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소망이 넘치소서!

롬 15:13

 2005년 1월 2일, 현풍제일교회

 

 

2005년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복이 충만히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엊그제 새 해에 떠오르는 첫 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들이 동해안으로 몰렸다고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려면, 대개 동해안 바닷가나 그 근처로 가야 합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는 교회에서 밤을 지샌 후, 부산 해운대 바닷가로 달려가 추운 발을 동동 굴리며 새 해를 기다린 적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에 저의 가족이 송구영신예배를 드린 후, 동해안까지는 가지 못하고 대관령 휴게실 근처의 작은 동산에 올라 강추위에 오돌오돌 떨며 새 해를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에는 구름이 많이 끼인데다가 강원도의 추위가 얼마나 매섭든지, 해맞이를 포기하고 휴게실로 내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바닷가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까운 높은 산에라도 올라가 새해를 보려고 합니다.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맞이하는 것은 물론 낭만과 추억거리도 되겠지만, 사실 그러자면 경비도 좀 들어가야 하고, 마음과 몸 고생도 적지 않습니다. 이제 저는 누가 돈을 많이 싸다준다 해도, 그런 고생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살림살이도 그리 넉넉하지 않은데, 아니 살림살이가 상당히 어려워졌는데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은 경비를 들이면서까지 그런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겁니까? 2004년에 마지막으로 바라본 태양과 2005년에 다시 바라보는 태양은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더 밝아진 것도 아니고, 더 크진 것도 아닙니다. 더 아름다워진 것도 아닙니다. 물론 바닷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조금 아름다울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 정도의 즐거움 때문에 큰 고생을 자초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해맞이를 하려는 이유는 단지 낭만을 즐기려는 것만도 아니고, 추억거리를 만들려는 것도 아닙니다. 올해를 건강하게 보내려고 추위를 견디는 훈련을 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돈과 여유가 많다고 자랑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해가 어둠을 헤치고 밝게 떠오르듯이, 해가 어둔 절망을 깨뜨리고 밝은 소망을 안겨주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애타게 보려는 것은 실로 태양이라기보다는 소망입니다. 그래서 미신이나 무속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태양을 바라보며 합장을 하거나 손을 빌면서, 마음에 품은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실로 소망은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절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잘 사는데 무엇 때문에 간절한 소망을 품겠습니까? 오직 절망하는 사람만이 소망을 간절히 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달리 경제가 어려운 올해에 유달리 더 많은 사람들이 해맞이를 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좀 없어도 그럭저럭 살 수 있습니다. 사랑이 메말라도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도 대충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소망이 없다면, 그는 살았다 하나 죽은 사람이요, 곧 죽을 사람입니다. 소망은 마치 공기와 같아서, 만약 공기가 사라지면 사람이 곧 질식해서 죽듯이, 소망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서서히 죽어갑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악명이 높은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갇혔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프랭클 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한 가지 진리를 터득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악조건을 견디지 못하고 병들어 죽거나 자살하는 사람은 몸이 허약하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소망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 꼭 살아서 가족 품에 안겨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 그래서 살아야 할 소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살아 남더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영원한 죽음을 초래하는 죄인들의 목록이 나옵니다. 이 목록을 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살인한 사람들과 두려워한 사람들과 다른 여러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사람들은 바로 두려워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들이란 바로 소망을 포기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소망을 포기한 사람들이 곧 멸망한 사람들이 되더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1장도 말하길,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소망을 포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광야에서 엎드려 죽었습니다. 40년 간의 광야의 방황 생활 끝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을 믿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소망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는 곳마다 불평했습니다. 과거가 더 좋았다. 애굽으로 되돌아가자. 모세가 무능하다. 지도자를 바꾸자. 이처럼 소망이 약하거나 소망이 없기 때문에 매사에 불평을 늘어놓았던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까지도 불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 그러니 안 보이는 하나님 대신 보이는 황금 송아지를 만들자. 그래서 그들은 결국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처럼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은 마음에 소망이 고갈한 나머지 마음을 온통 불평으로 가득 채운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소망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에게 큰 죄를 짓는 일이요, 자신에게도 큰 불행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단테가 쓴 신곡(神曲)을 보면, 지옥 문 앞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져 있습니다. "지옥의 문을 들어가는 사람은 소망을 영원히 버릴지어다." 하지만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미 소망을 버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갈 곳은 지옥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 중에 사랑이 제일이다"(고전 13:13)고 말했지만, 소망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소망이 없는 사랑은 공허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히 1:1)"고 말하고,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란다"(고전 13:7)고 말합니다. 소망이 없는 사랑은 힘없는 사랑이요, 그래서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세상말로는 짝사랑이라고 합니다. 일방적인 짝사랑은 참으로 괴롭고 허망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찬가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전 13:4)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참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의 잘못을 오래 참고, 남편과 아내의 잘못을 오래 참습니다. 왜 사랑은 참습니까? 힘이 없어서 참습니까? 속병과 화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참아야 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상대방의 현재만을 바라보고 성급히 판단하거나 성급히 화를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미래를 믿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상대방에 거는 소망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이 넘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수 차례의 고난과 실패에도 굴복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고 다시 일어나는 끈질긴 정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소망이 넘치는 사람은 어떤 역경과 오해와 고통도 잘 참습니다. 오래 참습니다. 승리할 날이 반드시 온다고 믿기 때문에 끝까지 참습니다. 아니 승리의 그 날을 미리 마음에 그려보기 때문에 역경 중에도 기뻐합니다. 남들이 미쳤다고 비웃어도, 웃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만 "환난 중에 참아라"(롬 12:12)고만 말하지 않고,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롬 5:3)고 말합니다. 만약 환난 때문에 포기하거나 좌절하지만 않는다면, 환난은 도리어 더 큰 소망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롬 12:12)고 말합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여러모로 형편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설령 올해가 작년보다 여러모로 더 나빠진다고 해도, 저는 소망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어두울수록 밤하늘의 별은 더욱 빛이 납니다. 그처럼 저도 어려울수록 더욱 소망의 빛을 발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소망은 포기할지언정,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에 대한 소망은 절대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시지 않을 줄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끝까지 돌보시고 함께 하시리라 믿고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오히려 더 큰 일을 하시리라 믿고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줄을 믿고 바라기 때문입니다(롬 8: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도 여전히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여러분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