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임마누엘

 마 1:18-25

2004년 12월 26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 동안 가장 좋았던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지금도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겁니다. 남녀, 노소간에도 생각의 차이가 있을 겁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세월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과 인종과 나이와 환경을 뛰어넘어, 세월이 가더라도 변함없이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감리교를 창시한 위대한 전도자 요한 웨슬리는 임종 직전에 이런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보다 더 행복하고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고 느끼십니까?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어려운 일을 성공했을 때입니까? 보람있는 일을 했을 때입니까? 아니면 우연히 큰복이 왕창 굴러 들어왔을 때입니까? 아니면 병들고 초라하고 외로울 때입니까? 실패하고 절망할 때입니까?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시든, 어떤 상태에 있든, 여러분의 기분과 상관이 없이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까? 하나님이 외로우시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에게 부족함이 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때로는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유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를 고통에서 해방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때로는 곤경에 빠진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섭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때로는 즉각 도와주시지 않고 우리의 고통을 통해 더 큰 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단호히 "사랑이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공의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심판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수상한 도깨비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사랑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랑이 무엇입니까? 나훈아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조영남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랑했기에 멀리 떠난 님은 기다림 속에 잠들어 있네." 가수마다, 사람마다 사랑을 제 각기 달리 노래했습니다만, 사랑의 가장 깊은 뜻은 뭐니뭐니해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연인을 보고 제 아무리 뜨겁게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연인으로부터 자꾸 도망가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는 헤어질 순 있어도, 영원히 헤어지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큰 즐거움과 영광이 주어지더라도, 제 아무리 큰 시련과 고통이 오더라도, 헤어지지 않고 함께 있는 것,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오직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는 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고 헤어지기 싫은 법입니다. 무슨 핑계를 둘러대도, 함께 있기를 싫어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정말 함께 있기 싫은 사람은 잠시 별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지만, 그리고 별거는 이혼보다는 낫겠지만, 별거는 사랑이 아니라 냉전입니다. 성공이 실패보다는 낫겠지만, 남을 누르고 혼자만 누리는 영광보다는 차라리 모두 함께 누리는 고통이 훨씬 더 낫습니다. 이 때의 고통은 쾌락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압니까? 자연 만물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왜 사람이 이 땅에 이렇게 늦게 생겨났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공룡이 나오기 전에 생겼을 수도 있고, 공룡 시대에 생겼을 수도 있을 텐데, 왜 공룡이 멸종한 후에 생겨났을까요? 만약 사람이 공룡보다 먼저 나왔더라면, 음식과 연료를 구하기가 어려워 아마도 살기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만약 사람이 공룡 시대에 나왔더라면, 거대한 공룡에 밟히고 먹혀 죽었을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 땅에 만드시기 전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준비하셨음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자연이 자연(自然)이라는 말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이라면, 자연이 사람에게 왜 유익한 것을 많이 제공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자연이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손해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을 고맙고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수없이 일어나지만, 역사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발자국을 더듬어 알 수 있습니다. 동서양을 통틀어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습니다. 동양의 속담에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시편 1편도 "의인의 행사는 형통하고,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의인은 잠시는 망하는 것 같으나, 길게 가면 흥합니다. 악인은 잠시는 흥하는 것 같으나, 길게 가면 망합니다. 삼대 정도만 내려가도, 대충 판가름이 납니다. 그래서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헤겔은 말했습니다. "세계사는 심판사이다." 세계의 역사는 곧 그 자체로서 이미 일어난 일을 심판하는 역사라는 말입니다. 역사가 제 아무리 혼미해도,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섭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가장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과 역사를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전달하셨지만, 이 사랑을 부인하고 타락과 멸망에 빠져드는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온 백성의 빛으로 세우시고, 온갖 기적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주시고, 왕을 세우시고, 사사와 예언자와 선지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이처럼 인류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다양하지만 지속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배반하고 변절한 이스라엘과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은 결국 친히 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바로 그분이 구유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입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던 날 밤에 천사가 말하기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하였습니다.

위대한 선교사 리빙스턴이 16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험한 세월을 보내고 잠깐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27번째로 열병을 앓아 몸이 몹시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사자에게 물린 한쪽 팔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글래스고우 대학생들 앞에서 설교를 하면서 아주 감동적인 간증을 하였습니다. "힘들고 고독한 선교사 생활 가운데서 저를 지탱해 준 것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주님의 약속이었습니다."라는 간증을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고 큰 힘이 되고 큰 기쁨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약속입니다.

한 장의 종이는 아무나 찢을 수 있고 구멍을 낼 수 있을 만큼 약합니다. 그러나 종이를 강한 접착제로 벽에 붙이면, 찢기도 어렵고 구멍을 낼 수도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은 연약합니다. 쉽게 넘어집니다. 쉽게 깨어지고, 망가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우리는 담대하고 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능히 당할 자가 없듯이, 우리를 능히 이길 자가 없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을 향해 나아갈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수 1:6).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도 제자들에게 이와 똑같은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꼭 명심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든,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지만 부모가 언제나 자녀와 함께 하지만, 강한 자녀보다는 약한 자식에게 더 가까이 가듯이, 하나님도 우리가 강할 때보다는 우리가 연약할 때에 더 가까이 오십니다. 부모가 자식을 고루 사랑하지만, 불의하고 완고한 자녀보다는 정직하고 순종하는 자식을 더 사랑하듯이, 하나님도 불의한 사람보다는 의로운 사람에게 더 가까이 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사랑은 두루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에게 해와 비를 고루 내려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부름을 받은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특별히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수아 1장 7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불평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편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한, 신실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비록 아골 골짜기를 지나더라도, 고통의 골짜기를 헤맬지라도, 하나님은 바로 거기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영광의 길로 달려갈지라도, 세상 말로 출세가도를 달릴지라도, 만약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이 아니므로 곧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을 늘 사랑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애쓴다면,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감사하고, 노래할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전에 한번 들려드린 적이 있는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글을 다시 한번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그는 예수님과 함께 해변가를 따라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을 가로질러 그의 삶의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마지막 장면이 그의 앞에 펼쳐졌을 때, 그는 모래 위에 새겨진 자신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또한 그의 삶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슬펐던 일들이 일어났음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그를 괴롭게 했고, 그래서 그는 주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면 항상 저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은 언제나 저와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삶의 가장 어려웠던 순간들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 밖에 없음은 어찌된 일입니까? 왜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주님께서는 저를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정말 소중한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너를 결코 떠난 적이 없었단다. 네가 고통과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모래 위에서 한 사람의 발자국을 본 것은, 그 때에 내가 너를 업고 지나갔기 때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