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회의 정체성과 보편성

(1998.6.9. 경인지역 성청 임원수련회, 중앙교회)

 
이신건

1. 들어가는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의 정체성(Identity)을 생각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점은 성결교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가능하게 된 기독교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성결교회의 유산이 독특하고 자랑스럽다고 하더라도, 기독교라는 근원적인 뿌리로부터 이탈한 성결교회라면, 이는 기독교회의 한 가지라고 말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교단 명칭은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가 아니라 단순히 "대한 성결교회"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라는 가장 근원적인 뿌리로부터 자라난 우리 교회는 바로 "대한 성결교회"라는 의미에서 한국적 기원과 특성도 분명히 갖고 있다는 점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성결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우리 나라로 이식된 것은 아니다. 즉 성결교회는 복잡다단(複雜多端)한 기독교적 전통에서 자라난 한 가지다. 하지만 우리에게 신앙을 전해 준 가장 큰 줄기(맥락)를 거론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기원한 초대 교회의 신앙과 이를 계승, 발전한 카톨릭 교회의 신앙, 그리고 이를 개혁, 보완한 종교개혁자들의 신앙, 그 중에서도 루터의 영향을 더 받고 영국적 요소를 가미한 웨슬리의 신앙, 그리고 미국적 상황 안에서 이를 계승, 변화시킨 성결 운동가들의 신앙, 그리고 이를 전수한 동양선교회의 선교사들과 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초대 성결교회의 지도자들의 신앙, 그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게 지도력을 갖고서 이를 한국적 상황 안에 토착화한 성결교회의 지도자, 이명직 목사의 신앙 등이 우리에게 전수된 신앙의 뿌리들이다.

신앙도 하나의 생명체와 같아서 원래의 모습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전승들의 합류에 의해서 확장, 발전되거나 때로는 변화, 변질되기도 하며, 정착지의 정신적 지형에 따라 창조적인 종합과 변화를 겪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 즉 신앙의 불변적인 요소(恒數)와 변화가능한 변수(變數)를 잘 구분해야 한다. 이런 각도에서 우리는 성결교회의 신앙의 유산을 정리해 보고, 성결교회의 신앙의 보편성 확보를 위한 성청의 과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2. 기독교의 뿌리

기독교의 기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선교와 인격, 그리고 초대교회의 케리그마적 선포다.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적 그리스도의 관계도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초대교회의 선포도 결코 단순하고 일관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장 포괄적으로 요약하는 것은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가까이 온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물론 "복음이 무엇이냐?"라는 문제도 단순하진 않다. 사람마다, 교파마다 자기에게 유리하거나 마음에 드는 내용만을 골라잡고, 어떤 경우에는 이를 절대시하면서 다른 것을 배타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는 그 누구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먼저, 가장 권위 있게 들어야 하며, 그의 음성으로부터 모든 다른 음성들을 판단하고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아닌 다른 목자의 가짜 음성, 심지어 강도의 음성은 매우 위험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나라)가 그를 통하여, 그의 인격 안에서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그 안에서 다가온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한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의 가장 큰 정체성, 불변적 요소가 있다. 교회일치와 종교대화도 바로 이 요소 위에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구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온 피조물의 구원, 완성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개개인의 구원(사죄, 영생, 기쁨)과 역사의 해방(구조악으로부터의 구원)과 자연의 재창조(우주 만물의 갱신)를 포함한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을 더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교파의 특징과 정체성이 좌우되지만, 단언하건대, 그 어떤 교파가 이 세 가지 중에서 그 어떤 한 가지를 특별히 강조하면서 다른 것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배척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기독교의 일원이 아니라 기독교로부터 이탈하거나 변질된, 혹은 경직되거나 타락한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이런 각도에서 우리는 성결교회의 신앙적 유산을 정리해 보되, 가장 가까운 세 가지 갈래의 흐름(웨슬리 → 미국 성결운동 → 한국 성결교회)을 타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고, 이에 답해 보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웨슬리의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것들을 주체적으로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가?

3. 복음의 수용과 토착화

존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시대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장 중요한 성결교회의 뿌리다.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계승하였는가? 그는 루터의 칭의신앙(로마서 서문) 때문에 결정적으로 회심하였지만, 근대 기독교의 종교적 개인주의자라고도 일컬어지는 루터와는 달리 칭의에 이어 성결(성화), 거룩한 삶을 강조하였고, 또 이 성결도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 머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사회적 성결)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는 산업혁명 아래 비참한 삶을 살던 민중을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하였다. 그는 "온전한 구원"(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추구하였으며, 신학함에서도 성서, 전통, 이성, 경험을 두루 인정하였으며, "창조적 종합"의 정신을 발휘하였다. 즉 그의 신학은 유럽의 종교개혁과 동방교회의 신학, 영국의 경험주의 등을 두루 잘 종합하고 있다.

이런 그의 정신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온전한 구원, 통전적 구원)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걸맞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웨슬리에게는 구원의 우주적 차원, 재림 신앙이 약하였고,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일에서도 개량주의적이거나 때로는 보수적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비록 그는 평신도 지도자들을 많이 발굴, 양성하였고 혁신적 교회갱신(소모임 등)도 시도하였지만, 교회 행정에서 그는 민주적 방식을 싫어하고 독재적이었다(감독직의 기원?).

웨슬리의 온전한 구원을 향한 열망은 미국의 성결운동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성결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웨슬리의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였는가? 특히 한국 성결교회에 영향을 준 미국 만국성결운동과 동양선교회의 지도자들의 신앙적 특징은 어떠하였는가? 이들도 웨슬리처럼 온전한 구원을 열망하였으며, 그래서 중생(칭의)과 성결에 신유와 재림을 덧붙였다. 이리하여 외견 상으로는 미국의 성결운동이 복음의 통전성을 더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성결운동은 웨슬리와 달리 도덕적, 사회적 성결보다는 개인적 성령체험을 더 강조하였으며, 점진적 요소보다는 순간적 요소를 더 강조하였다. 성결을 성령체험과 동일시하였고, 재림론에서는 웨슬리의 "은총의 낙관주의"와는 달리 전천년 왕국설이라는 역사비관적 신앙을 수용함으로써, 예수나 웨슬리보다 더 비사회적, 비역사적이 되었다.

더욱이 세대주의의 유입으로 인하여 성결운동의 신앙은 매우 경직화되었다. 전천년주의나 세대주의는 사실상 미국의 근본주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 전달된 미국 성결운동은 이미 상당히 근본주의화한 것이었다. 온전한 복음(Full Gospel)이라는 단어를 순복음(純福音)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적극적 신앙에서 방어적 신앙으로 변하였음을 보여 준다. 심프슨(Simpson) 류의 "사중복음"(四重福音)이라는 표제 자체는 그 안에 상당히 온전한 복음의 정신을 담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림 신앙을 빼놓고는 전부가 다 개인주의적 요소를 강하게 풍기고 있으며, 재림 신앙도 세대주의적, 역사비관적 요소 때문에 매우 수동적이고 개인중심적인 신앙을 담고 있다. 이런 면에서 미국 성결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와 웨슬리의 온전한 구원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미국적 상황 안에서 이를 크게 위축시키고 변화시킨 운동이었다.

한국 성결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웨슬리의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였는가? 한국 성결교회는 구호로는 웨슬리의 정신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표방하였지만, 미국 성결운동을 웨슬리의 운동으로 오해하였고, 그래서 명분과 실제가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명분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내용이 더 중요한가? 이 질문을 심각히 생각하는 분들이 거의 없다는 것은 나로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웨슬리를 강조하면서도 그의 사회 참여를 묵살하는 분들도 나로서는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이것은 결국 성결교회가 논리나 명분보다 현실에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나 웨슬리가 무엇을 가르쳤든, 웨슬리를 표방하든 아니든 간에, 결국 성결교회가 받아들인 신앙은 미국 성결운동의 신앙이고, 이것이 실제로 한국 성결교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한국 성결교회의 지도자들은 입력된 대로만 움직이는 수동적 로보트인가? 이들의 신앙 형태는 다분히 미국적인 것이었지만, 이명직 목사의 경우에 그의 신앙 형태에는 유교적 요소도 상당히 가미되어 있다. 긴 도포 자락을 입고 하얀 수염을 휘날리는 그의 외모만을 보아도, 우리는 근엄한 유교학자와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의 설교를 읽어보면, 그는 종종 복음을 공자나 맹자의 가르침과 나란히 놓고 서로 비교하였고, 유교적 문체와 교훈을 많이 전달하였다. 더욱이 그는 유교적 보수주의에 강한 편이어서, 민주화나 여성운동, 계몽운동, 과학운동 등 진보적인 역사 현상을 매우 혐오시하였고, 심지어 이를 말세적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는 중생과 성결을 강조하였지만, 그의 성결론도 미국처럼 성령체험과 강하게 결부되었으며, 내용 면에서는 상당히 유교적이었고, 웨슬리와는 달리 일체의 사회참여를 배제함으로써 개인적주의적 특색을 띠었다. 그가 신유를 강조하면서 의약적 치료행위를 부인하지 않았다는 점은 외견상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인다. 과학발전을 혐오하면서 어떻게 의학적 치료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모순은, 그가 재림 신앙을 강하게 견지하면서 일체의 사회 참여를 부정하면서도, 교단을 지킨다는 명목 아래 일본제국주의의 불의에 (마지 못해서지만) 참여하기를 호소하였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여하튼 그도 미국적 사중복음의 전통을 강하게 장려하였다. 그의 재림신앙도 미국 성결운동의 세대주의적, 역사비관적 요소를 그대로 갖고 있었다. 때로는 그가 미국의 세대주의적 종말론자(왓슨 등)의 영향 아래 시한부 종말(1938년)에 집착하였다는 점을 보면, 그의 재림 신앙은 한국의 고난적 상황과 맞물려 더욱 강렬하면서도 경직된 신앙 형태를 띠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신앙 특징을 지닌 이명직 목사의 지도를 강하게 받아 온 선조들의 신앙 전통 때문에, 지금까지 성결교회는 예수와 웨슬리의 가르침과는 달리 상당히 부분적인, 즉 개인구원 중심적인 신앙을 유지해 왔으며, 이런 태도는 이제야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4. 성결교회의 보편성 확보를 위한 성청의 과제

하지만 사중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웨슬리의 정신에 비추어 잘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기독교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미래적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고, 그리하여 온전한 복음의 전진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의 성결인대회(98년 3월 25일)에서 나는 성결교회가 조금씩이나마 변화될 수 있다는 새로운 징조를 보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적 관심은 기도의 방식으로 밖에는 표출되지 않았다.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성결교회의 전통에 반하는 일이었고, 심지어는 불온하거나 자유주의적인 행위로 매도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경에 대한 관심은 매우 반전통적인 것으로 의심받았다. 통일운동은 그야말로 북한 선교나 다름이 없었다. 비록 선언문의 형식이었지만, 성결인대회 선언문의 내용은 온전한 복음의 정신을 그대로 잘 담고 있다. 실업자를 위한 모금은 성결교회사에서 전무후무한 사회적 참여였다.

왜 이렇게 웨슬리보다 더 포괄적으로 성결교회의 관심사가 확장되었는가? 성결교회가 온전한 복음으로 회심하였는가? 아니면 이것은 몇몇 선동적인 사람의, 참아 줄 만한 구호인가? 여하튼 공식적으로 이렇게 포괄적이고 온전한 복음 선교를 표방한 문건을 나는 여태 본 적이 없다. 이 선언문의 내용을 충실히 계승하고 실천만 한다면, 성결교회의 보편성은 더 이상 확장할 것도 없고, 미래적 과제로 보아서도 이보다 더 훌륭한 전망은 없다.

이런 일이 있기까지 아마도 교단 내에서 신선한 젊은 목회자들의 기여가 가장 많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패러다임은 노인들이나 중진들의 그것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선언문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에는 무엇보다도 젊은이의 헌신적 참여가 가장 필요하다. 누가 환경운동과 통일운동의 주역이 될 것인가? 누가 교회갱신과 회개운동을 계속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도덕성 회복과 사회정화에 가장 잘 앞장 설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랑과 봉사를 가장 열렬히 주도할 것인가? 비록 이런 과제는 성별과 연령을 초월하는 일이지만, 젊은이만큼 이 일에 적합한 인물이 또 있겠는가?

이젠 교회갱신과 신학발전의 초석은 다 놓여졌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것을 더 정교하게 가다듬고 실천하는 일만 남아 있다. 이젠 성청이 앞장서서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주창할 필요도 없다. 비록 광범위한 대중적 합의가 아직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실천의 주춧돌은 이미 놓여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젠 성청이 자신감을 갖고, 변화되어 가는 교단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이 정신을 발전시키고 실천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청의 과제는 이제부터 더 수월해진 그만큼 더 막중해졌다. 누가 선조들의 갱신의지를 이어갈 것인가? 바로 성청, 피끓는 젊은 여러분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