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너희도 열매를 맺으라

(한가위 설교)

 요 15:1-16

2005년 9월 18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은 한가위입니다. 한가위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을 축하하는 뜻깊은 민속 명절입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땀흘려 가꾼 대가로 온갖 곡식과 열매들이 알차게 여물었습니다. 올해는 다행히 태풍의 피해가 적었습니다. 그리고 강수량과 일조량도 적당하여 열매가 잘 익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한가위가 주일과 겹쳐 있기 때문에 몇몇 성도들은 가족과 친지, 고향을 찾아 멀리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어디서나 먼저 하나님께 예배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한가위와 동시에 주일을 지키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시고 싶어하시는 말씀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희도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중에서 농사를 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열매를 거두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을 한 부부들은 태의 열매, 자식들을 낳고 기르실 것입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한 결과로 여러 가지 소득을 거두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도는 이 밖에도 특별히 맺어야 할 열매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달리 우리 성도들은 자연의 열매, 육신의 열매만이 아니라 신앙의 열매, 영적인 열매도 맺어야 합니다. 더욱이 오늘 우리는 한가위와 함께 한 해가 서서히 저물러 가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올해도 몇 달이 남지 않았습니다. 아니 두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은 무슨 씨를 뿌렸고, 무슨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만약 아직 충분한 열매를 거두지 못하신다면, 남은 세월을 허송하지 말고 더욱 땀흘려 일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포도나무라고 칭하십니다. 여기서 가지는 누구를 말합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긴밀한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의 본체가 되신다면, 제자들은 본체에 자라난 가지들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나의 생명체로 서로 묶여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서로 뗄 수 없는 생명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머리와 몸으로 비유한 것과 비슷합니다. 포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즐겨 먹는 열매이고, 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포도주의 원료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교회는 이제 포도나무가 되시는 예수님의 허리에서 자라난 가지들입니다.   

가지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농부가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는 목적은 오직 열매 때문입니다. 포도나무를 보면, 열매를 빼고 나면 다른 것은 거의 쓸모가 없습니다. 뿌리를 먹는 것도 아니고, 줄기를 목재로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가지는 아무 쓸모가 없고, 잎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꽃도 장식용으로 사용되지 않고, 나무 모양도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땔감으로도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포도나무의 가치는 오직 하나, 탐스런 포도를 주렁주렁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해 동안 정성을 다해 나무를 기르고 가꾸었는데도 나무가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농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뿌리를 뽑거나, 찍어버립니다. 한 마디로 없애 버립니다.

성도가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그렇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성도는 농부가 되신 하나님의 눈에 볼 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기대하시고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본문 16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농부가 나무를 골라 심었습니다. 나무가 농부를 고르지 않았습니다. 설령 우리가 제 발로 교회로 걸어온다고 하더라도, 설령 우리가 제 힘으로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고 하더라도, 만약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과 선택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농부가 되신 하나님이 열매를 맺으라고 우리를 예수님에게 접붙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원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였지만, 예수님의 몸에 접붙임 받게 됨으로써 열매를 맺는 백성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해가 가고 달이 바뀌어도, 아무리 기다려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살 이유를 못 찾으시고, 우리를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험하고 괴로운 세월 속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신앙의 눈으로 보면, 우리가 잘 나고 잘 살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까닭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호흡을 거두시면, 아무리 잘 난 인간도 즉시 덧없는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물은 생명과 호흡을 친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행 17:25). 만약 하나님이 오늘밤에 우리 영혼을 도로 찾아가신다면, 우리는 생명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부자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하나님은 언제든지, 오늘밤에, 아니 지금도 우리의 생명을 거두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왜 우리가 죽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 때문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소망을 포기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이 다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신앙의 열매 맺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실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래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은 아무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도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도 찍어 버리실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거두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이유는 다만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적극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본문 8절을 말합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켜 주시고 더욱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리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에 무슨 부족함이 있어서 우리가 채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우리의 보답을 바라시고 은혜를 베푸신 것도 아닙니다. 본문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열매를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맺는 탐스런 열매를 맺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열매를 보시는 하나님만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기뻐하심으로써, 우리의 기쁨도 충만하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열매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기쁨은 또 우리의 더 큰 기쁨으로 되돌아옵니다.

우리가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16절을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만약 우리가 신앙의 열매를 많이 맺게 되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매를 맺으라"고 하시는 이유는 다만 우리가 심판을 면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과 우리의 기쁨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목적은 다만 주인을 기쁘게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주인은 열매를 가져가지만, 열매 속에는 미래에 새로운 열매를 맺을 씨앗들이 알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을수록 그 다음해에는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농부는 열매를 잘 맺는 나무를 더 정성껏 가꿉니다. 좋은 품종을 소중히 간직할 뿐만 아니라, 더 왕성히 번식시킵니다.

하나님의 농사의 이치, 하나님의 경영 이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많이 맺는 성도들을 더욱 아끼시고, 그들에게 더 풍성한 열매를 허락하십니다. 달란트의 비유(마 25장)를 보면, 주인에게 한 달란트를 받았다가 다시 한 달란트를 내어놓았던 종은 그 한 달란트마저 주인에게 뺏깁니다. 그리고 주인은 그 한 달란트를 누구에게 줍니까? 한 달란트를 빼앗아 가장 많이 받은 자, 즉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줍니다. 그런 다음에 주인은 무어라고 말합니까?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 극심하게 생존경쟁을 붙이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처럼 하나님은 너무 심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빈부격차를 너무 조장하시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결코 자본주의와 빈부격차를 두둔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 질서를 존중하십니다. 날 때부터 가난한 사람들 혹은 남에게 억울하게 빼앗긴 사람들은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편에서 악한 부자와 권력자들을 심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게으르거나 악하여 일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보호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열심히 일하신다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사 9:7, 37:32, 59:17, 겔 5:13, 39:25). 그러므로 우리도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잠언은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고후 11:2)라고 말했고,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고 말했습니다. 실로 바울은 주님으로 받은 전도의 사명을 위해 실로 얼마나 열심히 일했습니까! 우리도 바울처럼 많은 열매를 맺지는 못할지라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여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는 질책은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열매를 잘 맺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의 3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가지에 많은 열매가 열리게 하려면, 농부는 가지를 깨끗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벌레와 먼지가 끼이지 않도록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성도가 신앙의 열매를 맺으려면, 늘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품종이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품종이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마 7:17). 이처럼 품성이 좋은 사람은 좋은 열매를 맺고, 품성이 악한 사람은 나쁜 열매를 맺기 마련입니다. 종종 나쁜 사람들이 좋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잘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맙시다(잠 24:1).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힐 것입니다(잠 2:22).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와 같습니다(잠 10:25).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합니다(잠 11:18).

하지만 사람이 스스로, 자기 힘으로 선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 되기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기 힘으로 좋은 열매를 맺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좋은 열매를 잘 맺을 수 있습니까? 본문의 4-5절은 말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발버둥칠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나무가 되려고 발버둥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과 연합하면 됩니다. 가지가 스스로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나무 등걸에 잘 붙어만 있기 하면, 가지는 저절로 좋은 양분을 받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연합한 자만이 예수님의 품성을 닮을 수 있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연합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주 쉽고 소박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내 안에서 이 말씀이 늘 활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늘 대화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좋은 거름과 물, 시원한 공기, 따스한 햇빛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거름과 물로 삼아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신령한 기운을 호흡하고, 하나님의 빛을 온 몸으로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추수의 날, 심판의 날, 죽음의 날에 여러분이 하나님에게 드릴 신앙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지금 많은 사람들이 땀흘려 맺은 풍성한 열매를 기뻐하듯이, 여러분도 과연 여러분의 열매를 기뻐하십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숨이 붙어 있을 동안,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는 동안, 하나님의 자비와 기다림의 시간 동안 여러분이 받은 은사대로, 여러분이 받은 달란트에 따라 열심히 일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의 열매로 인하여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길 바라며, 여러분의 앞날에도 늘 기쁨이 풍성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