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리가 마땅히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고전 4:1-5

 2002년 9월 15일, 열린교회(오영근 목사) 평신도주일

 

 

주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평강을 기원합니다. 부족한 사람이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된 것을 큰 기쁨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오늘은 "평신도 주일"로 지키는 날이라고 하여 제가 여러분 앞에 서게 된 줄로 압니다만, 엄격히 말해서, 교역자 혹은 목회자라는 용어와 구분하여 평신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신학적으로는 잘못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한 백성이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지체들이요, 성령 안에서 다양한 은사들을 나누는 성도들입니다. 다만 소명의 자리와 기능과 직분이 다를 뿐이지, 성도들을 계급적 혹은 신분적으로 나누는 그 어떤 근거도 성서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평신도를 교역자 혹은 목회자와 구분되는 의미로 생각하는 전통이 어서 빨리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역자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돌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통처럼 굳어진 이 용어를 대체할 만한 적당한 용어를 찾기까지는 당분간 이 용어를 쓴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특별히 선택되어 신학적 훈련을 받아 전적으로 교회를 섬기는 자를 교역자 혹은 목회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소명을 직업으로 삼는 교역자든, 직업을 소명으로 삼는 평신도든, 모두가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성직자, 교역자, 성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날 저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점점 더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우리는 외형적으로 그리스도인을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간다든지, 교회의 직분을 맡아 일한다든지, 혹은 종종 성경이나 교회의 말을 쓴다든지 하는 사례를 보면서, "아,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이구나!"하고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일이 아닌 평일에는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기가 도대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티를 내는 옷을 입고 그리스인다운 언행을 쓰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도무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 년 동안 청문회에 오르내리는 지도적인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마다, "그들은 세상적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아니 그리스도인의 명분을 걸친 세상 사람들, 아니 그리스도교적인 명분을 십분 이용하여 세상에서 더욱 출세하기 원하고 또 실제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이 아닌가?"라는 의혹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가혹하게 심판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4:3)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어찌 남을 쉽게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도 실제로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되지 못해서 안달이 아닙니까? 아니 우리도 사실 그런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극성스러운 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벅찬 영적인 투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비록 우상에 굴복하지 않는 대가가 혹독하였고, 그래서 가끔은 순교도 각오해야 했습니다만, 거대한 자연물이나 조각상 혹은 권력자의 모습을 한 옛날의 우상은 식별하기가 쉬었고, 그래서 물리치기도 쉬웠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우상으로 넘쳐나지만, 우상은 과거처럼 특별한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우상은 온갖 옷을 걸치고 온갖 논리로 위장하면서 우리 주변과 마음을 끈질기게 파고들기 때문에 우리는 은연중에 우상을 섬기는 신도가 되기 쉽습니다. 옛날의 순교자들은 그래도 괴롭지만 짧은 시간에 순교의 죽음을 당할 수 있었으며, 순교를 당한 후에는 길이길이 추앙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우상과 매일 싸워야 합니다. 매일 우상과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더욱이 매일 우상과 싸우고 이를 이겨나가는 사람들은 대개 가난한 사람, 무능한 사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기 십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영적인 투쟁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어렵고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과거보다 더 비장한 각오를 가져야 하며, 더 힘차게 투쟁해야 합니다. 우상과의 힘겨운 투쟁에서 지거나 우상의 위력에 지레 겁먹고 항복한 그리스도인들이 점차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껍데기 그리스도인들, 거품 그리스도인들은 서서히 교회를 빠져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자들을 전도하기도 점점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재물의 우상에 굴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부자가 되길 바라면서 돈을 좇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사회주의 이념이 무너진 세상에서 재물의 우상이 자기 때를 만난 듯이 전방위로 인간을 좇고 있습니다. 인간은 점점 더 돈을 버는 기계, 돈버는 일꾼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온통 돈을 버는 비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광고가 매일 얼마나 많이 쏟아져 들어오는지요! 온갖 헌금 카드가 춤을 추고 있습니다. 카드의 달콤한 유혹에 빠진 현대인들은 결국 망나니와 같은 카드의 칼에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 목숨만이 아니라 남의 목숨도 수시로 뺏고 있습니다.

하지만 밤하늘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빛나듯이, 영적인 어둠이 시대를 더 많이 덮을수록 진정한 그리스인들은 더 밝게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시절에는 일용할 양식,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재물조차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염려를 버리고, 아니 염려를 자비로우신 하늘의 아버지에게 맡기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일용할 양식만이 아니라 일용할 문화와 오락, 일용할 사치품도 좀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이것조차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때에 따라오는 것이지, 먼저 구할 것은 못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먼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곧 우상이 됩니다. 그리고 인간이 좋아서 섬기는 우상도 결국엔 돌아서서 인간을 죽이고 만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모습을 알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인 투쟁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기 때문이요, 돈을 좇아 살다보니 돈 때문에 울고 웃고 사람들과 티격태격 싸우기 때문이요, 그런 결과로 만물의 주인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점차로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누구나 교회가 크게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성장 그 자체를 무조건 혐오시할 수 없지만, 대개의 큰 교회는 재물을 좇는 신도들로 가득하고, 재물로 언젠가 무너질 바벨탑을 세운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일꾼입니까? 우리는 누구에게 고용되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재물의 일꾼이 아니라 모름지기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비밀을 맡고 있습니까? 돈을 벌고 관리하는 비밀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묘한 비밀을 맡았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이 세상이 주인이 없는, 아니 돈과 재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는 세상이라는 비밀입니다. 세상은 장차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날로 번성할 것이라는 비밀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뜻은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로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이 하나님을 믿기를,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고, 그리스도인답게 합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존귀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며, 영원히 살게 합니다.

재물은 잠시 동안만 행복하고 하고, 때때로 우리를 속이기도 하며, 우리를 해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녹도 쓸지 않고, 좀도 먹지 않으며, 도둑이 훔쳐 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고 가지지 못하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이 되었고, 이 비밀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비밀을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사랑은 참으로 크고 놀랍습니다. 여러분은 크고 위대한 이 비밀 때문에 춤추며 감격하신 적이 있습니까? 너무도 크고 놀라운 이 비밀 때문에 잠을 자다가도 깜짝깜짝 놀라신 적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혹시 사이비 그리스도인, 아니 가짜 그리스도인이 아닐까?"하고 밤중에 조용히 반성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이 비밀이 정말 무엇인지를 모르겠거든,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쉽게 설명되어 있는 예수님의 비유를 천천히 읽고 곰곰이 되새겨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놀랍고 큰 비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받은 사람, 그래서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복은 세상이 줄 수 있는 복과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혹시 이 복을 가볍게 여기시고, 다른 복을 받으려고 남의 문전을 기웃거리시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쉽게 깨어지는 질그릇과 같은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은 이 질그릇에 너무나 귀하고 풍성한 보화를 담으셨습니다. 이보다 더 자랑스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여러분은 혹시 다른 것에서, 세상의 가치와 명예, 재물과 권력에서 여러분의 정체성과 존엄성, 가치와 행복을 헛되이 찾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받은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복을 받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이미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 그리스도의 일꾼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는 크고 놀라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와 찬송을 돌리는 태도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공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진 소중한 것들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 곧 공짜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감사와 찬양의 태도를 갖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게 되며, 또 자신을 낮출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향해 "너희는 아버지가 되라"거나 "너희는 어머니가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는 어린이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어린이가 잘나거나 귀여워서가 아니라 낮은 존재, 스스로 낮추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작은 선물에도 기뻐하고, 작은 은혜에도 감격할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일꾼이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질그릇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남의 유익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가진 체하며, 스스로 남보다 더 잘난 체하며 우쭐대고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잘났다고 다투는 것은 교회의 분열의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일꾼, 하나님의 비밀의 관리인이 가져야 할 태도는 신실함입니다. 세상의 일도 그렇지만, 하나님의 일도 신실함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최근에 우리 주위에는 한국 사회에서 출세하려면 여섯 가지의 "쌍 기억으로 된 한 글자"가 있어야 하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꿈, 끼, 깡, 꾀, 꼴, 끈"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앞에 있는 것일수록 더 좋고 뒤로 갈수록 더 나빠지는 형국입니다. 우리 그리스인들이 마땅히 늘 꾸어야 할 꿈은 벼락부자가 되는 돼지꿈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꿈,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소망입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끼, 타고난 소질,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을 최대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깡이 필요합니다. 깡은 고집이 아니라 성실, 끈기, 노력, 투지를 말합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꾀, 즉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져야 할 꾀는 세상 사람처럼 남을 속이고 자신만의 유익을 구하는 그런 꾀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유익케 하는 지혜일 것입니다. 꼴은 외모를 뜻합니다. 요즈음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성형수술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가급적 외형도 좋은 게 좋겠지만, 하나님은 외모보다 내면, 마음을 더 중요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은 대개 외모가 출중한 사람들이 아니라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은 끈이라고 합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인연과 배경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것은 너무나 부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패거리주의, 지역주의, 연고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 사회에서 이 끈은 곧 부정부패의 주범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교계에서도 이 끈, 즉 빽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직자들 중에도 "성골, 진골, 무골"이 있다는 말이 돌고 있으며, 목사들은 죽을 때에 "꽥"하고 죽지 않고 "빽"하고 죽는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꿈과 소질과 성실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면서, 이를 위해 꾀와 꼴과 끈을 선하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실은 일꾼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정열, 열정이 없이 이루어진 일은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다운 열정을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가장 먼저 앞장을 서고, 죽을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라고 했는데, 충성은 곧 성실을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맺을까 합니다. 같은 말씀을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점점 더 희미해져가고 우상을 더 열렬히 섬기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일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가 되시고, 성실하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어둠 속에서 감춰진 것이 훤히 드러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크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