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신앙과 애국

롬 9:1-3

 2003년 3월 2일, 현풍제일교회

 

 

어제 우리는 84주년 3.1절을 맞이하였습니다. 집이 없이 사는 것도 서러운 일인데, 나라가 없이 사는 것은 보통 서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지 9년만에 울분과 비탄에 빠져 있던 우리 민족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1919년 3월 1일에 우리 선열들은 민족대표 33인을 선두로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시작하여 일제히 전국적으로 민족의 자유와 겨레의 독립을 위해 총궐기하였습니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이때 참여한 사람은 당시 총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200만명에 달하였다고 하며, 210개 도시에서 1,500회의 대중집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무려 7,500명이 목숨을 잃었고, 16,00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47,000여 명이 투옥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3.1운동의 주역들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당시 전 인구의 1% 내지 1.5%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었지만, 민족대표 33인 중에서 I6명이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이것은 주로 체포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로 그렇게 추정하는 것이며,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한국 사회에서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지고 있었던 교회 덕분에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지 않았다면, 이 운동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물론 외국 선교사들은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기독교인들을 일제의 위험에서 지켜야 한다는 명분 때문이었고, 신학적으로는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더 깊은 속내가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제 각기 늦게나마 아시아로 진출하면서 식민정책을 경쟁적으로 펴나갔습니다. 나중에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한 것도 아시아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언젠가는 두 나라가 싸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리 선수를 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두 나라는 식민지를 개척하던 나라로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증거는 1905년에 미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테프트-카츠라 협약'으로 드러났습니다.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는 대신에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다는 것을 서로 양해한다는 협약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해외에 있는 관리들은 물론 선교사들에게도 이 정책에 순응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에 나와 있던 미국 선교사들은 자기 나라의 정책과 훈령에 따라서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일본을 지지하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일선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선교사들은 독립운동을 하지 말라고 설교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독립 운동을 하는 일은 저들이 전해준 복음과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어떤 선교사는 그가 목회를 하던 교회의 전 교인들이 집단적으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일로 인해 일본 경찰서에 가서 사과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남달리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우수한 민족이기 때문이겠지만, 신앙과 애국이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신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검사 앞에 섰을 때 "누가 독립운동을 시켰나?"라고 묻는 질문에 "누가 시키기는 누가 시켰나? 하나님이 시키셨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참 신앙인은 참 애국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신앙의 용사들은 한결같이 민족과 동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애국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나라를 위해, 특히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한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큰 징계를 받게 되자, 모세는 동족의 죄악을 괴로워하면서도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심지어 하나님이 백성을 용서하시지 않는다면,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 버려달라고 기도하기까지 하였습니다(출 32:31-32). 동족을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바울은 모세와 비슷한 심정을 토로합니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느헤미야는 유대인으로 페르시아에 살았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성공하여 왕궁에서 왕을 모시고 살았는데, 하루는 조국에서 온 친척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비참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느헤미아는 앉아서 울면서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느 1:4). 에스더는  페르시아에서 하만의 모략으로 자기 민족이 몰살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죽으면 죽으리다"라는 결사각오의 태도로 하나님 앞에서 삼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예레미야도 조국 위해 통곡하며 탄식하며 눈물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교회는 제사장의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 그러므로 우리는 제사장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민족의 아픔과 죄악, 수치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예언자처럼 백성의 잘못을 용감하게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해야 합니다.

기도가 기독교인의 제사장적 임무라고 한다면, 불의를 지적하는 것은 예언자적 임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예언서들 가운데서 우리는 국가와 백성의 범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을 읽게 됩니다. 이사야는 탈선한 민족, 불의로 가득한 백성, 거룩하신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배반한 백성을 고발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아모스는 정의를 팽개치고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의로운 사람을 학대하고 뇌물을 주고받는 등 무수한 범죄와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이스라엘을 멸망을 예언하고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살인과 간음, 우상숭배를 일삼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였습니다. 왜 예언자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까? 그들이 유독 의협심과 공명심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한 후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예레미아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악한 권력의 잘못을 고발하는 사람들은 남달리 용감해서만이 아니라 역사의 부름, 혹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에게 닥쳐올 온갖 손해와 핍박을 각오하면서 그런 행동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당장 불이익이 돌아온다고 하더라고, 해야 할 말은 당당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하나님이 우리의 억울함을 반드시 풀어주십니다. 3.1절 만세운동이 당장 조선의 해방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시고 해방을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살이로부터 풀려난 것도 그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신음소리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9-10).  

도둑을 지키라고 비싼 개를 들여놓았는데, 만약 도둑이 들어와도 짖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다시 팔아버리거나 잡아먹을 겁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언자의 사명을 주셨는데, 불의를 보고도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다면, 하나님은 도리어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정상 직접 나서지 못한다면, 우리 대신에 나서서 예언자적 발언을 하다가 고난을 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도울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나마 좋은 세상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은혜와 고귀한 희생을 모른 척 한다면, 우리는 마치 역사의 버스에 무임승차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희생당하신 분들과 그 가족들을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친일 매국노들이 해방 후에도 득세하였으며, 독재 권력에 아부하던 사람들이 더 잘사는 어처구니가 없는 경우를 보아야 했습니다. 이제는 이런 억울한 과거가 많이 청산되고 있습니다만, 기독교인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왕과 같은 백성으로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해야 합니다.

잘못을 고발하는 일도 훌륭한 일이지만, 이런 일만으로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만약 남의 잘못을 지적하면, 그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조심은 하겠지만,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변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비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비록 소돔성에 죄인이 넘친다고 하더라고, 하나님은 의인을 보시고 소돔성을 멸망시키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처럼 비록 우리 나라가 불의와 범죄가 가득하더라도, 우리 기독교인들이라도 의롭게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 나라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독립과 교육, 민주화, 평화, 복지 등을 위해 헌신해왔습니다. 지금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상 속에서 묵묵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더 확장되어 갑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교회는 초대교회와는 달리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해갑니다. 세상이 그렇게 변해간다고 해서 교회마저 그렇게 변한다면,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 당신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까? 오늘의 교회는 초대교회에 비해 양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광풍 앞에 미약한 촛불과 같았던 작은 초대교회만큼 세상의 빛이 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인구의 삼분의 일이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만, 세상은 그만큼 좋아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성장한 만큼, 세상의 범죄도 그 만큼 성장하기 않았나 생각됩니다. 교회가 성장할수록 사회의 범죄는 줄어들어야 할 텐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가는 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아니 범죄와 관련된 큰 일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낯뜨겁게도 기독교인들의 얼굴을 자주 보아야만 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우리는 훌륭한 기독교 지도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조만식,  이승훈, 김교신, 안창호 등은 모두 기독교의 가르침을 받아 그대로 실천하려고 몸부림쳤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방 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감리교회의 장로였던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한 공헌은 남겼지만, 김구 등 민족의 지도자를 암살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결국엔 나라를 부패시켰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불의에 항거한 기독교인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침묵하거나 협조했습니다.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은 차지철은 영락교회 교인으로서 매일 새벽기도를 드린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부마사태가 일어났을 때에 시민을 탱크로 깔아 죽이자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전두환이 광주 시민을 처참하게 진압하고 정권을 장악한 후에 그를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축복해 준 목사들도 많았습니다. 장로교회의 장로였던 김영삼 대통령도 처음에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등 좋은 일을 하였지만, 결국에는 측근의 부패와 경제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교회출석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며, 심지어 장로직에서 제명되었다고 합니다. 카톨릭 교회에 출석하던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와 통일의 기초는 놓았지만, 자식들과 측근들의 부패 때문에 존경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좋은 대통령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누가 진정 나라의 주인이며, 나라의 대통령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머슴입니다. 만약 머슴이 잘못하면, 주인인 우리가 호통을 쳐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인이 먼저 모범을 보이는 일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분의 뜻을 받드는 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속에서 참 대통령이신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나라를 바로 세우는 애국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