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주의 길을 곧게 하라

 막 1:2-7

2004년 12월 19일, 현풍제일교회

 

 

올해도 어김없이 주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성탄절을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산타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기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일까요, 아니면 연말마다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불우한 이웃들일까요? 눈이 내리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기다리는 연인들일까요, 아니면 오래간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식구를 기다리는 사람들일까요? 올해의 성탄절을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마도 상인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랜 경제 불황에다가 따뜻한 겨울 날씨 때문에 상품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상품을 많이 팔았으면 하고 소원하는 상인들이 성탄절을 가장 애타게 기다리지 않을까요? 성탄절이 다가오면, 여기저기서 성탄 노래 소리가 들리고, 나무와 빌딩과 교회당에 걸린 아름다운 전등 불빛이 어둠을 환하게 밝히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성탄절을 손꼽아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기다림은 예수님의 탄생과는 별로, 아니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그 때에는 이런 종류의 기다림은 전혀 없었습니다. 몇몇 사람들 외에는 예수님이 태어나신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니 성탄 음악과 성탄 등불, 성탄 선물과 상품이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단지 동방 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으며,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 기쁜 마음으로 경배하였을 따름입니다. 오늘날처럼 화려한 날도 아니었거니와, 실컷 즐기거나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만약 성탄절에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가장 애타게 기다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큰 선물은 없으며, 예수님의 탄생보다 더 즐거운 소식이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많이 널리 알려야 할 분이 없으며, 예수님보다 더 찬란한 조명을 받아야 할 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성탄절에는 오직 예수님만을 기다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경배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즐거워합시다.

그리스도인에게 성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단지 2천년 전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도 물론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수많은 위인들처럼 옛날에 태어났다가 옛날에 돌아가신 분이 아니요, 그래서 영원히 되돌아보아야만 하는 과거의 인물만은 아닙니다. 옛적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지금도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며, 장차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의 의미는 옛적의 성탄절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오심을 미리 준비하는 사람을 보내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성경에 쓰여 있듯이,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한 말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렇게 전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3). 옛날이나 지금이나 높은 분이 어느 마을에 들어올 때, 준비하는 사람을 미리 보내어 점검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길을 점검하는 일입니다. 만약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난하다면, 길을 곧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높은 분이 안전하고 신속하게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 길을 준비하고 길을 닦는 사람을 미리 보내셨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세례 요한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가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그래야 우리도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할 수 있을 게 아닙니까! 우리 마음, 우리 가정, 우리 사회, 아니 온 땅에 예수님이 속히 오실 수 있도록 우리도 굽은 길을 곧게 펴 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님의 길을 곧게 펼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본받기로 합시다.

먼저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세례 요한은 부패와 혼란의 시대에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회개할 것을 선포함으로써,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시켰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를 뜻하는 헬라어는 '메타노이아'인데, 이 말은 방향을 180도로 돌이킨다는 뜻입니다. 과거의 죄를 뉘우칠 뿐만 아니라 생각과 생활 전체를 완전히 뒤바꾼다는 뜻입니다. 잘못한 생각과 행위를 뉘우쳐 새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새로운 생활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는 통과 의식이 바로 세례입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는데, 요단강은 이방인의 땅 광야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베푼 세례는 바로 침례, 즉 강물에 완전히 몸을 담그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과거로부터의 완전한 단절, 완전한 새 출발, 완전한 탈출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새 출발의 상징으로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시작하실 때, 먼저 "회개하라"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왜 회개하고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오늘 인용된 이사야의 본문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날에는 모든 곳이 두루 평탄해진다는 말입니다. 정신적, 도덕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불평등과 차별이 완전히 철폐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만하고 높은 자는 낮아질 것이고, 낮고 온유한 자는 높아질 것입니다.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가진 자는 이것들을 잃을 것이고, 연약하고 가난하고 비천한 자는 땅을 차지하고, 배부를 것이고,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임신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친척 엘리사벳에게 달려가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합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눅 1:51-53). 예수님이 오시는 날,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하는 날,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이 일어납니다. 실로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이 땅은 점차 그렇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 안에서 예수님이 더 가까이 오시는 지금 이것은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영광 중에 재림하실 그 날에는 이것이 완전히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려는 사람,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받으려는 사람은 먼저 회개를 해야 합니다. 죄악과 교만과 탐심을 물리치고, 자신의 생각대로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생각해야 하며, 예수님이 실천하신 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한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청빈한 생활을 했습니다.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세례 요한은 왜 광야에서 청빈한 생활을 했을까요? 원래 재산과 능력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때를 만나지 못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세상을 비관하였기 때문일까요? 원래 그가 가난했는지 부자였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염세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세상을 기다렸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아니 메시야가 오시는 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눈에는 세상의 영광이 장차 임할 하나님의 영광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세상 영광이 아무리 크고 놀라워도, 솔로몬의 말대로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헛되고 헛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하지만 저는 덧붙여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현재의 영광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한 이사야도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사 40:6-7).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세례 요한이 살던 세상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도록 눈부시게 발전한 세상입니다. 세례 요한이 보았던 세상의 영화는 지금 우리가 보는 세상의 영화와 족히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여전히 풀이요, 안개요, 구름이요, 바람입니다. 인생의 영광은 잠시 피었다 금방 시드는 꽃이요, 잠시 빛을 발하다 금방 꺼지는 모닥불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을 비관하거나 도피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이생을 즐거워하고 감사히 살아야 하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드는 이 땅의 문명은 영원하지 않고,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도리어 인간을 끝없이 초라하게 하고, 늘 헐떡이게 하고, 늘 불안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이 세상을 비관하거나 도피하지 않지만,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거나 이 세상을 숭배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차 우리에게 이 세상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흥청망청 살면 안 됩니다. 만약 많은 권세와 재물과 영광을 가졌다면,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나누어야 합니다. 마치 이생이 전부인 것처럼 이생의 온갖 영광을 누리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다가올 하나님의 영광을 기다리면서, 절제하고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가시나무'라는 제목의 복음송에 이런 노랫말이 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그렇습니다. 내 속에 욕심이 너무 많으면, 주님이 들어오실 공간이 없습니다. 이 땅의 생각으로 가득 차면,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올 곳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밤에도 여관과 화려한 집들은 예수님을 맞이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빈들에서 온유한 양을 치던 가난한 목동들과 하늘을 바라보던 맑은 마음의 동방 박사들만이 주님을 모실 수 있었습니다. 오직 누추한 마구간만이 주님이 누우실 곳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도 주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아니 주님은 지금도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며, 영광 중에 재림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나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합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더 신속히 오실 수 있도록 길을 닦고 준비합시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진심으로 회개합시다. 잘못된 생각과 행위와 방향에서 돌이킵시다. 그리고 장차 임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서 검소하고 절제하며 삽시다.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직장,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이 더 찬란히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