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사 40:12-26

2003년 11월 23일, 현풍제일교회

 

 

이사야 만큼 기독교 신앙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과 행위 속에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으며, 그리하여 초대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을 해석하기 위해 이사야의 예언을 자주 인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학을 위해 이사야가 끼친 공로는 그 어느 예언자보다 더 탁월합니다. 이사야는 특히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에 관해 놀라운 통찰력과 심원한 교훈을 주었는데, 종전에 설교한 '거룩하신 하나님'이 바로 그 중에 속합니다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바로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에 관한 놀라운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대하는 하나님은 바로 비길 데가 없이 위대하시고 거룩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며, 만물을 통치하실 뿐만 아니라 전지전능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으며, 그와 동등하게 겨룰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세상 나라는 한 방울의 물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과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와 같습니다.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메뚜기와 같으며, 세상의 권력자들은 회오리바람에 날려 가는 초개와 같습니다(40:15,24). 그러므로 이사야가 경험하고 선포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두렵고 떨리게 되며,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희망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고백하게 되며, 위기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담대히 의뢰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은 단지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놀라운 지식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의 어리석음과 타락을 고발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하며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바로 우상을 제조하고 우상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이사야가 고발하는 유대와 이스라엘의 가장 큰 악행도 바로 우상 숭배였는데, 오늘의 본문에서도 이사야는 계속해서 이와 같은 죄악을 용감하게 고발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우상은 장인이 부어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궁핍하여 이런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40:18-20).  

왜 하나님은 그토록 우상 제조와 우상 숭배를 싫어하십니까? 하나님이 질투가 많으시기 때문입니까? 물론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4-5).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34:14)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질투를 소꿉장난하는 어린아이들이나 연인들 사이의 질투 정도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혹은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우리 나라의 속담처럼 마치 하나님이 우리 인간이 잘 되는 것을 시기라도 하시는 양 그렇게 오해해서도 안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상 숭배를 너무나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사람의 심리 현상에 빗대어 설명한 것입니다. 어찌 사랑의 하나님이 당신의 피조물, 아니 당신의 백성과 자녀가 잘 되는 것을 시기하시겠습니까? 어찌 하나님이 조금만 섭섭해도 곧잘 삐지는 사람처럼 그렇게 마음이 좁은 성정을 지니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상 숭배를 가장 싫어하시는 이유는 우상 숭배가 창조 질서를 왜곡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거룩하시고 오묘하시고 신비하신 하나님을 사람이 부어만들거나 조각해 만든 우상과 어찌 감히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지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기는커녕,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행위는 어리석음과 부패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상 숭배는 결국 인간의 자기 숭배의 한 형태일 따름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우상에 새겨 넣고는 그 우상을 섬기는 셈입니다. 더욱이 피조물인 사람이 역시 자기보다 못한 피조물의 형상을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가장 큰 교만과 반항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가장 싫어하시고, 우상 숭배에 대해 가장 진노하십니다. 현대인들은 과거 사람들처럼 소박하게 나무와 돌과 금속으로 만든 우상을 섬기지는 않습니다만, 돈과 권력과 국가와 이념 등의 형태로 더 교묘하고 영악하게 우상을 만들고 섬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상 숭배가 지니는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을 제한한다는 사실입니다. 우상 숭배는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우신 하나님을 어떤 형상 안에 가두어 버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듯, 우리도 하나님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55장 8-9장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상대적이고 제한적이라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될 순 없습니다. 이런 상대성 속에서나마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확실히 믿을 수 있으며,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하나님 그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하나님을 우리의 생각 속에 가두어두는 행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상 숭배는 매우 광범위하게, 심지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매우 폭넓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주었느뇨?" 이 말을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도(측량)하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지도(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르치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평의 도와 지식을 가르치시고 통달의 도를 보여주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에게 그리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범할 수 있는 우상 숭배의 한 형태를 거꾸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지식의 교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신학자나 목사가 범할 수 있는 우상 숭배의 한 형태일 것입니다. 그 어떤 박사도, 그 어떤 신령한 목사도 하나님의 진리를 다 알았다고 할 수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에게 훈계하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신학자나 목회자, 특히 보수적인 경향에 가까운 그리스도인은 이런 종류의 우상을 섬길 위험에 잘 빠질 수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나무와 돌과 금속으로 만든 우상을 섬기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리를 나무와 돌과 금속처럼 완전히 굳어버린 진리로 바꾸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일제 시대에 보수적인 목사님들은 일본이 국가 의례라고 말하면서 강요한 신사참배를 우상 숭배로 여겨 격렬히 저항하였으며, 그 결과로 순교까지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성경 이해와 교리 이해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서,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유주의자라고 매도하면서, 교단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조금 당돌하지만 천국에는 보수주의자보다 자유주의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만약 보수주의자들이 천국에 이르러 자신들의 교리로 생각한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님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아마도 하나님조차 정통 교리나 자신이 절대적으로 믿었던 하나님과 다르다고 우기면서, 진정한 하나님조차 배척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반면에 만약 자유주의자들이 천국에 이르러 자신이 생각한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님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그는 곧장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고 진정한 하나님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자는 대개 어떤 진리를 절대적으로 고수하지 않고 항상 개방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하면, 스웨덴보리가 쓴 '천국과 지옥'이라는 책을 읽어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직 실험하고 증명할 수 있는 것만을 진리라고 믿고 있던 무신론자 한 사람이 천사의 안내를 받아, 멀리서 천국의 화려한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그에게 "만약 지금이라도 당신이 천국을 믿는다면, 그곳으로 안내하겠다"고 말하니, 무신론자인 그는 "아니요, 내가 가서 손으로 만져보고 실제로 증명하기까지는 천국을 믿을 수 없소"라고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의심이 많은 사람도 그렇지만, 자신이 믿는 진리만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신의 눈앞의 진리를 배척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만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독점하지 못하므로 무신론자와 타종교인의 견해도 겸손히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분명히 어느 정도 진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전부 다 알지 못하므로 우리와 견해를 달리하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분명히 진리의 일부를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곧 새로운 우상 숭배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이 범하기 쉬운 또 하나의 새로운 우상 숭배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일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사야가 믿었던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절대적이신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분으로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사 1:24).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사 13:6).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사 49:26).

보수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생각을 제한하기 쉽다면, 그 반면에 자유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기 쉽습니다. 대개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이성적으로 이해할 없는 구절들은 믿지 않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믿는 사람들을 무지몽매한 미신에 빠진 무식한 사람들로 보거나, 거짓 선전에 현혹된 순진한 사람들로 여기곤 합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우상 숭배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오늘날의 천태만상의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슨 일이든 하시지 못하겠습니까?

이사야 40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보았으랴?"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사람의 능력이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릴 수 없듯이, 조그만 머리로 천지의 조화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뼘으로 하늘을 잴 수 없듯이, 손으로 하늘의 법칙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땅의 티끌을 되에 담을 수 없듯이, 사람이 발명한 도구로 땅의 모든 법칙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저울로 산들을 달아볼 수 없듯이, 사람이 만든 잣대로서 자연의 법칙을 다 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고 가장 진노하시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상 숭배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의 잘못이 여러 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맙시다. 그 어떤 형상으로도 하나님의 모습을 제한하지 맙시다. 그 어떤 생각으로도 하나님의 생각을 제한하지 맙시다. 그 어떤 논리로도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땅한 태도는 오직 경외와 겸손이요, 통회와 감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오직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생각하고,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희망합시다. 일평생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합시다. 하나님의 부요(富饒)하심을 기리며, 즐거워합시다. 오직 하나님만을...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