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2004년 6월 13일, 현풍제일교회

 

 

올해의 성령강림주일은 5월 마지막 주일이었지만, 5월은 '가족의 달'이기 때문에 그 날을 우리는 '부부 주일'로 지켰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저는 4년만에 다시 한국에 오신 저의 스승 몰트만 박사님의 강연과 여러 행사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다시피, 그분은 '희망의 신학'이라는 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가 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단지 이론만으로 희망을 가르치신 게 아니라, 고난의 현장 속에서 몸소 체험하신 희망을 열심히 전파하셨습니다. 자살이 줄을 잇고 탄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울려 퍼지는 가운데서 그분은 시종일관 "어떠한 형편에서도 절대로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난 주일에 '소망의 하나님'에 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일년에 딱 한번만 찾아오는 성령강림주일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오늘은 조금 늦었지만 성령에 관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한다고 하니까, 주위의 친구들이 조금 섭섭하거나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하였지만, 어떤 친구들은 이론적인 신학이 목회 현장에서 잘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하거나, 목회 현장 속에서 신학이 더욱 알차게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애써 노력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그렇게 되겠지요. 하지만 친구들의 기대와는 달리 제가 실제로 우리 교회에 온 후부터 하나님 앞에 가장 간절히 기도하는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신학교육은 저의 힘만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목회는 저의 힘만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학은 머리로만 가르칠 수 있지만, 목회는 온 몸으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주인은 제가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성령의 오심을 위해 자주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는 세상의 부와 권력과 명예는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제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소서. 제가 지식은 많이 갖추었는지는 모르나, 지혜가 많이 부족합니다. 세상과 성도들의 형편을 잘 알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인 지혜가 넘치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안에서 사랑이 충만한 목회자가 되게 해 주소서." 이렇게 지금도 기도합니다. 물론 제가 하나님께 기도한 만큼 응답을 받았는지는 잘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점점 더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의 오심을 간절히 구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버릇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에게 직접 기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유럽 교인들은 기도가 마칠 때, 우리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멘" 하면서 기도를 끝냅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시죠? 비록 우리가 예수님 덕분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얻었지만, 예수님에게 직접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가 편지를 부칠 때에 봉투에 붙이는 우표와 같은 분이 아니며,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와 같은 분도 아닙니다. 예수님도 친히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령 하나님에게도 직접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실로 유럽의 많은 성도들은 오랫동안 이렇게 기도해 왔습니다. "창조주, 성령이여, 오소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왜 성령이 오시기를 기도해야 합니까? 성결교회가 낳은 위대한 부흥강사 이성봉 목사님은 성령을 받지 않은 자들을 일컬어, 기름이 떨어진 기계, 불꺼진 자동차, 바람이 빠진 풍금, 물이 없는 우물, 비가 없는 구름,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 알맹이 없는 쭉정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령을 받지 못한 교인은 활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지 못한 교인은 성령을 받기 이전의 제자들처럼 비겁하고(막 14:50), 혈기와 완력이 넘치고(눅 22:50), 복수심이 가득하고(눅 9:54),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이 많고(마 20:21), 질투심이 넘치고(마 20:24), 영적인 감각이 둔하고(마 16:8-9), 자만하고(눅 9:46),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약하며(마 8:26, 14:31), 십자가를 싫어하며(마 16:22-25), 영적인 세계에 무관심하게(행 1:6) 됩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아야 할 이유가 단지 우리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먼저 성령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그리고 성령은 주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2)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그리고 주님은 성령을 받을 것을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친히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4). 그래서 사도들은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19:2)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성령행전'이라고 불리는 '사도행전'에는 성령을 받은 사건이 자주 나옵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0장 44-45절에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내려왔는데, 베드로와 함께 온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의 부어주심을 보고 놀랐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어떤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제자들이 성령이 있음을 알지 못합니까? 성령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바람과 같아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 3:8).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오라, 가라"고 하며, 성령을 부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존재를 믿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나뭇가지가 흔들리면, 바람이 불어왔다는 것을 사실을 알 듯이, 거듭난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오직 물과 성령으로만 거듭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 3:5).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고 있지만, 사실 바울에 의하면 믿음도 성령의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고 바울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바로 성령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도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얻은 구원도 우리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잘 믿는 자는 잘 믿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교만하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들이 믿을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만약 믿음도 성령의 선물이라면, "왜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고, 왜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지 못하는가?"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아직도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푸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다만 사람이 이를 거부하거나 수용할 자유가 있습니다. 요한이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했다고 말했습니다만, 만약 바람이 어디서나 자유롭게 불어오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리 더워도 방문을 열어 놓지 않으면, 바람 한 줌도 방안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이처럼 성령이 어디서도 활동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문을 꼭 닫아놓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면, 마음을 열고 성령의 감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책임도 따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은 단지 믿음이 생겨나도록 활동하는 일로만 그치지 않고, 더욱 풍성한 은혜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모두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로써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찌듯이 무더운 여름에 단지 바람 한 줌만 방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시원한 바람이 많이 불어오기를 소원합니다. 이처럼 성령의 초대에 응하여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저 믿는 사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날로 성장하는 사람, 믿음의 열매가 날로 풍성해지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이 충만히 오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먼저 성령의 약속을 굳게 믿고 성령을 간구하는 자가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그리고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에 성령이 임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그리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자들은 성령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행 5:32).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 10:44)

성령을 받은 결과는 한 마디로 말할 없을 정도로 풍성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큰 변화가 생깁니다. 진리를 깨닫게 되고, 지혜를 얻게 됩니다(고전 12:8). 공의를 행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롬 14:17). 고난 속에서도 즐거워하게 됩니다(살전 1:6).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사탄이 쫓겨납니다(마 12:28). 예언을 할 수 있게 됩니다(행 11:28).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행 7:55). 전도할 능력이 생깁니다(행 4:31). 남을 섬기게 됩니다(빌 3:3).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게 됩니다(요 4:24). 기도하게 되고(롬 8:26), 찬송하게 됩니다(엡 5:18-19).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롬 5:5). 서로 하나가 됩니다(엡 3:3). 거룩하게 살게 됩니다(행 11:16, 벧전 1:2).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갈 5:22)을 맺습니다. 어디 이 뿐이겠습니까? 성령은 곧 하나님의 영이므로, 성령을 받는 자는 하나님의 모든 풍성함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래도 성령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성령을 받기를 거부하시렵니까? 이래도 성령을 소멸하시렵니까? 바울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살전 5:19)고 말했고,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30)고 말했습니다. 아니 우리 주님은 성령을 훼방하는 자에게 큰 형벌을 내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막 3: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을 부인하고 소멸하고 훼방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멈추고, 성령을 충만히 받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성령의 풍성한 은사를 맛보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찬송하며 주님의 뒤를 따라갑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성령의 충만하심과 교통하심이 늘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