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와 성결

- 제 1 이사야의 이해를 중심으로 -

 
이신건


'
하나님의 나라' 개념을 '성결'의 개념과 결부시키는 것은 어쩐지 어색해 보인다. 신학사에서 이 두 개념이 나란히 등장하는 경우를 발견하기 어렵거니와, 이 두 개념의 결합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품종을 억지로 접목시키는 것 같은 인상을 일으킨다.

사실상 신학사에서 이 두 개념은 서로 관련없이 따로 전개되어 왔고, 출발점도 달랐던 것 같다. 특히 종교개혁과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은 신학은 성결을 칭의와 관련된 혹은 칭의에 이은 그리스도인의 내적 변화에 촛점을 맞추어 왔고, 현대의 종교학은 거룩함(성결)을 종교의 중심요소로 삼거나 심지어는 신개념보다 더 본질적인 상위개념으로 이해함에도 불구하고(주1), 성결을 다분히 종교의 독립된 현상(sui generis)으로 이해하거나, 비인격적 능력이나 직관적 체험으로 이해해 온 경향이 짙다(주2). 특히 루돌프 오토(R. Otto)의 성결이해(누미노제적인 것: 두려움/termendum과 매혹, 황홀함/fascinans)에는 윤리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그는 그의 체험이론에서 윤리적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졌다. 그러나 성결은 신적인 영역에 속하는 하나의 특징으로서 두려움만이 아니라 윤리적인 규정력을 갖고 있으며, 신의 의지 앞에서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현상이기도 하다(주3).

'하나님의 나라' 이해의 역사에서도 내면적, 직관적 혹은 신비적 경향을 띤 경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대 성서학의 결과로 이제 이 개념은 하나님의 역사적 행동의 본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이미 구약성서에서부터 '하나님의 왕권'(에훼 멜렉)은 이스라엘과(출 19:6, 민 23:21, 신 33:5, 시 14:2) 제 신들과(시 95:3, 96:4f, 97:9, 렘 10:10) 만물까지(시 47:8f, 93:97, 29:10) 미치는 그의 통치의지와 심판의지(시 96:13, 97:8, 98:9)를 의미한다. 신약성서에서는 특히 예수의 메시지의 활동 및 운명의 핵심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나라'(Basileia tu theu)의 개념은 현재적이면서도 임박한 종말론적 특징을 띠는 하나님의 세계통치적, 세계 완성적, 세계 심판적 개념이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왕권 신앙과 하나님의 거룩함 신앙을 가장 의미 심장하게 결합시킨 인물은 이사야였다. 오늘 날의 연구에서 하나님의 왕권 표상과 거룩함 표상은 이스라엘 이전의 고대 가나안적, 근동적 영역에서 형성되었다가 예루살렘의 제의신학 안으로 편입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전자는 소위 대관시(戴冠詩) 혹은 야훼왕권시에 반영되어 있으며(시 47:9, 89:15, 93:2, 97:2), 그 이후의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해에 표준적인 의미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말했다(출 19:6 등). 그리고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에게 '거룩함'의 술어를 부가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 두 개념의 수용과 결합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해에서 포기할 수 없는 영속적인 공헌을 남겼다.

이사야에게서 야훼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체험(6:3/"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은 왕으로서의 하나님 고백(6:5/"... 만군의 야훼, 나의 왕을 눈으로 뵙다니...")과 결합되어 있다. 거룩한 하나님은 바로 왕이신 하나님이다. 이 본문은 야훼를 왕이라고 부르는 본문 중에서 시간적으로 고정시킬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본문이다. 물론 이 표상은 훨씬 더 오래된 것이지만.

이사야의 소명체험에서 왕이신 하나님의 거룩함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거룩함(???)의 어원에서 볼 때, 이것은 세속과 절대적으로 대립된 것, 초감각적 세계와 관련된 것, 일상적인 교제와 분리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자주 제시되었다. 또 이것을 아카디아어 '카다수'(깨끗함)와 관련시키거나, 야훼의 거룩함을 빛과 광채와 같은 의미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래서 프록쉬(Procksch)는 이사야의 삼중적 거룩호칭은 세계와의 절대적 긴장을 표현한다고 본다. 그는 종교사에서 취한 거룩개념을 이사야의 하나님 이해에 적용하여, 이사야의 거룩체험을 인간과 절대적으로 대립해 있는 하나님 앞의 인간의 두려움, 놀라움 등의 감정으로 본다.

그렇지만 이사야가 하나님과 세계 혹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대립을 생각하거나 피조물로서의 자신과 하나님과의 거리를 생각하였기 때문에, 위축된 것은 아니다. 이사야에게서 야훼의 거룩함은 '역동적 실재'(力動的 實在)로서 하나님에게 맞서는 인간의 저항을 분쇄하는 하나님의 의지, 자신의 백성과 만 백성들 한 복판에서 자신의 왕적인 통치를 관철시키려는 그의 무조건적인 의지로서도 나타난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주변세계와 종교사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거룩개념은 이사야의 하나님 이해에 의해 결정적으로 수정되었다(주4).

이사야의 신학에서 '거룩함'의 개념은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제 2,3 이사야가 거룩개념을 하나님의 구원의지와 결합시켰다면, 제 1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라는 이름을 압도적으로 심판신앙, 하나님의 공의신앙과 결합시켰다(사 1:4f, 5:16, 10:17, 30:12,15, 31:1). 야훼는 역사 속의 행동을 통하여 자신의 거룩함을 입증하는 데, 특히 교만한 자, 행악자의 처벌을 통하여 그리한다.

이스라엘, 특히 남 유다의 죄상은 어떠한가? 이사야는 이를 여러 곳에서 폭로한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와 신실의 회복을 대망한다. 그는 정의의 힘과 영적인 힘의 최후의 승리를 믿는다. 그는 불법, 불의, 부패, 맘몬숭배, 세상권력과의 타협, 우상숭배, 군국주의 등을 심판하고 정의와 평화를 회복하는 세계의 통치자, 거룩한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는 세계의 주, 정의의 하나님의 손이 인류 역사 가운데서 움직이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나님은 의롭기 때문에 거룩한 분이다

공의로운 세계의 심판자,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은 성소에서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 중의 하나인 이사야를 거룩하게 만들고, 그를 그들 한가운데로 보낸다. 개인은 집단의 죄를 함께 지고 있고 이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특히 고대의 사상에서 자명한 것이었다. 여기서 입술의 부정은 제의적인 부정(부정한 음식을 먹음)이면서도, 전이된 의미(불의, 우상숭배 등)을 갖는다.

예수가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 이 땅에서의 하나님 뜻의 실현(마태적 편집)을 기원하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되기를 기원했을 때, 바로 그의 의도도 제 1 이사야의 의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에게서도 거룩한 하나님은 바로 이 세계를 의로 다스리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를 드리는 그리스도인들도,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마 7:33) 때라야, 비로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공의를 구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거룩한 삶의 핵심이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