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하나님의 열심

 

사 9:1-7

2003년 10월 26일, 현풍제일교회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강대국 앗수르의 침공에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남왕국 유다는 앗수르를 지지하거나 애굽을 의지하는 아슬아슬한 외교를 하는 가운데서 국운을 겨우 이어나가던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시대였습니다. 극도의 공포와 혼란, 극심한 부패와 타락의 시대였습니다. 이 때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언을 하기 시작한 예언자 이사야는 이런 상황 중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의 소식을 전합니다. 장차 정의와 평화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며, 이 나라를 통치할 새로운 왕이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통치자, 메시아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힘있는 왕이나 전사 혹은 영웅이 아니라 연약한 아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사야가 예언한 아기가 바로 구유에서 탄생한 아기 예수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기가 무력과 폭력이 활개치는 이 땅에 어떻게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지혜로운 군인과 노련한 정치가도 실현할 수 없는 메시아의 왕국을 어린 아기가 어떻게 실현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의 예언은 정말 절망에 지친 한 예언자의 헛소리가 아닐까요? 그의 예언은 정말 현실을 너무나 모르는 순진한 한 예언자의 망상이 아닐까요? 정말 이런 일이 이 세상에서 가능할 수 있다고 우리더러 믿으라는 말입니까? 아직도 이 세상은 강대국이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도 이 세상은 힘센 자들의 왕국이 아닙니까?

하지만 이사야는 정의와 평화의 나라가 반드시 온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그 나라를 가져오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사야는 바로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른 말보다 '열심'이라는 말에 특별히 주목해 봅시다. 저는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단어를 아주 생소하게 느꼈습니다. '열심'이라는 말은 대개 공부하는 학생이나 성공하고 싶은 사람에게 즐겨 쓰는 말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여러 번역본을 찾아보았습니다.

어떤 성경에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새삼 열심을 내실 필요가 있을까요? 말씀 한 마디로 온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말씀 한 마디로 단번에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지, 괜히 열심을 내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떤 성경에는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불타는 사랑이요, 질투하시는 사랑입니다. 아니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정말 뜨겁다 못해 펄펄 끓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많이 배반하고 불순종하는 백성을 하나님이 어찌 끝까지 품고 기다리시고 끝내는 구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랑만 가지고는 일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여자는 주로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고 생각하고, 남자는 주로 업적의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한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중요한 업적은 대개 남자들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물론 여자, 즉 부모와 아내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남자의 화려한 성취도 대개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성공은 함께 가야 합니다.

대개의 성경은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말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열심으로 실현하신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물론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열심이 없는 능력, 열심이 없는 사랑은 무엇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도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매우 열심히 일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주무시거나 졸지 않으시며, 더욱이 피곤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루는커녕 단 일초도 눈을 다른 데로 돌리시지 않고, 끊임없이 당신의 피조물을 돌아보십니다. 짐승은 새끼를 버릴지언정, 부모는 자식을 내동댕이칠지언정,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깨달아야 할 소중한 진리 중의 하나입니다.

 37장 32절에서도 이사야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59장 17절에서도 이사야는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고, 보수로 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라고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이렇게 당신의 일을 열심히 하시는데,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도 당연히 열심히 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나를 본받으라"고 용감히 말한 바울이 남에게는 "열심히 주를 섬기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게을리 살았을 리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만약 하나님의 열심이 없었더라면, 메시아가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구원의 사역을 감당하신 예수님의 열심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직까지 어둠과 멸망 가운데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목을 베이는 순교를 하기까지 아시아 방방곡곡을 선교하러 다닌 바울의 열심이 없었더라면, 복음 전파는 훨씬 늦추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는 게으른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시게 하시는 분입니다. 열심히 심고, 열심히 가꾼 자만이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 예수님의 열심, 성령의 열심, 사도들의 열심, 신앙 선배들의 열심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구원도 있고, 우리의 신앙도 있고, 우리의 소망도 있고, 우리의 사랑도 있고, 우리의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열심히 믿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겠습니다.

옛날 어느 나라 왕이 학자들을 불러모아 놓고 성공의 비결을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나누어 썼는데, 다 쓰고 보니 열두 권 분량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왕은 그 책이 너무 분량이 많다고 하면서, 좀 더 줄여 오라고 했습니다. 학자들은 또 다시 줄였는데, 또 너무 많다고 하여 몇 번을 되풀이 하다가, 결국 한 권으로 간단하게 줄여서 왕에게 가져다주었더니, 그래도 많으니 더 줄이라고 했습니다. 학자들은 한 줄로 줄였습니다. "노력 없이 되는 것은 없다." 이 말의 뜻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라는 뜻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아이삭 뉴톤(Isaac Newton)에 의하여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근대 이론 과학의 선구자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불행한 삶을 살았던 자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출생과 동시에 어머니는 재혼해 갔습니다. 그는 부득불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소년 시절에는 몸도 허약했고, 학교 성적은 항상 꼴찌에서 1-2등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은 그를 바보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니 그 자신도 바보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는 한번도 열심히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심한 말다툼을 했습니다. 분명히 그 아이가 잘못했는데, 친구들이 자기의 편을 들어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이러한 것을 생각했습니다. "머리가 나쁜 사람의 말은 옳은 것이라도 믿어 주지 않는구나." 그 후로 그는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했더니, 놀랄 만큼 성적이 올라갔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는 '뉴톤 기념비'가 서 있는데, 그 서두에는 이러한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천재, 인류를 뛰어 넘었다. 그러나 뉴톤은 결코 천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과분하게도 저를 보고 '천재'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독일 유학을 최단기로 마친 사실과 제가 상당히 많은 책을 쓴 사실 등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저의 머리(IQ)는 그리 좋은 편이 못 됩니다. 하지만 저는 열심히 노력하는 노력파입니다. 영어를 공부할 때, 저는 화장실이나 자동차 안에서는 물론 심지어 식사를 하는 중에도 단어장을 들고 다녔습니다. 제가 얼마나 열심히, 아니 미치도록 영어를 공부를 했는지, 꿈에서도 제가 영어로 말을 하더라고 저의 모친이 말하셨습니다. 독일어를 공부할 때도 저는 쉬지 않고 단어를 외었습니다. 저는 예배 설교 시간에도 단어장을 보고 있었으며, 어느 작은 교회의 저녁 예배에 반주를 할 때에도, 자랑은 아닙니다만, 만약 설교가 지루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단어장을 꺼내 단어를 외었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 초반까지 저는 골목에서 가장 잘 노는 아이였습니다. 해가 져서 캄캄해져도 놀이에 너무나 몰두한 저는 모친이 부르실 때까지는 집으로 돌아가질 않았습니다. 그러니 학교 성적은 거의 꼴찌를 맴돌았습니다. 이런 제가 하도 한심했던지, 하루는 저의 모친이 저를 불러 앉혀놓고 "장차 뭐가 되려고 이렇게 공부하지 않느냐?"고 눈물을 흘리시며 호소하셨습니다. 집안이 워낙 가난했던 저는 교과서를 새것으로 사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항상 한 살 더 먹은 외사촌 누나의 헌 책을 물려받았습니다. 친구의 새 교과서를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공부에 흥미가 날 리가 있겠습니까? 눈물을 줄줄 흘리시는 모친 앞에 마음이 약해진 저는 "만약 참고서를 사 주시면,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교과서도 살 수 없는 형편에 비싼 참고서를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사실 그 당시 이런 요구는 무리한 요구였는데, 저의 모친은 빚을 내서라도 참고서를 사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는,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처음으로 만져본 두꺼운 새 참고서가 얼마나 좋았던지, 저는 그 날부터 학교를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둥근 밥상을 펴서 방문을 열어놓고 해가 질 때까지 공부했습니다. 해가 지면, 호롱불에 눈썹과 머리카락이 타는 줄을 모르고 꾸벅꾸벅 졸면서 공부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덕에 저는 부산에서 두 번째로 좋은 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부산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의 오늘은 오직 열심 하나 때문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덕택에 저는 학자로서는 좋은 평판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앞으로 목회자로서는 어떤 평판을 들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주위의 사람들은 공부 밖에 모르는 제가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을지를 염려하고, 극구 말리기도 했습니다. 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목회에도 왕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열심만이 목회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끼를 이긴 거북처럼 꾸준히, 열심히, 열정을 다해 목회를 한다면, 하나님은 좋은 결과를 안겨 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교회는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던 교회였습니다. 1866년에 그 교회는 4366명의 성도를 가진, 그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루는 스펄전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을 향해서 가슴이 뜨거운 사람, 열두 명만 있다면, 이 런던의 삭막하고 고독한 환경을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4366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모두가 다 미지근한 성도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주위에서는 왜 그렇게 작은 교회를 맡느냐?"고 말린 사람들이 있었지만, 저는 우리 교회가 처음부터 작다고 실망한 적은 없습니다. 만약 제가 앞으로 실망하게 된다면,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성도가 많아지는 사실로 실망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입에서 토하여 내겠다(계 3:16)고 말하고 있는데, 만약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여러분이 계속 미지근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면, 저는 견디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작기 때문에 도리어 할 일이 많겠다고 생각하고 기쁨으로 달려왔는데, 만약 여러분이 "목사님, 적당히 일하면서 우리끼리 재미있게 지냅시다"라고 말하면서 자꾸 뒷걸음친다면, 저는 매우 실망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