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가정의 든든한 기초

 

행 10:1-8

2004년 5월 30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 위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원래 '성결교회 주일'이지만, 저는 특별히 '가정 주일'로 지키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정의 달 5월을 어린이 주일과 어버이 주일 등으로 잘게 나누다 보면, '가정'을 전체로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어버이의 문제는 바로 가정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가정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가정이 흔들리고 무너진다고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대체로 다음과 같이 들고 있습니다.

첫째로, 오늘날의 가정이 위기에 빠진 것은 남자가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가정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경쟁이 심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정신없이 일해야 하는 남자들은 가정에서 자녀들과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요즈음 남자들은 가정에서 단지 잠자고 밥만 먹은 하숙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녀들과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더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남자들은 가정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누려오던 가장의 권위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비록 부작용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그 동안 남자가 아버지의 권위를 가지고서 가정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는 이 '버팀목'이 완전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빠, 바빠, 나빠"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오늘날의 가정이 위기에 빠진 것은 가정 주부가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포기하고 문밖으로 나돌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남편과 자식들만을 위해 한평생 헌신하며 희생하며 살아온 주부들은 하숙생이 된 남편과 이기적인 자식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이토록 남편들과 자식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주부들은 심한 소외감과 허탈감을 보상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돌게 됩니다. 물론 취미생활과 같은 건전한 일을 위해 바깥으로 나도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잘못하면 부동산 투기, 유흥업소 출입, 과소비 등과 같은 퇴폐풍조에 물들기 쉽습니다. 바깥을 나돌지 못하는 주부들은 가정을 온통 휘어잡으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기 쉽습니다. 직장에서 피곤한 남편을 달달 볶거나 자녀의 장래를 위한답시고 자녀를 공부벌레 혹은 공부노예로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아빠, 바빠, 나빠"라는 말처럼 "엄마, 치마, 마마"라는 말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엄마가 치마 바람을 거세게 날리니까, 남편과 자녀가 온통 '마마 보이'가 되어간다는 말입니다.   

셋째로, 오늘날의 가정이 위기에 빠진 것은 요즘 아이들이 자기들 밖에 모르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의 아이들은 어른과 남은 안중에도 없는 버릇없는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요즘의 부모들이 자식의 기를 죽인다고 꾸지람을 잘 하지 않고,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자식을 상전으로 떠받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성적에만 신경을 쓰느라고, 도덕교육과 인성교육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모든 가치관을 오직 성적에만 두고 있다보니, 주일에 친구를 사귀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교회에 가는 것조차 꺼립니다. 이처럼 자녀를 경쟁에서 꼭 이겨야 하는 살벌한 존재로 기르기 때문에 남을 배려하고 남과 협동하는 정신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설령 그들이 커서 사회에서 좀 출세하였다고 하더라도, 커서는 병약한 부모와 형제들을 쉽게 무시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저는 "아이, 아첨, 아차"라는 말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이에게 아첨하다가 나중에는 '아차'하고 후회하고 만다는 말입니다.

넷째로, 오늘날의 가정이 위기에 빠진 것은 오직 자식들만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늙으신 부모님들이 마음을 붙이고 여생을 편안히 살 곳이 점점 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정성껏 키운 자식들은 핵가족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며느리는 시집 식구보다 친정 식구를 더 가까이하고, 아들은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부모에게 잘 효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노인들은 병약함과 고독감 속에서 쓸쓸히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저는 "잘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하게 되었습니다. 잘 산다는 것이 모두가 함께 행복해진다는 뜻이 아니라면, 잘 사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람이 돼지보다 더 나은 게 무엇입니까? 요즘 정치인들이 '상생'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만, 부모와 자식과 손자가 한 지붕에서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도대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여기서도 저는 "노인, 폐인, 악인"이라는 말을 만들어 봅니다. 노인을 폐인으로 취급하는 인간은 악인입니다.    

가정이 어찌하여 이와 같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까? 가정 속에 깊이 파고든 황금만능주의, 개인주의와 쾌락주의 등이 우리 가정을 병들게 하고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완전히 천박해졌고, 인간성이 철저히 타락했습니다. 비뚤어진 가치관과 타락한 인간성은 바로 가정의 위기의 원인이요, 또한 가정의 위기를 낳은 주범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고 든든한 가정을 만들려면, 비뚤어진 가치관을 바로 잡고 타락한 인간성을 바로 잡는 길 밖에 없습니다. 가정의 진정한 기초로 되돌아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특히 고넬료 가정을 소개함으로써, 든든한 가정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첫째로, 고넬료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가치관이 비뚤어지고 인간성이 타락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떠나 탕자처럼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넬료 가정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온 식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인생과 가정과 사회와 우주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으뜸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기는 가정만이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때로는 미워지기도 하고 싫증도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어언 듯 서로의 관계가 파괴되는 위기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항상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 위에 든든히 서 있다면, 부모  관계와 부부 관계, 식구 관계가 결코 잘못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온전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경건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고넬료 가정은 온 집으로 더불어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구제는 이웃들과의 관계입니다. 이웃들과 서로 나누는 것은 경건한 삶의 표현입니다. 성도의 가정은 결코 자기 가정 밖에 모르는 그런 이기적인 가정이 되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모름지기 이웃들과 아픔과 슬픔을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가정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이유도 가족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은 자신의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부자들도 결코 홀로 잘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내버려두는 부자들은 결국 강도와 도적, 사회 불안의 희생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 때문이라도 부자들은 재물을 기꺼이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든든한 가정은 오직 든든한 사회의 기초 위에서만 설 수 있습니다.  

셋째로 고넬료 가정은 온 집이 더불어 하나님에게 항상 기도하는 가정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기도만 하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기도는 하나님에게 상달되지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만약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기만 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실천은 얄팍한 자기 자랑, 생색내기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인의 사귐이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나와 너와의 사귐은 그리스도인의 사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을 향해 사랑을 베풀고 구제하는 것은 그리스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하고,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몸을 내놓으셨고 생명을 나누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이웃을 위해 물질을 내놓으며 구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위기 시대에 여러분의 가정도 고넬료 가정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구제하며 늘 기도함으로써 언제나 든든히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그와 아울러 흔들리고 무너지는 주위의 가정을 올바로 세워주는 복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가정은 무엇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경건한 고넬료 가정을 본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온 가족이 세상의 성공을 추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법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물로써 어려운 이웃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서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에게 늘 상달되는 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