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낮은 데로 임하소서!

- 종려주일 -

빌 2: 5-11

2004년 4월 4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부터 예수님이 감당하신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는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오늘은 그 중의 첫 번째 날로서 교회력에 따라 '종려주일'이라고 불립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입성하실 때에 많은 군중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주님을 크게 환영하였던 날입니다. 이 날을 기념하여 오늘 저는 바울이 쓴 본문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은 모름지기 높아지려고만 애씁니다. 태어나자마자 키를 높이려고 애씁니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높은 성적을 올리려고 애씁니다. 사회에 나가자마자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애씁니다. 이처럼 높아진 사람들을 사람들은 대개 우러러봅니다. 키가 높은 사람을 우러러보듯이, 출세한 사람을 우러러봅니다. 온갖 역경을 이기고 높은 목표를 달성한 사람을 우러러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과 사표로서 한 몸으로 존경을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마다 높은 고지에 오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만약 목표에 이르는 모든 수단들이 정당하였다면, 높은 목표를 달성한 사람을 우리는 진심으로 존경할지언정 비난할 이유는 하등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오직 높이 오르려고만 애쓰지만, 그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자초합니까? 지금도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높은 성적을 올리려고 피를 말리는 경쟁에 내몰리고 있으며, 학업 스트레스로 병들고 죽어갑니까? 얼마나 많은 지도자들이 부패와 비리 때문에 자살하고 감옥에 들어갑니까? 얼마나 많은 지도자들이 손가락질을 받고 삽니까? 그리고 높고 험준한 산을 오르기 매우 힘들듯이,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당한 방법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다. 역사에서 수많은 지도자들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 참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은 대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칙과 불의를 행한 사람들입니다. 남을 짓밟고 올라섰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동안 그들은 하나님과 백성에게 수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도 힘들지만,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는 더 힘듭니다. 산을 오르기가 더 힘듭니까, 아니면 내려오기가 더 힘듭니까? 높은 산은 물론 올라가기 매우 힘듭니다. 하지만 병약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높은 산도 오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높은 산일수록 내려오기는 더 힘듭니다. 제가 서울에서 살 때, 온 가족이 종종 주말에 등산을 하곤 했습니다. 서울의 북한산은 높기도 하지만 산세가 수려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오르기를 좋아합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두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온 가족이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두 아들은 잘 따라주었습니다. 북한산 정상을 한번도 올라가 보지 못한 저는 그날만은 꼭 올라가 보리라고 마음을 먹고 열심히 올랐습니다. 올라가다가 길을 잃기도 하였지만,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힘들게 정상에 오른 감격은 매우 컸습니다.

하지만 해가 어두워 우리는 곧 정상에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정상에 오른 사람도 반드시 내려올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오래 머물 수는 없습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내려와야 합니다. 때가 되었는데도 내려오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낭패를 당했습니까? 이승만과 박정희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닙니까? 오늘날도 그런 추한 지도자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잘못된 지도자들 때문에 많은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감수합니까? 만약 우리 가족도 정상에 오래 머물려고 했다면, 그곳에서 얼어죽었을 겁니다. 오후 늦게 높은 산에 올라간 탓으로 우리는 곧바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내려오는 과정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무릎과 발끝이 매우 아팠습니다. 피곤한 몸으로 중간에 어린 아들을 엎어야만 했습니다. 더욱이 손전등 하나 없이 캄캄한 길을 내려오다 보니, 자주 길을 잃고 헤매었습니다. 그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인생 길에도 내려오는 길이 더 중요하고 힘들구나! 오늘처럼 실수하지 말아야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높은 목표를 달성하거나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보다는 높은 자리에서 잘 내려온 사람을 더 존경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존경받는 대통령들이 많습니다. 흑인을 해방시킨 링컨도 그 중의 한 분입니다만, 카터 대통령은 그보다 더 존경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그가 대통령을 재직할 동안 세계의 인권을 위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도 존경할 만하지만, 그보다 더 존경할 만한 점은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여전히 주일학교 교사직을 성실히 수행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존경할 만한 점은 그가 대통령직에서 물러간 후로 지금까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에 그분이 우리 나라에 와서 망치를 들고 집을 짓는 모습을 보셨지요? 참으로 훌륭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미국의 어떤 사람은 대학교 총장직에서 물러나서 그 대학교에서 수위로 봉사하였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위대한 미국이 그저 생겨나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분들 외에도 높은 자리를 마다하고 낮은 자리에 내려와서, 인류를 위해 봉사한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 하와이 문둥이의 친구 다미엔, 인도 거지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 등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어떤 분들이 있습니까? 다행히 우리 나라에도 낮은 자리에 내려와서 불행한 사람들을 섬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봉사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혼탁하고 금방 망할 것 같아도, 우리 나라가 이 정도만이라도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은 바로 그분들 때문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분들 때문에 역사의 발전에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분들을 발굴하고 그분들의 정신을 이어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분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으며, 역사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 머물기보다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려는 마음, 아니 처음부터 높은 곳에 올라가기보다는 낮은 곳에 거하려는 마음, 이 마음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높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세상의 비천한 자리로 내려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은 자리를 걸으신 길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이 찬양과 예배를 받으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낮고 추한 곳에서 태어나 하나님의 우편에 앉기까지 그야말로 입지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본래 높은 곳에 계셨던 높으신 분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본래 높은 곳에 계셨던 분을 우리가 높은 곳에 오르셨던 분으로 찬양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예수님을 높이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본래 높은 곳에 계셨던 아들을 지극히 높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됨을 주장하시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비우셔서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세력을 꺾으셨고, 만물의 지배자가 되셨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 아니 예수님의 삶을 본받으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품으신 마음을 품고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바로 이 길이야말로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에게 높임을 받는 길이요, 진정으로 승리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길이야말로 예수님과 함께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권세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마음을 품어야 하며, 세상의 군왕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이 살았던 당시의 로마 황제들은 높은 자리에서 낮은 사람들을 호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지배자가 아니라 권력의 노예일 따름입니다. 겉으로는 그들이 세상의 통치자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잠시 세워둔 허수아비일 따름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할 유일한 지배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죽기까지 낮아지셨지만, 아니 바로 죽기까지 낮아지셨기 때문에 '만왕의 왕', '만유의 주'라는 지극히 높은 이름으로 불리시는 예수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오직 섬김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통치는 칼로 이루어지지 않고 십자가로, 희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분의 높음은 낮춤으로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우리에게도 "바로 이 길을 가자"고 초대합니다. "살려면 죽자"고 말하며, "높아지려면 낮아지자"고 말합니다. 바울도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본받아 바로 그런 길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승리, 진정한 위대함은 바로 이 길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바로 이 길을 장엄하게, 겸손하게 걷기 시작하신 예수님을 두 손을 들어, 종려나무처럼 손가락을 활짝 펴서, 그리고 큰 목소리로 찬송합시다. 그리고 주님이 걸으신 좁은 길, 낮은 길을 기쁘게 따라갑시다. 주님과 함께 낮아지고 죽읍시다. 그래야만 주님과 함께 왕과 같은 자로 높이 들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이 세상에 지배를 받지 않고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주님처럼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