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서로 충고하고 격려하라

롬 15:14

       2004년 8월 8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더위에다 경제난까지 겹쳐서 더욱 힘들어지는 계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초월하여 늘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에게 늘 이김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그리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평화가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저는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서로 충고하고 격려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여기서 "서로 권한다"는 말은 "서로 충고하고 격려한다"는 뜻입니다. 이 본문 외에도 바울은 여러 편지에서 성도들을 향하여 "서로 권면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아라."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과 14절에서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충고)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 히브리서 기자도 말합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히 3:13).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히 10:24).

충고하고 격려하는 일은 대개 바울처럼 교회를 세우고 돌보는 사람이 일반 성도를 위해 실천하는 일입니다만, 바울은 성도들 간에도 서로 충고하고 격려할 것을 권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권사'를 세워서, 목회자를 도와서 성도들을 권고하고 위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만, 권사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서로에게 충고와 격려의 책임과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충고와 격려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모두가 썩 내키는 일도 아닙니다. 섣불리 충고하고 격려하다가 도리어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제 각기 자기 일을 잘 알아서 처리하며 사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간에 충고와 격려가 전혀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특히 사람만큼 충고와 격려가 필요한 존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났고 죽을 때까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고, 죽을 때까지 철이 들어야 합니다. 아니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철이 들지 못합니다. 그만큼 사람은 연약하고 어리석습니다. 더욱이 사람은 무한히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무한히 배워야 합니다. 바로 이 점이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입니다. 동물도 어느 정도는 배울 수 있지만, 동물의 배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배움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일평생 좋은 선생, 좋은 지도자, 좋은 상담자가 있어야 합니다.

비록 고달프고 괴롭지만, 남의 훈계와 충고와 교육을 받기를 꺼려하는 사람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고, 그릇된 길을 가더라도 되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충고와 격려를 들을 줄 아는 관대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남을 지혜롭게 충고하고 격려하는 고마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잠언은 충고의 유익함을 여러모로 강조합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 12:15).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3:1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잠 19:20).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잠 27:9). 이처럼 성도가 서로 충고하고 격려하는 것은 성도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일이라고 해도, 남에게 충고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지혜롭고 유익한 충고자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배우는 사람, 스스로 훈계를 즐겨 듣는 사람, 즉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에는 '멘토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멘토링'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영향을 주는 과정을 말합니다. 요즘 극장가에 '트로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의 작가 호머가 쓴 '오디세이'라는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웅장한 영화입니다만, 사실 이 신화는 상당한 역사적 배경을 근거로 쓰여진 것입니다. 주전 125년 오디세우스 왕은 트로이라는 도시를 멸망시키기 위해 20년 동안 전쟁을 벌립니다. 이 전쟁을 위해 떠나기 전에 그는 매우 나약한 아들 텔레마쿠스에게 '멘토'라고 자기 친구를 가정 교사로 붙여주었습니다. 그 당시 가장 지혜로운 철학가로 알려진 멘토는 텔레마쿠스를 용감하고 지혜로운 인물로 성장시켰습니다. 바로 이로부터 '멘토링'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멘토는 어떻게 나약한 친구의 아들을 훌륭한 인물로 교육을 시킬 수 있었습니까? 멘토는 어떻게 훈계하고 격려했습니까?

1) 맨토는 대화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충고자라고 해도, 남에게 충고할 때에는 친구처럼 자세를 낮추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권위적이고 위압적이고 교만한 자세는 상대방의 마음 문을 미리 닿아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충고자는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서 동료처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2) 맨토는 텔레마쿠스가 상상력을 최대한도 발휘하도록 하면서 열렬히 토론하였습니다. 충고를 하는 자는 상대방의 생각을 무시하거나 묵살해서는 안 됩니다. 충고자는 상대방이 말하거나 묻고 싶은 것은 실컷 말할 수 있도록 끝까지 경청하는 인내를 발휘해야 합니다. 그리고 단번에 해답을 던지기보다는 토론을 통해 해답을 발견해나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3) 멘토는 질문하였고, 텔레마쿠스는 대답하였습니다. 현명한 충고자는 미리 정답을 가진 것처럼 거만하게 행동하거나, 마치 재판관이라도 되는 듯이 고압적인 자세를 갖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돕기 위해서는 겸손한 자세로 질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4) 텔레마쿠스가 대답하지 못할 경우에는 멘토는 질문을 건너뛰었으며, 가까운 사물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충고자는 상대방을 존중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무라거나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설명할 때에는 가장 친근한 예를 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과거에는 목회자 한 두 사람이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성도들은 목회자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라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서로 협동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목회자가 설교하고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것으로도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서로 가르치고 양육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사회가 비교적 단순하였기 때문에 대답도 단순하였고, 그래서 한 두 사람만으로도 성도들을 충분히 돌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가 무척 복잡하고 바빠졌습니다. 그러므로 한 두 사람의 지도자가 성도들의 많은 문제에 일일이 대처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목회자와 협동하면서 교회를 함께 끌어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목회자인 저만을 바라보지 마시고, 서로 서로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충고하고, 서로 격려하시기를 바랍니다. 목회자인 제가 여러분을 돌아보지 않을 때에도 물론 여러분은 힘을 잃어갑니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여러분들 간에도 서로를 돌아보지 않을 때에도 여러분은 힘을 잃어갑니다. 특히 오늘날 우리는 격려와 칭찬이 매우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서로 헐뜯고 깎아 내리는 풍조가 세상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잘 헐뜯는 것이 훌륭한 처세술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그에게도 분명히 칭찬하고 감사할 것이 있을 텐데, 처음부터 헐뜯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있습니다. 점점 더 사람들이 절망하고 탄식하고 자살하고 살인하는 것은 단지 경제난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가르치고  격려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살기 힘든 처지에 정치로부터 학교에 이르기까지, 아니 종교와 가정에 이르기까지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남의 부족한 점과 잘못된 점, 아쉬운 점을 모른 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교회라고 해서 모든 것을 덮어두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필요할 경우에는 따끔한 충고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충고를 할 때도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야 합니다.  뒤에서 욕하는 것보다는 앞에서 욕하는 것이 낳습니다. 하지만 공연히 화풀이를 하거나 남의 사정도 충분히 헤아려보지 않고 비난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지혜롭게 충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충고는 항상 격려로 이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마지막으로 격려한 적이 언제였습니까? 힘들어하는 이웃과 친구, 특히 성도들에게 최근에 격려하신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구별된 거룩한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과 달리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합시다. 그리고 서로 충고하고 격려합시다. 서로 아끼고 키워줍시다. 잠언 15장 23절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부족한 설교를 끝맺겠습니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