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를 보내소서!

 

사 6:8-13

2003년 9월 21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늘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저는 이사야 6장 1-7절을 중심으로 세 가지 요지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며, 둘째로 하나님은 창조와 역사를 다스리시며, 셋째로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이사야 6장 8-13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전에서 이사야는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았으며, 하나님이 창조와 역사의 주님이 되심을 고백한 후에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씀을 드리면, 이사야는 하늘에서 열리는 회의를 보는 행운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사야가 환상 중에 보니,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시고 천사들이 하나님 주위에 둘러 서 있는 가운데 하늘에서 장엄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하늘 회의"라니, 뭔가 좀 어색하지 않습니까? 창조와 역사의 주님, 왕이신 하나님,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명령할 때, 천사들은 다만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심부름할 수밖에 없을 처지일텐데, 어찌 하나님이 천사와 의논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여기서는 하나님은 매우 민주적인 분으로 나타납니다. 하긴 옛날 왕조 시대에도 왕들은 중요한 사안을 놓고 신하들과 자주 의논하였으며, 심지어는 어떤 때에는 신하들이 왕의 의지를 꺾기 위해 용감하게 직언하기도 하였습니다. 더욱이 신하들이 왕이 너무 포악하면 반란을 일으켜서 왕을 바꾸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땅에서는 그럴 수 있겠지만, 하늘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설령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하나님에게 반란을 일으킬지언정, 천사 주제에 어떻게 하나님을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천사들을 두려워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엄하신 하나님이 어찌 별 볼일 없는 피조물인 천사들과 의논을 하실 수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 믿어온 전통적인 하나님의 모습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대개의 신자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행하시는 무서운 독재자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그 누구에게 구속을 받으시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신하의 자유를 완전히 묵살하고 신하를 마치 노예처럼, 소유물처럼 부리는 그런 방자한 독재자와 같은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유로우신 분이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자유를 포기하기까지 자유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다 아시므로 일방적으로 행동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꺼이 들으시고, 우리의 소원에 응답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정말 민주적인 분일 뿐만 아니라, 거룩한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비천한 우리를 섬기기 위해 마치 종처럼 자신을 낮추시고 비우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천사들과 의논하는 일이 그리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 앞에서 의인 몇 명을 인정해야 하는지를 놓고 아브라함과 담판을 벌리시지 않았습니까?

마치 방청객처럼 하늘 회의를 쳐다보던 이사야는 갑자기 하나님의 우렁찬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내가 누구를 심부름꾼으로 보내면 좋겠고, 누가 우리를 위해 갔으면 좋겠는가?" 여기서도 하나님은 마음대로 행하시지 않고 천사들의 의견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입가에서 채 떨어지기도 전에, 그리고 천사들이 좋은 제안을 내어놓기도 전에 갑자기 이사야가 회의장에 뛰어들어 이렇게 제안을 합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를 보내 주십시오." 어떻게 보면 아주 당돌하고, 어떻게 보면 아주 용감합니다. 대개 하나님은 갑자기, 일방적으로 일꾼을 부르십니다. 그럴 때에는 갑작스럽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일꾼들은 대개 당황하고 놀라게 되며, 하나님의 부름을 완강하게 거절합니다. 예를 들면, 예레미야는 "하나님, 나는 아이라서 말할 줄을 모릅니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부름에 기꺼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렘 1:6).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면, 누구나 처음에는 겸손하게, 아니 두려워서 움츠리게 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사야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청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이런 점에서 이사야는 그 누구보다 돋보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도망가는  사람(요나)에 비하면, 하나님의 부름에 겸손히 순종하는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대개 하나님의 부름은 고난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라고 입술로는 찬송하기는 쉬워도, 막상 그렇게 살기가 그리 쉽겠습니까? 그런데 이사야는 한 술을 더 떠서, 아무도 시키지도 않은 굳은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자원하고 나섰습니다. 그도 자신의 앞길에 고난과 박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일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기왕에 하나님의 일을 할 바에야, 마지못해서 하기보다는 기쁨으로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가장 큰 은혜와 영광임을 알고, 기꺼이 일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험한 일일수록 내가 먼저 일하겠습니다. 나를 시켜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사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이상하게 들립니다. "가서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9-10).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셔야 옳습니다. "가서 우둔한 백성을 깨우쳐 주고, 보지 못하는 백성의 눈을 열어 주고, 귀가 막힌 백성의 귀를 뚫어 주어라. 그래야만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니라."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고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긴 우둔한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리고 백성이 보고 듣고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염려가 되신다면, 차라리 이사야를 백성에게 보내시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왜 공연한 헛수고를 시키십니까? 그러므로 위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가 선포해야 할 내용이 아니라 이사야가 말씀을 선포한 결과로 나타나는 결과라고 보아야 합니다. 백성들이 너무 완악하여 이사야의 말을 못 알아들을 것이며, 그래서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예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백성들이 망할 때까지 말씀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진리는 진리이며, 그래서 진리는 선포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백성이 조롱하고 거부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경우가 옳습니까? 오해와 거부와 박해를 감수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까? 거부와 박해가 되돌아올 것을 분명히 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말아야 합니까? 대개는 헛수고를 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미리 짐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절대적인 복종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명령이 어리석게 보이더라도, 아브라함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사람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방법으로 일하시며, 하나님의 어리석음은 사람의 지혜로움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하였습니다.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우리는 오직 순종할 따름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이사야가 결론적으로 받은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3). 비록 대다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멸망해도, 하나님은 거룩한 씨, 그루터기를 남겨놓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순결을 유지한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용광로 불과 같은 시련 가운데서 순결한 모습으로 변한 남은 자들이 계속 하나님의 일을 이어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역사가는 왕과 영웅, 위대한 지도자가 역사를 이끌어간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역사가는 민중이 역사를 이끌어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님은 소수의 남은 자들이 역사를 이끌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탁월한 역사가 토인비(A. Toynbee)도 '창조적인 소수'가 역사를 이끌어간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 땅을 강타한 사상 최대의 폭풍 '매미'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저는 태풍이 현풍 땅을 휩쓸고 할퀴고 지나간 폐허를 살펴보았습니다. 곳곳에서 산과 골짜기가 무너지고 우람한 나무가 쓰러졌으며, 무거운 바윗돌이 굴러갔고 튼튼한 지반과 집들도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센 폭풍을 버티고 이겨낸 작은 풀과 나무도 보았습니다. 완전히 뿌리뽑히지 않은 그루터기를 보았습니다. 여기서 언젠가 다시 싹이 돋고 다시 꽃과 잎이 피어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무서운 죄악과 징계의 폭풍 속에서도 회개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순결한 사람들을 보존하시며, 폭풍 속에서 강하게 단련된 사람들을 통해 계속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시험과 고난을 이기고 끝까지 충성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과 교회,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그루터기, 거룩한 씨앗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폭풍에 떠내려가는 쓰레기와 쭉정이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굳건히 뿌리를 내림으로써 온갖 도전과 시련을 슬기롭게 이길 뿐만 아니라 쓴 고난을 오히려 달콤한 열매로 바꾸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알곡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