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우리부터 개혁합시다

- 종교개혁 기념주일 -

마 21:12-13

2003년 11월 1일, 현풍제일교회

 

 

오늘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486년이 되는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의 정문 앞에 95개 조항으로 된 반박문을 붙임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만, 처음부터 루터가 거창하게 종교개혁을 하려는 마음은 먹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카톨릭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고 이를 고쳐보려는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논쟁을 시작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로마 교황청에 의해 묵살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글은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러자 오랫동안 교황의 권력에 눌려 살던 사람들은 루터에게 열렬히 갈채를 보내면서, 루터와 함께 카톨릭 교회에 저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실로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카톨릭 교회는 급속하게 타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직자들은 온갖 세속적인 특혜를 누렸으며, 그래서 성직은 공공연히 매매되었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온갖 미신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였으며, 날이 갈수록 세속화와 혼합주의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레고리 1세가 교황으로 즉위한 590년부터 종교개혁이 일어난 1517년까지 약 1천년의 기간을 사람들은 교회의 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카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이 기간은 교황의 권력이 하늘을 찌를 듯한 시대였습니다. 특히 그레고리 7세로 불리는 힐데브란트는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듯이, 땅에도 왕이 둘일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절대적인 지배자로 군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왔다"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을 향해서도 "너희는 세상 사람들처럼 서로 부리고 호령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서로를 섬기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셨건만, 교황들은 다른 교회만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에 대해서도 군림하려고  하였으며, 심지어는 스스로 그리스도인 것처럼 오만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카톨릭 교회는 수많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화형과 같은 극형으로 죽였습니다.

종교 개혁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교황 레오 10세(Leo Ⅹ. 1513-1523)가 시행한 면죄부 판매였습니다. 로마에 베드로 성당을 짓는 일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교황은 면죄부를 판매하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면죄부를 팔기 위해 카톨릭 교회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습니다. "로마 교황은 천국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사함을 받을 것이다. 은화가 헌금함에 쨍그랑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연옥에 있는 사람들은 곧바로 천국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처럼 교황의 권위를 빙자하여 사죄의 권한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가르친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의 잘못을 루터는 조목조목 반박하였습니다. 결국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오랫동안 부패하였던 로마 카톨릭 교회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요원의 불처럼 번져나갔고, 그 결과로 이른바 카톨릭 교회에 저항하는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가 이 땅에 탄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함께 읽었던 마태복음 21:12-13절에서 우리는 종교개혁의 한 모델을 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 당시 타락한 성전 제도에 대하여 용감하게 채찍질을 가하셨습니다. "성전보다 더 큰 주님"(마 12:6)으로 오신 예수님은 성전을 통해 온갖 이득을 취하면서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자들을 과감하게 내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성전 정화' 혹은 '성전 청결'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양처럼 온유하시던 예수님이 이처럼 크게 진노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시고 원수 사랑을 강조하시던 예수님은 이 날은 격노하여 장사꾼들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카톨릭 교회가 면죄부를 판매한 사건이나 성전 안에서 환전상들과 장사꾼들이 우글거린 사건은 모두 재물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습니다. 어떻게 보면 두 사건의 시발점은 순수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좀 억울하게 욕을 먹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의 우두머리요, 교회의 반석이요, 로마 교회의 최초의 지도자로 여겨진 사도 베드로가 순교한 땅 위에 그를 기념하는 성당을 세우는 것까지는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 교회의 중심이요, 도시 중에서도 가장 크고 부유한 로마에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짓겠다는 생각도 좋게 봐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당 건축을 위해 성금과 헌금을 모으는 것도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자란 건축비를 조달하기 위해 돈으로 죽은 자들의 죄까지 용서할 수 있다고 사람들을 속이고 복음을 심각하게 왜곡한 사실은 정말로 비난을 받을 만한 큰 잘못입니다.

성전 안뜰에서 돈을 바꾸고 제물을 파는 행위는 멀리서 온 순례자들을 배려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의 발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나라의 다른 화폐를 사용하기 불편하므로 성전에서 통용되는 단일 화폐로 바꾸는 일과, 제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순례자들에게 성전 뜰에서 제물을 판매하는 일은 순례자들에게도 고마운 일이었을 겁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순수한 의도에서 이런 일이 진행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중이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제들은 점점 돈을 버는 재미에 빠져들었습니다. 제사의 목적을 위한 순수한 수단이 시간이 흐를수록 변질되어, 이제는 수단이 목적으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성전은 어느새 어마어마한 경제적 이권이 걸려있는 세속적인 장소로 변했습니다. 영업 행위에는 항상 뇌물과 착복, 사기와 불공정 거래와 같은 범죄 행위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돈맛을 본 배부른 종교인은 항상 가난한 민중보다는 부자와 권력자의 편을 들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무력 혁명가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사제들을 가장 큰 증오와 파괴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교회는 아직 완전한 이상적인 공동체, 즉 천국이 아닙니다. 교인도 아직은 완전한 성도가 아니라 항상 회개를 필요로 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루터도 "그리스도인은 죄인인 동시에 의인이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알곡만을 심은 논밭에 어느 새 잡초가 무성히 자라듯이, 교회도 순수한 의인만이 아니라 온갖 죄인이 섞여 들어옵니다. 더욱이 사탄의 권세가 자주 교회를 뒤흔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 하며, 늘 말씀에 굳건히 서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늘 자신을 되돌아보고, 회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교회도 서서히 병들고, 부패하고, 타락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다가 악한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영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교회도 항상 개혁되어야 합니다. 한번 개혁된 교회는 늘 다시금 개혁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천국이 올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였던 칼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참된 교회는 항상 이러한 개혁,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설교, 성례전 및 그 직제의 개혁 속에 있다. 잘못된 교회는 아마 400여 년 전에 한번 개혁되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개혁되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여주는 교회이다. ... 만약 교회가 더 이상 개혁 중에 있지 않다면, 그것은 곧 교회가 시련 속에 빠졌고, 전혀 구제를 받을 가망이 없이 교회가 아닌 교회로 타락한 것을 의미한다."

오늘의 한국 교회도 개혁되어야 할 점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 비록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견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가 훨씬 더 많이 세상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다른 종교를 비판하는 사이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은 그만큼 오늘 한국교회가 대중의 신뢰를 잃었으며, 자정 능력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평소부터 뼈저리게 느껴온 한국 교회의 문제점 중에서 카톨릭 교회와 유대교의 성전처럼 물질적인 것과 관련된 문제점만을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을 뽑는 일에 아직도 금전이 힘을 떨치고 있습니다. 교단마다 총회장 혹은 감독을 뽑는 선거에서 아직도 수많은 검은 돈이 뿌려집니다. 그것도 개인의 돈이 아니라 성도들의 피눈물과 같고 하나님에게 드려진 거룩한 헌금이 개인의 야망을 위해 악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교회 헌금 유용 사건으로 구속되고 5년 구형을 받은 김홍도 목사는 그 중의 한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교회가 되어야 할 우리 성결교회에도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납니다만, 아무도 이를 시정하거나 당선 무효 결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교회가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면, 이 세상을 향해 어떻게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신앙과 인격이 좋은 사람보다는 돈이 많은 사람을 우대하거나, 장로와 권사와 같은 직분을 세우는 일에서 일정한 헌금을 강요하는 관행은 참으로 하나님을 슬프게 하시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도 온갖 명목으로 헌금을 강요하거나, 헌금 행위를 과시하거나 기복신앙을 주입하는 것은 정말 복음과는 거리가 먼 일입니다. 더욱이 귀한 헌금을 선교 활동에 사용하기보다는 호화로운 건물과 시설 투자에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도 반성할 일입니다. 십일조를 거둘 때는 철저히 성경의 말씀을 강조하면서도, 십일조를 사용하는 일에서는 성경의 정신을 도외시하는 관행도 시정되어야 할 일입니다.

 "지금은 과거에 개혁이 대상의 되었던 카톨릭 교회보다 개신교가 더 부패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도 서슴없이 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우리 스스로 회개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처럼 채찍을 내리칠 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재를 뒤집어쓰고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다면, 루터와 같이 사자처럼 울부짖는 개혁가가 등장할 것입니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교회가 먼저 회개할 일입니다. 성도를 탓하기 전에 목사들이 먼저 회개할 일입니다. 남의 허물을 들추기 전에 먼저 나의 허물부터 돌아보고 회개할 일입니다. 올해 11월 23일(주일 2-6시, 부산 강서체육관)에도 영남지역에 있는 성결교인들이 함께 모여 회개하고 헌신을 다짐하는 성결인 대회를 갖습니다. 이번 모임의 주제는 "나부터 새롭게 하옵소서"입니다. 정말 지금은 뼈저리게 회개할 때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양적, 질적으로 침체기에 들어간 느낌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한국교회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금 우리를 들어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더 큰 낭패를 당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잘못을 회개합시다. 우리부터 개혁합시다. 우리 교회부터 변화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