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어린이 고난의 현장에 던져진 필자의 졸저 '어린이 신학'(Theology of Child, 한들 출판사, 1998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준 것 같다. 제목도 낯설거니와 발상도 조금 엉뚱한 탓에 허술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 같다. 제목만 언뜻 본 사람들은 대개가 이 책을 어린이를 위한 교육 교재가 아니면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신학을 풀이한 책으로 착각했을 법하다. 하지만 이런 오해는 부제(하나님을 어린이로 생각하기)만 보아도 금방 풀리기 마련이다.

여하튼 어린이의 시각에서 신학을 진술한 시도는 지금까지 거의 없다시피 하기에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자리를 빌려서 부족한 이 책을 널리 알리고 갈채까지 보내준 기독교 신문사(국민일보, 크리스챤 신문, 교회연합신문 등), 기독교 방송사(CBS의 크리스챤 매거진), 잡지사(목회와 신학)의 담당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 모든 것이 부족한 필자를 도구로 사용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일 따름이다.

하지만 이 책을 발간한 후에 나는 여러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점점 가벼운 책을 선호하는 젊은이들과 평신도들에게 이 책은 여전히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관념적인 것에 치우쳐 현실감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심각한 자연 파괴와 자연 구원에 대한 관심은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또 신학적인 논리에 너무 집착하는 나머지 정서적이고 영적인 측면이 덜 강조되었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이 신학"은 영성을 풍부하게 담을 수 있는 좋은 그릇이 된다는 확신도 들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써내려 가는 동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은 영적인 자세를 추구했으며, 그 이후로 나의 삶의 방식은 새로운 영적인 전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은 내용을 미리 가늠케 한다.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영성은 그 어느 한 영역에 치우치거나 극단적인 영성이 아니라 삶의 모든 차원을 끌어안는 포괄적인 영성, 공동체적인 영성, 통전적 영성이어야 한다. 이러한 영성이야말로 참으로 기독교적인 영성이요,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온전한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필자가 글을 써 오던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지식을 자랑하듯이 주석을 주렁주렁 매다는 허식을 포기한 것이라든지, 독자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필자의 신앙 고백으로부터 시작한다든지, 가급적 글을 짧게 쓰려고 노력한 것은 모두 주체적이고 현실적인 글쓰기의 몸부림이다. 별것도 아닌 필자의 신앙 고백을 삽입한 것은 결코 괜한 자랑이 아니다. 이젠 나의 글쓰기도 현장 경험과 나 자신의 주체적인 경험과도 분리되지 않겠다는 결단의 발로이다. 아니 큰 신학자들의 뒤꽁무니만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유식한 척했던 지난 날의 사대주의적인 글쓰기를 가급적 포기하고, 비록 부족한 논리와 체계로나마 나의 가슴에서 솟구쳐 오르는 진솔한 생각을 토해내겠다는 선언이다.  

이 자리를 빌려 부족한 사람과 성결신학연구소를 후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어려움 중에도 절망과 자포자기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나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를 재발견하고 이론적이나마 그들을 도울 길을 모색한 것은 큰 은총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곤궁에 처할 때에 비관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남에게 기꺼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훈련을 함으로써, 나 또한 곤궁에 처한 남을 도울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것도 큰 은총이었음을 고백한다. 이처럼 진정한 영성은 개인의 고독과 은밀한 환상 가운데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서로 마음을 열고 사랑하는 가운데서만 성취된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출판을 염두에 두고 1998년에 작성한 것이다. 하지만 적은 분량과 부실한 내용으로 출판할 용기를 내지 못해 그냥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어린이 신학" 이후에 출판을 기대하는 많은 분들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내용을 조금 보완하여 이제야  출판하게 되었다. 출판의 불황과 경영의 어려움 속에서 양서를 계속 출판하시는 한들 출판사의 정덕주 사장님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모쪼록 이 작은 책이 교회와 세상을 묵묵히섬기는 평신도들에게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중에서도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사랑하는 나의 두 아들, 주운(主運: 주님을 지고 가는 사람)과 주명(主明: 주님의 빛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이 작은 책을 선물로 준다.  

 2002년 5월 5일   이신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