5). 하나님이 왕이 되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창조와 역사의 주인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또한 역사의 주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만물을 그 손안에서 운행하시며, 역사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수행하십니다. 역사가 아무리 암울하고 타락하더라도,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일하기를 멈추지 않으시며, 승리를 향해 역사를 움직여 나가십니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타락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백성을 통해 활동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하나님의 슬픔과 진노를 가져오기는 하겠지만, 하나님의 활동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시지만, 역사 안에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큰 힘은 무엇입니까? 사람입니까? 사람끼리 사는 세상에서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가 최상의 제도인 것처럼 보입니다만, 사람은 결코 역사의 주인이 아닙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큰 힘은 돈입니까? 요즘에는 어느 시절보다 돈의 힘이 막강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이제는 자본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한 제도처럼 보이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며 돈보다 소중한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압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큰 힘은 강대국입니까?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간단히 점령한 미국의 힘을 보면, 미국은 역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최고의 강대국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테러의 불안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는 미국 사람들을 보면,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미국도 언젠가는 로마 제국처럼 망할 것이라고 공언하는 미국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도 무기도 아니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큰 힘은 보이지 않은 귀신이나 팔자, 운명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홀로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만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세상을 친히 운영하십니다. 그래서 달러와 무기가 지배하는 미국 속에서도 경건하고 진실한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He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하나님은 온 세상을 당신의 손에 쥐고 계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실로 하나님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들은 하나님을 등졌으며, 세상의 재물과 권력을 더 섬겼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 특히 유다 백성의 죄악을 용감하게 폭로하였습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1:4)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1:21).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2:7-8).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죄악을 방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거슬려 다른 주인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은 이방 사람보다 더 혹독한 징계를 당하게 됩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자식을 징계하지도 않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혹독한 징계의 채찍을 사용하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은 결국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서 비참한 파멸을 경험하게 됩니다. 앗수르가 알든 모르든, 하나님은 강대국 앗수르를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게 됩니다.

북한의 핵무장 위협 때문에, 그리고 미군의 재배치 등으로 인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온통 친미, 반미로 나누어져서 서로 멱살을 잡고 싸웠습니다. 물론 우리는 미국이 우리를 도와준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미군이 북한의 침략을 억제하고 우리를 지켜 준다는 사실을 고마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조차도, 심지어는 목사님들조차도 우리 민족의 운명이 마치 전적으로 북한이나 미국의 손에 달려 있기라도 하듯이, 초조해 하고 안달을 피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더 믿습니까? 만약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북한도 우리를 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다면, 미국이 아무리 우리를 지켜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북한이 아니라 다른 재앙을 통해서도 따끔한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인이시고,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십니다.  

공의로운 세계의 심판자, 세계를 통치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이사야는 자신의 더러운 죄악을 생생하게 보게 됩니다. 아무리 더러운 사람도 거울 앞에 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깨끗한 줄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아니 때로는 자기가 남보다 더 더러운 줄도 모르고 으스대기 쉽습니다. 이처럼 이사야도 평소에는 자신의 죄악을 전혀 깨닫지 못하다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5).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은 입으로 거짓말하고, 헛된 말로 남을 괴롭히고 입으로 부정한 음식을 먹었다는 뜻도 있지만, 이사야도 백성과 같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누가 보아도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왜 나만 잡아가냐? 나만 잘 못했냐?"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죄를 전혀 인정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더욱이 자신의 잘못이 모두 세상이나 남의 탓인 것처럼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한 사람들도 많이 봅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백성과 자신이 한 공동체, 한 운명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자신도 백성처럼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자신의 죄가 곧 백성의 죄요, 백성의 죄가 곧 자신의 죄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자기만 잘 나서 자기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없으며, 자기만 못 나서 자기만 죄를 짓는 사람도 없습니다. 나의 죄 속에 남의 죄가 들어와 있음을 알아야 하며, 남의 죄가 시시각각 나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일에서나 나쁜 일에서나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과 이웃을 함께 생각하고 함께 걱정해야 합니다.  

이사야가 백성과 함께 지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제단의 숯불로 그의 입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하는 사람은 따끔하게 징계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너그러이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가 주홍과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과 같이, 눈과 같이 희게 해주시는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용서가 없다면, 우리는 계속 죄를 짓게 될 것이고,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존심을 잃을 것이고, 남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시지만, 죄인에 대해서는 너그러우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잘못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스스로 무거운 죄짐을 해결하려고 끙끙대지 마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용서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매일매일 여러분의 죄를 하나님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솔직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항상 성결한 심령을 유지하시고, 항상 성결한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