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흰 눈과 같은 복음

시 51:1-10

1995 3,5, 신덕교회 오후예배

 

 

도입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기 쉽게 가르치기 위해 종종 자연으로부터 비유를 취해 와서 설명하곤 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 들에 핀 꽃, 겨자 씨, 알곡과 가라지, 땅에 뿌려진 씨 등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은 들을 귀가 열려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열어 보여 주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세계는, 믿음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오묘한 사랑과 섭리의 비밀을 담고 있는 거대한 은혜의 창고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비유로 사용하시진 않았지만, 성경에 가끔 나오는 '흰 눈'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뜻을 새겨 보고자 합니다.

요즘 가뭄이 심하여, 우리는 눈이라도 실컷 내렸으면 하고 바랍니다. 영동지방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있지만, 수도권 지역에는 올해 눈 조차 많이 오지 않아 가뭄이 더 한 것 같습니다.

눈은 크기와 모양은 다 다르지만 모두가 5각형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리고 5각형을 이루는 방법도 모든 눈송이마다 다 다르다고 합니다. 얼마나 신기한 자연의 조화 아니 하나님의 창조섭리인지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이처럼 제 각기 독특한 개성을 가지면서도, 또 서로 비슷하게 생겨 서로 어울리게 하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뜻이 눈송이에도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가뭄 때문에 하늘에서 단비나 흰 눈이 내리길 더 애타게 기다리는 우리는 겨울에 자주 대하는 흰 눈을 비유로 삼아 복음의 깊은 뜻을 새겨 보기로 합시다.

 

1. 흰 눈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흰 눈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희게 덮어 줍니다. 이처럼 복음도 하늘에서 내려 온 것입니다. (요 3:3/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복음은 인간이 이 땅에서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복음은 인간이 상상하고 꿈꾸며 지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세 때부터 마련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아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눈처럼 오직 우리가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하늘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에 반대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도 인간이 스스로 완전해질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것입니다. 율법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율법으로 족했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 오셨지만, 율법의 저주를 홀로 감당하시고 그의 몸으로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원칙도 없이 살아도 좋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고, 사랑 안에서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마침이 되신 것은 율법을 온전히 이루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은혜의 법에 속한 사람은 사랑으로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이룹니다.

 

2. 흰 눈은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받은 속죄와 성결을 상징합니다.

흰 눈은 땅 위의 모든 추하고 흉한 것을 덮어서 순결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본래 다 그릇된 양과 같았고, 악한 강도와 같았습니다. (사 64: 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받아 정결하고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오직 죄없으신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 계 1: 14/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또 눈같이 희었으며... 단 7: 9/ 보좌에 앉으신 인자의 옷이 눈같이 희고...)

이처럼 순결하고 거룩하신 어린 양 예수의 피만이 우리를 우리의 더러운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신다. (*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회개함: 시 51: 1-10/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사 1: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계 7:13-14/ 흰 옷 입은 자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로서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

 

3. 흰 눈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평등과 일치를 상징합니다.

흰 눈이 대지에 내리면, 땅위의 모든 것들은 한꺼번에 하얀 옷을 입게 됩니다. 흰 눈은 빨간 것도 희게하고, 검은 것도 희게 하며, 흰것도 희게 합니다. 흰 눈이 내리면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 놓은 모든 차별과 구별이 사라지고, 모두가 순백의 색깔로 통일되어 일치를 이룹니다.

어디 흰 눈이 빨간 꽃이 더 아름답다고 그 위에서는 빨갛게 되던가요?
어디 흰 눈이 시궁창이 더럽다고 그곳에는 내리길 거부하던가요?
어디 흰 눈이 높은 곳에만 내려 앉고 낮은 곳은 꺼리던가요?

이처럼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이 없어서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어린이나 모두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공산주의가 붉은 피로써 이루려고 했지만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인류의 참된 일치와 평등을 이루어 줍니다. 그래서 복음은 이미 초대교회에서 혁명과 같이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교인들은 서로를 ('동지'가 아니라) 형제와 자매로 불렀고, (당의 지시에 따라서가 아니라) 누구의 강요함이 없이도 서로 물질을 유무상통했습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복음의 능력만이 이 땅에 참된 평등과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마감

흰 눈이 내릴 때마다 믿음의 사람들, 성도 여러분은 자연의 조화를 통해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비밀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소리없이 내려 앉는 눈송이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복음의 속삭임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길 바랍니다. 아울러 흰 눈 속에서 함께 내리는 1. 하나님의 은혜, 2. 속죄와 성결. 3. 평등과 일치의 기쁜 소식을 더 깊이 깨닫고, 이 기쁜 소식을 힘차게 온 누리에 증거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