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성결교회의 역사의식

- 이명직, 이 건의 종말신앙을 중심으로 -

 

이신건

 

들어가는 말

성결교회는 '역사의식'이 약하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역사의식의 결핍 혹은 역사도피주의는 비단 성결교회에만 두드러지는 현상은 아니다. 이미 한국에 기독교를 전래해 준 선교사들의 메시지 자체가 소위 '복음'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종류의 역사성, 사회성을 가급적 배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선교사들의 기독교 복음이해의 근원을 캐낼 처지는 못된다. 그러나 본인의 짧은 이해로서는 그들의 선교전략 그리고 식민제국주의 팽창 등의 요소들이 깔려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물론 한국의 억압적 상황,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 등이 여기에 가세했음도 지적되어야 하겠다.

여하튼 선교사들의 메시지의 비역사성의 한 측면으로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심각한 '하나님 나라의 망각증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메시지에서 개인과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복음의 기본적 핵심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 건너온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갖는 역사성에 반발한 나머지 이를 지나치게 개인화, 내면화 혹은 내세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것을 강하게 배제해 왔다.

성결교회의 설립과정도 대체로 한국 기독교의 형성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결교회의 메시지의 근간을 이루는 전도표제인 '사중복음'도 성결교회의 신앙구형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비록 '사중복음'은 루터의 지나친 '칭의중심'과는 달리, 그리고 '성결론'을 축으로 삼는 웨슬레의 복음이해와는 달리, 루터나 웨슬레에게서 그다지 강조되어 있지 않은 '신유'와 '재림'에 대한 신앙을 가미하여 '온전한 복음(Full Gospel)을 표방했지만, 선교사들이나 초기 성결교회의 지도자들의 사중복음 이해도 결국 다분히 개인구원 중심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탓인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라는 한국의 3대 교파 중의 하나라는 의식에도 불구하고 성결교회는 한국교회사의 페이지에 기록될 만한 역사적 업적을 남긴 것이 없다는 자책감과 열등의식을 안고 있다. 오히려 최근에 들어서는 성결교인뿐만 아니라 타교단의 역사학자들도 성결교회의 친일적 행각을 들추면서 부끄러운 면을 폭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한 송기식 목사의 논문 '한국 성결교회의 일제수난사에 대한 바른 이해'(활천 442호, 1990. 5)는 유익한 자료와 시사적 입장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여하튼 여기서 본인은 다시금 이 문제를 다룰 입장은 아니다. 단지 본인은 일제시대의 성결교회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이명직, 이 건, 두 목사의 글들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그들의 역사의식을 조명하고, 그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초기 성결교회의 역사의식을 읽어내고자 한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더 폭넓은 연구를 위한 작은 기고로서 기여하길 원할뿐이지, 초기 성결교회의 역사의식에 대한 충분한 해석이기를 자처하진 않는다.

 

I. 이명직, 이 건의 역사의식의 기본특징


1. 임박한 종말의식과 재림신앙

이명직, 이 건 두 인물의 역사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그들의 종말신앙이다. 그들이 쓴 글들 중에서 시대를 의식하고 역사를 해석하는 입장은 종말신앙을 통하여 표출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역사의식은 대부분 종말신앙을 통하지 않고서는 드러나지 않을 만큼 그것과 밀접히 짜여져 있다. 재림신앙은 사중복음의 한 요소이고, 더 나아가서 기독교신앙의 중요한 한 항목이지만, 특히 일제시대의 억압적 상황에서 재림신앙은 역사적 비극의 극복과 신앙인의 위로로서의 기능을 크게 했다. 예를 들면, 길선주 목사는 '요한계시록의 종말 해석'의 붐을 일으켰다. 묵시문학도 유대인의 처참한 역사적 질곡 속에서 이의 혁명적 극복에 대한 신앙을 표현함으로써,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었다.

이명직은 자신의 시대를 마지막 때의 징조가 각 방면에서 드러나는 시대로 의식하고 있다.

이 건에게도 당대가 마지막 때일 것이라는 종말적 위기의식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건의 임박한 종말의식은 당대의 시대적 정황에 대한 묵시적 해석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그는 종말을 세대주의자처럼 시대경륜적 필연의 과정으로도 본다.

이 건은 종말시대의 대환란에 이어 올 세계를 정의와 평화로 세계로 보고 열렬히 주의 재림을 기다린다.

2. 역사과정의 비관적 파악

이명직, 이 건 양 인물에게서 공통되는 또 하나의 확신은 역사와 우주의 과정이 멸망의 길을 밝는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인류의 타락과 죄성에 근거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심판도 염두에 두고 있는 확신이다. 이명직은 당대의 역사를 머잖은 종말 앞에서 멸망을 자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이를 경고한다.

특히 이 건에게서 비관적 역사파악은 세계사의 과정이 부패와 후패의 과정을 밝는다는 역사법칙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3. 문명 비판

임박한 종말의식과 이에 근거한 비관적 역사파악은 문명비판으로 이어진다. 이명직은 직접 문명을 비판하기보다는 문명과 접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

이 건은 특히 노골적으로 맑시즘적 유물사상, 상업과 맘몬주의를 비판할뿐만 아니라 사회개혁과 의식 교육 등의 인간적 노력도 무익한 것으로 본다.

 

II. 평 가


1. 긍정적인 면

임박한 종말의식과 재림기대, 역사만물의 비관적 파악 및 문명(혹은 시대정신)비판은 신앙적 경성을 일으키고, 영혼구원과 성화를 향한 열정을 자극한다. 이명직은 머지 않은 재림을 기대하면서 대환란을 피하고 공중에 휴거되도록 준비하라고 촉구하며(주14), 안일이나 세상과의 타협을 경종하면서 싸울 것을 호소한다(주15). 그리고 그는 휴거될 자의 자격으로서 성결한 생활을 강조한다.

이 건도 향락주의, 세속주의를 경고하면서 세속에 초연한 성결한 삶을 강조한다.

임박한 종말기대의 특징을 띠는 초기 성결교회의 두 지도자의 역사의식은 내면적 영성의 촉발과 경성, 성별된 생활에 기여하였고, 직접 전도를 통해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교회로 하여금 싸우도록 독려함으로써, 성결교회의 부흥에 촉매가 될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예수의 복음과 초대 교회의 선포도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임박함에 의해 각인되어 있고, 이러한 종말론적 완성의 복음은 한편으로는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회개하기를 촉구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과 해방의 미래를 향해 열려 있게 만들었다. 암울한 일제의 무단정치와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우리의 신앙선배들은 종말론적 역사의식을 견지하고서 교회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어 왔으며, 각성과 전도를 촉구했다. 비록 그들의 역사의식은 시대적 환경과 제한된 성서 지식에 의해 제약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결코 '비역사적'이지는 않았으며, 그들의 신앙도 결코 탈세계화나 피안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상에서 심판을 통해 도래하는 평화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재림에 대한 신앙을 생생히 견지했고, 이를 통해 역사적 고난의 극복과 그리스도인의 승리를 확신했다. 만약 이러한 신앙이 없었다고 한다면, 고난받는 교회는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2. 부정적인 면

그러나 그들의 종말의식은 지나치게 결정론적인 묵시적 종말론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기 때문에,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 앞에서 능동적으로 역사에 참여하고 역사를 변혁하려는 의지가 결핍되어 있었다. 결정론적, 비관적 역사파악은 개인의 경성과 개인전도 이외의 다른 적극적 노력의 대안을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개인의 중생과 성화에 제한함으로써, 선교영역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물론 예수도 진보주의의 제창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분명히 비관적인 결정론자도 아니었다. 그의 예언자적 종말선포는 하나님 나라의 선취 형태로서 새로운 삶의 형태(죄인들과의 개방된 친교, 식탁공동체, 지배와 착취, 소외와 가난이 없는 삶의 구현)를 창조했으며, 제도악과 충돌하였다(귀신추방, 부자비판, 성전체제에의 도전, 로마제국과의 갈등).

이에 반해 두 지도자들의 역사의식은 오직 개인적 경성과 성결만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비록 그들도 간접적으로 군사적 대립과 살인, 포학 등을 지적하면서 일제의 폭압적인 지배를 비판하였지만, 묵시적 언어가 담고 있는 현실저항 의식이 상당히 추상적인 것으로 변하였으며, 순식간에 휴거되어 구원받기를 바라는 수동적 자세가 그들의 심성을 강하게 지배하였다. 그리고 세상에 오염되지 않은 채 거룩하게 살고 세상에 대해 초연하게 살려던 그들의 자세는 세상 속에서 책임적으로 살고 세상을 구원하려는 자세(세상의 소금, 성결의 누룩)를 억압하였으며, 군비축소나 사회제도 개혁, 의식교육, 문명적 이기의 발전 등 인간적 모든 노력은 결정론적이고도 임박한 종말론 기대 때문에 완전히 무시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비(非)역사적이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많은 점에서는 '초(超)역사적인' 신앙특징을 보여 주었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성결교회의 신앙구형과 역사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