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진정한 가정의 모델

마 12:46-50

 1995, 5,21, 수정동교회 주일오전예배

 


1.들어가는 말

오늘날 우리는 사회가 굉음의 소리와 함께 온통 붕괴되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인지는 잘 몰라도, 우리는 최근에 이르러 육해공의 전 영역에서 삶의 기반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비극을 연이어 경험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의 목포 앞 바다의 비행기 추락사건, 구포역 앞의 열차 전복사건, 서해안의 여객선 침몰사건과 충주호의 유람선 화재사건, 서울의 성수대교 붕괴사건과 아현동 가스폭발사건 그리고 최근의 대구 지하철 공사현장 폭발사건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각종의 대형사건들이 여기저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꼬리물고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이 작은 대한민국은 거대한 사고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고, 시민의 생명은 날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삶의 기반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이 온갖 사회범죄와 사회악에 의해 흔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숫제 온통 아래로 꺼져가고 있는 심각한 현실 속에서, 우리도 언제 어떻게 불행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비극을 당한 가엾고 억울한 숫한 생명들의 탄식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듣고 있습니까? 아니 이들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엄중히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도무지 무너져 내려서는 안될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처절한 경고가 아니겠습니까? 그 소중한 것들을 소홀히 여긴 자들은 누구든지 막론하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고야 만다는 냉혹한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떠들썩한 사건들이 터지면, 그래도 이를 알리고 수습하고 처벌하며 이를 교훈으로 삼자는 온갖 몸짓들을 볼 수가 있어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위안은 생깁니다만, 참으로 우리는 이것보다 더 심각하고 더 처참하지만 날이 갈수록 줄어들기는 커녕 더욱 더 확산되어 가기만 하는 소리없는 붕괴가 있습니다. 삶의 기반을 서서히 침식하고 사회를 점차로 파괴하는 무섭고도 거대한 붕괴인데도, 이를 심각하게 알리고 반성하고 대책을 세우는 사람들이 매우 적어서 우리 사회를 더 큰 파국으로 몰고 가는 붕괴, 그것은 바로 가정의 붕괴입니다.

가정은 무너져서는 안될 인간생활의 마지막 보루요 그 터전입니다. 다른 것은 무너져도 쉽게 보수할 순 있지만 가정의 붕괴는 쉽게 보수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이 다 무너져 내린다고 하더라도 결단코 무너져 내려서는 안될 것이 가정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인간생활의 최소한의 세포단위이고 인간생명은 이 세포단위인 가정 속에서만 태어나고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뼈가 좀 부러지고 팔 다리가 잘려나간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최소단위인 세포가 병들거나 암세포에 의해 점령당하면, 생명은 무너지고 맙니다. 이처럼 설령 다리가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고 하더라도 인간 사회는 지탱될 수 있지만,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와 국가 아니 인류는 멸망하고 맙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보여 줍니다. 강대한 국가가 무너질 때는 외적의 침입 이전에 이미 사회의 붕괴, 가정윤리의 붕괴가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날에 이르러 가정 붕괴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암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변화와 더불어 공동생활의 형태는 다양해질 수 있고 변화될 수 있지만, 또 가정의 형태도 달라질 수 있지만, 공동생활의 기본단위인 가정이 붕괴된다면, 인류에게는 불행과 파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런 거대한 가정붕괴의 소리를 여러분은 듣고 계십니까?

정확한 통계는 없어도 매년 약 500 여명의 어린이들이 부모로부터 버림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어언 50년이 다 되어가건만, 해외에 입양되는 어린이들의 수가 줄어들기는 커녕 날로 증가되는 추세에 있다고 합니다. 선진국의 문턱에 있다는 우리 나라는 아직도 세계최대의 어린이 수출국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출하는 소년, 소녀의 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울 가리봉동만 해도 가출소녀 5천 여명이 모여 가출촌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집을 뛰쳐나온 15세 전후의 여중학생들이 1평짜리 쪽방에서 혼숙하면서 술마시고 담배피우며 때로는 본드도 마시고, 저녁에는 진한 화장을 하고 유흥업소의 밤 여인이 된다는 이 기막힌 사연이 얼마 전에 언론에 보도된 바가 있습니다. 이들 중학생들이 이제 대개의 미혼모가 되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들의 가출의 주된 원인은 결손가정 즉 부부의 이혼이나 별거 또는 비정상적인 가정생활에 있습니다. 제가 신학생 시절에 매춘녀들을 위해 매 주 전도하러 나간 적이 있었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결손가정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을 상담 중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온통 매춘 공화국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구석구석에, 심지어는 주택가와 농어촌 지대에 이르기까지 매춘이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또 가정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습니다.

노인층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날로 더 많은 노인들이 소외되고 버림받고 있습니다. 여성의 취업확대와 더불어 가정의 공동화 현상, 즉 어린이들이 빈 집을 지키거나 방황하다가 방탕해지거나 부랑아가 되는 현상도 늘어가며, 자유로운 성관계로 인하여 이혼율이 늘어나는 등 선진국형의 병리현상이 우리 나라에도 급속히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2. 가정붕괴의 원인들

성도 여러분, 왜 가정이 서서히 붕괴되어 간다고 생각하십니까?

1. 첫째는 삶의 터전을 잘못 설계하고 잘못 세우는 것이 그 원인입니다. 대형사고의 주된 원인이 잘못된 설계와 부실시공에 있듯이, 오늘 날의 가정의 혼란과 붕괴의 주된 원인은 가정의 설계와 기초를 잘못 세우거나 허실하게 세우기 때문입니다. 모래 위에 설계하고 지은 집이 강풍과 폭우에 견디지 못하듯이, 잘못된 가치관의 터 위에 세운 가정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가정의 기초는 성서에서 보건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인간사랑, 자녀사랑, 형제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7).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즉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료인간과 자연과 더불어 풍성한 교제를 나누고 풍요한 기쁨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뜻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과의 사귐 안에서 생명과 기쁨을 얻도록, 즉 당신과 영원한 사랑의 사귐을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함은 인간됨의 본질적인 조건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행복이 동물의 행복과 다른 이유입니다. 동물은 육체적 만족으로 행복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영원히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이여, 내가 당신의 품에 안기기까지 내 마음에 진정한 평안을 몰랐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파스칼도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즉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있는 불행한 사람과 하나님을 찾고 있는 덜 불행하나 아직은 행복을 모르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찾아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진정한 사랑의 사귐을 나누지 않고서도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사랑이 바로 진정한 인간됨과 가정생활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어떻습니까? 현대인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은 더 이상 하나님 사랑, 하나님의 나라와 뜻 위에 기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뜻보다는 먹고 마시고 입을 것에 더 몰두합니다. 하나님 대신에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즉 물질과 명예와 쾌락을 좇고 있습니다. 황금만능주의, 물질주의가 사회와 가정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물질을 섬기며, 배를 신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정이 온전할 리 없습니다. 가정 파괴범, 친속살해(박한상 유학생, 김성복 교수의 부모살해 등), 가정의 황폐화, 청소년의 가출과 비행 등 모든 가정범죄, 가정불행이 다 이런 비뚤어진 가치관에서 생겨납니다.

(2)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은 또한 남녀 간에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 위에 가정과 사회를 이루기 위한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질서요 사회의 기본적인 토대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기초는 부부사랑, 자녀사랑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는 인간은 아직 반쪽 인간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출산하고 사랑으로 기르지 않는 가정은 불완전한 가정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진정 가정의 가장 중요한 기초입니다. 가정의 번영, 사업의 번성, 가문의 명예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사랑 위에 세우지 않는 가정의 모든 영광은 다 헛될 따름입니다. 이런 가정은 시험이 오면 넘어집니다. 물질이나 명예, 성공은 가정의 본질적이고 영원한 기초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현대인은 사랑 위에 가정을 세우려 하지 않고 이런 허무한 것들 위에 가정을 세우려고 합니다. 물질을 좇느라고 부부사랑, 자녀사랑에 소홀합니다. 여린 자녀들을 학원으로 내몰며, 성공과 출세를 위해 이기적 인간이 되도록 만들고, 살벌한 생존경쟁에 내몰며 건강한 생명을 억누르고, 자녀들을 방황하게 만듭니다. 청소년 가출의 두 번째 원인은 학업과 학교의 부적응이라고 합니다. 출세주의에 찌든 가정문화, 성적위주의 학교교육이 청소년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엇이 잘 사는 것입니까?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사랑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잘 사는 현대인이 물질적을 궁핍했던 이전보다 더 행복하고 더 사랑합니까? 오히려 현대인은 이전보다 더 큰 빈곤감, 박탈감,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고 살며, 이전보다 더 가족에게 무관심하고 가정사랑을 소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사후의 세계)을 경험하고 돌아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왔다, 예문각 1992), 그들은 그러한 경험 후에 그들의 인생관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한결같이 고백합니다. 즉 그들은 죽음의 경험 전에는 출세, 명예, 부 등을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알고, 이를 위해 옆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고 정신없이 뛰었는데, 이제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특히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장 값어치있고 소중한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치 영원히 살 것같이 착각하고 사는 현대인들은 출세, 성공을 좇느라 가정과 가족사랑을 소홀히 여깁니다.

3)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은 또한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평화를 유지하고 자연을 잘 관리하여 복을 누리는 데 있습니다. 인간(아담)은 땅(아다마)으로부터 지음받고, 땅을 경작하여 그 소산으로 먹고 살며, 땅 위에 거주지를 짓고 살며, 죽어 땅으로 되돌아 갑니다. 이처럼 땅은 인간의 삶에서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땅은 모든 인간들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인간이 모두가 다 평등하게 땅에서 생존을 영위하고 땅의 복을 누리고 땅으로 돌아갈 때, 참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피조물인 자연, 땅을 독점하고 착취하고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날 땅의 과중한 독점은 가난한 가정을 죽음의 벼랑에 내몰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가정의 공간도 확보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가족,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자연의 오염은 음식오염, 환경오염 등을 유발하고 그래서 가정의 생명을 오염시키고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자연환경의 황폐화는 인간성을 황폐화시키고, 어린이의 건강한 성장환경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연 생명을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인간 생명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유럽 사람들은 집집마다 강아지, 토끼, 다람쥐, 새, 심지어는 흰 쥐나 뱀까지 기르기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어린이에게 생명사랑을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가족사랑은 인간사랑과 뗄 수 없고, 인간사랑은 자연사랑과도 뗄 수 없습니다. 그런대 현대인은 점점 땅, 자연으로부터 밀려나고 그리하여 생명에 대한 경외를 잃어가고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낙태도 서슴치 않고, 자식과 노인을 멸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가정이 붕괴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가정 붕괴의 둘째 이유는 가정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것에 있습니다. 공공시설의 관리소홀, 즉 관리들의 무책임한 관리행정이 대형붕괴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 땅의 그 어떤 유형-무형재산도 저절로 보존되고 영원히 든든할 순 없는 법입니다. 하물며 가정이야 오죽 더 그러하겠습니까?

가정은 늘 세심한 배려, 관심, 책임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의 기술'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사랑은 바로 주는 것, 배려, 책임, 존경 그리고 지식입니다. (1)많이 가진 사람이 부유한 것이 아니라 많이 주는 사람이 부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는 경험은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사랑은 바로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2)사랑은 배려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것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능동적인 관심입니다. (3)사랑은 책임입니다. 책임은 반응할 능력이 있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사랑은 존경입니다. 존경은 사람을 있는 그 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인정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5)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모르고서는 그를 존경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사랑은 지식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지식은 오로지 사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은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습니까? 프롬은 현대 서구사회에서 사랑이 붕괴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그 구조적 원인을 자본주의의 발전에서 보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되기 때문에, 현대인은 자신의 개성을 상실하고 자신과 동료, 자연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사는 우리들도 항상 사람을 한 인격으로 존중하기보다는 능력, 돈, 상품가치를 통해 그를 보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런 가치관이 가족 안에까지 침투하면, 남편이나 아내, 자식들도 능력에 따라 판단하게 되고 그래서 진정으로 순수하게 사랑하기 어렵게 됩니다. 돈벌기 너무 바쁘다고 가족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집에 와서도 대화보다는 텔레비전 시청에 더 시간을 빼앗깁니다. 형편이 이러하니 가족 간의 재산분쟁, 가족폭행과 심지어는 친족살해까지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에 기초하지 않는 가정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3. 그리스도인의 가정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가정을 이해하고 가꾸어야 하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가정'의 기본적인 모델을 설명드리기로 하겠으며, 저녁 시간에는 '행복한 가정'의 기본적인 관계를 설명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진정한 가정은 무엇이며 그 기초는 무엇입니까? 세 가지 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출발은 회개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회개는 방향과 목적이 없는 단순한 회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방향전환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 17 등)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회개는 천국을 향한 돌이킴입니다.

그런데 천국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비유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비유들도 다양합니다. 그처럼 천국은 다채롭고 다양합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천국은 하나의 진정한 가정으로 나타납니다. 즉 천국은 큰 가정이고, 가정은 작은 천국입니다. 저녁에도 말씀드리겠습니다만,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공동체적 모형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은 바로 아버지, 아들, 어머니의 모형 즉 가정의 모형에 따라 설명됩니다. 즉 삼위일체는 이상적 가정의 모형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그분의 통치, 그분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일진대, 그것은 바로 진정한 가족 안에서 오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큰 천국은 작은 천국인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가정은 우리가 늘 먹고 마시는 곳입니다. 이처럼 천국은 더불어 먹고 마시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가지고 죄인들과 더불어 먹고 마셨으며, 바로 그런 행위로써 천국을 친히 가져오셨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은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가 포도주를 마시는 잔치로 임할 것임을 내다보았습니다.

한 성도는 꿈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보았는데, 두 곳이 다 먹고 마시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천국은 긴 수저로 상대방을 떠 먹이면서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행복의 나라인 반면에, 지옥은 긴 수저로 서로 먹으려고 다투지만 먹을 수 없어서 괴로워하는 불행의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천국은 서로 먹이고 보살피며 사랑하는 가족과 같은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먹을 것이 많아도, 즉 물질이 풍부해도 사랑, 배려와 책임, 섬김과 존경이 없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이기적이고 다투는 붕괴된 가정의 지옥에서부터 떠나서 사랑하고 섬기는 작은 가정천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회개란 진정한 가정으로 되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가정천국이 가까왔다"고 우리는 고쳐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가정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천국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천국의 비유에서 집떠난 탕자는 아버지의 품, 가정의 품으로 되돌아 옵니다. 이처럼 가정천국으로 되돌아 오지 않으면 아직 회개하지 않은 것이 되고, 가정에서 천국을 이루지 못하면 아직 천국이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천국은 바로 가정에서 작은 씨처럼 성장하여 큰 나무처럼 커지게 되어 결국에는 온 땅에 편만히 임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자, 마음이 청결한 자, 온유한 자, 의를 위하여 핍박당하는 자에게 임합니다(산상수훈). 이것은 가정천국을 이루는 마음가짐을 보여줍니다. 즉 가정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이 온유하고 순수히 믿고 의지하는 마음가짐, 어머니와 같이 온전하게 사랑하며 철저하게 헌신하는 같은 마음가짐, 아버지와 같이 가정을 보호하고 책임지며 의로운 일을 위하여 고난받는 마음가짐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부모를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의 돌이킴이요, 순수하고 지고하게 보살피고 배려하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가짐으로의 돌이킴이요, 가정에 참된 희망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가짐으로의 돌이킴입니다.

3. 마지막으로 차제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교회도 천국의 그림자, 천국의 여명(첫 광채)으로서 하나의 큰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천국이 되어야 하지만, 만약 가정도 흔들리고 붕괴되기 시작한다면, 교회가 이를 막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천국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찾는다고 하자,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하시고, 제자들을 가리켜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가족 이기주의를 깨뜨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다 한 가족임을 믿고, 다함께 한 천국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 날 가족의 붕괴가 가속되는 현실에서 누가 천국가족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교회가 그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단이라고 비판받는 통일교가 왜 아직도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습니까? 사업을 잘하는 덕분입니까? 그런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통일교가 오늘 날의 가족붕괴의 틈을 교묘히 파고 들어오기 때문이며, 교회의 허점을 은밀히 메꾸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통일교는 기독교의 교리를 가정의 모델로 풀이해 왔고, 문선명을 참 아버지로 그리고 그의 부인 한학자 여인을 참 어머니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합동결혼식을 거행하여 자기들의 단체가 참 천국가족인 양 과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올 8월에는 서울에서 세계문화체육축전을 개최하여 세계 각국에서 온 5만 쌍의 신랑,신부들을 합동결혼시킬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단은 항상 정통의 약점을 먹고 삽니다. 당연히 교회가 잃었던 기능을 회복하여 이단을 방어할 뿐만 아니라, 이 땅 위의 이상적인 가족공동체임을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다. 소외되고 버림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받아들여 이상적인 천국교회, 아니 천국가정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