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대강절 넷째 주일 -

빌 4:4-7

2003년 12월 21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대강절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빌립보서 4장 4-7절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본문 5절은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과 관련이 있는 종말론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말씀은 "주님이 곧 오신다"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대강절의 설교 본문으로 선택한 이유는 바로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종말론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이 대강절을 어떻게 보내야 합니까? 물론 종말론적인 삶의 자세는 단지 대강절 절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같은 삶의 자세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 앞에서, 그 날이 올 때까지 언제나 지녀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대강절 중에만 주님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평생토록,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곧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오늘의 본문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종말론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본문이 명령법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본문의 말씀은 단순한 권면이나 훈계가 아니라 강력한 명령이라는 사실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즉 이상의 모든 명령을 실천하면, 그 결과로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1. 첫째로 바울은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입니다. 기쁨은 빌립보서 전체를 꿰뚫어 흐르고 있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본문 4절은 3절의 말씀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씀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4절에서 "기뻐하라"는 동일한 명령이 두 번이나 반복된 것은 명령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두 번 반복해서 "기뻐하라"고 명령하면서 "항상" 기뻐하며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언제나, 어느 때든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항상'이란 말은 믿는 자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땅히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기뻐하라"는 명령이 두 번 모두 현재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명령임을 말해 줍니다. 이처럼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는 바울이 평안하고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 즉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바울의 입에서 나온 기쁨은 분명히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쁨의 명령을 듣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도 역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특별한 어떤 기쁜 일이 생겼을 때에 기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 기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기뻐하라는 명령은 "주 안에서"라는 말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기쁨은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 근거를 둔 기쁨을 말합니다. 이 기쁨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어지는 구원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본문 바로 앞의 3절에서 언급한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일"이며, 5절에서 말하는 "주님의 가까움"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사실과, "주께서 곧 오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항상, 언제나, 어느 때든지,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든지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우리에게서 기쁨을 빼앗아 가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진 구원으로 인하여 어떠한 상황 속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믿음의 표현이 될 것이며,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성도의 마땅한 자세일 것입니다.

 

2. 둘째로 바울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기쁨은 '관용'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쁨이 자기 자신을 위한 덕목이라면, 관용은 타인을 위한 덕목입니다. 내게 기쁨이 있을 때,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용할 수 있습니다. '관용'이란 '양보하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타인을 고려하는 '친절' 혹은 '여유'이며, 법적 용어로는 '오차 허용도'라고 합니다. '오차 허용도'란 것은 약간의 오차가 있어도 법적으로 허용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관용'은 상대방의 실수나 오차를 인정하고 봐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오차'를 따지지 않고 넘어가는 넓은 아량과 도량의 성품입니다. 그리고 관용은 남의 실수에 대하여 참아주는 인내이며, 남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용서입니다.

이 같은 관용, 즉 인내와 용서는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자세입니다. 이 같은 주님의 용서로 말미암아 죄인인 우리가 감히 의인이 되었고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주님의 용서를 받은 경험을 한 우리 그리스도인은 남에 대하여 관용하며, 남의 과실과 실수를 너그러이 이해하고 용서하는 삶의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누구이며, 교회란 어떠한 집단인가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용서함을 받은 자이며, 교회는 용서함을 받은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교회는 어떠합니까? 세상 사람들보다 관용의 삶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마음이 비좁고 옹졸하고 너그럽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원수 맺은 것을 풀지 않는 속 좁은 사람들이란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세상의 어떤 집단보다 닫혀 있고 폐쇄적이며 교조적이어서 이웃 집단을 쉽게 비난하는 옹졸한 집단이 아닙니까? 지금처럼 갈등과 분열이 심하고, 다른 집단을 쉽게 비난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관용의 미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뚜렷하게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곧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종말론적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의 마땅한 삶의 자세입니다.

 

3. 셋째로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하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명령합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바울의 명령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빌립보 교회 교인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을 몹시 걱정하고 염려하였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염려하지 말고 오히려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명령합니다. 아울러 "염려하지 말라"는 바울의 명령은 빌립보 교인들이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의 어려움, 교회 내의 갈등, 미래에 대한 염려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 모든 사실에 대해서도 결코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여러 가지의 사안과 형편을 하나님께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뇌와 상처, 아픔과 고통, 우리의 좌절과 곤경을 빠짐없이 하나님께 드러내 보이고 하나님의 치유와 격려, 위로와 책망을 겸허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기도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미 받은 은혜를 망각하지 않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울의 기도 신학의 핵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간구는 결코 일방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떼를 쓰는 강청 기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겸허하게, 전적으로 하나님의 처분에 자신을 맡기면서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기도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그리하면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종말론적인 구원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모든 지각에 뛰어납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인간의 노력이나 상황의 변화에서 오는 평화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오는 평화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평강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옵니까? 주 안에서 기뻐할 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을 관용하고 용서할 때, 그리고 우리의 모든 염려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아뢸 때에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거룩한 대강절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바로 이것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보이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갈등과 전쟁, 염려와 번민으로 얼룩진 이 세상 속에서 여러분은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을 늘 누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늘 충만히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