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하르트 라가츠의 종교사회주의

 

이신건

 

1. 생애(1868년 - 1945년)


라가츠(Leonhard Ragaz)는 1868년 7월 28일에 스위스의 산간 마을 타민스(Tamins)에서 가난한 소작 농가의 8 자녀들 중의 4 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가사를 돕기 위하여 힘든 노동을 해야 했는데, 이 때에 그는 부락 공동체의 협동조합 운동에서 원초적인 사회주의의 모습을 터득했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신학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오로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지만, 바젤, 예나, 베를린을 거쳐 다시 바젤에서 공부를 마친 후에 그는 결국 21세의 나이로 목사가 되었다. 그의 첫 목회지였던 하이젠베르크의 플레르렌 산지에서 그는 성서를 깊이 연구했고, 철학을 깊이 탐독했다. 특히 헤겔(Hegel)의 철학은 그의 사고가 역사철학적 범신론의 성격을 갖도록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목사로서의 자부심을 누리지 못하였다. 실천적인 일에 대한 교회의 무관심, 동료목사들의 무관심과 천박성은 그를 우울증에 빠뜨렸으며, 설교는 생명력을 잃었다.

그래서 그는 24세에 교회를 떠나 쿠르(Chur) 시의 김나지움의 교사가 되어 언어와 종교를 가르쳤다. 그렇지만 2년 후에 그는 다시 쿠르시 교회의 목사로 부름 받아 7년 간(1895 - 1902년) 봉사했으며, 1902년에는 바젤 대성당의 목사로 부름 받았다. 그리고 그는 1908년에 취리히 대학의 조직신학 및 실천신학의 교수로 초빙되어 1921년까지 가르쳤다.

그는 1909년과 1911년에 두 차례 받 볼(Bad Boll)의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와의 만남의 경험은 그에게 일평생 동안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첫 방문 때에 그는 멀리서 다가오는 블룸하르트가 일 순간 예수의 모습으로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라가츠는 1921년에 53세의 나이에 교수로서의 활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자발적으로 교수직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는 곧 바로 노동자 교육 사업에 헌신하게 되었는데, 특히 그는 자신이 설립한 노동자 훈련원 '가르텐호프'(Gartenhof)에서 일평생 노동자 교육에 헌신했다.

그는 수많은 강연, 저술(주기도문,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 - 예수의 사회적 복음, 예수의 산상설교, 성서의 하나님의 나라 등), 사회운동(노동운동, 반전운동, 반나치스 운동, 평화운동, 사회교육 등)을 통하여 스위스의 울타리를 넘어 유럽 전역에 많은 정신적 영향을 남겼다. 그는 최초로 '종교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종교사회주의 운동을 조직하여 이끌었는데, 그로 인하여 그는 유럽의 종교사회주의 운동의 대부로 일컬어질 만큼 큰 추앙을 받았다. 그는 '새로운 길'(Neue Wege)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말년까지 집필에 몰두했는데, 1945년 12월 6일에 사망할 즈음에 그는 막 39권을 마감하고 있었다.

Ⅱ. 종교사회주의자가 된 과정

라가츠는 처음엔 자유주의 신학, 부르즈와적 문화, 특히 관념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인류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윤리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바젤에 온 이후로 그는 신학적, 정치적 자유주의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는 특히 자유주의가 도그마로부터 해방되긴 했지만, 그 다음엔 더 나은 적극적인 목표를 포착할 힘과 종교성을 상실했다고 생각했다.

결국에 그의 신학은 범신론적, 경건주의적 경향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으로 수정되었고, 부단한 발전에 대한 초기의 신앙은 위기적 경험을 통해 수정되었다. 그러나 그의 목표는 항상 완성된 윤리적 인격, 자유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 있었다.

그는 관념주의가 매우 중요하게 여긴 자율(自律)을 이제 더 이상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간의 무한한 존엄성에서 기반을 둔 자율은 항상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라가츠는 처음부터 모든 강압, 타율적 규정은 목표로 인도하지 못하는 그릇된 길이라고 보았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을 갑작스럽게 타율적으로 구원하거나 변화시키지 않고, 단계적으로 자신에게로 인도한다고 믿었고, 그 방법은 도덕적, 윤리적인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가 쿠르 시의 목사로 부임하게 된 후에는 점차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형편없는 주거환경, 열악한 노동조건, 가족관계의 파괴, 이로 인해 빚어지는 범죄행위와 알콜중독 등을 목격한 후로 그는 악의 사회구조적 차원을 발견하고, 죄책의 연대감을 느꼈다. 이 즈음에 그는 칼 맑스의 '자본론'을 읽었고, 영국 사회주의자들과 나우만(Naumann)을 문헌으로 만났다. 그리고 헤르만(Hermann) 신학의 영향으로 예수전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통속적인 자유주의에 강한 환멸을 느꼈으며, 키에르케고르 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실천적으로 노동자 교육과 개혁 운동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가 노동운동과 본격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한 것은 바젤에 온 이후였다. 1902년에 그곳으로 옮겨왔을 때, 그는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빠졌다. 그의 이상주의적, 낙관주의적 세계관은 흔들렸고, 그의 역사신학도 무너졌다. 그 대신에 그는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의 직접적, 간접적 영향 아래 그리스도론적인 관점을 갖게 되었다.

이제부터 라가츠는 현실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 간의 투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았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으로부터 발전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와 대립한다. 어디서나 이 두 세력은 서로 싸운다. 대개 이 두 세력은 서로 섞여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의 나라가 순수하게 등장한다.

모든 인간은 이 두 세력 간의 투쟁 안에 얽혀 들어가 있다. 만약 인간, 특히 그리스도인이 실패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목표에 이르지 못할 수 있고, 인간이 악마적인 것에 빠질 수 있으며, 새로운 단계로 올라가는 대신에 심판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새로운 돌파를 발견하기 위하여, 또 그것에 봉사하기 위하여 눈을 크게 부릅떠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라가츠에 의하면 교회적인 것 혹은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적인 척도가 적용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등장한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의 노선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설령 세속적인 것이나 무신론적인 옷을 걸치고 나온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으로 가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력에 근거해서 라가츠는 이제 사회주의와 남다른 관계를 맺게 되었다.

라가츠가 처음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천명한 것은 1903년에 바젤의 벽돌공 파업에 관해 설교를 행했을 때였다. 바젤 성당의 설교에서 그는 노동운동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했다. 여기서 그는 사회운동이 종교개혁과 프랑스의 혁명보다 더 중요한, 기존하는 제반 상황의 거대한 변혁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위한 노동운동의 투쟁에서 하나님의 현재적 활동이 실현되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운동에 참여해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1.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뒤를 따르기 위하여 사회적 투쟁에서 약자의 편을 든다.

2. 사회운동 안에는 인간화의 크나큰 진보가 나타난다. 이 운동 안에서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적 사상, 즉 인간의 하나님의 자녀됨과 형제됨의 사상이 실현된다.

3. 사회운동에는 무신론과 같은 달갑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공적인 그리스도교의 큰 잘못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성을 가진 자는 이 모든 소용돌이 속에서도 창조적인 하나님의 영이 활동하고 지배하고 있음을 본다.

4. 그리스도인은 사회주의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주의가 탈선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름이다. 이 부름을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큰 심판에 봉착할 것이다.

 

Ⅲ.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라가츠의 상세한 입장을 보여 주는 저서는 '그리스도로부터 맑스에게로 - 맑스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1929년)이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교와 종교, 자본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진정한 그리스도교와 진정한 사회주의, 제자직을 강조했다.

1. 그리스도교  비판

사회주의와 그리스도교는 본래 서로 속한 것이다. 이 둘은 한 운동의 두 반쪽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둘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져온다. 그러나 전통적인 그리스도교는 오직 새 하늘만을 바라보고 옛 땅과는 만족하게 지낸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민중의 아편이 된다. 그 주요 관심은 영혼, 내면, 고난과 죽음의 극복이다. 물론 일반 교회도 사랑의 행위를 호소하지만, 제반 상황의 변혁을 요구하진 않는다. 하나님을 찾으나 하나님의 나라가 없는 하나님을 찾는다. 개인주의는 거룩한 이기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그것은 비관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있고, 정치적 견해는 보수적이고 반동적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순수히 피안적인 것으로만 여겨진다.

공적인 그리스도교는 소유문제와 폭력문제에 실패했다. 하나님의 나라의 샘으로부터 항상 새로운 충격이 역사 안으로 흘러들어 왔으나, 그것은 공적인 교회에 의해 거부당했기 때문에 교회와 대립하게 되었다. 그 구체적인 사례는 루터가 농민혁명에 반대하고 영주들에게 농부들을 진압하라고 요구한 일인데(1525년), 이 때부터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연결고리는 완전히 깨어졌다.

2. 종교  비판

라가츠는 하나님의 나라 이해로부터 그리스도를 비판하면서 '종교'의 개념을 사용한다. 바젤의 목사대회(1906년)의 주제강연("복음과 오늘 날의 사회적 투쟁")에서 그는 종교가 갖는 현실안주적 형식과 미래지향적 형식 사이를 구분했다. 전자는 종교에서 안식을 위한 장을 찾는다. 이런 개인주의적 경건은 그리스도교가 보수적 세력임을 자명하게 받아들인다. 다른 형식은 그리스도의 제자직을 강조한다. 이 후자는 십자가의 사랑을 포괄하지만, 거기서 안식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로부터 세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그리고 세계를 하나님 앞에 복종시키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

현실안주적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는 세상적 영역과 영적 영역 사이를 갈라놓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자들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차안과 피안 사이의 분리를 모른다. 예수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나라는 그 역동성에서 종교와 구분된다. 예수의 오심으로 하나님에 의한 세계변혁의 희망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예수도 결국 이 세상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두 영역은 더 이상 분리된 상태로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기존하는 세계의 마술에 사로잡힌 그리스도교는 도래하는 주님에 대한 방향을 상실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부인하는 종교는 반신적 세력들의 한 특수한 형태일 뿐이다.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 은총을 받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탈했고, 그리스도교라는 하나의 종교를 고안해 내었다. 종교는 권력, 소유와 관련되며, 교회의 위기는 종교의 위기에서 기인한다.

3. 자본주의  비판

자본주의는 도덕적으로 실패했다. 자본주의는 이기주의, 야수성, 기계주의, 물질주의, 비인간성, 무신성(無神性)이다. 자본주의적 사회는 도둑들의 원리에 따르며, 만인 대 만인의 투쟁원리에 따라서 형성되었다. 자본주의 체제가 비도덕적이고 반신적인 까닭은 이 체제가 인간의 노동, 노동의 창조성을 파괴하고, 이윤이라는 비본래적인 목적에 굴종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개개인의 노동만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공동체성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된다. 성스러운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인간관계도, 자연의 아름다움도, 윤리적, 종교적 진리도, 어떤 이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돈이 주인이다. 이렇게 오로지 돈이 인간에게 주인 노릇을 한다. 깊은 무신성이 이 질서를 누르고 있다.

4. 과학적 사회주의(볼세비즘)  비판

사회주의가 물질관계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한 것은 큰 공헌이다. 사회주의는 공적인 교회와 대립하지만 성서와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서 안에는 '거룩한 물질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회주의는 유감스럽게도 18 세기의 과학주의와 결합되었다. 사회주의는 기계론적, 인과론적, 결정론적 세계관, 윤리적 상대주의와 방종주의에 빠졌다. 역사가 변증법적 발전 속에서 이성적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는 생각은 헤겔의 관념론에서 유래한 것이고, 이 점에서 종교적 근거를 갖고 있다. 그래서 맑시즘은 자연과학적 강점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메시야적 종교이다. 철학적 사색 혹은 차가운 과학의 형식을 띤 이 메시야적 메시지는 마치 복음처럼 대중을 사로잡았고, 새 희망과 삶으로 열광시켰다. 과학적 사회주의는 이렇게 스스로 비과학적임을 드러내었다.

과학적 사회주의는 그릇된 관념주의에 맞서서 자연주의와 결합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 생존투쟁의 이론으로써 식민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세계관으로 확대되었다. 볼세비즘은 이 폭력신앙을 받아들였고, 이로써 계급투쟁의 제국주의적, 군국주의적 형태를 발전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볼세비즘은 결코 새 세계를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5. 진정한 그리스도교와 진정한 사회주의

이에 반해 진정한 그리스도교와 진정한 사회주의는 윤리적 사회주의 안에서 새로이 결합될 필요가 있다. 이 사회주의는 물질주의와 관념주의를 서로 보충하는 두 점으로서 관련시킨다. 사회주의는 공의가 지배하는 새 땅을 추구한다. 사회주의는 물질, 소유, 기계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고 한다. 사회주의는 모든 인간들의 연대적 결속의 원리에 따라 생산과 재산을 나누려고 한다. 경제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은 이윤이 아니라 공동체의 물질적 요구의 만족이다. 또 이것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아니라 물질적 곤궁에 대항하는 공동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 그 최상의 형태는 협동조합이다.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을 통하여 계급대립을 극복하고, 그리하여 계급투쟁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한다. 수단은 목표와 일치해야 한다. 만약 폭력과 독재로 사회주의를 이룩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폭력과 독재에 머물고 만다. 사회주의는 오로지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온다. 여기에는 가능한 한 많은 사회주의를 이룩하려는 생활방식과 새로운 정신태도가 존재한다.

사회주의가 바라는 새 땅의 희망은 그에 일치하는 신앙 속에서 그 의미와 토대를 가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도 갱신되어야 한다.

6. 제자직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지가 제자직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를 뒤따름이 얼마나 핵심적인 일인가를 깊이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의 지평 아래 살기를 원하는 자는 신비한 명상의 세계로 도피해서는 안되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役事)에 직면하여 피동적 자세로 있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인간이 동역자로 함께 참여함으로써 그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숨은 뜻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뒤를 따르는 일에는 폭력포기와 수난의 각오가 요구된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부활에 참여한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수난도 신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봉사한다. 이것은 예수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