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부모를 공경하라

엡 6:1-3

2005년 5월 8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므로 오늘은 에베소서 6장 1-3절을 통해 "부모를 어떻게 공경하는 것이 옳은지?"에 관해 소중한 깨달음을 얻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은 말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 여기서 "자녀들아!"라고 부르면서, 부모를 공경할 것을 명령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물론 여기서는 분명히 에베소서 교인들에게 편지를 쓴 사도 바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부모가 되어보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부모가 되지 못한 사람이 부모의 심정을 어찌 알겠습니까? 부모의 심정은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부모가 된 심정으로, 혹은 부모의 권위로 부모 공경을 명령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도 육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났고, 그래서 부모의 은혜를 누구보다 잘 잘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여기서 자신의 부모 경험을 토대로, 혹은 부모 세대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부모 공경을 명령하지도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누구의 권위로, 누구의 말을 빌려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권위로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실로 부모를 공경할 것을 명령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 가운데 엄연히 새겨져 있습니다. 십계명은 두개의 돌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돌판은 첫째 계명으로부터 넷째 계명을 새긴 돌판으로서 하나님에 관한 계명입니다(1.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 우상을 만들지 말라. 3.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둘째 돌판은 다섯째 계명으로부터 열째 계명을 새긴 돌판으로서 사람에 관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부모 공경의 계명은 둘째 돌판에 새긴 계명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이처럼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중에서 가장 먼저 오고 그래서 인간의 도리로서 가장 근본이 되는 부모 공경을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살이로부터 구원하신 분이시며, 광야 생활 동안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분이십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 되시며, 생명의 창조주가 되십니다. 바로 이런 분이 부모 공경을 지엄하게 명령하십니다. 자식들에게 부모 공경을 명령하시는 분은 자식들을 낳고 기르신 부모가 아닙니다. 설령 부모가 그런 명령을 내렸다고 해도, 자식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예, 당연히 그래야 하죠!"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속이 좁은 소인배요, 온갖 욕심과 죄악으로 얼룩져 있는 우리 인간들은 겉으로는 그런 말을 해도,  속으로는 이런 말을 늘어놓을지도 무릅니다. "아이구, 자식을 안 낳고 안 기른 부모가 어디 있나? 날 낳고 길렀다고 자기를 공경하라고? 날 낳아달라고 했나? 부모들끼리 좋아하다가 날 낳아놓고는, 이제 와서 나보고 은혜를 갚으라고? 나한테 보답과 보상을 받으려고 날 낳았나? 더욱이 부모가 나에게 특별히 잘 해 준 게 뭐야?" 부모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요즘에는 더욱 핏대를 올리며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미리 예상하셨는지, 하나님은 오래 전에 부모 공경을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여기시고, 돌판에 분명히, 깊이, 영원히 새겨놓으셨습니다. 이런 명령을 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 부모에게 하듯이, 그렇게 함부로 대들 수 있는 만만한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 중의 부모가 되실 뿐만 아니라, 부모의 부모, 최초의 부모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핑계와 변명, 반박을 늘어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대가와 요구도 없이, 공짜로, 천하보다 더 소중한 생명을 주셨고, 생명이 이어가기에 꼭 필요한 모든 좋은 것들, 공기와 해와 물과 식물과 동물 등을 주셨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모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없이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부모가 일찍 우리를 버리셨거나 돌아가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겠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나중에 폭군이 되어 임금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 성종 임금은 그를 늘 측은히 여겼습니다. 하루는 연산이 밖에서 놀다가 돌아온 연산에게 성종은 물어보았습니다. "오늘 무엇을 보았느냐?" 그러자 연산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어미 소를 따라가며, '엄마' 하고 부르는 송아지가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어린 아들 연산의 이 말에 아버지 성종은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만약 그가 일찍이 어머니를 잃지 않았다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폭군의 길을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는 우리에게 생명과 같이 소중한 분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생명을 돌보시는 참 부모, 하늘의 부모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주 밖에" 있는 자들, 불신자들도 부모를 공경하거늘, 하물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어찌 마지못해, 의무로 부모를 공경하겠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지당한 일입니다. 설령 하나님의 약속처럼 우리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가치관과 생활 방식의 변화로 인하여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도 이제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모시는 것이 더 이상 미풍 양속이 되지 않으며, 장남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도 이미 낡은 관행이 된 지 오래입니다. 자식들도 할 수만 있다면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고 합니다. 늙은 부모도 더 이상 눈칫밥을 얻어먹기 싫어서, 그리고 자식 종살이, 손자손녀 종살이, 며느리 종살이를 하기 싫어서, 구차하고 가난해도, 혼자 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혼자 사는 노인들이 점점 늘어만 갑니다. 혼자 사는 것이 부모로서는 마음이 더 편하고 자유로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더 많은 유산을 물려받으려고 피가 터지게 싸울지언정, 부모를 모시려고 서로 싸우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불경과 불효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이미 내다본 듯이, 사도 바울은 오래 전에 젊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 3:1-5). 젊은 디모데에게 한 바울의 경고 말씀은 바로 바로 이 시대에 꼭 들어맞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부모를 거역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니 그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일입니까? 우리가 어리고 여릴 적에 부모가 우리를 구체적으로 사랑해 주셨듯이, 마음과 몸으로, 물질로 우리를 섬겨 주셨듯이, 이제 어른이 된 우리도 연약해진 부모를 구체적으로, 마음과 몸으로, 물질로 부양하고 섬겨야 합니다. 부모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 입을 것과 덮을 것을 드려야 하며, 얼굴과 손과 발도 씻어드려야 합니다. 이런 것은 기본적입니다. 이런 것으로 부모 공경을 다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실 요즘의 부모는 옛날의 부모와 달리 물질적으로 점점 더 나아지고 있습니다. 설령 부모가 물질적으로 좀 궁핍해도, 자식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물질적인 부양만은 아닙니다. 자식 부양과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후라도, 소와 논을 다 팔아 자식 뒷바라지를 해서 자식을 자립시키고 출세시킨 후라도, 자식에게 응당한 보상과 대접을 요구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오히려 부모는 늙어서 자식에게 부담을 줄까 봐, 어려운 형편을 숨긴 채, 도리어 자식을 더 걱정하지 않습니까? 도리어 부모에게 무거운 부담을 줄까 봐 가출하거나 자살하는 자식은 보지 못했지만, 자식에게 무거운 부담을 줄까 봐 가출하거나 자살하는 부모는 가끔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부모가 정말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그래서 자식이 진심으로 부모에게 표해야 공경의 방법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인격적인 것입니다. 부모가 가난하고 늙고 병들고 미워진다고 하더라도,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부모가 자식보다  아무리 지혜로워도, 자식에게 강제적으로 순종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자식은 자랄수록 고집과 교만이 늘어가기 마련이므로 자식에게 강요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욱이 부모는 모든 것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시대에 자식과 발맞추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이럴수록 자식은 부모를 "무식하다"고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어릴 때에 부모가 자식을 자상하게 가르쳤듯이, 부모에게 자상하고 친절하게 조언해야 합니다. 설령 부모에게 순종은 하지는 않더라도, 제발 부모를 멸시하지는 마십시오. 아무리 노망이 들고 치매가 들어가는 부모라도,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고, 끝까지 부모를 존중하십시오.

부모를 존중하고 공경하는 가장 중요하고 손쉬운 방법은 부모의 말벗, 친구가 되어 드리는 것입니다. 자주 찾아 뵐 수 있다면 더 이상 좋을 수 없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자주 전화라도 해 드리고, 아는 것도 자주 물어보고, 자주 대화의 상대가 되어 드려야 합니다. 가난보다, 고통보다, 늙는 것보다 더 서러운 것은 외로움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든지, 형제와 자매 관계든지, 결국 나이가 들고 함께 늙다 보면, 모두가 친구입니다. 인생의 동반자입니다. 나그네 인생의 길동무입니다. 인생은 험하고 괴로운 고갯길 연속입니다. 이런 형편에 친구마저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슬프겠습니까? 부모를 공경한답시고, 머리만 숙이고 마음은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지기보다는, 차라리 머리를 숙이지 않고 때로는 서운한 말도 할지언정, 부모를 가까이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부모 공경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부모를 가까이 한답시고, 부모에게 무거운 걱정거리를 주는 것은 더 큰 불효가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자주 찾아 뵙고 좋은 것을 많이 드리지는 못하더라도, 자주 좋은 대화의 친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자식이 잘 사는 것만으로도 부모에게는 큰 효도가 됩니다. 부모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발 잘 사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자식들을 보고 늙어가는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흐뭇하겠습니까? 행복한 자식들에 둘러싸여 눈을 감는 부모는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모에게 물질적으로 잘 해 드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부모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드리는 것은 더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일, 아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부모에게 자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의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지금도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맛있는 것, 아름다운 옷을 사드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저를 낳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한 것입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무슨 것으로 부모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부모가 생전에 자식에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그 동안 쌓였던 서운하고 미웠던 감정은 눈 녹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자식을 낳고 기른 보람이 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니 "죽어도 이제는 여한이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고 고백합시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부모를 본 자식이 어찌 부모를 공경하지 않겠습니까? 대를 이어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이 어찌 잘 되지 않겠으며, 어찌 땅에서 장수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버이 주일, 어버이의 날만이 아니라 일년 365일 동안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하고, 여러분의 사업이 잘 되고, 기왕이면 장수까지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