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

 이신건


Ⅰ. 들어가는 말

칼 바르트는 1909년에 쓴 그의 짧은 논문 '현대신학과 하나님 나라의 일'(Moderne Theologie und Reichgottesarbeit)에서 현대신학 즉 그 당대의 이른바 문화개신교주의, 신개신교주의, 혹은 자유주의 신학의 주요특징을 요약하고(종교적 개인주의, 역사적 상대주의), 이 신학이 갖는 문제점으로서 인식의 상대성, 신앙표상의 복수주의 및 실천관련성의 결핍, 다시 말하자면 공동적이고도 일관적인 실천능력의 부재를 지적한 적이 있다. 이 논문에서 바르트는 그 당대의 신학의 이론적?실천적 한계성을 통찰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이론을 암중모색하려고 고민했음을 엿볼 수 있다.

본인도 여기서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이론적?실천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한 방식대로 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를 그 이론적?실천적 관점 아래서 규명해 보고자 한다. 그는 과연 그 이전의 신학이 갖는 이론적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는가? 그는 과연 그의 신학을 통하여 교회가 다함께 일관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든든한 실천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는가? 여기서 우리는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신학과 그 일'의 상관성을 추적하는 데 촛점을 맞추기로 하자.


Ⅱ. 신학사적 분기점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신학과 그 이전의 하나님이 나라 신학을 확연히 구분하는 분기점은 무엇이며, 무엇이 바르트로 하여금 그의 스승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로부터 갈라서게 만들었는가? 이 문제의 해명은 바르트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기획된 새로운 정통주의(Neo-Orthodoxie) 신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조건이 될 뿐만 아니라, 바르트 자신의 신학 전체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관건이 된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는 종교적-신학적 개념(표상,상징)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신학적 개념이기도 하기 때문에,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를 규명하기 이해서는 그의 신학을 새롭게 태동시키게 만든 신학사적 분기점을 확인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⑴ 이른바 '철저한 종말론'(Konsequente Eschatologie)에 의한 종래의 하나님의 나라 신학의 철저한 해체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이 구상한 하나님 나라의 꿈과 이상은 중세기의 천년왕국 사상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레씽(Lessing) 이래로 특히 독일남부 쉬바벤 지방의 성서주의(Biblizismus)의 구원사 신학으로부터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인데, 이 새로운 신학적?철학적 천년왕국의 인류사적 구상에 따르면, 인류사의 목표는 완성된 인간성, 도덕성, 이성의 목적을 보편적으로 실현하는 데 있었다. 신학이 철학과 손을 맞잡고 만들어 놓은 '범종말론적 꿈'(Paneschatologischer Traum)은 역사에 대한 진보적?낙관적 이해를 바탕으로 삼고 있었으며, 비록 하나님의 초월성과 하나님 나라의 피안성을 인정하고는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실현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세계 내의 인간의 가능성에 두고 있었다(낙관적 인간이해). 칸트(I. Kant)가 '최고선'의 이상을 하나님의 나라와 분명히 동일시한 이래로 철학과 신학의 공생(共生)을 위한 전제조건이 마련되었으며, 양자 간의 돈독한 연대 관계는 특히 하나님 나라의 보편적인 궁극적 목표를 바라보면서 시민계급의 직업윤리를 세우려고 한 리츨(A. Ritschl)의 시도 안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 같이 보였다.

철학과 신학, 종교와 문화, 신과 인간의 종합(Synthese) 위에 세워진 천년 왕국적 이상은 리츨의 사위인 바이쓰(1865-1914)에 의해 철저히 문제시되었다. 신학사의 지축을 뒤흔든 바이쓰의 연구(Die Predigt Jesu vom Reich Gottes, 1892)는 비록 67페이지라는 작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신학사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저서가 되었고, 옛것의 종말과 새것의 시작을 가져왔다. 바이쓰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가 이해한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적으로 초세계적 실재로서... 이 세계와 배타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다... 예수의 사고 범주 안에는 하나님 나라의 세계 내재적 진보에 관한 말이 전혀 존재할 수가 없다.

이로써 종말론적?묵시적 하나님 나라 이해는 종교적-윤리적 욕구와 철저히 대립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초월적 표상은 세계내재적 진보의 목표와는 오로지 대립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 세상과 공통되는 것이라곤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고, 그의 한 발은 이미 미래적인 것 속에 서 있다. 이로써 예수는 산상설교의 도덕교사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메시지를 가진 묵시문학적 열광주의자가 되었다.

쉬바이쳐(A. Schweitzer)에게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서 예수는 더이상 단지 당대의 종말론의 대변자가 된 것만이 아니라, 종말론적?묵시문학적 각본의 배우로서 심리적으로 이해되었다 :

"사방이 고요했다. 거기에 세례요한이 나타나서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친다. 곧 그 뒤를 이어 스스로 와야 할 인자로 자각한 예수가 세계의 수레바퀴의 살에 끼워져서 그것을 움직이며 마지막 회전을 시키고 일반 세계사의 종말을 가져 오려고 한다. 그러나 바퀴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는 거기에 몸을 던졌다. 그래서 바퀴는 그대로 돌고 그는 갈기갈기 찢겨졌다. 그는 종말을 가져오는 대신에 그것을 파괴했다. 그런데 세계라고 하는 수레 바퀴는 계속 돌아가고, 자신이 인류의 영적 지배자이며 인류역사를 자기의 목적대로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강하고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사람의 갈기갈기 찢겨진 시체의 조각들이 아직도 그 수레바퀴에 매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승리이며 통치이다."

바이쓰와 쉬바이쳐가 주창한 소위 '철저한 종말론(Konsequente Eschatologie)은, 비록 참으로 철저하지 못했지만, 즉 철저히 종말론을 붙들고 나가지 못하고 이를 결정적으로 극복, 폐기하고 다시금 자유주의의 예수상으로 돌아갔지만, 기독교에 대한 종말론의 중심적 의미의 발견은 최근의 개신교 신학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 중의 하나로서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었고, 기독교에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신학, 교회와 경건, 신앙의 터전을 흔드는 지진과 같았고, "홍수가 나고 제방이 무너지는 것"(M. 켈러)과 같았다.

⑵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한 자유주의적?이상주의적 문화의 결정적 붕괴(윤리적 실패)

자유주의 신학의 진보적?낙관적 천년왕국의 지축을 뒤흔든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칼 바르트는 그 당시의 경험을 스승들의 신학으로부터 결정적으로 결별하게 된 계기로서 술회했다:

"그 해(1914년) 8월 초순은 적어도 나에게는 암흑의 날이었다. 93명의 독일 지식인들이 빌헬름 2세의 전쟁선포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지지서명을 발표했는데, 이 지식인들 중에는 이제까지 숭앙해 왔던 신학스승들의 이름(필자주:하르낙,제베르크, 헤르만 등)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경악케 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이들의 윤리학과 교의학, 성서해석과 역사관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고, 더우기 19세기의 신학은 더 이상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을 절감했다."

바르트의 스승의 하나님 나라의 신학은 결국엔 독일의 이기주의적 영토확장을 뒷받침해주는 세상 나라의 전쟁신학으로 귀착되었다. 이것은 그들의 신학의 필연적 귀결이요, 그 이론적?실천적 실패의 징후였다. "자유주의의 역사는 미로였고 사도(邪道)와 미궁의 역사였다. 그 힘은 모순과 상호파괴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이 뛰놀았다."

이 날 이후로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허구적 자유의 체계와 그 이데올로기의 내적 모순, 붕괴와 더불어 절대적인 하나님, 철저히 이 세계에 대하여 낯설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나라에로의 새로운 부름의 소리를 들었다. 이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를 그는 성서 안에서 발견했는데, 이것은 그의 스승들이 가르쳐 주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기하고 새로운 세계'였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다. 이로부터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상대적?주관적 입각점(도덕의식, 종교체험, 역사의식)으로부터 절대적?객관적 입각점(인간과 세계에 대해 주체로서 자유로이 대면해 있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으로 돌파함으로써, 옛 신학의 잔해를 딛고 새 신학의 장을 열게 되었다.

⑶ 블룸하르트 부자(父子)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돌입

앞의 두 사건 만큼 그렇게 떠들석하게 대지각 변동을 일으킨 사건으로서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서서히 한 곳에서 지각균열을 일으키면서 마침내는 온 지각을 뒤엎었던 사건의 하나는 바로 블룸하르트 부자가 일으킨 하나님 나라의 운동이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의 붕괴를 딛고, 아니 그 붕괴에 가속력을 주면서 등장한 이른바 변증법(혹은 신정통주의) 신학의 대변자들 중에서 그들의 영향을 직접?간접적으로 받지 않은 자들은 드물다. 마트뮐러는 말했다:

"종교사회주의와 변증법 신학이라는 20세기의 스위스에 탄생한 저 위대한 신학운동은 그 공통의 뿌리를 받 볼(Bad Boll)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증법 신학운동을 흔히 "하나의 블룸하르트 운동"(Eine Blumhardtsbewegung)이라고 부른다. 블룸하르트 부자가 찾고 구하고 증언한 하나님은 새로운 행위와 능력과 계시를 기대할 수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단순히 개개의 인간의 영혼 속이나 먼 하늘에만이 아니라 무엇보다고 그리고 우선적으로 인간의 생활 속에, 바로 이 지상의 인간의 실생활 속에서 찾고 기대하려고 했다.

아버지 블룸하르트(J. Chr. Blumhardt)는 뜻하지 않는 악귀 추방의 경험을 겪은 이후로 카리스마적 목사가 되었는데, 그 이후로 그는 계속되는 회개와 치유의 역사의 한 복판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악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 간의 투쟁, 승리자인 예수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실천했다. 그의 목회를 이어받은 아들 블룸하르트(Chr. Blumhardt)는 점차 부친의 수직적 하나님 나라 이해에 수평적 하나님 나라 이해를 결부시켰고,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이 땅 위의 이상(사회주의적 삶의 방식)과 결합시켰다. 그의 메시지와 활동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철저한 기다림과 적극적인 서두름, 초월적인 하나님 나라의 돌입과 이를 준비하고 촉진하며 이에 협력하는 인간의 역사변혁적 행동, 하나님 인식과 하나님 나라의 희망이 묘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전적인 갱신자로서의 하나님, 이 세계를 위한 희망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바르트에게(그를 비롯하여 투르나이젠, 브룬너, 쿠터, 라가츠 등에게도) 심원한 자극과 영향을 주었다.

Ⅲ.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

⑴ 로마서 주석 제1판(1919)

로마서 주석 제1판에서 바르트는 특히 블룸하르트와 튀빙엔 대학의 천년왕국적 종말론자 토비아스 벡(T. Beck) 등의 영향 아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기적인 새 창조로 이해했다. 이 나라는 지금까지 존재해 온 제 가능성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전진이나 발전이 아니라(자유주의 신학의 진보적?낙관적 하나님의 나라 이해에 대한 부정!), 모든 시대들을 관통하며 모든 시대들의 신적 가능성을 출현시키면서 유기적으로 성장한다. 이 나라는 기존의 것을 유지하거나 거기에서 안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며(부르즈아적?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부정!), 또 그렇다고해서 기존의 것을 파국적으로 제거하지도 않는다(레닌주의적?공산주의적 혁명에 대한 부정!).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히 다른 하나님 자신의 나라로서 모든 기존 현실을 관통하며 모든 신적 성향과 가능성을 실현시키면서 성장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이다. 그 나라는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인해 가능해졌고 그의 부활로 인해 현실화되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이 왔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화되었는가?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씨앗, 변혁된 자연 법칙의 원리, 새로운 세계의 결정핵, 새로운 인간과 사물의 유기체의 시초와 머리, 새로운 창조의 배아(씨앗)로서 죽음을 통하여 낡은 요소를 받아서 새로운 갱신된 세계를 조성해 낸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과 세상 및 인간 사이에서 상실된 유기적 일치 관계를 회복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재건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혁명으로서 모든 혁명의 혁명이다. 그리고 혁명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이다. 이 영은 기존 현실을 파괴하지도 않고 보존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철저히 변혁시킨다.

여기에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나라를 모든 종류의 인간적 혁명 혹은 개혁의 시도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저항운동으로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혁명은 아무리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낡은 나라를 대변할 뿐이지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바르트가 로마서 주석 제1판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혁명을 위한 인간의 협력이나 참여조차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혁명은 물론 우리 밖에서(extra nos) 시작하지만, 우리 안에서(in nobis) 우리와 함께(cum nobis) 일어난다. 하나님은 아래로부터 활동하시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다. 하나님은 지배구조 아래서 고통당하는 하층민들의 편을 들면서 억압받는 자들에게 활약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인간소외, 인간의 우상생산(국가, 맘몬, 인물, 예술, 학문, 교회, 미덕 등의 우상화), 인간의 물화(物化)와 주인없는 권세들(자본, 국가, 군국주의)의 지배에 맞선 하나님 나라의 혁명에 길들여짐으로써, 하나님의 혁명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사회민주주의 안의 정치적 참여 속에서 이루어진다.

⑵ 로마서 주석 제2판(1921)

로마서 주석 제2판은 완전히 새롭게 쓰여지고 철저히 논리적으로 구성된 것으로서, 바르트를 하루 아침에 유명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로마서 주석을 다시 개작하게 된 동기는 특히 여러 사상가들의 저작들을 접한 것에 있다. 오버벡(F. Overbeck)의 원역사(Ur-geschichte)의 개념으로부터 바르트는 역사적 회의주의를 배웠고(역사에는 무상과 타락의 법이 존재한다. 기독교는 초시간적이다), 도스토예프스키(Dostoyewski)의 소설들에서 바르트는 인간의 악마성, 진리의 파라독스적 성격, 기존 현실에 대한 철저한 회의 등을 수용했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로부터 바르트는 많은 상징적 표현문구들만이 아니라 진리의 실존적?역설적 성격, 하나님과 인간의 철저한 구분, 계시의 순간적?사건적 성격 등을 배웠다. 그 밖에도 바르트는 플라톤(Platon), 칸트(Kant) 및 종교개혁자들(Luther, Calvin) 등으로부터도 새로운 통찰을 획득했다.

그리하여 바르트는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의 철저한 초월성, 이질성, 배타성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과 인간의 혼합, 인간적인 것의 신적인 고양(高揚), 인간 존재 안의 신적 존재의 개입(介入)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비시간적인 시간, 비공간적인 영역, 불가능한 가능성, 부정 속의 긍정, 시간 속의 영원, 죽음 속의 생명이다. 이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왔다. 그는 역사의 의미이며 시간의 종말이고 오로지 역설(Kierkegaard), 승리자(Blumhardt), 원역사(Overbeck)로서만 이해될 수 있는 자이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위로부터 수직적으로" 단절시키는 미지의 차원이다. 그러므로 그는 역사의 가시성 내에서는 문제꺼리, 신화로서만 이해될 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작은 입자 속에서도 땅에 도래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고상한 형태 속에서도 오지 않았다. 그것은 가까이 왔을 뿐이다. 그것은 선포되고 신앙될 수 있을 뿐, 낡은 것의 연속으로서 가까이 온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계는 가까이 왔지만 어디까지나 영원한 세계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그것의 반사(反射) 안에 있을 뿐이다. 이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부정적, 불가시적이고 은폐된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의 소멸, 만물의 종말, 차안의 동요와 소요, 파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유기적으로 성장하거나 건설되어지지 않는다. 그처럼 볼 수 있는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바벨탑일 뿐이다. 우리는 두렵고 떨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나름대로 이룩하려고 노력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머리카락의 넓이 만큼도 접촉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순간은 모든 순간들과 비교할 수 없이 대립하고 있고,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시간들과 비교할 수 없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순간들의 초월적 의미, 모든 시간들의 성취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철저히 배타적으로 하나님 자신만의 일이라고 간주된다. 물론 그것은 우리들을 위해(pro nobis) 일어나지만,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맞서서(contra nobis) 일어난다.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혁명, 하나님 나라의 일에 협력하지 못한다. 가장 철저한 혁명조차도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겨 오기는 커녕, 단지 기존적인 것을 기존적인 것으로 대체할 뿐이고, 새로운 형태의 악을 불러 들인다.(레닌혁명 비판!).

그렇다고 해서 바르트가 여기서 전적인 체념, 윤리적 행동의 상대화, 부르즈와 계급적 반동, 종말론적 비관주의를 장려하자고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세상에 대해 절대적으로 다른 하나님을 통하여 세상을 절대적으로 다르게(새롭게)하는 하나님의 활동을 긍정하려고 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활동할 수는 없지만, 기존질서 내에서 사회적 긍정, 억압, 독재에 맞선 개혁정치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시위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로마서주석 제1판에서와 같이 온갖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속에서 이루어지며, 사회민주주의적 정치 안에서 실천된다.

⑶ 교의학 시대(1932-1968)

로마서 주석 제2판은 신학과 철학, 하나님과 인간을 종합하려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작업마당을 폭파한 효력을 끼쳤다. 인간이 생산해 내는 온갖 우상을 파괴하고 성전을 더럽히는 온갖 혼합주의를 축출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이 책은 잠자는 뭇 그리스도인들을 깨우는 닭소리, 종소리가 되었고, 인간으로 하여금 무상한 것을 절대화하려는 시도로부터 결별하여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은혜로운 하나님 앞에서 전율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 책은 로마서 주석 제1판과는 달리 하나님의 나라의 위기에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폐허, 진공을 남기는 듯 하였고, 시간-영원의 변증법이 하나님의 나라의 희망에 대한 기대를 채워 주기에는 너무 인색한 것 같았다. 머지 않아 바르트는 괴팅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고, 여기서 종교개혁자들의 유산을 더욱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이전 체계를 심화?수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변증법적?수직적 종말론의 체계는 다시금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 아래서 성서적?수평적 종말론의 체계에 의해 대체?수정되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전환은 '바르멘 신학선언'의 제3항("... 교회는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고…")과 자신의 고백(KDⅡ/1, 716 이하: "...나는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피안성을 진지하게 여기느라 하나님의 오심 그 자체를 소홀히 여겼다... 어떻게 내가... 시간에 속하는 목적론(Teleologie), 진정한 종국을 향한 그 출발을 온갖 기교와 능변을 부려서 간과했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 종말론적 전환 자체가... 반동으로서는 너무 강했다. 즉 독단적이고 전제적이었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전의 체계에서도 그러했지만, 특히 화해론에서는 더욱 분명하고도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구상되고 설명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진 지배, 그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그분 자신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인격 안에서 온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리고 바르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화해를 하나님의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이 혁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의 돌입이다. 이 하나님 나라의 돌입, 하나님의 혁명은 인간과 세계의 급진적?전체적?보편적 변혁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참 혁명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 나라의 혁명은 사회집단과 관습에 맞선 충돌 안에서 일어나서 모든 인간들의 상황변혁을 목표로 삼는다. 그렇지만 이 혁명은 율법적 강요의 전체주의 속에서가 아니라 은총의 전체주의 속에서 일어난다. 이 혁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인간도 변혁의 주체가 되도록, 하나님의 투쟁에 참여하도록 부름받는다. 이 투쟁은 특히 인간의 소외, 물화, 관료주의화, 억압에 맞선 행동 속에서 구체화되며, 이 행동은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사회, 화해된 사회를 위한 실천 속에서 이루어진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선행적 형태, 비유, 반영, 복사로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지시하고 이의 도래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혁명인 화해의 인식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에, 사회의 부정적 요소들에 대한 비판적 역할과 더 나은 사회질서의 수립을 위한 건설적인 역할을 통하여 사회변혁을 위한 적합성을 실증할 수 있다. 교회는 이론적?실천적으로 더 나은 화해된 질서를 향해 진군하는 전위대, 선구자로서 자신을 입증할 수 있고 또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만 바르트에 의하면 교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적합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비록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세속적인 휴매니티, 우주의 빛들과 진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매개하며, 사회민주주의는 인간적?정치적 세속성의 진정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의 반사로 입증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의 정치적 차원과 내용적인 공통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혁명에의 인간참여는 특히 사회민주주의 안에서의 영속적 체제변혁, 영속적 개혁정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Ⅳ. 맺는 말

바르트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일평생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려고 힘썼고, 예수의 실천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 신학을 실천영역에 옮겨 놓고 스스로 실천해 보려고 애썼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사망 직전에도 그의 친구 투르나이젠과의 마지막 통화에서도 "...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렇지만 바르트는 자신을 결코 절대화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복음을 새로이 가리키는 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세례요한의 손 이상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하나님과 이웃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나름대로 노력한 것을 나중의 사람들이 훨씬 더 잘해 주길 바랬다.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 신학을 어떻게 더 수정?심화할 수 있었을런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는 다른 내용으로 이를 채우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는 마지막 해답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에서 하나님의 나라 신학은 무엇이고, 하나님 나라의 일은 무엇인가? 바르트는 그의 대답을 통해서 보다는 오히려 이런 질문을 통하여 훨씬 더 가까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