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로부터 거듭나야 한다!

 

 예수님에게 밤손님이 찾아 왔다. 대단히 예외적인 일이다. 밤이 오면 예수님은 조용한 기도처를 찾으시거나 피곤으로 곧 잠에 떨어지시기 때문에, 손님을 맞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통 수단도 제대로 없이, 음식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거친 돌짝 밭을 온 종일 돌아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시던 예수님은 오죽 피곤하셨을까? 또 시끄러운 군중을 고치시고 가르치시다가 영력과 기력이 쇠할 때면, 예수님은 자주 조용한 휴식처나 기도처를 찾으셨다. 이러니 예수님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찾았다손 치더라도 면회하기가 쉬웠겠는가? 그러나 이 날밤만은 예수님은 손님을 관대히 맞아들이셨다. 설마 예수님이 높은 관리라고 우대하시진 않았겠지! 여하튼 이 날밤에 예수님은 니고데모라는 한 관리를 정중하게 맞이하시고, 그의 인터뷰에 응하셨다.

이 관리가 왜 밤에 찾아 왔는지도 우리는 잘 모른다.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가 골수 유대인 바리새인이라니, 대낮부터 무식한 시골뜨기 선생을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님"으로 부르면서 떳떳이 찾아오기가 보통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솔직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전통적인 유대교의 율법 아래 충실히 살던 바리새인이었지만, 뭔가 예수님으로부터 더 큰 표적을 구하려고 찾아왔던 것 같다. 그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인 걸로 알았다고 말한다. 혹시 이 말은 공연한 겉치레 인사말일 뿐, 예수님을 떠보기 위하여, 혹은 논쟁하기 위하여 찾아온 것은 아닐까?

여하튼 니고데모가 뭔가를 묻거나 말싸움을 걸기도 전에, 예수님은 대뜸 "정말로 정말로 말하건대, 거듭나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가히 상대방을 압도하시는 말씀이다. 하지만 예수님에겐 처음부터 허식이나 과장된 권위가 없으시다. 진리의 정곡을 지르는 말씀, 아니 니고데모의 아픈 가슴을 찌르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겐 진정 거듭난 확신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나는가? 다시 엄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라고? 웬 허황한 소리인가?"라고 니고데모는 솔직하게 묻는다. 조금은 단순한 사람이다.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듣다니. 그러나 그는 상대방의 말을 말의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박한 어린이와 같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어린이와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는 이미 복받은 사람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순진함을 조금도 공박하시지 않고, 당신의 말씀을 뜻풀이하신다. "정말로 정말로 내 말의 뜻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난 것은 육체적인 사람이고, 성령으로 난 사람만이 영적인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령으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이다. 성령으로? 그렇다 성령은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생명의 영, 살리는 영, 부활의 영이다. 성령의 자궁에서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한 사람만이 영생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다. 이것은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거듭나는 경험이다.

"너희가 어린이가 되지 않으면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 예수님의 말씀도 이런 각도에서 해석해야 한다. 즉 누구든지 성령의 자궁에서 어린이로 태어난 자야말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그는 이 나라에 속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어린이로 존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 이를 어린이의 출생에 비유하신 예수님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하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성숙 과정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시지 않은 사실은 참으로 기이하다. 성령의 자궁 안에서 어린이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기적과 같이, 한꺼번에 오는 것이지, 성장-발전을 통해 오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인가? 우리는 한번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 그 이후에는 더 이상의 발전-성장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씀인가?

여하튼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나고 성장하고 결혼하고 죽는 일이 없다면,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자가 어찌 더 이상의 변화를 기대할 것인가? 그는 이미 생명과 평화, 기쁨으로 충만하다. 고로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는 것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정체성 확립도 바로 어린이로서만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고로 우리는 어린이로 거듭나야 하고, 늘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품안에 뛰어들며 뛰노는 영원한 어린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가난한 자와 어린이를 통하여, 아니 바로 그들에게 왔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의 인격 그 자체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함께 우리에게 가난한 자와 어린이를 가까이 데려 오셨다. 그러나 어린이는 가난하지만, 가난한 자는 어린이가 아닐 수 있다. 어린이는 마음이 깨끗하지만, 가난한 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어린이는 온유하지만, 가난한 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어린이는 슬피 울지만, 가난한 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어린이는 평화롭게 지내지만, 가난한 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 밖에 없다. 어린이가 되는 길이다. 우리는 위로부터 거듭나야 한다. 오직 어린이로만!