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진보하는 교회

- 신년주일 -

 딤전 4:7-15

2004년 1월 4, 현풍제일교회

 

 

갑신년 새해를 맞이하여, 성도 여러분에게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넘쳐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신년 첫 주일을 맞이하여,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참으로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한해는 우리 모두가 남달리 어려운 해였습니다. 사람들은 작년 한해 동안 우리 사회의 모습을 설명하기를 "우왕좌왕"이라고 하였지만, 저는 오히려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의 부패 위에 사회 곳곳에 갈등과 혼란이 겹쳤으며, IMF 시절보다 더 혹독한 경제난 위에 강력한 태풍이 불어왔습니다. 도덕적 타락 위에 종교적 타락까지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더욱이 전국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대구에는 끔찍한 지하철 사고까지 일어났습니다. 세계적으로는 충격적인 테러 위에 가공할 만한 전쟁이 일어났으며, 사스 위에 지진까지 닥쳤습니다. 이래저래 힘든 한해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한국의 수출은 호조를 보였고, 남북관계도 크게 진전되었습니다. 대구에서 개최된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성공리에 끝났으며, 바닥을 친 경제가 서서히 회복될 것 같은 조짐을 보입니다. 우리 교회를 보더라도, 시련으로 인해 바닥까지 떨어진 사기와 교인의 수와 재정 상태가 상당히 회복되었으며, 태풍의 시련 속에서도 시설을 이전하고 단장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들이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그 덕분에 저의 주가도 좀 올라갔습니다. 작년 초에 제가 4대 목회자로 부임하면서 내건 목표는 "새롭게 출발하는 교회"였습니다. 누가 봐도, 우리 교회는 정말 새롭게, 다시 출발해야 하는 교회였습니다. 분열과 갈등을 거듭한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은 바로 "새롭게 출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오랜 학자의 길을 접고 처음으로 목회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새롭게 출발하는 한 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겨우 새롭게 출발한 상태입니다. 넘어진 사람이 다시 일어선 상태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당연히 이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넘어져서도 안 되지만, 뒤로 자빠지거나 뒷걸음쳐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우리 교회의 목표가 되어야 할 말씀을 디모데전서 4장 15절에서 발견했습니다. 여러분이 제시한 의견도 대개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넘어졌다가 일어난 우리 교회는 이제 진보해야 합니다. 전진해야 합니다. 발전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그리고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는 앞으로 연이어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오늘은 다만 "전심전력으로 진보하자"는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성격에 따라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집단적으로 나누면, 대개 동양인은 보수적이고 서양인은 진보적입니다. 동양인은 주로 자연으로부터 교훈을 배웠는데,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자연 현상은 대개 순환적입니다. 즉 자연은 돌고 돕니다. 동양인은 해와 달과 계절이 돌고 도니, 운명과 역사도 돌고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양인에게는 개척과 개혁, 혁명의 정신이 부족하였고, 그래서 생활의 발전이 미약했습니다. 그와 달리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양인은 대개 진취적입니다. 서양인은 자연으로부터 배운 게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말씀으로부터 교훈을 배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자연의 창조주로서 자연을 새롭게 하십니다. 역사의 주인으로서 역사를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을 믿은 서양인들은 땅을 정복하였고, 신대륙을 발견하였으며, 문명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물론 지나친 진보주의와 과학문명의 발달은 자연과 인간을 파괴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서양의 지나친 진보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양의 자연사상으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서양인들도 잘못된 진보주의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결코 원시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원시상태는 이상적인 낙원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밀림이요, 본능만이 지배하는 동물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자연과 어울리는 발전, 자연친화적인 발전,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가 좋았다"고 하면서 발전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그들은 역사에 뒤쳐질 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아예 사라질 수 있는 운명에 처하기 때문입니다. 현상 유지는 퇴보가 아니라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앞으로만 가야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돌고 도는 것만 같지만, 어제와 동일한 자연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들이 변합니다. 모든 것들이 그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도 그러합니다. 만물은 태초의 창조로부터 계속적인 창조를 거쳐 새로운 창조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주의 역사는 무생물로부터 생물로, 생물로부터 인간으로 진보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의하면 인간은 그리스도인으로 진보해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서는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늘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려는 사람들이 적잖게 있습니다. 성격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고, 앞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과거로부터 탈출시키시는 미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름 "야훼"는 바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약속과 희망의 하나님, 미래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대개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성향 때문에 멸망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곧 멸망할 소돔과 고모라 성을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가 그러합니다. 애굽의 고기가마를 그리워하며 광야에서 모세에게 불평하다가 광야에서 엎드러진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이전부터 내려온 전통과 율법에만 매달린 유대인도 그러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 외에도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옛날의 전통과 구습에 연연하다가 구원에 동참하지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제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맞바람을 맞으면서 노를 저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보다는 순풍에 돛을 달고 강물을 따라 내려가기가 훨씬 쉽습니다. 고통을 당하면서 진보하기보다는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며 사는 게 훨씬 편안합니다. 희생을 치르는 진보보다는 희생이 없는 현 상태가 안전합니다. 모험하다가 실패하기보다는 모험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더 얻으려다가 잃기보다는 차라리 있는 것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낫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매사에 적극적이지 못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드나들기는 하지만, 교회 일에 전혀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만, 비판하기만을 즐겨하고 교회 일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명목상의 교인입니다. 잠자는 교인입니다. 방관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교인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인은 분명한 사명 의식을 갖고 교회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 교회의 의무와 권리를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은 진보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바지 가랑이를 잡아당기는 사람보다는 잠자코 있는 사람이 낫습니다. 하지만 잠자코 있는 토끼와 같은 사람보다는 조금씩 나아가는 거북이와 같은 사람이 낫습니다. 하지만 거북이 걸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보다는 전심전력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훨씬 낫습니다. 오직 이런 사람만이 승리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도 그냥 "진보하라"만 하지 않고, "전심전력으로 진보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일에는 전심전력하면서도, 교회 일은 대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는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교회 일에는 조그만 희생도 치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매사에 교회 일에 제동을 걸고, 불평만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진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정말 전심전력으로 일하는 사람이 단 세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처음 소개받았을 때, 교인의 수가 한 50명쯤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려와 보니, 15명의 성도만이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그 중에는 나이가 드신 분들도 적잖이 계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분들 중에 열심히 일하실 분이 최소한 세 사람이 된다면, 한번 일해 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실망하지 않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여러분 중에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세 사람은 되어 보이십니까? 여러분은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전에 말씀을 드린 적이 있듯이, 제가 싫어하는 교회는 작은 교회가 아니라 진보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저는 진보하기를 꺼리는 큰 교회보다는 진보하기를 열망하는 작은 교회를 더 사랑합니다. 물론 제가 원하는 것은 단지 물량적인 성장, 외형적인 성장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교회는 질적, 내면적으로 알차게 성장함으로써 양적, 외형적으로도 함께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이른바 껍데기만 큰 교회, 거품으로 가득한 교회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저는 여러 번을 나누어서, 우리가 한해 동안 전심전력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상세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다만 다음과 같이 간절히 부탁합니다. 기왕에 맡은 일이니, 아니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니, 아니 하나님의 큰 상급을 바라보면서, 전심전력으로 일합시다. 비록 우리 교회가 수적으로는 작은 교회라도 하더라도, 만약 기드온 용사들처럼 헌신적으로 열심히 일한다면, 형식적인 교인들로 넘쳐나는 교회보다 훨씬 더 큰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교회보다 훨씬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많은 돈이나 큰 규모보다 알찬 일꾼을 통해 훨씬 더 멀리 진보하기 때문입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전진합시다. 지금의 형편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진보합시다. 전심전력으로 뛰어나갑시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경주합시다. 주님께서 힘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실 것입니다. 올해가 다시 끝나갈 때쯤이면,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목표 지점에서 모두 만나 즐겁게 노래합시다. 크게 진보한 우리를 바라보고, 하나님께 크게 감사합시다.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