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신학을 향하여

(1999, 3, 17, 서울신대 "성결신학연구회" 창립모임 특강)

 
이신건

1. 들어가는

요즈음 들어 성결교회의 본래적 특징이 현저히 퇴색하였다는 교단 어른들의 한숨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그 말씀에는 상당한 일리가 있다. 과거에는 "성결교인" 하면 즉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북치면서 노방전도하고, 성령 체험을 갈구하면서 성결을 추구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이 변하고, 옛 전통을 강조하던 선배들이 점점 더 우리 곁을 떠나면서 정체 의식 혹은 뿌리 의식이 상당히 희박해졌다. 그리고 새로운 신학과 시대 정신의 유입 때문에 성결교회의 특색은 엄청나게 불분명해졌다.

그 책임을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다. 단지 성결교회로서의 주체성, 정체성이 희박해짐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점점 더 교파의식이 옅어지는 상황에서 성결교회가 한국 교회에서 설 자리가 점점 더 협소해졌다는 현실이 우리에게 큰 문제점으로 다가온다.

성결교회와 같은 혈통에서 생겨난 작은 교단인 구세군만 해도, 연말의 자선 냄비와 종소리 하나만으로 자신의 특징을 살리고 있다. 하지만 "성결교회" 하면 무엇이 즉시 생각나는가? 현대인에게는 "성결"이라는 단어조차 매우 생소해졌다. 뜨겁던 신앙 열정과 성령 체험의 강조는 이제 역시 성결교회와 같은 혈통에서 생겨난 순복음 교회의 간판이 되었다. 이제 성결교회의 신앙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위대한 부흥 강사와 훌륭한 설교자도 많지 않고, 뛰어난 신학자도 별로 없다. 수적인 면에서도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다.

이러니 성결교인들 가운데서도 "우리가 멍청하다"는 자조적인 소리가 간간이 흘러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멍청한 것"을 계속 우리의 특징으로 삼으면 어떨까? 이것도 특징이라면 빛나는 특징일까?

2. 문제를 어떻게 것인가?

그렇다면 정체성 결핍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하는가? 하지만 사람마다 대안이 제 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성결교회 신앙의 원조인 "웨슬리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에게 신앙을 직접 이식해 준 "미국 성결운동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초기 성결교회의 특징을 되찾자"고 말한다.

원리적으로는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우리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옛날 그대로를 오늘에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순박한 역사적 낭만주의다. 각 시대와 각 지역에는 그 나름대로의 도전과 응전이 있었다. 우리 시대와 우리 땅에서는 도전이 다르니 자연히 응전도 다를 수 밖에 없다.

둘째는, 뿌리를 캐가다 보면, 결국 어디까지 가느냐 하는 문제점에 봉착한다. 성결교회의 초기 신앙에서 미국의 성결운동으로, 영국의 웨슬리 신앙운동으로, 유럽의 종교개혁 전통으로, 카톨릭 교회의 신앙으로, 고대 교회의 신앙으로, 바울과 요한 등에게로, 예수로, 또 그 다음엔 구약성서의 예언자로, 모세로, 아브라함 등으로 가다가 그 다음엔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이러다 보니 자연히 바로 우리 앞의 선조들의 신앙이 가장 강조될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늘 앞서간 선조들의 발꿈치만을 잡고 따라갈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에게 소중한 신앙 유산을 물려준 그들이 한없이 고맙지만, 선조들의 고민과 그들이 살았던 상황이 지금과 너무나 달라지지 않았는가? 그들이 자신의 시대의 도전에 선조와 다르게 응전하였다고 한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변화된 시대의 도전에 그들과 다르게 응전해야 할 역사적 소명을 갖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가 성결교회 안에 머물기 원하고, 또 성결교회의 자랑스런 유산을 키워 나가려면,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신앙의 핵심, 알맹이는 단단히 부여잡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3. 우리의 신학 유산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해서 "성결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하지만 먼저 이 말을 분명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1. 성결신학은 "성결론" 중심의 신학이 아니다. 어떤 이는 성결론이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고 뿌리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과장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성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였다. 유감스럽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단 한번도 제자들에게 "성결하라, 거룩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아니 그는 유대인의 성결(혹은 정결) 이데올로기를 과감히 넘어섰고, 무너뜨렸다.

왜 그런가? 예수가 전파한 하나님의 나라는 온 우주, 온 인간, 온 사회를 포괄하는 통전적 구원의 소식이었던 것에 반해, 그 당시의 유대인의 성결 전통은 상당히 이분화, 외식화, 형식화되었다. 하나님의 은총보다는 인간의 공로를 더 강조하였고, 자비보다는 예배 의식을 더 강조하였다. 예수의 눈에 볼 때, 이것은 이제 현실적 적응성도 잃었고, 구원적 효력도 잃었다. 더욱이 성결 전통은 가증스럽게도 사제들의 지배 이데올로기, 유대인의 수구적 민족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혹은 재림)이었다. 일상적 윤리를 위한 교훈에서는 성결이 자주 나오긴 하지만, 성결은 분명히 초대교회의 케리그마의 중심이 아니었고, 더욱이 그 뿌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성결 혹은 성화가 웨슬리 신학의 핵심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우리 교단은 웨슬리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 미국의 성결운동이 분명히 웨슬리의 성결 전통을 회복하고자 하였지만, 그 내용도 상당히 달랐고, 웨슬리가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던 신유와 재림을 추가하였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전달된 미국 성결운동의 신앙에는 유교적, 샤머니즘적 요소도 상당히 가미되었다.

여하튼 성결교회가 "성결"을 교회의 공식 명칭으로 영원히 사용할지라도, 성결을 일방적으로 강조한다면, 예수의 복음과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와 상당히 어긋나며, 더욱이 예수가 배격한 유대교적 전통을 되살릴 위험도 있다. 그리고 성결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사중복음 전통과도 조화가 되지 않는다. 성결이 중생과 신유, 재림을 대체할 수 있는가? 성결은 사중복음의 하나가 아닌가? 만약 성결(성화)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면, 감리교와 전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그럴 바에야 교단을 합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성결교회의 역사적 소명은 어디에 있는가?

2. 성결신학은 "성결교회의 전통적 신학"을 줄인 말일 수 있다. 교단이 편찬한 "한국성결교회사"에도 성결교회의 신학을 성결신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성결교회의 신학은 미국 만국성결교회의 신앙개조를 거의 그대로 전수받은 것이다. 비록 이 신앙개조가 정통 교회의 교리를 상당히 수용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미국에서 독특하게 형성된 교리를 수용하고 있다.

여하튼 성결신학을 미국 성결운동에서 전수받은 신학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지만, 이것도 다음과 같은 한계성을 지닌다.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지역에서 형성된 신학(미국적 신학)을 우리가 왜 우상처럼 섬겨야 하는가? 미국적 신학도 시대적, 신학적 한계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도 신앙 전통을 자기 나름대로 창조적으로 종합하고 재해석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는 이것을 통째로 삼키든지 통째로 뱉어야만 하는가? 우리도 우리 시대에 맞게 전통을 창조적으로 종합하고 재해석하면 안되는가? 선배는 해도 되지만, 우리는 왜 하면 안되는가?

4. 새로운 성결신학을 향하여

각 시대는 각 시대의 인물을 부른다. 각 시대는 각 시대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 선조들의 지혜와 전통을 오늘에 지혜롭게 되살리되, 선조들처럼 우리도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나는 성결교회의 과거의 신학과 함께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될 미래의 성결교회의 신학을 포함하여 이를 "성결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성결신학이 성결의 신학, 성결론으로 축소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이를 한글로 표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즉 Theology of Holiness가 아니라 Sunggyul Theology로 쓰면 좋지 않을까? 민중 신학이 "민중"을 People이나 그와 유사한 영어로 표기하지 않고 한글로 표기하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웨슬레의 근본 정신, 미국의 사중복음의 전통에 비추어 Holiness의 의미를 폭넓게 정의하고 싶다. Holy와 Whole은 같은 어원을 가진다. 그러므로 Holy는 Holistic(통전적, 온전한)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나는 성결신학을 "통전적 신학, 온전한 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나라" 신학과 가장 잘 상통하고,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혹은 그의 "창조적 종합"의 정신에도 잘 어울리며, 미국 성결운동의 정신인 "사중복음" 혹은 "Full Gospel"의 전통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현대인들도 점차로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전체, 유기체적 전체로 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신학, 즉 성결신학을 향한 열망을 우리 시대에 새롭게, 창조적으로 전개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성결신학은 신학적으로는 성부-성자-성령을, 구원론적으로는 인간구원-사회구원-자연구원을, 인간론적으로는 영-혼-몸 혹은 한국인-세계인-그리스도인을 포괄하는 통합적 신학이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신학운동 혹은 신앙운동은 성령의 활동과 공동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천재적인 학자가 제 아무리 우수한 성결신학을 수립한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활동과 공동체의 참여가 없다면, 역사적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웨슬리는 신성 그룹(Holy Club)을 통해, 미국의 성결운동은 성결증진캠프(Camp for Promotion of Holiness)를 통해, 그리고 초기 한국 성결교회는 성별회(聖別會)를 통해 신앙을 전승하고 확산시켰다. 우리 시대에는 성령이 어떻게 우리를 부르고 사용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여하튼 그것은 또 하나의 운동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이 새로운 운동, 즉 온전함을 위한 운동(Holistic Movement)을 일으켜 주기를 기도하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