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마 5:13-16

2003년 6월 29일, 현풍제일교회 창립17주년 기념예배

 

 

 오늘은 우리 교회가 창립된 지 어언 17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17살의 생일을 맞이하시는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감회가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 교회의 창립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창립의 기초를 놓으신 분들과 교회 발전을 위해 지금까지 헌신하신 분들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노고에 대해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친히 갚아주시리라 확신합니다.

뜻깊은 교회창립 17주년을 맞이하면서, "주님이 우리 교회에 주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일까?" 한 주간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주간 내내 제 머리에 맴돌며 떠나지 않던 말씀은 바로 우리가 함께 읽었던 본문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이 말씀은 비단 우리 교회에만 해당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이 땅의 모든 교회들에게 주시고 싶은 말씀일 것입니다. 주님은 실로 이름만 소금과 빛이 아니라 실제로 '소금과 빛'의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주님이 어떤 의미로 '소금과 빛'을 말씀하셨는지를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먼저 소금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소금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질입니다. 소금이 하는 일은 매우 다양합니다.

(1) 소금은 위액의 염산이 되어 살균 작용이나 소화 작용을 돕습니다. 또 소금은 피와 섞여 몸 구석구석까지 돌면서 세포 속의 노폐물을 새 물질로 바꾸어 주어 신진 대사를 촉진합니다. 그리고 소금은 영양분을 운반하거나 신진대사를 하거나 물질이 이동할 때에 삼투압의 구실을 합니다. 소금은 체액의 삼투압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이 밖에도 소금은 신경이나 근육의 움직임을 조절하기도 하고, 땀을 내어 체온을 조절하는 작용을 말합니다. 몸 속의 소금이 땀이나 오줌과 함께 몸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몸 속에 소금이 너무 모자라면 체액의 삼투압의 균형이 무너져서 병이 나며, 심하면 죽기까지 합니다.

(2) 소금은 육류의 부패를 방지합니다. 그래서 소금은 옛날부터 청정(淸淨)과 신성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소금이 물건의 부패를 방지하고, 물건을 변치 않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하여 고대인은 소금을 변함없는 우정, 성실, 맹세의 상징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성서에서 소금은 율법과 비교되었으며,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사람의 굳은 유대감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민수기는  하느님과 사람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거룩한 관계를 '소금의 계약'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3) 그리고 소금은 깨끗하게 하는 힘, 거룩한 힘을 갖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구약성서에는 소금에 관한 기록이 많은데, 열왕기서에는 소금이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하며, 죽음과 유산(流産)의 더러움을 깨끗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겔서에서는 여호와에게 희생의 제물을 바칠 때에 제사장이 소와 양에 소금을 뿌리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출애굽기에는 거룩한 훈향(薰香)을 만드는 방법으로서 재료를 혼합한 후에 소금을 쳐서 깨끗하고 성스럽게 하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사회에서는 세례를 베풀 때에 아이들의 입에 소금을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4) 그밖에도 소금은 음식에 맛을 냅니다. 특히 육류에는 소금이 필수적입니다. 소금 외에도 많은 양념, 향신료가 발견되고 개발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소금은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양념이 들어가더라고, 소금이 들어가지 음식은 싱거워서 도저히 먹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욥기는 "소금을 치지 않는 것은 먹을 수 없다"(욥 6:6)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소금은 건강 유지, 부패 방지, 소독과 정결, 양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소중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교회를 소금에 비유하신 의미는 분명합니다. 교회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하고, 사회의 부패를 막아야 하며, 더러운 사회를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며, 싱거운 사회에 살맛이 주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주님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부름을 받아 주님의 제자가 된 사람은 이미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이 소금 맛을 내려고 안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금은 그 자체로서 이미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염려할 것은 소금의 맛을 잃어버릴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 점을 염려하십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어떻게 소금이 그 맛을 잃게 됩니까? 다른 불순물과 섞일 때입니다. 소금을 만들 때도 그러하지만 소금 맛을 내려면, 다른 불순물과 분리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주인이 주의하지 않으면, 아무리 깨끗한 소금이라도 다른 불순물과 섞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말씀처럼 짠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므로 주인은 이를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세속화(世俗化)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헬라어로 교회를 의미하는 '에클레시아'는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라고 불립니다. 비록 아직은 죄와 허물이 많지만, 주의 은혜를 힘입어 늘 깨끗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찬송함으로써, 그리고 늘 회개하고 헌신함으로써 교회는 늘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만약 교회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회개하고 헌신하지 않게 되면, 서서히 타락하게 되고 세상과 짝을 맺게 됩니다. 세상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섞여 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잃게 되고, 그래서 언젠가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기에 이릅니다.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은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세상과 너무나 흡사하게 된 결과로 결국 하나님과 그리고 세상의 버림까지 받게 된 교회들이 많습니다. 종교개혁 당시의 카톨릭 교회, 제정 러시아 시절의 정교회 등이 그런 경우에 속합니다만, 한국 교회라고 해서 항상 안전 지대 안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한국교회도 외형으로는 크게 성장하고 건물도 날로 웅장해지는 반면, 오히려 교회의 맛은 점점 잃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날로 떨어지며, 특히 종교 중에서도 개신교가 가장 신뢰를 얻지 못합니다. 오늘 주님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는 건강합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건강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사회의 부패를 방지하고 사회를 깨끗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바람이 나게 살맛을 줍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오늘 하나님 앞에 심각하게 회개하고 우리의 사명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제 빛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소금처럼 빛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제일 먼저 창조하신 것은 빛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어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3-4). 빛이 하는 일도 매우 다양합니다.

(1) 빛은 만물에 생명을 줍니다. 특히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태양은 지구의 생명 활동에 필수적입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함으로써 성장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삼하 23:4).

(2) 빛은 어둠을 밝히고 어둠을 몰아냅니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눅 11:36).

(3) 빛은 등대와 지하실의 등처럼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시 43: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4) 빛은 치료하는 역할도 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특히 오늘날에는 레이저를 비롯한 여러 가지 빛이 질병 치료에 유용하게 쓰입니다.

(5) 빛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번개처럼 빛은 깜짝 놀라게 하고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북방에서는 금빛이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욥 37:22). 특히 오늘날에는 빛은 강력한 무기로 사용됩니다. 원자폭탄에서 나오는 빛은 엄청난 파괴력을 발합니다. 빛은 대개 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화력을 지닙니다. "여호와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취소서"(시 94:1).

(6) 빛은 영광을 나타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그래서 옛날부터 탁월한 공을 세운 사람들은 빛나는 장식품이나 상품, 조명을 받습니다. "내가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입히고,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시 132:18).

(7) 어둠은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빛은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아침에 맞이하는 환한 태양 빛은 우리에게 소망과 기쁨을 안겨다 줍니다. 그래서 기쁨이 넘치는 사람의 얼굴에도 빛이 나는가 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

이처럼 빛은 생명, 광명, 인도, 치료, 두려움, 영광,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이처럼 주님은 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도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제자는 이미 어둠에서 불러내어 빛 안으로 들어온 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 교회는 이처럼 죄악으로 죽어 가는 세상을 살리고,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밝히며, 혼돈과 무지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며, 그들을 기쁘게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감히 흉내낼 수도, 범할 수 없는 위엄과 영광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교회는 빛을 잃어버릴 위험이 드러납니다. 등불은 당연히 빛을 내기 때문에 집안의 높은 곳에 놓아두기만 하면 됩니다. 산 위의 동네가 환히 드러나 보이듯이, 등불은 환히 비치는 곳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사람이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지 않고 말 아래 두는 사람은 어리석은 경우가 있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저는 교회 그 맛을 잃는 것은 교회의 세속화 때문이라고, 즉 교회가 세상과 섞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반면에 여기서는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위험이 드러납니다. 산 속에 파묻힌 동네처럼, 말 아래 둔 등불처럼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은둔하는 잘못이 드러납니다. 이것을 우리는 교회의 신성화(神聖化)라고 부릅니다.

세상이 아무리 더럽고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교회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하여 부름을 받은 것은 교회만이 홀로 구원과 영광을 누리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다시 세상으로 들어가 세상을 구원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국 교회를 불러 주셨으며, 지금까지 크게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크게 성장하고 보니, 점점 더 사명을 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산을 선교보다는 교회당을 웅장하게 세우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 많이 쓰는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한 것을 기쁘게 여기기보다는 큰 덩치를 뽐내고 으스대는 교회가 있습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봉사하면서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하기보다는 안일과 편리를 좇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교회가 빛을 잃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는 달처럼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습니다. 교회는 빛이신 하나님(시 18:29, 미가 7:8, 사 61:1-3), 빛으로 오신 주님(마 4:16, 요 1:4-9)을 반사하는 거울입니다. 교회가 빛을 잃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을 비추는 빛이 되신 하나님, 주님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고,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자신을 찬양하고 자신을 미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비추어야 할 자신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스스로 배타적인 집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카톨릭 교회, 수많은 사교집단처럼 자기들만이 특별히 선택을 받은 자들처럼 착각하고 교만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아니 우리 교회도 언제나 이런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을 항상 개혁하고, 그리함으로써 또한 세상도 개혁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만과 안일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빛을 반사해야 할 귀중한 사명을 망각하고, 스스로 빛이 되려고 하거나 이 빛을 숨겨 놓으려다가 서서히 빛을 잃어 가는 교회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대로가 좋사오니..." 이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바로 이런 잘못에 빠져 있는 셈입니다. 교회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교회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세상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라"는 주님의 명령에 응해야 합니다. 그리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