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동서를 오간 평화의 비둘기, 칼 바르트

       

 

 

1. 문제제기

일평생 교회와 세상 속에서 책임적인 신학자와 설교자로, 그리고 행동하는 정치적 그리스도인으로, 복음을 해명하고 그릇된 신학과 세계관에 맞서 열렬히 투쟁했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동서간의 냉전의 한 복판에서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했는가? 국가사회주의의 위협에 대항하여 고백교회를 이끌고 바르멘 신학선언(1934년)을 기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그는 새롭게 대두하는 소련 공산주의의 정치적·경제적·철학적 체계에 대하여서는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바르트의 사고와 태도를 면밀히 추적해 보면, 사실 나치스에 맞서 혼신을 다해 투쟁했던 바로 그만큼 공산주의에 맞서서도 투쟁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다소 미온적이거나 방관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바르트가 1948년에 헝가리 개혁교회의 초대를 받아t9그곳을 방문해서 발언한 내용은 그와 같은 태도를 보여준 것처럼 비쳤다. 그때 헝가리는 동구블록에 편입되면서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어 갔는데, 헝가리 교회는 새로운 공산정권과 어떻게 대결해야 할 것인가 고심하다가 바르트의 자문을 얻기 위해 그를 초청했던 것이다. 바르트에게 주어진 과제는 교회의 본질과 과업은 특정 시대를 떠나서 항상 어디서나 무엇이어야 하느냐에 관해 강연하는 것에 있었다. 거기서 바르트는 헝가리의 상황과 그 특수한 문제를 단순히 나치스에 대한 서구 교회의 관계의 전례에 따라 취급하지 말고, 복음으로부터, 헝가리의 특별한 과거와 역사를 살펴보면서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임을 주지시켰다. 그리고 그는 헝가리 교회가 지금 당장 공산체제의 명백한 위험과 손실에 맞서 저항하기보다는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헝가리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긴박한 과제임을, 바로 그것이 교회에게 기대되는 신앙과 회개의 열매임을 이해시켰다.1) 이러한 바르트의 태도표명은 유럽의 곳곳에서 그를 성토하는 비난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에밀 브룬너는 바르트가 전체주의 국가의 적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비난했다. 브룬너는 왜 바르트가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나치스 대항하여 고백하고 행동한 것처럼 하지 않느냐고 공개적으로 질문했다.2) 언론들은 바르트가 전체주의적인 세계의 위험의 새로운 형태를 잘못 인식하고 있고, 그는 분명히 소련 공산주의자와 볼세비즘의 추종자라고 공격의 화살을 퍼부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잠재적인 공산주의자나 최소한 그 동행자라는 혐의를 씌우는 것까지는 원치 않았더라도, .그를 정치적인 감각도 없이 어중간하게 아는 아마츄어나 원칙적인 비동조자(Non-Konformist)라고 비난했다. 사람들은 바르트가 한때 나치스에 맞서 취했던 행동을 공산주의에 맞서서는 반복하기를 꺼리는 명백한 자가당착을 저지른다고 책망했고, '자유로운 세계'의 장점들과 은혜를 잊고 이에 감사할 줄 모르는 자라고 비웃었다. 사람들은 바르트의 입장표명이나 침묵을 위험한 탈골과 착각의 증거라고 비아냥거렸고, 그가 명백히 반민주적인, 아니 반인도주의적인 특징을 가진 견해를 대변한다고 책망했다. 특히 맥카시(Mckarthy)와 같은 부류에 속한 자들이 많았던 바르트의 모국 스위스에서는 사정이 매우 험악했다. 지금까지는 아무소리도 못하고 죽어지내던 정치가들이 그에게 격식을 갖추어 도전장을 던졌고, 히틀러 시대에 받았던 적합한 동정을 이제는 완전히 잃어버린 의심스러운 동료라는 소리가 나왔다. 헝가리 사태에 대해 침묵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에게 뉘우칠 줄 아는 장 폴 사르트르와는 달리 회개할 줄도 모르는 자, 미국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비그리스도교적인 증오심을 품는 자, 신학갱신과 독일교회투쟁에선 확실한 공로를 이룩한 반면 정치면에선 수상쩍은 도깨비불이라는 낙인을 찍었다.3) 미국 쪽에서도 라인홀드 니버는 왜 바르트가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침묵하느냐고 공공연히 성토했다.

바르트는 과연 공산주의자였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은혜와 승리에 사로잡혀서 일평생 예수 그리스도만을 해명하고 증거하는 일을 최대의 신학적 과업으로 삼았던 바르트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는가? 바르트는 왜 많은 오해를 받고 인기를 잃으면서도 유달리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주변의 다수와 일치된 견해를 갖지 않고 시련 속에서 힘들고 고독한 자기의 길을 갔는가? 아니 바르트는 자기의 길을 가려 했는가, 아니면 복음의 길을 가려 했는가? 그는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방어했으며, 과연 공산주의에 대한 바르트의 진정한 입장은 무엇이었는가?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변명했다면, 실로 반공주의자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바르트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답변을 통하여 접근하려는 것이 본 소고의 목적이다. 사실 바르트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에게 주어진 비난을 너무 열심히 방어하고 변명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고,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으리라고 생각하게되었다. 왜냐하면 그를 계속 따라다닌 시련 속에서도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으면, 사실은 조만 간에 저절로 올바른 균형을 찾아 밝혀지게 마련이니까."그러나 그 일에 침묵만 할 수 없었던 그 자신의 입장으로부터 정리된 그의 소신의 목소리를 듣기로 하자.

때마침 한국 사회에는 통일열망과 통일논의가 들끓고 있다. 그러고 이와 병행해서 북한 공산주의의 실체를 올바르게 파악하려는 노력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고, 공산주의에 관한 연구서들도 점차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통일논의와 통일접근의 재개 속에서 한국 교회는 아직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좌충우돌하고 있다. 성명과 반박성명이 엇갈려 나오고,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논쟁 속에서 전진적 태도와 보수반동적 태도가 알력을 빚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면 으례 반공이나 멸공을 내세워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고, 또 그리스도인은 이념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공산주의 혹은 공산주의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것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시각은 어디에 두어야 하며, 공산주의비판은 교회비판을 면제해 주는 것인가, 아니면 공산주의적 교회비판은 교회의 자기 이해에 도움을 주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해명의 한 본보기로 바르트의 공산주의 이해는 우리에게 좋은 안내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바르트가 공산주의(특히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이해한 시기와 배경 그리고 그 내용이 오늘과 같은 것이 아니므로, 그의 입장을 교과서적으로 수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또 그의 해석에 비판을 가할 수 있는 학문적 자유도 남아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대한 바르트의 견해는 오늘날까지 하나의 고무적인 모형을 시사해 준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의 입장을 가급적 그 자신의 관점에 따라 해명해 보고자 한다.

 

2. 바르트의 출발점

칼 바르트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두 개의 강대 세력권 안으로 편입되는 것에 그다지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한 과정이 세계의 자연역사에 속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세계적인 강대국들의 대립과 충돌은 이미 옛적부터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강대 세력들의 출현을 무상한 피조물의 종살이의 형태로 간주하고, 언젠가는 그것들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릴 날이 올 것임을 기대했다. 강대 세력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자비로운 하나님으로 실증해 보인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내려진 심판의 그늘이다. 강대 세력들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큰 야수들과 같이 왔다가는 사라진다. 그러나 교회는 신앙 속에서 그 강대 세력들을 통과하면서 고난과 시련을 당하면서도 끝끝내 견디고 살아 왔다. 여기서 바르트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소련과 거기에 맞선 다른 강대국 미국을 말하고 있다.5) 전자는 공산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체제에 의해 대변되고, 후자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자유민주주의적 체제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진영에 속한 서구블록은 소련의 진영에 속한 동구블록을 아래와 같이 비난한다. 동구가 추진하는 것은 완전히 왜곡된, 다시 말하면 일방적으로 유물론적인 인간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은 마치 오로지 경제적인 존재인 것처럼, 생산과 소비는 마치 유일한 삶의 문제, 삶의 조직과 과업이어서 다른 모든 것은 거기에 종속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행동한다. 그들은, 만약 이 조직이 언젠가 수립된다면, 인간은 선해질 것이라는 불합리한 확신을 갖고 있다. 그들은 실로 완전한 조직의 처방전을 갖고 있다는 맹목적 확신을 갖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란 충분히 선한 존재여서 완전한 질서, 급진적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망상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개개인은 오직 소비하고 생산하는 자유, 투쟁에 참여하는 자유만을 부여받고, 다른 자유를 주장하는 자에겐 화가 미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인간은 집단의 단순한 구성요소, 기계, 집단인간이 된다. 그리고 이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관철할 때 다른 어떤 더 높은 권리가 인정되거나 존중되지 못한다. 모든 수단들이 사용될 수 있다. 선전과 선동, 경찰제도와 그 냉정함과 잔인함, 투쟁의 관철과정에서 수 백만명의 인간들이 무차별적으로 당하는 희생, .그것은 비인간적인 것이며, 그러한 신앙은 하나님 대신에 사회적 진보라는 이념의 악마가 등장한 거짓 신앙이다. 반면에 동구블록은 서구블록을 다음과 같이 비난한다. 서구가 추진하는 것은 완전히 전도된, 다시 말하면 그롯된 정신적 ·도덕적 인간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서구인들도 역시 인간을 우선적으로 경제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거기서도 삶은 실로 생산과 소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그들은 돈, 맹목적이며 익명적인 자본, 이자와 그 증식에 의해 지배당한다. 그들은 진정한 집단인간을 양육한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순전히 형식적인 것이고, 거기서도 돈이라고 하는 하나님을 지배하기 위한 맹목적 투쟁이 일어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도 일으키고, 평화시에는 개화된 잔인성과 간계. 조작과 음모, 거북한 일과 사람에 대한 사기가 지배한다. 소위 민주주의나 정신과 도덕의 존중이나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기독교는 대중에겐 눈 속의 모래알이고, 진정한 인간의 생활은 언급되지도 않고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대중들의 시선을 하늘로 돌림으로써 땅 위에서는 모든 것들이 옛날 그대로 남아 있다. 그것들은 비인간적인 것이고 거짓 신앙이다.6)

이 양대 세력 사이에 있는 교회는 어떤 편을 들어야 하는가? 바르트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원칙적인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듯이, 원칙적인 반공주의자, 즉 자본주의자가 될 필요도 없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공산주의 체제나 자본주의 체제도 아닌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는 교회가 어느 편애도 설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희망 안에서 두 체제의 대립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일과 인간의 일을 지시해야 하며, 그러기에 두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하고 더 높은 하나님 나라의 상응형태로 양자를 지양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양대 세력의 대립 속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 바르트는 이 대립을 그리스도인들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고, 필수불가결한 것도 아니며, 진정한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그것은 단지 권력투쟁일 뿐이다. 교회는 복음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두 거인들 틈에서 오직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기도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바르트는 스위스인으로서의 중립성에서부터, 유럽인이라는 중립성에서부터 출발한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자유 안에서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닌, 소련이나 미국의 일도 아닌, 하나님과 인간(인간성)의 일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양대 세력을 단순히 흑백논리에 따라 선과 악으로, 빛의 천사와 사탄으로 나누어 판단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가 제3의 길, 그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7)

동구의 집단인간을 어두움의 천사로, 서구의 '조직인간'을 빛의 천사로 모사하는 것, 이런 형이상학과 신화의 도움을 입어 '냉전'의 모호한 세계과정에 더 높은 경배를 올리는 지혜는 도대체 무슨 철학이고, 무슨 정치윤리인가, 또 유감스럽게도 그 어떤 신학인가?8)

물론 사람들은 본래부터 어떤 편을 드는 일에 익숙해 있고, 서구사람들은 미국의 영향권 아래서 미국에 맞선 소련의 소리보다는 소련에 맞선 미국의 소리를 더 강하게 듣고 있으며, 따라서 서구 사람들은 미국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바르트는 자인한다. 그렇지만 그는 올바른 기독교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미국의 견해가 곧 기독교의 견해가 아닐 뿐더러, 미국의 양심과 판단이 곧 기독교의 양심이나 판단과 동일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냐? 아니면 피냐?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할 필요가 없다. 돈도 아니고 피도 아니다 ! 그 어떤 편도 들지 않고 모든 대립 위에 초연해 있는 것, 그것이 곧 엄정한 기독교적 정치적 테도이다. 교회는 오직 자신의 길만을 가야 한다.9)

바르트에겐 오직 교회의 길, 즉 하나님 나라와 그 의가 중요한 것이었기에 극단적 대립을 조장하는 그 어떠한 형태도 배격된다. 원칙적인 자본주의 못지 않게 원칙적인 반공주의도 나쁜 것이다. 그는 "원칙적인 반공주의는 공산주의 그 자체보다 더 크나큰 악이다"10)라고 보았다. 그는 말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한 유일한 대안으로서 배타적 원수관계를 선포하고 이를 실천하려 했던 것이 그 지배 아래에 있는 백성들과 그 위협을 받는 세계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으며, 그 영향 아래서 고난받는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들 도울 수 있었는가? 이와 같은 절대적인 원수관계는 ... 바로 우리의 과거의 독재자들의 전형적 고안물과 그 유산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었는가? 오직 '우리 속에 있는 히틀러'만이 원칙적인 반공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었는가?11)

바르트가 원칙적인 반공주의자가 될 수 없었듯이 원칙적인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 편에 섰고,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를 위해서도 존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대항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들을 위하시는 분이다. 공산주의자들도 인간이다. 하나님은 공산주의자들도 위하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대항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을 위한다는 것은 공산주의를 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을 위하는 바로 그 때에만 공산주의에 대항해서 말할 수 있다.12)

이런 의미에서 바르트는 "터무니없는 선전이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들의 눈 속에 있는 티 외엔 다른 어떤 것도 보지 못하게 하는"13) 양대 블록의 양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조류에 거슬러 헤엄쳐 나가라고 호소했다. 실로 바르트 자신은 양 진영을 오가며 나는 새가 되어서 공산권의 기독교인들에게도 기독교의 복음과 신앙고백을 갖도록 경고하는 일에 힘썼다. 이러한 그의 노력을 인정한 영국황실은 1952년 1월에 그에게 평화봉사의 메달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는데, 바르트는 1962년 은퇴 후에야 이를 감사히 받았다.14)

 

3. 바르트의 공산주의 이해

1) 바르트는 왜 침묵했는가?

바르트는 왜 나치스에 대항해서 고백하고 투쟁한 것처럼 공개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항하지 않고 침묵하는 자세를 보여 주었는가? 이와 같은 그의 태도에 브룬너까지 가세하여 공격하자, 바르트는 1948년 3월에 사로스파타크와 부다페스트에서 행한 "국가질서의 교체 속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그 질문에 대한 그 자신의 본질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기독교 공동체는 결코 추상적 규범, 역사법칙의 이상, 정치적·사회적 세계관 그 자체를 대변하거나 선포할 수 없다. 혹은 그것을 배격할 수도 없다. 교회가 무엇을 긍정하거나 부정할 때, 어떤 정치적 원리와 도그마와 교리문답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형태와 관계를 맺을 뿐이다. 교회는 어떤 주의(ism)에 대해 책임을 지지도 않고 그것을 배격할 책임도 없다. 교회가 부득이 그렇게 해야 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주의나 아무리 끔찍한 주의라 하더라도, 이에 대해서 아니요(!)라고 말해야 한다. 교회는 아무런 체제도 갖지 않으며, 어떤 체제에도 관여할 필요가 없다. 교회는 어디서도 정당으로 등장할 수 없다. 교회는 어떠한 정치적 추종자들이나 적대자를 알지 못하고 오로지 어디서나 인간들만을 알 뿐이다 ... 교회가 국가질서의 교체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교회는 항상 사례에 따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교회는 하나의 정치적 '노선'에 사로잡히는 것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 교회는 자유로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어떤 법칙이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의 법과 복음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오늘엔 보수적이지만 내일엔 아마 매우 진보적으로, 실로 혁명적으로 말해야 할지 모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회는 아무런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교회는 다양한 사정과 환경 속에서 항상 새로이 섬겨야 할 살아계신 주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 기독교의 정치는 세상에 대해 항상 생소하고 전망하기 어려우며 놀라운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아무런 기독교적 정치가 아닐 것이다. 15)

바르트에게 정치란 그저 냉정한 사업일 뿐이지,16)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것을 절대적인 체제나 이데올로기로 생각해서 그것에 얽매여선 안 된다고 그는 보았다. 그가 이해한 기독교의 진정한 정신은 어떤 체제나 이데올로기를 선호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희망의 정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떤 종류의 주의(ism)나체제도 배격했다. 교회의 관심사는 하느님의 일, 진정한 정의와 자유와 평화에 있다. 따라서 교회는 어떤 체제에서도 자유롭게, 거리감을 두고 행동한다. 교회는 보수적일 수도 있고 혁명적일 수도 있다. 바르트에겐 공산주의자 못지 않게 반공주의자도 더 고약한 진리의 적이었다.17) 공산국가도 그에게는 그 본질상 다른 국가나 다름이 없는 것이고,18)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판단도 복음에 비추어 이루어지는 것이지, 서구적 감정에 따라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판단도 동정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스스로 종교적이라고 자처하는 모든 정치에 대한 그의 뿌리깊은 반대로 인해 결정된 것이다. 19) 이 점에서 바르트가 나치스와 공산주의를 판단하는 기본입장이 동일한 선상에 있음을 볼 수 있다. 나치스가 종교적 가면을 쓰고 나왔다는 점에서 바르트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면, 종교적 가면을 쓰지 않은 공산주의는 굳이 신학적으로 비방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서구세계의 "더 나은 정의"로부터 비판되어야할 것이지, 지나치게 경솔한 부정을 통해 배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20) 공산주의가 비인간적이라고 해서 우리도 거기에 비인간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공산주의의 상황을 조용히 보고 이해하려고 하면서 우리가 찬양하는 인간성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21)그러기에 공산주의에 대한 바르트의 수동성은 근본적으로 공산주의가 종교적 내용을 별로 갖고 있지 않다고 본 점에서 연유한다. 바르트가 옳게 보았는지, 아니면 공산주의의 종교적 특징을 과소평가했는지 ? 혹은 공산주의의 정치가 얼마나 절대적이고 얼마나 양심을 억압하고 지배하려고 하는가에 대해 바르트가 과연 주목하지 못하였는지는 다른 문제에 속한다.22) 공산주의가 거짓 예언자처럼 종교로 가장하지 않는 한, 그것을 원칙적으로 배격할 필요가 없다고 바르트가 보았다는 점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그는 기독교인들이라고 해서 스스로를 더 나은 정치가인 것처럼 생각해서 공산주의자들과 대립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아니 오히려 그는 공산주의적 국가질서를 토지소유나 자본의 지배를 받는 자본주의적 국가질서보다 더 옳은 것이라고 여겼다.23)

여기서 자본주의에 대한 바르트의 비판을 상세히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단네만(U. Dannemann)의 분석에 따르자면, 바르트에게 자본주의란 화해되지 못한 사회의 현상형태이다. 자본주의지배는 고용자나 피고용자 모두를 소외시키고 물화한다.24) 여기서 인간은 개인적 목적의 도구가 되고, 자본은 인간의 이기주의에 호소해서 서로 투쟁하도록 만든다. 모두가 자본을 섬김으로써 인간성은 위협받고 조롱받는다.25) 그러기에 바르트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극복을 정치적 행동의 과제라고 보았다.26) 예수 그리스도는 화해된 사회의 희망이며, 그 화해된 사회는 화해되지 못한 사회의 혁명적 변혁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곳에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동적 주체가 되어 스스로 결정한다. 그곳에서는 인간이 더 이상 사회조건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며, 자유로운 인간들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더 이상 억압과 착취가 없고, 모든 인간들이 연대감을 가지면서 더불어 살아간다.27)이 하나님의 나라는 진정한 사회주의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적 운동은 하나님 나라의 거울(반영)이다.28)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수세기 동안 교회는 기존적인 것, 복고와 반동의 주체가 되어왔다.29) 바르트는 교회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그 질서와 연대하고 주어진 상황을 종교적으로 정당화시켜 줌으로써 자본주의를 섬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추악한 모습이라고 공격했다. 그에 비해서 교회의 충실한 회원들을 경제적 ·직업적 진보를 위해 억누르는 무신론적 국가도 물론 이상적이지 못하다. 그렇지만 만약 공산국가가 복음선포를 허락하고 교회 모임을 허용하기만 한다면, 무신론적 공산국가는 자본주의적 국가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바르트는 생각했다.30)

이러한 그의 확신 때문에 바르트는 공산주의를 조용히 지켜보려고 했으며, 1956년 10월에 일어난 헝가리의 소련 침공 항거투쟁에 대해서도 판단을 유보한 듯하다. 그러나 스위스와 유럽 그리고 미국에서 많은 비난이 쏟아지자, 바르트는 자신의· 입장을 더 명백히 밝히기를 원했다. 그가 이미 1949년에 스위스 베른에서 행한 강연 "동서 사이에 있는 교회"는 그의 기본적 입장을 벌써부터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그가 왜 나치스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 없었지만, 소련 공산주의에 대해선 발언할 수 없었는지 세 가지 관점에서 해명하고 있다.

1)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독재와 강압정치에 맞서 바르트가 당연히 항거해야 되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물론 바르트도 소련의 전체주의와 독재적 방법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 그는 그를 비난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독재가 공산주의 없이도 우리 세계에서 항상 자행되어 왔음을 상기시켰다. 바르트는 아시아의 독재정치, 프랑스 혁명의 잔혹함, 그리고 소위 기독교적이라고 자칭하는 선진 유럽에서 일어난 악명높은 잔인성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소련 공산주의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무원칙적으로 성토할 수는 없노라고 소신을 피력했다.31) 다른 곳에서도 그는 공산주의는 바로 서구의 발전의 달갑지 않는, 그러나 자연스러운 변형의 결과와 반영임을 주장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서구철학과 정치의 책임을 되물었다. 그에 의하면 전체적 ·비인간적 강압은 소위 자유롭다는 서구의 사회제도와 국가질서 안에도 다른 형태로 출몰하고 있고, 공산주의가 모든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기에 전 세계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새롭거나 특별히 놀랄 만한 것이 아니며, 이런 종류와 경향을 가진 다른 체제들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32)

그렇다고 바르트가 소련의 독재체제를 옹호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러한 독재적 잔인성으로부터 긍정적 의도를 구별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강조했다. 즉 소련이 착수한 건설적 이상은 결코 맹목성, 미치광이 혹은 범죄의 현상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진지하고 시급한 문제, 즉 "사회적"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자유가 무엇을 의도하는지에 관해 그들보다 더 나은 양심을 가지고 대답하려고 한다면, 만약 우리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회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해답을 내리려는 찰나에 있다면, 우리는 소련의 해결방식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서는 굶주리고 있는데, 우리에겐 경제공황을 불러일으키고 곡식을 바다에 처넣는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련에 대해 무조건 거부의 말을 내뱉지 못할 것이다.33) 이런 점에서 바르트는 공산주의를 결코 나치스와 동일시하지 않았다. 공산주의는 사회문제를 자유세계와는 전혀 다른 진지함을 가지고 파악하고 있다고 바르트는 생각하였기 때문이다.34)

2) 바르트가 소련의 공산주의를 나치스와 다르게 본 관점은 무신론의 문제이다. 즉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부인했을 망정 그것을 재해석하고 위조하려거나 자신을 기독교의 옷으로 위장하려는 어떠한 작은 시도도 감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국가적 예수를 통하여 참된 그리스도를 제거하려는 무모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거기에는 반유다주의, 거짓 예언이 전혀 없다. 공산주의는 거 칠은- 비 그리스도적 사상이지만 적그리스도적인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는 잔인하지만 최소한 정직한 무신론이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교회가 그들에게 맞서 투쟁할 것이 아니라, 인내와 신앙, 즐거운 기다림과 담백한 고백 속에서 뭔가 긍정적인 것을 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즉 교회는 그들에게 서양적 세계관과 도덕, 현실적 삶의 종교적 비호, 내면성과 천당으로의 도피를 위한 가르침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나라, 전 인류의 주님과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해야 한다.

무신론에 관해 말하자면, 무신론은 본질적으로 공산주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골목길이나 신문 속에서도, 아니 교회 안에도 이미 퍼져 있는 지혜이다. 그리고 무신론은 교회가 너무 허약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분노로부터 생존하고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신론자에게 십자가에 관한 말씀을 빚지고 있다.35)

3) 바르트가 나치스에 대항한 것처럼 공산주의에 맞서 정치적 고백을 하지 않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공산주의가 결코 거짓 예언자로서 교회를 위협해 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교회가 시련 속에 처하여 이에 대항하려고 할 때에만 고백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독교적 ·정치적 고백도 파당성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모호한 서구적 감정을 정치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좋은 일이 못된다.36)

 

2) 바르트와 맑스주의

바르트는 맑스-카우츠키-레닌에 이르기까지 맑스주의 문서들을 열심히 읽었던 당대의 소수 신학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제한된 범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맑스주의의 중요한 인식들이 모두 충분히 수용되지는 못하였다.37) 그리고 맑스주의에 대한 그의 체계적 이해와 해석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곳을 우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그의 거작인 「교회 교의학」에서, 특별히 맑스주의와 대화하고 대결해야 한다고 느낀 경우에만, 여기저기서 그것을 취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한된 관점에서 그의 맑스주의 이해를 해명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겠다.

 

(1) 바르트의 맑스주의 이해

바르트는 특히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적으로 이해했다.

1. 역사적 유물론은 인류의 모든 역사가 본질적으로 인간의 경제의 역사, 경제사라고 주장한다. 다른 모든 것들, 즉 문화, 학문, 예술, 국가, 도덕, 종교의 발생은 이 현실의 부수 현상, 당대의 경제적 권력관계의 표현들이다. 이것들은 이 경제적 현실을 은폐, 미화, 합리화, 방어하려는 시도들이며, 아마도 종종 그 불만족의 표현, 그 비판의 도구, 그 변혁의 수단이 되어 온 것도 같은데. 여하튼 그것들은 항상 부차적 구조, 이데올로기로서 역사적인 실재인 경제와 본질적으로 대립한다.

 2. 역사적 유물론은 이렇게 이해된 인류사의 과정에 대한 비판이다. 그것은 경제사로서 사회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경제적 강자와 약자, 토지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들과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을 행하는 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투쟁의 역사이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거의 항상 오로지 증식만을 추구하는 익명적 자본 아래에 있었고, 그로 인해 부득이 그들은 잃어버린 자들, 징발 당하고 착취당하는 자들이 되었다. 여기서 위에서 언급한 이데올로기들은 그처럼 불공평한 수단들로 인해 생긴 계급투쟁을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거나 장려할 수밖에 없었다.

3. 역사적 유물론은 인류사의 미래과정에 대한 예언이다. 오늘날 익명적 자본의 지배로 변한 가진 자들의 지배는 으례히 항상 새로운 생산과 소비의 위기에 빠지고, 전쟁에 휘말려 들어가며, 혁명적 파괴를 유발한다. 그것은 그 내면적 필연성에 따라 마침내는 붕괴되고 만다. 대중의 프롤레타리아화는 점점 더 심화되고 현대 시민사회의 더 넓은 층으로 확산된다. 이렇게 증대하는 피억압 계급은 점점 더 자동적으로 경제적 과정 속에서'자신의 손안에 놓여 있는 힘을 인식하게 되고, 위급한 경우엔 그 힘을 폭력적으로 사용하여 익명적 독재 대신에 자신의 독재를 수립한다. 그들은 아직 남아있는 강제 징수품들을 징발한다. 그들은 더 이상 착취자나 피착취자가 없는, 다른 모든 사회적 병폐들이 뿌리 채 사라지는, 오늘날의 계급국가에선 거의 사회적 위선의 형태로서만 존재하는 도덕이 진정한 현실이 될 수 있는 그런 사회적인 경제국가와 복지국가를 세운다. 그것은 다시는 인간성을 무시하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되지 않고 진정하게 이해되는, 그래서 올바른 관점에서 올바른 개입을 통해 통솔되는, 경제적으로 물질적인 발전이 될 뿐이다. 이것은 칼 맑스가 그의 추종자들에게 최상의 것, 사회주의적 행동을 유발하는 본래적 동기로서 제시한 희망, 종말론이다.

4. 역사적 유물론은 오로지 끊임없이 불어나는 프를레타리아에게만 주어지는 호소이다. 그것은 모든 이들에게, 지배하는 시민들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역사적 유물론은 부르즈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부르즈와는 자신의 경제적 위치에 대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무엇을 듣거나 배우려고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과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적 유물론은 프를레타리아가 자신을 살펴보라는 호소이고, 일반 역사의 경제적 의미를 깨닫게 하고 그것을 계급투쟁의 빛 아래서 비판할 필요성을 깨우치는 호소이며, 노동자 계급의 경제적·정치적 연대성의 회복을 촉구하는 호소이다. 이 연대의 의미와 목적은 기존의 계급관계의 철폐를 촉진하는것, 새로운 계급 없는 사회의 건설을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역사적 시간과 상황, 특수한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상태를 사려깊고 치밀하게 고찰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역사적 유물론의 실천 속에서 이데올로기가 당연히 고려될 수 있다. 그것은 때로는 이용가치가 있고 때로는 불필요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고 때로는 방해하는 부수 현상이 되기도 한다.38)

 

(2) 바르트의 맑스주의 비판

바르트는 맑스주의를 교의학의 특정 주제와 관련시켜서 짤막하게 인용하는 형태로 비판했다.

1. 맑스주의는 인간의 일을 배타적으로 경제적으로만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에 기초하고 있는 이론적 ·실천적 귀결로부터 맑스주의는역사를 폭력화한다. 그것은 인간본성에 관한 잘못된 이해와 결부된 오류이다. 맑스주의의 지지자들이 점점 더 로보트 인간의 정신 혹은 비정신을 스스로 수용했다는 사실은 언젠가 분명히 보응을 받게 될 저주이다(인간론).39)

2. 우리는 하나님을 신앙함으로써, 그분의 섭리에 대한 신앙 속에서 역시 오직 그분만을 신앙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모든 것 위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 통치하는 주님임을 신앙하는 것은 역사가 분명한 과정의 진행, 분명한 구조의 완성, 분명한 프로그램의 전개임을 신앙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칼 맑스가 주장한 것처럼 경제적으로 억압당하는 자들이 승리하고 해방되기에 이르는, 경제적 계급의 상호투쟁 속에서 실현되는 그런 역사의 의미와 다르다.40)

슬라브주의의 성전의 정면은 급진적 맑스주의다. 그것은 기독교의예배당을 잠정적으로 포기하려고 하는 듯하다. 이런 잘못은 그것이 다가온 것처럼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물질이 신격화되고 인간실존이 절대화된 오류(섭리론).41)

3.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자유로운 사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노동과정의 지도는 오히려_국가의 손에 넘어갔다. 인간이 노동을 함으로써 인간을 그 자신의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 단순한 도구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 국가사회주의는 결국 인간에 의한 인간의 억압과 착취의 새로운 형태로 나아갈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부려먹을 수 있는 사물로 취급한다. "혁명"이라고 불리는 급진적 개혁의 시도도 상대적이어서, 그러한 시도의 방향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은 오로지 상대적 의미와 힘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악의뿌리는 인간의 잘못 속에 더 깊이 존재하고 있다. 거기서부터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항상 새로운 형태 속에서 불가피하게 파생되어 나온다(하나님의 계명 ).42)

4. 맑스주의 이론에 따르면, 세계사는 세계 내재적 법칙성의 작용에 내맡겨져 있다고 설명되는데, 이 이론은 하나님의 뜻, 말씀과 활동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인간의 교만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이런 인간의 교만과 불순종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로 나아간다. 세계사는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벗어나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세계통치는 중단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런 잘못된 왜곡과 도착에 부정(부정)을 선언한다(죄론)43)

 

(3) 바르트 신학의 맑스적 요소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교회비판을 위한 맑스주의의 긍정적 공헌도 바르트는 적절히 평가했다. 그는 맑스의 종교비판을 옳다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바르트에 의하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맑스가 종교를 역사적 상황의 산물로 보았다는 점에서 맑스는 기독교의 그롯된 자기이해를 비판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기독교는 인간의 산물인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를 "참된" 종교라고 부른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44)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인 분이다.45)

그리고 바르트는 자본주의적 시민사회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을 긍정했고, 맑스와 사회비판을 자신의 교회비판의 구성요소로 삼았다.46) 특히 그는 맑스의 계급이론을 토대로 삼아 "교회도 항상 지배계급의 편에 섰거나, 최소한 항상 경제적 강자의 막강한 권력조직에 지나지 않는 계급조직이 존속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 가장 확실한 보증인이 되지 않았는가?"47)고 묻고 있다. 하나님의 계명은 인간성을 위하고 그 인간성의 부정에 맞선 철저한 호소이고, 사실 모든 종류의 강자의 침해에 대항하여 약자의 편에 서라는 호소인데, 교회는 노동과정의 자본주의적 발전 앞에서 이 사실을 너무 늦게야 깨달았고, 그로 인하여 맑스주의의 잘못에 같은 잘못을 범했다. 교회에게는 국가사회주의가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증세를 보인다고 거기에 먼저 손가락질을 할 권한이 없다.48)

그리고 바르트는 교회가 추상적으로 이원론적인 그리스적 ·고대교회적 인간이해와 영혼불멸의 신앙 때문에 인간의 물질적 현실성을 백안시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교회가 영혼-몸의 교리를 가지고 물질의 문제, 몸으로서의 생명과 경제적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온 것은 잘못이 아닌가?"49) 바르트에 의하면, 인간은 비록 영혼과 몸으로 구분될 수는 있어도 분리 될 수는 없다. 인간의 본성은 영적·비공간적·불멸적 영혼과 물질적·공간적·사멸적 몸이라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로서의 인간은 전체로서 영혼인 동시에 몸이다. 인간은 전인이다.50) 그러기에 바르트에게 복음은 결코 사회, 물질적 곤궁, 사회문제와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51) 또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승리는 모든 피조물의 몸 가운데서 일어난다. 종말론적 약속의 의미는 인간과 자연이 몸의 영광으로 화해되고 구속받는 데 있다.52)부활은 아무리 영적인 사건이라 하더라도 육신적인 몸 안에서 일어나며, 물질적·형체적 인간의 실존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 실재주의는 물질주의이다.53)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약속도 전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어서 물질적·경제적 현실을 제쳐놓고는 긍정되거나 신앙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또 그것과 대립된 이데올로기로 부정되거나 제거될 수도 없다. 그런데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과 약속, 부활이 갖는 물질적 현실성을 증언하는 대신에 영혼불멸을 가르치는 일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대중이 경제적 유물론에 빠져들었을 때, 교회는 그것에 대해 오직 비난하고 욕지거리를 늘어놓기만 하는 이중타락에 빠졌다. 교회가 추상적인 영혼과 몸의 이원론에 몸을 내맡긴 결과 교회는 결국 유물론적 인간이해가 부상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앞으로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바르트는 교회를 비판했다.54)

 

4. 교회의 과제

양대 체제와 이데올로기 간의 냉전 속에 있는 교회의 과제와 역할은 무엇인가? 먼저 바르트의 확신에 의하면 교회는 올바른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복음은 자유진영이 내세우는 온갖 무신론과도 상관이 없다. 오직 올바른 복음만이 굳세게 설 수 있다. 교회는 정치적인 지도자들과 대중에게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희망에 관한 탁월한 증언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을 도와야 한다. 교회는 더 이상 자유진영의 일에 사려 없이 동조함으로써 복음에 상처를 내어선 안 된다.55) 교회는 인간의 자유를 지양하지 않고 오히려 손상될 수 없는 자유의 가치와 거룩함을 뒷받침해 주는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해야 한다. 교회는 인간의 정의를 무용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매우 촉진하는 하나님의 자유를 선포해야 한다. 교회는 모든 이성보다 더 뛰어나는 하나님의 평화를'선포해야 하며, 인간성을 호소하고 세우는 일에 봉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공산주의에 대항하거나 자본주의에 대항할 것이 아니라, 양자 사이로 들어가서 서로가 간과하고 있는 것을 대변해야 한다.56) 교회는 양 체제의 대립을 넘어서서 모든 국가들이 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축복받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예언자 이사야의 환상)을 증언해야 한다. 57)

그래서 교회는 먼저 긴장 완화와 세계 평화를 도모하는 일에 이바지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투쟁이 아니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모든 분노와 미움은 다시금 파괴로 치달을 뿐이다. 교회는 상호간의 불안을 제거하는 일에 기여하기 위해 양 체제 사이에 개입해야 한다.58) 자유와 인권이냐, 아니면 상호적 대적인 원자 폭탄을 통한 멸망이냐? 이것은 무의미한 양자택일이고 바보의 일이다. 교회는 순전한 전쟁의 염려 때문에 그와 같은 전쟁놀이를 하는 일을 동조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원폭에 의한 멸망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이웃사랑이 될 수 있는가? 교회가 어찌 그런 모험에 동조할 수 있는가?59)

끝으로 바르트가 냉전의 한복판에 외로이 서서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던진 한마디의 충고(1952년 바젤 방송)를 듣기로 하자.

불안을 가지지 않으려는 자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듣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려는 확고한 결단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는 대중의 견해나 선전의 영향 아래서 대중의 상품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유로운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평화는 위협받는 것이다. 결국 자유롭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형제의 염려와 고통에 열려 있다. 그는 자신의 원칙보다는 존경과 사랑에 더 우선권을 둔다.60)

(신학사상, 제 65집, 1989년 여름, 원제: 칼 바르트와 공산주의)

 

- 주 -

 

1) K. Barth, How my mind has changed, in : K. Kupisch(Hrsg). Der Goetze wackelt, Berlin, 1961, 196f.

2) K. Barth, Brief an Sartorius(1948.1,1). in: E. Busch, Karl Barths Lebenslauf, Muenchen 1975, 369.

3) K. Barth, How my mind has changed, in : 상게서, 196f, 201ff,

4) 상게서,  205.

5) K. Barth. Die Kirche zwichen Ost und West, 1949. in : K. Kupisch, 상게서, 129.

6) 상게서, 130ff.

7) 상게서, 128ff.

8) K.  Barth, How my mind has changed, 203.

9)K. Barth, Die Kirch zwischen Ost und West, 132ff.

10) K. Barth, How my mind has changed, 201.

11) 상게서, 202.

12) K. Barth, Brief an Th. Schnyder(1958, 6, 8), in: E. Busch, 상게서, 397.

13) K. Barth, Brief an G. Jacob(1955, 2, 18), in: 상게서, 397.

14) E. Busch. 상게서, 399.

15) K. Barth, Die christliche Gemeinde im Wechsel der Stattsordnung, 1948, 3, EvTh. H. 1-3, 13.

16) M, Schoch, Karl Barth. Theologie in Aktion, Frauenfeld, 1967, 181.

17) 상게서, 187.

18) 상게서, 181.

19) 상게서, ?

20) K. Barth, How my mind has changed, 197.

21) 상게서, 203.

22) M. Schoch, 상게서, 181.

23) 상게서, 182. ,

24) U. Dannemann, Theologie und Politik im Denken Karl Barths, Gruenewald 1977, 186f.

25) 상게서, 242f.

26) K. Barth, Jesus Christus und die Soziale Bewegung, in : 상게서, 243.

27) 상게서, 202ff.

28) H. Gollwltzer. Reich Gottes und Sozialismus bei Karl Barth, ThExh. 169, 19.

29) 상게서, 11.

30) M. Schoch, 상게서, 182f.

31) K. Barth. Die Kirche zwischen Ost und West, 136.

32) K. Barth, How my mind has changed, 201f.

33) K. Barth, Die Kirrhe zwischen Ost und West, 136ff.

34) H. Gollwitzer. 상게서, 16.

35) K. Barth. Die Kirche zwischen Ost und West, 138f.

36) 상게서, 139f.

37) H. Gollwitzer, 상게서, 45.

38) K. Barth, Kirchliche Dogmatik(이하 KD로 표기함) Ⅲ1/2, 464ff,

39) KDⅢ/2, 467.

40) KDⅢ/3, 24.

41) KD Ⅲ/3, 126.

42) KD Ⅲ/4, 624f.

43) KD Ⅳ/1. 564.

44) KD I/2, 356ff.

45) 상게서, K. Barth. Das Christentum und die Religion(1963), in:  E. Busch, 상게서, 485.

46) F. W Marquardt. Theologie und Sozialiemus. Das Beispiel Karl Barths, Muenchen 1972, 315.

47) KD Ⅲ/2, 467.

48) KD Ⅲ/4, 624.

49) KD Ⅲ/2, 467.

50) 상게서, 455ff.

51) H. Gollwitzer, 상게서, 16.

52) 상게서, 32.

53) F.W. Marquardt, 상게서, 314.

54) KD Ⅲ/2, 467.

55) K. Barth, How my mind has changed, 293.

56) K. Barth, Die Kirche zwischen Ost und West, 141.

57) 상게서 , 143.

58) 상게서, 141.

59) K. Barth, How my mind has changed, 203.

60) K Barth, Was sollen wir denn tun? Kirchenblatt fuer die reformierte Schweiz. 5. Juli 1952, in: D. Cornu, Karl Barth und die Polit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