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어떻게 감사할까?

 고후 9:6-15

2004년 11월 21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다음 주일에 돌아오는 추수 감사주일을 뜻깊게 보내기 위해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경제는 IMF 시절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심각한 경제 불황 속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 여러분의 마음이 무척 무거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이 돌아오면, 여러분도 솔직히 마음의 부담을 느끼시겠지만, 목회자의 마음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평소에 헌금에 관해 잘 설교하지 않는 저로서도 이 절기 때만은 헌금에 대해 설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러분에게 따뜻한 위로는 드리지 못할지언정 오히려 시험을 주는 설교를 할까 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저는 여러분을 기쁘게 하는 설교를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씀은 결국 여러분에게도 참된 유익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농촌에서 맞이하는 추수감사주일은 도시에서 맞이하는 추수감사주일보다는 훨씬 뜻이 깊습니다. 가을이 되면, 도시 사람들도 햅쌀을 비롯하여 풍성한 곡식과 과일을 맛볼 수 있지만, 그래도 농사를 직접 하지 않거나 농사 현장을 직접 보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도시 사람들의 추수감사주일은 싱겁기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시 사람들은 추수의 감격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해마다 돌아오는 추수감사예배는 감격과 감사 속에서 드리기보다는 그저 연례적인 행사의 하나로 습관적으로 드리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이 날에 드리는 감사헌금은 추수에 대한 감사헌금이라기보다는 누적된 교회의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드리는 분담금처럼 오해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다 보니, "왜 해마다 농사도 하지 않은 도시 사람이 추수감사주일을 지켜야 하는지?" 가끔 회의가 들 때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농촌에서 드리는 추수감사주일은 훨씬 실감이 납니다. 비록 저는 직접 농사하지는 않았지만, 농촌 현장을 눈으로 목격하면서 살기 때문에 농사가 얼마나 힘든 노동인가를 알게 됩니다. 알곡 하나 하나, 열매 하나 하나에 농부의 땀과 정성이 얼마나 배어 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 일에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지, 농부들이 날씨 때문에 얼마나 애를 태우는지를 느낍니다. 그러므로 좋은 날씨를 통해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농부의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9장 10절의 말씀처럼 비록 씨를 뿌리고 식물을 가꾸는 자는 사람이지만, 우리에게 심을 씨와 풍성한 열매, 먹을 양식을 주시는 분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경제 불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두 가지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는 사상 최대의 수확을 허락하셨습니다. 쌀의 작황은 역대 최고였던 1997년보다 더 풍작이라고 하며, 각종 채소와 과일도 사상 최대의 풍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수출 목표액도 2,000억 달러를 달성했다고 합니다. 1964년에 1억 달러를 수출하기 시작해서, 만 40년만에 2,000배의 수출성과를 거두었다니, 경제 불황 속에서도 우리 민족을 잊지 않으신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 중에 나오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큰 기근을 당하였기 때문에 바울에게 구호를 요청하였습니다(갈 2:10). 그래서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중에 마케도니아 지방을 순회하면서,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호헌금을 모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부자 교인들이 비교적 많았기 때문에 바울이 큰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은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구호헌금을 모금하는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헌금을 독려하는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과 교회의 사역 등을 가르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깨달음과 감사하는 생활을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말씀에 따르면 헌금을 드리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데 헌금의 목적이 있습니다. 물론 헌금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됩니다. 헌금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쓰입니다. 그리고 헌금은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데 쓰입니다.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 쓰입니다(12-13절). 하지만 헌금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11-12절). 그리고 헌금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13절).  

9장 11절-12절의 말씀에서 바울은 헌금을 '봉사의 직무'라고 말합니다. 누구를 위한 봉사라는 말입니까? 헌금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위한 봉사,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헌금이 결과적으로 사람을 위해 쓰이더라도, 헌금을 드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헌금을 할 때마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드려야 합니다. 비록 헌금이 사람과 교회를 위해 쓰인다고 하더라도, 헌금을 받으시는 분은 사람과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헌금을 드리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면, 헌금을 어떤 자세로 드려야 하는지는 분명해집니다. 바울은 7절-11절에서 '헌금을 드리는 자세'에 관해 구체적으로 가르칩니다. 먼저, 헌금은 관대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색하게 헌금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12절에서 "넘치게, 많이 감사하라"고 가르칩니다. 골로새서 2장 7절에서도 바울은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하고,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도 바울은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4장 15절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라."고 말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넘치게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넘치게 하나님께 감사의 헌금을 드려도, 하나님의 은혜에 넘치게 보답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감사는 항상 부족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성을 아십니다. 하나님께는 액수가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성, 우리의 마음을 받으십니다. 아무리 많이 헌금을 드려도, 정성이 없는 헌금은 초라합니다. 아무리 적은 헌금을 드려도, 온 정성을 기울인 헌금은 참으로 큽니니다. 그런데 정성이 넘치면, 헌금도 넘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헌금은 자발적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헌금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헌금할 때,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드리기보다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목사님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성도와 비교하면서 헌금을 드리면, 결국 헌금은 억지로 드려지는 셈입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억지로 드리는 헌금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안 드리는 것만도 못할 것입니다. 작은 액수라도, 자발적으로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끝으로 헌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슬픈 마음으로 헌금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헌금을 아무리 많이 내어도, 슬픈 마음으로 드린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리가 없습니다. 정말 작은 액수라도 기쁘게, 즐겁게,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헌금을 드리는 자는 어떤 유익을 얻습니까? 헌금은 드리는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것을 돌려 받으려고 계산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는 자세는 옳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릴뿐입니다. 아무리 많이 헌금을 드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충분히 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다 보답하지 못합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보답을 하시지 않더라도, 아니 오히려 고난으로 인도하시더라도, 우리는 헌금을 많이 상을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자녀의 자세로, 빚진 자의 자세로,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릴 따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성에 반드시 보답하신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9장 6절에서 바울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느니라"(6절)고 말합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것은 농사의 법칙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많이 헌금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보상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헌금의 법칙' 혹은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라는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헌금을 많이 드린 사람이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많은 보답을 받는지에 관해서는 바울이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헌금을 결코 잊지 아니 하시고 그에 합당한 열매로 보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언제 보답하십니까? 과일 나무를 심으면, 심은 그 해에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아니면 몇 년 후에 거둘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손 대대로 거둘 수도 있습니다. 나무는 자연의 법칙을 어기지 않습니다. 하물며 자연 법칙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어기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즐거운 마음으로, 넘치게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흘러 넘치도록 풍성한 복을 자손 대대로 부어주실 것입니다. 추수 감사주일을 앞두고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에 감사가 흘러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