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생애를 통하여 사고의 틀이 어떻게 형성되고 바뀌어 왔는지를 설명하였다. 그런데 나의 짧은 생애 속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는 한국의 급속한 근대화의 영향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다. 즉 나의 사고의 변화는 한국의 급속한 근대화의 도전에 나름대로 응전한 실존적인 결단의 결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의 사고의 변화는 한국 사회의 변화만이 아니라 우연하게도 근대 사회의 형성에 따른 서구 신학의 변화를 잘 압축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도 인간은 얼마나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짤막하게나마 서구의 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설명하려고 한다.

 

1. 인간(人間)으로의 전환

교회가 유럽인의 삶을 지배하던 중세기는 어떠한 사고가 지배하던 시기였는가?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세기의 카톨릭 교회는 프톨레미(Ptolemy, 100-170년)가 확립한 지구중심설 혹은 천동설(天動說)을 이론적 토대로 삼아 자신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지배 권력을 정당화하고 신성화하였다. 하늘에 하나의 태양이 있어서 수많은 별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듯이, 이 땅에도 하나의 태양, 즉 교황(敎皇)이 있어서 온 백성들은 교황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지만, 그리스도의 권세는 베드로를 통하여 적법하게 계승되는 교황에게 위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세의 우주관과 베드로의 수위권(首位權) 및 사도직의 계승권을 통하여 교황은 이 땅에서 인간의 삶의 모든 분야를 장악할 수 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교황은 첫 사도 베드로가 순교하고 묻혔다는 성지(聖地)를 확장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으로 유럽인의 헌금과 세금을 모아들였다. 그래도 자금이 부족한 카톨릭 교회는 이른바 면죄부(免罪符) 혹은 면벌부(免 罰符)를 고안하였다. 즉 음부에서 신음하는 가족들의 영혼이 천국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것을 사야 한다고 현혹하였으며,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믿음만이 아니라 종교적 고행과 공적도 추가되어야 한다고 전파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신심이 깊었던 수도사 루터(M. Luther)는 양심의 평화를 얻기 위해 고투하다가, 도저히 인간의 공적으로는 의롭게 될 수가 없으며 사죄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한 것임을 발견하였다. 바로 옆에서 벼락을 맞아 죽은 친구를 보고 부들부들 떨었던 루터는 "진노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인간이 은혜로운 하나님을 발견할 것인가?"를 고심하다가, 로마서 1장 17절(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에서 그 해답을 찾았고, 이런 '복음'의 이름으로 종교개혁의 물꼬를 터뜨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루터의 주된 관심사는 예수님처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공의를 찾을 수 있는가?"에 있었다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진노를 되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찾을 수 있는가?"에 있었다. 즉 루터에게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용서받아야 할 자아(Ego)가 전면에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루터는 현대의 개인주의와 인간의 자기중심주의의 아버지가 되었다(P. Sch tz). 그 이후로 루터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 개인주의'의 전도자가 되었다. 루터의 '두 왕국론'의 영향으로, 아니 때로는 이를 왜곡하면서 루터교인들은 역사와 사회의 변화에 둔감하거나 때로는 불의한 역사의 흐름에 편승하였으며, 세계의 격랑에 대해 초연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교회 성장과 영혼의 위로에만 매어 달리는 '정적이고 게으른 그리스도인'(R. Lagaz)이 되었다.

제네바의 칼뱅(J. Calvin)은 어떠하였는가? 진노하시는 하나님 앞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받기를 원하며 영혼의 평화를 갈구하던 루터와는 달리 칼뱅은 하나님의 영광(Gloria Dei)을 강조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살아가는 세속적인 삶도 긍정하였다. 칼뱅은 루터처럼 세상을 두 왕국으로 나누지 않았으며,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삶을 강조했다. 그래서 막스 베버(M. Weber)는 칼빈의 가르침을 따라 직업(Beruf)을 하나님의 소명(Berufung)으로 여기고 살았던 사람들 속에서 이미 자본주의가 싹트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인식(神認識)의 출발점은 여전히 '자아'에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의 첫 장은 바로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하나님 인식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인식 중에서 어느 쪽이 먼저이고, 어느 쪽의 지식이 다른 쪽의 지식을 산출해 내는가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다"고 말하는 칼뱅도 인간의 무지, 공허, 빈곤, 허약, 타락과 부패야말로 하나님을 자각하는 출발점이 된다고 분명히 말한다. 왜냐하면 우주 창조 속에서 빛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실제적으로 인간에게 아무 것도 말해 주지 못하며,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그리고 성령의 증거를 통해서만 실제적으로 자신을 알리시지만, 이러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결국 인간 자신의 범죄와 비참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생겨난다. 비록 칼뱅이 루터와 달리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 이에 복종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강조하였지만, 그에게서도 역시 '자아'가 은근히 신앙 인식의 전면에 나오는 것을 분명하게 본다. 이런 면에서 그도 역시 종교적 개인주의, 자아중심주의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2) 역사(歷史)로의 전환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기독교 신학에서 '역사'라는 패러다임은 '실존'이라는 패러다임을 밀어 재치고 점차로 의식의 전면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칼 브라텐(C. Braaten)의 말처럼 현대 신학계에서 '계시'와 더불어 '역사'라는 용어가 짝을 이루면서 유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왜 오늘날에 이르러 비로소 역사가 크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는가? 불트만(R. Bultmann)에 의하면 오늘날에 역사가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된 이유는 인간이 역사의 과정 속에 맡겨져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 데 있다. 즉 현대인은 자신의 삶이 역사적 사건들의 과정에 얼마나 철저히 의존되어 있으며, 자신이 역사의 과정에 얼마나 무력하게 종속되고 있는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제1, 2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과 중국 혁명을 비롯한 커다란 세계사적 사건들로 인하여 더욱 더 긴박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의 신학'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역사 의식을 새롭게 각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한 몰트만(J. Moltmann)에 의하면 현대의 역사의식은 위기의식이며 현대의 역사철학은 근본적으로 위기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의 역사 체험은 종래의 전통의 매개로써는 극복할 수 없는, 끝없이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체험에 근거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결단의 압력으로 억누르는 위기 앞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는 위기로 인식되었으며, 역사에 대한 비판은 이 위기의식이 낳은 의식이었다. 역사의 의미, 역사에 대한 관심, 또 역사를 이해해야 할 필연성은 언제나 지금까지 알려지거나 예감되지 않았던 새로운 가능성이 지평 너머로 나타나는 위급하고 불안한 시기에 일어난다. 어거스틴(St. Augustinus)의 저서 '신의 도성' 이래로 역사가의 배후에는 이와 같은 위기 경험이 존재해 왔다.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로부터 역사는 전체적으로 위기로 이해되었다.

몰트만 외에도 특히 기독교를 위한 종말론의 의의와 가치를 재발견함으로써 역사의 패러다임을 신학 논의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크게 공헌한 신학자들로는 '역사로서의 계시'를 저술한 판넨베르크(W. Pannenberg), '미래와 약속'을 저술한 자우터(G. Sauter), '파루시아, 희망 및 예언'을 저술한 쉬츠(P. Sch tz)가 있다. 성서신학자들로서는 '그리스도와 시간'을 저술한 쿨만(O. Cullmann), '역사와 성취'를 저술한 큄멜(W. G. K mmel), '역사와 종말론'을 저술한 불트만(R. Bultmann) 등을 언급할 수 있겠다.

그리고 유럽 바깥으로는 북아메리카의 '사회복음'(라우센부쉬), '혁명의 신학'(숄), '흑인신학'(콘)과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구티에레츠, 보프, 보니노), 아시아의 경험을 반영한 '아시아 신학'(송천성), 한국의 '민중신학'(서남동, 안병무 등)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폭넓은 영역을 확보해 나가는 '여성신학'(피오렌자, 뤼터, 러셀, 벤델) 등도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통 경험을 토대로 하여 성서의 역사적 해방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려는 의식을 드러내는 신학 기획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 속의 구원'을 갈망하고 표현하려는 이런 신학적 노력은 오늘 날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3) 자연(自然)으로의 전환

'역사'라는 패러다임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점점 더 그러하지만, 특히 현대 이후의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연' 혹은 '생태계'의 문제는 매우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산업화로 인해 초래된 자연 파괴와 공해가 일찍부터 시민의 정치 의식을 각성시켜 왔으며, 그래서 독일에서는 자연 환경을 정치적 이슈로 내세운 젊은이들로 구성된 녹색당(綠色黨)이 최초로 정치권으로 진입하여 적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러시아의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사고로 인한 엄청난 재해는 환경 의식을 온 세계로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자연 혹은 환경 문제는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던 과학자들 사이에서 자주 학문적으로 거론되었고, 이제는 이런 과학적 이론들이 동양 종교의 통찰을 빌려 더욱 정교하고 심오하게 전개되곤 한다. 프리쵸프 카프라(F. Capra)가 그 구체적인 실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오래 동안 소립자(素粒子)를 연구한 물리학 교수였지만, 물리학을 동양 사상과 비교하는 강연과 논문을 많이 발표하였던 자이다. 특히 그가 저술한 '현대 물리학과 동양 사상',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신과학과 영성의 시대' 등은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구미(歐美)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과학 운동, 새로운 생활 운동, 녹색 운동의 이념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신학도 일찍이 이 문제를 남의 일로만 방관해 온 것은 아니다. 구약성서의 창조신학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신약성서에는 바울의 '신음하는 피조물'에 대한 환경신학적 해석이 종종 시도되며, 지금까지 헬라의 신비주의적 자연사상의 영향을 받은 문서로 평가절하되었던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우주적 그리스도와 우주적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신학권에서 우주와 자연 혹은 생명 현상 등을 가장 폭넓게 연구한 중요한 사람으로는 샤르뎅, 캅, 그리핀, 매튜 폭스(M. Fox), 몰트만 등이 있다. '진화론적 신학'을 창시한 사르뎅은 우주를 하나님이라는 오메가 포인트를 향하여 진화해 나가는 거대한 생명 체계로 보았다. 그는 "우주가 나의 몸이다"라고까지 말하였으며, 이와 비슷하게 '과정 철학'을 창시한 화이트헤드(Whitehead)도 "현실적 세계는 곧 나의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폭스는 뇌, 육체노동, 영성, 신과학 연구와 병행하여 많은 예술과 명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몰트만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의 영을 통하여 바로 창조물 안에 거하면서 이를 보존하고 갱신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샤바트'(안식일)는 하나님과 온 피조물의 완전한 사귐을 성취하는 종말론적 희망이며, 이 때가 되면 하나님은 온 피조물 안에서 자신이 안식할 거처를 마련한다. 창조의 내적인 원리가 계약이라면(바르트), 계약의 내적인 원리는 하나님의 나라, 즉 만물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안식하는 영광의 나라이다. 창조의 마지막 목표는 인간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 안의 만물의 사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