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창균 교수의 발제에 대한 논찬

목창균: 서울신학대학교의 학문적 유산과 과제 (Hwp 파일)

 
이신건

먼저 서울신대의 학문 전통을 위해 크게 기여한 것도 없고 그에 대해 깊은 조예도 없는 부족한 본인에게 논찬의 기회를 주심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보잘 것 없는 성결신학연구소 때문에 주어진 작은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학자가 앞서간 서구의 학문을 수입하는 일로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아직도 더 오래 동안 신학자는 수입상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눈부신(?) 서구 신학을 어찌 무시하겠는가? 하지만 학자가 평생 수입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 대안으로 학자는 서구 학문의 허점을 뒤져가면서 이를 추월하려고 노력하거나, 자신의 소중한 유산을 찾아서 이를 빛내 보려고 노력한다. 서울신대의 역사가 어언 90년이 되어가니, 우리에게도 소중한 유산이 없을 리가 없다. 이것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려는 노력은 그래서 뜻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먼저 목 교수의 노고에 깊이 감사한다. 비록 짧은 기간 동안 쓰여진 짧은 글이지만, 90년이나 묵은 낡은 창고를 뒤져가며 어지러이 널린 유산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먼 훗날 사람들이 목 교수를 생각한다면, 아마도 조금 쉰 목소리나 동글동글한 이마는 잘 모르더라도, "어려운 내용을 참으로 쉽게 쓰는 양반이구나!"하며 감탄할 것이다. 이번의 발제 내용에도 모호하거나 난해한 구석은 전혀 없다. 목 교수는 자신도 소화하지 못하는 글이나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글은 물론, 앞뒤가 맞지 않는 글은 전혀 쓰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면에서 그의 책과 글이 서울신대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길이 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발제 내용에 대해 본인이 날카롭게 지적할 만한 내용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일차적으로는 본인이 발제자만큼 충분한 자료와 시간 속에서 씨름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설령 내가 발제한다고 하더라도 군더더기만 덧붙일 뿐 본질적으로는 더 이상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은 대체적으로 그의 입장, 특히 대안 제시에 흔쾌히 동의한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신학은 더욱 실용성을 갖추어야 하며, 사랑과 관용에 기초한 열린 사고를 통해 우리의 전통을 재평가하여 이 시대에 맞는 성결교회 신학을 만들어가자는 그의 진솔하고 용감한 제안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좋은 영화에는 필연적으로 좋은(?) 악당이 있듯이, 나도 이 좋은 글을 더욱 빛내기 위해서라도 잠시 악당의 역할을 하고 싶다.

(1) 90년의 역사는 결코 짧은 역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편차들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분명히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긴 역사를 한꺼번에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요하고 굵직한 내용 중에서 비슷한 요소들을 묶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료들 가운데서 공통되거나 비슷한 내용을 함께 묶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 목 교수의 공로는 결코 작지 않다. 그 동안 이런 종류의 연구가 거의 이루어진 적이 없었고, 학자마다 제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자신의 입장만을 너무 강조해 온 사례에 비추어볼 때, 통합적이고 열린 시각으로 서울신대의 신학의 역사를 조망해준 그의 작업은 새롭고 더 심층적인 연구와 더 진전되고 열린 토론을 위한 훌륭한 자극제가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목 교수는 90년의 서울신대의 학문적 유산을 너무 공시적(synchronic)으로만 조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2장의 3절에서 성결교 신학의 역사를 3 세대로 나누어 적절히 성명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설명이 통합적이고 공시적이다. 역사의 격랑이 아무리 도도하게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역사는 결코 한 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고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법이 없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성서 중심주의가 분명히 서울신대의 분명하고 일관된 유산이고 우리가 계속 이어가야 할 개신교적 전통이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반문해 보아야 한다. 서울신대의 역사에서 성서는 과연 언제나 중심이었는가? 성서보다 특정한 교리나 체험, 인물이나 전통, 권력이 더 우세한 일은 없었는가? 과연 우리의 조상들은 순복음(순수한 성경 말씀)만을 전하였는가? 현대적인 의미의 고등비평은 과거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들은 성서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비평 작업을 전혀 수행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지금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아니 공공연히 수행되는 성서 비평은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며,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여전히 오늘날도 이것은 사단의 역사인가?

그리고 우리 교단이 애초에 비교파주의로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도 에큐메니칼한 정신이 상당히 살아있다고 볼 수 있지만, 성결교회의 역사에서 교파주의가 더 오래되고 더 중요한 것이 되지 않았는가? 과연 우리는 지금 과거처럼 비교파주의적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게 에큐메니칼한가? 우리는 참으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가? 아직도 한국교회협의회에 가입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신학적, 교파적 폐쇄성 때문이 아닌가?

복음주의라는 용어도 모호하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지적되었다. 목 교수는 우리의 복음주의가 교리적 복음주의보다 체험적 복음주의에 가깝다고 하였으나, 어떤 측면에서는 근본주의에 더 가까운 요소는 과연 없었는가? 그리고 경험과 감정에 대한 강조는 자유주의 신학의 두드러진 요소인데, 이로 인해 우리가 배격한 자유주의를 오히려 무의식중에 받아들인 적은 없었는가?

(2) 역사는 사실의 역사가 아니라 해석의 역사다. 즉 역사는 해석자가 보고 싶은 대로, 아니 어떤 때는 해석자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해석자는 단순한 피동적 수용자이기를 그치고 자신의 전제와 신념을 가지고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재해석한다. 이것은 비단 해석자만의 현상은 아니다. 역사를 지배하고 창조하는 사람도 자신과 타인의 무수한 다양한 현상을 묵살하고, 특정한 이해와 권력의 관계 안에서 특정한 해석을 강요한다. 예컨대 성서 중심주의는 단지 성서의 권위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성서를 장악하고 해석하는 자의 중심적인 권위까지 보장한다. 이런 면에서 성서 중심주의는 종종 비성서적인 견해를 뒷받침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오용되지는 않았는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성서 중심주의가 자유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특별히 강조되었다는 것은 옳다. 개신교회가 카톨릭 교회에 비해 성서원리를 최고의 공리로 삼는다는 면에서, 성서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갖는 신학은 결코 기독교 신학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예컨대 초기에는 여성에 대해 그다지 차별적이지 않았던 성결교회가 점차로 여성을 차별하게 된 것은 단지 스캔들의 위험 때문만이 아니라,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한 성서 중심주의의 한 구체적인 사례가 아니었을까? 순복음이라는 말은 분명히 순수한 복음(pure gospel)을 줄인 말이다. 이것도 결국 자유주의를 방어하려는 목적에서 성서 중심주의를 강조하려는 입장의 표현이겠지만, 우리가 받은 진정한 유산은 순복음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한 복음(full gospel)이 아닐까? 그런데 지금 이 두 단어조차 거의 실종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진정 - 형식적으로만이 아니라 - 지금도 성서를 최고의 중심적 권위로 보고 있는가?

(3) 과거에 대한, 본인의 또 하나의 해석은 이만 접어두기로 하자. 역사가는 언제나 "과거가 그랬다"라고 말하길 좋아하지만,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고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에 대한 해석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대적 적용("지금 이러하다")과 현재의 변혁("앞으로 이러해야 한다")이다.

요즘 우리는 성결교회의 정체성이 사라졌다는 말을 공공연히 듣고 있다. 이 말은 앞에서 말한 대로 정체성을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우리가 심하게 변하였고 뒤섞였다는 것을 인식하고 탄식하는 소리일 것이다. 이런 탄식의 원인을 모두 신학대학에 돌릴 수는 없겠지만, 목 교수도 분명히 지적하였다시피, 최근에 신학 교수들이 다양한 학문적 전통과 신학배경을 지닌 여러 학교에서 공부한 것을 충분한 여과 없이 자신의 교수와 학문활동을 통해 표출한 것은 분명히 서울신대의 신학적 정체성에 혼란을 주고 있는 요인임은 분명하다. 역사가 흐르면, 초기의 정체성이 약해지고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 예컨대 웨슬리와 성결운동가들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해왔다. 그러므로 변화 자체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전통과 현실에도 맞지 않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진지한 대화와 열린 토론 속에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며, 우리의 전통과의 분명한 연대성 속에서 이루어지는가? 다양성 속의 일치, 보편성 속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인물과 기구 혹은 운동이 있는가?

비단 역사의 흐름만이 우리를 혼란케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에 대한 혼란한 해석도 우리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목 교수도 지적했다시피, 웨슬리를 전혀 몰랐던 이명직 목사가 - 왜 웨슬리를 알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았을까? -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전해 받아 자신의 체험으로 재해석한 - 그분의 이론과 삶은 상당히 유교적이었다 - 가르침을 "초시대 감리교회의 가르침"이나 "요한 웨슬리가 주장하였던 성결의 도리 그대로"라고 해석한 것은 다소 순진한 착각이지만, 그의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 박명수 교수의 해석에 의하면, 19세기 말의 미국 웨슬리안 성결운동가들도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본질적인 문제는 누구의 탓이냐를 밝히는 데 있지 않고, 해석의 모순과 혼란이 교단 헌법에 그대로 수록된 채 여전히 오해와 혼란을 낳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면에서 처음부터 우리는 신학적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으며, 이 소지는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교단 헌법만이 아니라 서울신대의 교육 이념도 분명히 혼란의 여지를 남긴다 목교수의 해석에 의하면 웨슬리 신학정신은 건전한 지식과 살아있는 신앙심의 결합, 즉 높은 학문과 깊은 경건 사이의 균형과 유지를 말하고, 웨슬리 정신에서 신학과 성서를 이해한다는 것은 웨슬리 신학방법론을 따른다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웨슬리 신학의 전반적 내용이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구속력을 가져야 하는지는 모호하며, 웨슬리 신학정신과 신학방법, 신학내용이 성결교회의 그것과 모순될 경우에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이처럼 모호하고 현실적,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현상을 마냥 방치(회피)하는 것은 성결교회 신학의 발전과 화합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입장도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본다. 하나는 헌법 조문과 서울신대의 교육 이념의 형식적 해석에 집착한 나머지 웨슬리의 가르침 그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몰역사적인 입장이다. 목 교수가 적절하게 지적한 대로, 웨슬리 정신은 분명히 서울신대의 신학적 뿌리다. 하지만 우리는 웨슬리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미국 성결운동가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박명수 교수도 종종 강조하였다시피, 양자 간에는 많은 점에서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더욱이 교단의 헌법도 미국의 만국성결교회의 신앙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헌법의 기본 정신과 서울신대의 교육 이념을 외면하고, 아니 웨슬리적 전통의 뿌리를 깡그리 무시하고 무조건 미국에서 받아들인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입장도 과거와 미래와의 현저한 단절을 주장하는 무시하는 무리한 입장이 아닐 수 없다.

목 교수가 제언한 대로, 이런 모순과 정체성의 혼란은 이전의 신학들에 대한 비평적 분석을 통해 성결교회 신학을 정립해 나감으로써 극복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교수 간의 유기적인 연대나 통합적 작업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매우 한심한 일이다. 성서 중심적 복음주의, 웨슬리 신학, 미국의 성결신학, 오늘의 건전한 신학과 내일을 위한 신학적 응답 등을 통합하려는 작업이 부진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장로교 합동측의 "정통보수신학"이나 기장교회의 "민중신학", 감리교회의 "토착화 신학"처럼 우리를 상징하는 분명한 신학은 무엇인가? 우리끼리는 "성결신학"이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성결신학"이 무엇인지는 남들도 잘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끼리도 제 각기 이해하고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성결신학의 미래적 과제를 전혀 중요하지 않게 받아들이거나 심지어는 거부하는 현상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은 그저 현실에 적당히 안주하거나 시류에 편승하며 부화뇌동하는 것처럼 비친다.

그 원인은 물론 교단 혹은 학교 차원의 지원 부족에도 있겠지만, 점점 더 심해지는 학자의 종속성(서구신학, 권력, 자본에 대한 종속성)과 공론의 부재(무관심, 개인화, 파편화) 등이 중요한 원인이 아니겠는가? 사정이 이러하니 서울신대의 90년 역사에서 가장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건만, 교단(세상?)을 향한 신학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형편없이 줄어든 현상을 보면서, 차라리 과거의 사람들이 더 좋았다고 탄식만 하고 지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