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해방기념주일 -

  갈 5:1

2004년 8월 15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0년만에 찾아온 무더위도 어느덧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합니다. 시원한 빗줄기가 달궈진 대지를 조금 적셔준 후로 날씨가 조금 시원해졌습니다. 자연의 법칙 때문에 찾아온 무더위가 또한 자연의 법칙 때문에 물러갑니다. 이처럼 순환하고 변화하는 오묘한 자연의 법칙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는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견딜까 생각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만물이 풍성히 익어 가는 결실의 계절에 무슨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생각하십시다.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지 59년이 되는 해인데, 마침 오늘은 우리 민족이 해방된 8월 15일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날입니다. 이렇게 8월 15일이 주일과 겹치는 날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런 만큼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어느 날보다 더 뜻깊게 느껴집니다. 저는 해방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일제 시대의 고통을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영화와 드라마, 소설과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같은 사람과 같은 동족으로서 우리 조상들이 겪은 종살이의 서러움이 몸에 조금 베어 있어서 그런지,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끔 저도 눈물이 납니다.

제가 가끔 즐겨 부르는 노래 중에 '바우고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우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바우고개 핀 꽃 진달래꽃은, 우리 님이 즐겨 즐겨 꺾어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여기까지는 이 노래가 오랫동안 헤어진 님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사랑의 노래인 것처럼 생각됩니다만, 마지막 가사의 느낌은 조금 다릅니다. "바우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여 년 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 집니다." 비록 문학적으로 지어낸 노래 가사이겠지만, "십여 년 간 머슴살이가 하도 서러워 눈물을 흘린다."는 가사를 들으면, 마치 제가 십여 년 간 머슴살이를 한 사람처럼 눈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사실 저도 나름대로 머슴살이라면 조금은 해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자로서 가장 힘든 머슴살이는 뭐니뭐니해도 군대생활입니다. 군대에서 보직을 잘 받거나 세상 말로 빽이 좀 있으면, 편하게 지낼 수도 있지만, 대개는 고된 생활의 연속입니다. 군인은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전쟁이 없는 동안 군인은 대개 온갖 힘든 노역에 동원됩니다. 그런데 육체 노동은 차라리 약과입니다. 내무생활은 그야말로 힘든 머슴살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별 볼일이 없는 놈들일수록 군대에 와서는 고참이라는 이름 아래 부하를 괴롭힙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상당히 좋아졌다는 지금의 군대에서도 탈영과 자살이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남자로서 남 앞에서는 울 수가 없어서 몰래 우는 군인들이 아직도 많을 겁니다. 솔직히 저도 졸병일 때에는 교회당 안에서 가끔 울곤 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그것도 같은 민족의 졸병살이도 서럽거늘, 36년 동안 왜놈의 머슴살이는 얼마나 서러웠겠습니까? 요즘에는 남의 집 머슴살이는커녕 식모살이도 잘 하지 않습니다. 사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식모살이는 고달팠습니다. 주인 눈치를 보고 사는 것은 서러움도 아닙니다. 고약한 주인이나 자녀가 있는 집에 들어가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잠시 부자 집에 들어가 살면서 과외 선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식모 두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옥상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서 올라가 보았더니, 두 식모가 바닥에 주저 앉아서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사연을 물어보니, 그 집의 작은 아들이 식모를 부지깽이로 마구 때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월급을 받고 하는 식모살이도 서러움으로 얼룩졌는데, 하물며 우리 땅에 무단히 침범한 강도에게 소중한 것들을 온통 빼앗기고 두드려 맞고 정절과 목숨까지 빼앗기며 살아온 머슴살이가 얼마나 힘들고 서러웠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는 남의 종살이를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자유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의 한 연구팀이 열 다섯 살이 된 침팬지에게 말을 가르쳤더니, 침팬지가 처음으로 표현한 말이 "나를 놓아달라, 자유를 달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동물도 빵보다 자유를 더 소중하게 여기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얼마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사람에게 자유는 빵보다, 아니 공기보다, 어느 때에는 목숨보다 더 소중합니다. 어느 날 공자가 태산 옆을 지나갈 때에 무덤에서 통곡하는 한 여인을 보고 이유를 물었더니, 시아버님과 남편과 아들이 모두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공자가 "그렇다면 왜 진작 다른 곳으로 이사가지 않았는가?"라고 물으니, 그 여인은 "비록 호랑이 때문에 무서운 곳이지만, 가혹한 정치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에 주저앉고 살아갑니다"라고 하였답니다. 언젠가 자신도 호랑이에 물려가 죽을 수 있더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자유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특히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지나간 율법시대에 행했던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이방인과의 갈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로도 여전히 할례를 고집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말합니다.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갈 5:2).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속하는 온갖 율법 조문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성취하심으로써, 율법을 폐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다는 인정을 받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합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

이제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의 법, 성령의 법 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와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유롭습니다. 그는 율법 조문이 시키는 대로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갑니다. 율법에 따라 사는 생활은 종과 같은 생활이지만, 은혜에 따라 사는 생활은 자녀의 생활입니다. 종은 상전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갑니다. 형벌이 무섭고 상급이 탐나서 상전의 명령을 따릅니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의 은혜에 감격하여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부모의 뜻을 따릅니다. 종은 아무리 순종을 잘 해도 종입니다. 하지만 자녀는 아무리 못 나도 자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눈치를 보고, 율법의 멍에에 눌려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기쁘게, 자유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유스러운 자녀의 삶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세력은 무엇입니까? 왜 사람이 사람을 억압합니까? 왜 일본은 우리를 억압하였습니까? 왜 지금도 일본은 다시 군사력을 키워가면서 은근히 주변 나라를 위협합니까? 독도는 오랫동안 우리 영토였는데, 왜 일본은 자기 땅이라고 시비를 겁니까? 왜 중국은 우리의 역사였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기의 역사라고 우깁니까? 왜 미국은 여전히 우리에게 거만합니까? 자기들의 힘을 믿고, 약한 우리를 깔보는 겁니다. 자기들의 군사력, 자기들의 경제력, 자기들의 실력을 믿고 여전히 약한 나라를 지배하려 드는 겁니다.

이 모든 소행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율법입니다. 그들의 악행은 모두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의 소행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 4:29). 성령을 따라 난 자는 다른 사람을 핍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자유롭게 하는 영이요, 살리는 영이요, 사랑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핍박합니다. 그는 육체의 힘, 자신의 힘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영광을 누릴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실로 이런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세상적으로 강한 체질을 갖습니다. 승부욕이 강하고 성취욕이 강하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서 뭔가를 이루어냅니다. 그런데 뭔가를 성취하게 되면, 이것을 자랑하기 위해, 아니 이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한껏 채우기 위해 그들은 음모를 꾸미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뺏으려고 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온갖 침략과 지배와 억압과 수탈이 생겨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강하고 잘 살아도, 실은 종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종, 돈의 종, 힘의 종, 죄의 종, 우상의종, 아니 마귀의 종입니다. 비록 그들이 남을 지배해도 마음으로는 종살이를 하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결국 허무와 죽음과 심판 아래 놓이게 됩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파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과 육체와 자신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생활로부터 풀려났습니다. 육신이 가져오는 온갖 달콤하고 일시적이고 거짓된 욕망으로부터 풀려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육체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합니다. 만약 우리 자신을 자랑해야 한다면, 오직 우리의 약함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비록 이 세상에서 지배를 당하고 억압을 당할지라도, 감옥에 갇힐지라도,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스스로 종의 멍에를 지지도 않거니와, 다른 사람에게 종의 멍에를 씌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뜻깊은 해방절을 맞이하였습니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주님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율법에서 자유롭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율법의 열매인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이 자유를 우리만이 누릴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심지어 우리를 지배하였고 지금도 지배하려고 드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당당히 선포합시다. "오직 복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아니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고, 그래서 "이 자유를 받아들이고 누리라."고, 그래서 "더 이상 자신과 남에게 부질없는 종의 멍에를 씌우지 말라."고 선포합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보혈과 순교자들의 피의 대가로 주어진 고귀한 자유를 빼앗기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고, 때를 얻든 못 얻든, 전도하기를 힘씁시다. 무엇보다 세상의 위정자들을 위해 매일 기도합시다. 지금도 억압하거나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기도합시다. 모두가 자유롭게 되는 그날이 올 때까지 기도와 전도를 그치지 맙시다. 마지막으로 복음송 하나를 부르겠습니다. "오 자유, 오 자유. 나는 자유하리라. 비록 얽매였으나, 나는 이제 돌아가리. 자유 주시는 내 주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