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성령의 표적

 행 4:23-35

2004년 6월 20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평화가 가득히 임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지,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비가 오면, 여러분은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아마도 지난해 우리가 겪었던 지독했던 폭우가 생각나실 것입니다. 나무 등걸에 앉아 시끄럽게 울어도 정겹게 여겨지던 여름의 대명사인 '매미'도 태풍의 이름으로 사용된 바람에 이제는 기억하기도 괴로운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젊은 사람에게 비는 대개 연인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결혼하지 못한 처녀는 창가에 비가 흘러내리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며 어디선가 다가올 님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유행가의 노랫말이 있지 않습니까?  

 

봄비 오는 소리에 님일 것만 같아서
부시시 잠깨어나 창문을 바라보네 ...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는 비만 오면 성령이 생각납니다. 제가 너무 고상한 척합니까? 아마도 지난주의 설교가 성령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성령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그보다는 찬송가 172장의 노랫말 때문입니다.

 

빈들에 마른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비가 오면, 성령이 생각나는 것은 이 찬송이 비를 단지 성령에 빗대어 부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실로 이 찬송의 노랫말처럼 우리의 심령은 지금 매우 메마르고 시들어 있습니다. 삶의 형편이 나아질수록 우리의 영혼은 오히려 더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경제가 점점 곤두박질을 치며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의 마음이 더 조급해지고 황폐해졌습니다. 지난 시절에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잘 살아 왔던 우리가 이제는 조그만 어려움 앞에서도 무력해지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못 살겠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고, 젊은이든 어른이든 툭하면 자살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교회입니다. 무기력해지고 황폐해지는 영혼을 되살리고 구원해야 할 교회마저도 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저부터 그렇습니다. 봄이 되니까 몸이 나른해진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영적으로 옛날보다 훨씬 무기력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 부임한 그때보다 지금의 저 모습은 훨씬 더 나약해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이 이전보다 더 편해졌기 때문일까요? 이전보다 더 긴장이 떨어지고 나태해졌기 때문일까요? 좌우간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새벽 예배 시간에 저는 혼자서 긴 의자 바닥에 배를 깔고 길게 누워, 하나님에게 하소연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게도 약속한 성령을 좀 보내 주십시오. 오래 전부터 기도하던 대로 지혜와 사랑의 영을 충만히 부어 주십시오.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저 혼자서는 잘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게 성령의 능력을 좀 부어 주십시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더 좋은 목회자가 올 수 있도록 차라리 제가 이 교회를 떠나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고 느끼십니까? 한국 교인들의 활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경제 형편이 더 나아져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기도의 간절함도 없고, 모이는 열심도 종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지금 양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출생률 저하와 과열 교육 때문에 교회를 다니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다가 몇십 년 후에 한국 교회도 유럽 교회처럼 노인들 몇 사람만이 덩그러니 앉아서 예배를 드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교회마다 이런저런 독특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간절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 가난한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어진 경고처럼 한국 교회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미지근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부자라고 자랑하지만,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계 3:15-17).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붙잡혔다가 풀려났습니다. 교회가 점점 더 박해를 받기 시작하는 위기 앞에서 초대 교인들은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온갖 인간적인 지혜와 책략을 강구하지 않고, 먼저 한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부르짖습니다.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4:24-30).

초대 교인들은 위기 앞에서 먼저 누구에게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아뢰었습니까?  그들은 권력과 지식이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천지를 지으신 만유의 하나님에게 위험을 돌아보시고, 위험 속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그리고 병자를 고치는 등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도록 한 마음으로 간절히 빌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마음입니다. 초대 교인들은 위기 앞에서 "내 의견이 옳으니, 내 생각이 맞으니..."하면서 갈팡질팡하거나, 서로 헐뜯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소리를 높여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인 곳이 진동하고, 성령이 충만히 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4:31). 모인 곳이 진동하는 놀라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유식한 사람은 때마침 지진이 일어났다고 말할 것입니다. 물론 우연하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활동과 땅의 진동은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어마어마한 바람과 진동이 일어났을 겁니다. 이런 바람과 진동의 에너지는 바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일어났습니다. 태초에 천지창조 가운데서 강력하게 활동하던 성령이 초대교회의 탄생에 다시 강력하게 임하였습니다. 창조자 성령이 새로운 피조물의 창조와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의 출생에도 강력하게 활동하였습니다.

태초의 진동에 비하면, 이 때에 일어난 지진은 매우 미미한 것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지진은 유대 땅과 이방인의 땅을 온통 뒤엎을 만큼 멀리, 그리고 강력하게 미쳤습니다. 이 지진은 미신과 몽매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 조상에게도 미쳤습니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우리 조상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밝은 빛 아래로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초대 한국 교회에도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일어났고, 생활과 운명이 뒤바뀌는 놀라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리하여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짧은 기간 동안 기적적으로 성장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교회가 지금은 시들시들해지고 있습니다.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함께 모여,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초대 교인들이 함께 모여,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한 결과로 성령이 충만히 임했습니다. 그 결과로 어떤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오늘의 본문은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그 중의 하나는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건(4:29)입니다. 박해 앞에서 나약하고 비겁하던 교인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복음은 요원의 불길처럼 온 세계로 펴져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교회가 활력을 잃은 이유는 바로 모여서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기 시작한 데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이제 한국에는 교회가 설만한 곳에 다 섰다. 아니 교회가 너무 많다. 그리고 이제는 전도가 잘 안 된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이제 클 만큼 컸으니, 우리끼리 재미있게 지내자..." 등의 이유를 둘러대며 모이기를 게을리 하고, 그래서 기도하기를 게을리 합니다. 그러니 성령 충만을 받을 리가 없고, 그러니 복음을 담대히 전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겁니다.

물론 한국 땅에 교회당의 수는 상당히 많습니다. 밤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공동 묘지를 보는 듯이 여기저기 빨간 십자가 천지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도 한국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직도 전도해야 할 불쌍한 영혼이 지천에 늘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벌써 게을러졌고, 배가 부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옛날보다 전도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전도가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안 된다"고 마음을 먹고 전도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니 바울의 말대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 9:16). 만일 어떤 의사가 암을 치료할 수 있는 특효약을 발명하고서도 그 약을 감추어두고, 지금 암으로 죽어 가는 사람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그는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는 겁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열심히 모여서 기도하면, 성령을 충만히 받을 수 있고,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한 결과로 나타난 두 번째 사건은 바로 물질의 유무상통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4:32-36). 공산주의가 실현하려다가 실패한 기적이 바로 초대 교인들에게 일어났습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다음에 "자본주의가 완전히 승리했다"고 큰 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자본주의는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물질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더 큰 문제만을 일으킬 따름입니다.

오직 성령만이 해결책입니다. 성령이 강력히 임하니, 지진이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딛고 서 있던 전통적인 삶의 기반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하니, 복음 전도가 활발해졌습니다. 죽음의 문명을 뒤엎고 생명의 문명을 꽃피우는 새로운 생명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하니, 재물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이 무너진 다음에 사람들끼리 필요에 따라 서로 나누며 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공산주의는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하자"고 외치며 일어났지만, 결국에는 필요한 만큼도 생산하지 못했고, 필요한 만큼도 분배하지 못했습니다. 가난만을 분배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는 "마음껏 생산하고 마음껏 분배하자"고 외치며 일어났지만, 필요 이상으로 생산하여 경제 위기를 낳고 산업 쓰레기를 양산하였습니다. 소수의 부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흥청망청 낭비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꼭 필요한 만큼도 갖지 못하는 기막힌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는 비결은 오직 성령뿐입니다. 풀 수 없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도 성령뿐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복음 전도의 능력이 왕성해집니다. 그리하여 구원을 받는 영혼들이 날로 늘어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물질에 대한 집착과 염려가 사라집니다. 그리하여 작은 콩도 서로 쪼개어 먹고, 남은 물질을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주는 아름다운 사회가 생겨납니다. 이렇게 좋은 지상 낙원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초대 교회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도 지상 낙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황홀한 꿈을 꾸지 않으시렵니까? 우리 모두 이런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 가시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처럼 황홀하고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지기를 진정으로  바라신다면, 초대 교인들처럼 열심히 모입시다.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읍시다. 오직 성령만이 해결책입니다. 성령이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처럼, 아니 가뭄으로 갈라진 땅을 흠뻑 적시는 비처럼 메마르고 갈라지고 무력해진 우리의 심령과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 충만히 내리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다같이 일어나서, 172장 3-4절을 부릅시다.

 

철따라 우로를 내려 초목이 무성하니
갈급한 내 심령 위에 성령을 부으소서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참되신 사랑의 언약 어길 수 있사오랴
오늘에 흡족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